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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ep1. Germination-- >5 (7/40)

< --Step1. Germination-- >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사말. 아름다운 그녀가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내게 인사해왔다. 이렇게 인사를 해올 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했다. 물론 어제의 대화도 있었지만 일부러 이렇게 내 옆에 찾아와서 인사를 할 줄이야. 잠시 당황해서 벙어리처럼 입을 닫고 있는데 그녀가 약간은 서운한 표정으로 다시 말해왔다. 

"설마."

 뭐라고 말할지 예상이 된다. 나는 황급히 그녀의 말을 자르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하하."

 약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하자 그녀가 나를 보고 웃어주었다. 이거 뭐 하자는 수작이지? 원래 인사성이 밝은 건가? 딱 봐도 능력있어 보이고 콧대 높아 보이는 여잔데 설마 고딩한테 관심있는 건 아니겠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떠오른다. 그 상념의 바다에 빠져 헤어나오지도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나를 구해준 목소리. 바로 내 옆에 봉을 잡고 선 그녀의 목소리였다. 

"오늘도 방울 가지고 계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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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 하... 이거요.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요."

"저. 방울 한 번 더 만져 봐도 될까요?"

 그녀가 내게 부탁해왔다. 아무렴요. 누구 부탁인데. 미녀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모든 남성들의 의무이자 권리이고 말입죠. 

"그럼요. 여기 있어요."

 나는 손에 있던 방울을 그녀에게 주었다. 그리고 건네어 주던 그 찰나에 나는 그녀의 손을 살짝 건드렸다. 짜릿. 전기가 통하는 이 느낌. 하아. 좋다. 얼마 건들리지 않았지만 나긋나긋한 손의 감촉은 확실히 남았다. 히히. 오늘은 손 안 씻어야지. 아주 혼자 신나서 속으로 별의 별 생각을 다하고 있는데 옆의 그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정말 이상하죠? 이렇게 듣기 좋다니."

음. 그건 정말 동감이다. 나도 방울소리가 정말 듣기 좋았으니까. 사실 내 방울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원래 방울소리가 저렇게 청아하고 듣기 좋은 것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다 든다니까. 

"저도 그 말에는 심히 동감하고 있습니다."

 내가 살짝 웃어주면서 말하자 그녀가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음.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눈은 내가 먼저 피했다. 

"저랑 똑같은 생각이셨군요."

"그러게요. 하하. 우리 인연인 거 같죠?"

 또 터진 개드립. 애드립이 아니라 개드립이다. 이건. 나보다는 나이도 훨 많아보이는 커리어우먼한테 우리 인연인 거 같죠? 라니. 요즘 들어 개드립이 늘어난 거 같다. 또 말을 해놓고도 긴장하는 나. 하지만 그녀는 별 반응 보이지 않았다. 뭐. 별 신경을 안 쓰는 거겠지. 

"정말 듣기 좋은 거 같아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중얼거리는 그녀. 살짝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쳐

다보니 살짝 붉은 기가 도는 것도 같다. 허헉. 저렇게 방울이 좋았던 것일까? 그때 버스에서 알림말이 들렸다. [이번 정류장은 청하고등학교. 청하고등학교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아. 다 왔네요. 저기 방울 좀."

"네. 여기 있어요."

 그녀에게서 방울을 받아들고 나는 버스 뒷문 앞에 가서 섰다. 이미 하차 벨은 우리 학교 학생 누군가가 눌러놓았다. 이 버스는 우리 학교 학생들이 많이 타는 버스니까. 청하고등학교 교복은 아주 흔하게 찾을 수 있었다. 쉽게 내리려고 문 앞에 딱 서 있는데 아름다운 그녀가 내게로 와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 제 이름은 미진이에요. 최미진."

 - - - 미진은 출근을 하기 위해 오피스텔에서 나왔다. 차는 퇴근하자마자 보험회사에 전화해서 정비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다. 렌트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했지만 

버스를 타기로 결심한 미진이었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미진은 벌써 똑같은 버스를 두 번이나 보냈다.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어제 버스에서 만났던 그 평범한 남학생. 

"내가 미쳤나 봐. 정말."

 올해 스물여섯. 이 나라에서 최고라는 한국대를 졸업했고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가장 큰 기업인 한성에 당당하게 입사한 능력 있는 여성. 최미진. 그런 그녀가 지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고작 고등학생을 이렇게도 기다리고 있는 꼴이라니. 지금 정류장으로 들어오고 있는 버스. 이번이 세 번째 버스였다. 이번에는 있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미진은 차에 올랐다. 그리고 조금 사람이 많은 버스 안에서 뒤쪽에 봉을 잡고 서 있는 그 남학생을 발견한 미진. 황급히 버스카드를 단말기에 찍는다. 그리고 너무나도 반가운 마음을 감추고 약간의 미소를 띄운 채 미진은 그에게 다가갔다. - - - 

"최미진이라고? 어쩌란 말이야."

이 여자. 왜 이름을 가르쳐 준거지? 최미진이라. 이름은 예쁘네. 

"정말 나한테 관심있는 거 아냐?"

 흐흐. 정말 그럴 리는 없겠지만 흐뭇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랑 이야기도 하고. 이름도 알고. 그것도 여자 쪽에서 먼저 이름을 가르쳐주다니.

"방울아. 니가 복덩이구나. 복덩이."

 모든 공을 방울로 돌린다. 무슨 방울 따위가 복덩이겠냐. 그냥 하는 소리지. 여하튼 요 놈을 들고 다니니까 뭔가 좋은 것은 사실이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내 마음이. 내 가슴이 요 방울이 정말 내게 좋은 거라고 알려주는 것 같으니까. 

"무엇보다. 난 니 소리가 좋다."

 방울의 딸랑거리는 소리만 들으면 얼마나 마음이 편안해지는 지 모른다. 고마운 방울 같으니라고. 

"아. 좋은 하루구나. 오늘따라 왜 이렇게 공기가 상쾌한 거냐."

"별 웃긴 놈 다 봤네. 공기가 상쾌하긴 개뿔. 서울 공기가 얼마나 더러운 지 알고나 하는 소리냐?"

 어. 이 목소리는. 에라이. 박현민. 요런 깜찍한 거지같은 시키. 형님이 상쾌하다면 상쾌한 줄 알것이지. 

"시끄럽다. 들어가자."

 가벼운 발걸음으로. 현민이 놈의 목에 헤드락을 걸고 나는 학교로 향했다.

============================ 작품 후기 ============================고고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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