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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ep1. Germination-- >7 (9/40)

< --Step1. Germination-- >

"잘 들어가라."

"응. 너도 잘 가. 내일 학교에서 보자."

 나보다 먼저 버스에서 내려서 집으로 가는 한지혜 양. 그래. 지혜랑 같이 버스 타고 왔다. 하굣길에 다른 학생들한테 엄청난 시선을 받으면서. 그리고 깨달았다. 미녀랑 같이 다니는 것. 그거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력을 아주 쏙쏙 빼먹는 다는 것을 깨달았다. 

"후덜덜이다. 정말."

 몸은 안 피곤한데 정신이 피곤한 이상한 경험을 하면서 중얼거렸다. 출구 쪽 봉에 몸을 기대어본다. 조금 편안한 거 같다. 지금 이 시간 버스는 거의 막차다. 아마 뒤로 한 두 대 정도 더 오면 버스도 끊길 시간. 정말 대한민국 고딩들 열심히 사는 거 같다. 정말 그러하다. 내려야 할 정류장에서 내려 나는 원룸으로 돌아왔다. 열쇠로 문을 열고 나의 보금자리로 돌아와서는 가방을 던져놓고 바로 씻었다.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는 바로 침대에 누웠다. 별로 공부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영 싱숭생숭해서였다. 10/44 10

"갑자기 여복이라도 들어온 건가. 하하."

 사실 뭐. 제대로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근래 보기 드문 미녀 둘이 내 근처에 나타난 건 사실 아니겠는가. 뭐. 상상은 내 자유니까. 

"최미진. 한지혜."

 나는 그냥 누워서 그 두 여자의 이름을 불러봤다. 절로 흐뭇해진다. 

"하하하하."

 한번 그냥 크게 웃어봤다. - - - 그래. 솔직히 말하면 오늘도 기대된다. 혹시나 버스에서 또 그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말이다. 오늘까지 만난다면 삼 일 연속 버스에서 만나는 것이다. 사실 약속이 되지 않는 다면 같은 버스에 타는 것은 쉽지 않다. 그 한도를 아침 등교시간으로 제한한다고 해도 말이다. 조금만 늦으면 버스를 한 대 놓칠 수도 있고 조금만 일찍 나오면 버스를 한 대 먼저 탈 수도 있는 거 아니겠는가? 

약간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정류장에 도착한 버스에 올라탔다.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찍고는 나는 버스 안을 두리번거렸다. 와우. 엄청난 행운이다. 오늘도 버스가 한산했던 것이었다. 버스에 약간 뒤쪽에 있는 빈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내 옆좌석은 비어있다. 제발 아무도 오지 말고 그녀가 앉기를. 나랑 그녀랑은 아무 사이도 아니지만 그냥 한 번 빌어본다. 방울아. 너도 뭐라 해야지. 딸랑. 딸랑. 무슨 캐스트 어웨이의 윌슨도 아니고. 크크. 혼자 방울을 흔들고 쌩쇼를 하고 있다. 그렇게 나는 그냥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버스를 타고 갔다. 그리고 버스는 그녀가 항상 올라타던 정류장에 섰다. 나는 버스 문이 열리는 것을 고개를 빼꼼히 들고 바라보았다. 

"저. 정말 탔잖아?"

 이. 이건 정말. 대박이다. 문 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녀가 버스에 올라타는 것 아닌가. 오늘은 약간 검회색 톤의 정장을 입은 그녀. 생각해보니 삼 일을 봤는데 매일 그녀의 의상은 달랐다. 매일같이 정장이었지만 다른 색깔. 다른 스타일의 정장이었던 것이다.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가 버스에 오르면서 무언가를 찾고 있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녀. 나는 반가운 마음에 그녀를 보고 웃어주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그녀 역시 나를 보고 웃어주는 것이 아닌가. 그녀. 최미진. 누나? 라고 해야 되나. 하여튼 그녀가 버스카드를 단말기에 찍고는 바로 내 쪽으로 걸어왔다. 나의 머릿속에 각인되어있는 그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내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는 그녀.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인사해오는 그녀. 최미진.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벌써 삼 일째네요."

"그러게요. 방울이도 잘 있네요."

"방울이요? 하하. 네. 잘 있어요. 방울아. 인사해야지."

 나는 그녀를 향해 웃으면서 방울을 흔들었다. 딸랑. 딸랑. 방울 소리가 청아하게 울렸다. 그 소리를 듣고 웃는 건지. 아니면 그냥 내가 하는 행

동이 웃겨서 웃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여태껏 내가 본 미소 중에는 가장 활짝 웃는 축에 속하는 미소. 살짝 패인 보조개가 너무 귀엽다. 

"보조개가 참 예쁘시네요."

 칭찬. 여자는 칭찬에 약한 동물이라지 않는가. 

"고마워요."

"고마워하실 게 뭐가 있어요. 사실을 말하는 건데. 원래 저는 절대로 거짓말을 못하는 남자랍니다."

 이 정도면 이제 개드립도 아닌 거 같다. 그나저나 정말 삼 일이나 같은 버스에 올라타다니. 그 전까지는 내가 이 버스를 도대체 몇 번을 탔는데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람을 말이다. 

"그나저나 정말 신기하죠?"

"어떤게요?"

 그녀가 내 눈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녀의 그 시선이 조금 부담스러워 고개를 돌리

며 내가 말했다. 

"이렇게 삼 일 씩이나 같은 버스 탄 거 말이에요. 버스를 한 대만 놓쳐도 마주치지 못할 텐데 말이에요. 제가 그리 규칙적이지 못한 등교시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더 신기 한 거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신기한 거 같아요."

 입이 근질근질하다. 또 드립을 날려야만 이 근질함이 사라질 거 같다. 두 눈 감고. 그래. 한 번 던져보자. 개드립. 

"그런 의미로. 우리 휴대폰 번호나 교환할까요?"

 터졌다. 개드립. 무작정 던져버린 드립에 나는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조금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 왠지 망한 거 같은 느낌이다. 나는 황급히 말했다. 

"아. 그냥 농담으로 한 거니까 싫으시면 안 하셔."

"아뇨. 싫은 거 아니에요. 우리 그렇게 해요. 휴대폰 번호. 휴대폰 줘 보세요."

 뭔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 뭐지. 이 뜬금없는 루트는. 나는 손을 내밀어오

는 그녀의 박력에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그녀에게 주었다. 스마트폰이 범람하는 세상에 여전히 꿋꿋하게 예전 휴대폰을 고집하는 나의 자랑스러운 휴대폰이 그녀의 손에 넘어갔다. 그녀는 내 휴대폰에 자신의 번호를 찍더니 자신의 스마트 폰에 전화를 걸었다. 걘역시2. 오호. 최첨단을 달리는 휴대폰이다. 아. 이게 중요한 게 아닌데. 전화가 걸리고 내 번호가 그녀의 스마트 폰 액정에 떴다. 

"여기 있어요."

 그녀가 폰을 내게 돌려주었다. 폰을 돌려봤다가 또 그녀의 나긋나긋한 손이 내 손에 닿았다. 그런데. 눈에 보일 정도로 움찔하는 그녀. 정말. 정말. 이러다가 뭔가 내가 일을 내는 것이 아닌가? 정말 미러클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오오오. 그런데 휴대폰 번호를 교환하고 나니까 나와 그녀 둘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사실 나도 지금 상당히 부끄러운 상태였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보니 홍당무처럼 붉어진 얼굴이 둔한 나라도 바로 알아볼 정도로 티가 났다. 이렇게 일이 진척이 되어버리니 오히려 당황스럽고 난처한 것은 왜 인가. 사실 남녀관계에서는 둔감한 나지만 이건 뭔가 다르다. 정말 고삐리가 먼저 부뚜막에 올라버릴 판국이었다.

[이번 정류장은 청하고등학교. 청하고등학교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결국 둘 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나는 내려야 되는 시점이 왔다. 내리려고 일어나려는데 최미진. 그녀가 내 손을 붙잡았다. 

"저. 저기요."

"네. 네. 마. 말씀하세요."

 그녀의 말에 버벅거리며 대답하는 나. 가슴이 너무 떨려서 미칠 거 같다. 

"무. 문자 보낼게요. 꼭 답장 부탁드려요."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말하는 그녀.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 알겠어요. 그. 그럼. 저 가. 가볼게요."

 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버스가 멈춰서자마자 여태껏 버스에서 내렸던 것을 통틀어 가장 빠른 속도로 버스에서 내렸다. 

"하아. 하아."

벌렁거리는 가슴. 화끈거리는 얼굴. 손부채질을 하는 나. 정말 미쳐버리겠다. 정말. 

"이. 이게 꿈이야. 생시야."

 볼을 꼬집어보니 분명 생시다. 아무것도 없는 고등학생. 그것도 고등학생 1학년. 사촌 형의 표현으로 하자면 짬찌끄레기인 난데. 그렇게 이쁜 여자가. 그것도 직장 있는 여자가. 왜 훨씬 어린. 그것도 능력도 없는 고딩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말 기쁘고 좋지만 이해는 되지 않는 게 사실이다. 벌렁거리는 가슴을 안고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패닉상태에 빠져서.

============================ 작품 후기 ============================제가 글을 쓰는 스타일은?? 꼴리는 대로. 임돠. =====================================================================

============================ 작품 후기 ============================Text Loading ... 좋지만 이해는 되지 않는 게 사실이다. 벌렁거리는 가슴을 안고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패닉상태에 빠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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