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ep1. Germination-- >
그 날 나는 하루 종일 경수 놈을 관찰했다. 정말 경수는 단 한 순간도 명철이를 괴롭히지도 않았고 행패를 부리지도 않았다. 마치 모범생이 학교를 다니는 것처럼 조용히 앉아서 공부에 열중하는 경수의 모습을 보고 나는 경악과 공포에 빠지고 말았다. 이 도대체 무슨 일인가? 내가 그렇게 카리스마가 있는 건가? 생각하지만 내 옆에서 깝죽거리는 현민이를 보면 그건 절대로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경수가 그렇게 물러날 놈이 아닌데. 결국 이 의문을 풀지 못하고 야간자율학습시간이 끝이 났다. 시계를 바라보니 저녁 9시. 또 대충 집에 가면 10시 가까이 되겠구나. 아침에 좋았던 컨디션도 저녁 늦게까지 지속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이 시간이 되면 힘이 없다. 오늘은 하루종일 수업시간에 집중도 못했고 또 온통 신경이 경수 놈에게 쏠려 있어서 더욱 그랬다.
"민수야."
내가 가방을 메고 교실을 빠져나가려는 데 명철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명철이가 나를 불렀던 것이 맞았다.7/44 7
"어. 왜?"
"아니. 고마워."
명철이가 내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왠지 쑥스럽다.
"뭘. 아니야. 그나저나 명철이 니가 힘 좀 쓰면 경수같은 애는 이길 수 있지 않냐?"
"아. 아니야. 싸움같은 거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래? 여하튼 내 간다. 니도 잘 가라."
"그래. 내일 보자."
대충 인사를 하고 쿨하게 돌아섰다. 싸움이라. 사실 생각해보면 나도 제대로 싸움을 해 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나저나 오늘은 무슨 용기로 경수 놈한테 고함을 질렀는지 모르겠다. 분명 싸웠으면 내가 졌을 텐데. 정말 다행이다. 음. 혹시 이 새끼. 숨어있다가 덮치려고 일부러 교실에서는 그랬던 거 아니야? 갑자기 드는 불안감에 주변을 힐끔 쳐다보았다. 어이고 이 간도 작은 놈아. 무슨 용기로 진짜. 크크. 혼자 속으로 궁시렁 대면서 걸어가는 데 현민이 나를 부르며 달려왔
다.
"어이. 수퍼 노친네."
이 자식이. 내가 경수한테 고함을 질렀다고 별명에 수퍼를 붙인 모양이다.
"허. 수퍼 노친네? 그 놈의 작명센스는 왜 그 모양이냐?"
현민이 이 새끼의 작명센스는 알아줘야 된다. 참.
"크크. 민수 너 밤길조심해야 되는 거 아냐? 경수 그 새끼가 언제 덮칠지 어떻게 알아."
"악담을 해라. 안 그래도 나도 임마. 쫄려 죽겠다."
"그래도 솔직히 멋있었다. 경수 그 새끼 꼽질하는 거에 그렇게 태클걸었던 사람이 올해 우리 반에서 너가 처음이었잖아. 민수 너한테 그런 용기가 있을 줄 몰랐다."
"솔직히 말할까?"
"응?"
"나도 쫄았었다. 임마. 크크. 집에나 가자."
"그럼. 그렇지. 하하하. 그래. 가자."
"가자."
나는 현민이 놈의 어깨에 어깨동무를 하고 학교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정말. 진짜. 레알. 다행스럽게도 우려했던 경수 놈의 습격따위는 없었다. 딸칵. 원룸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갔다. 여러모로 신선하고도 피곤했던 새콤한 하루가 끝이 났다. 뭔가 오늘은 정말 이상한 하루였다. 아침부터해서 뭔가 제정신이 아니었다라고 해야 될까?
"휴우. 설마. 욕구불만인가?"
하도 오늘 하루가 이상하니까 이런 생각까지 든다. 허헉.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니까 요상야릇한 욕구가 밀려온다. 빌어먹을. 나는 조용히 노트북을 켰다.
- - - 오늘도 어제와 다를 것 없이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났다. 어제는 분명 자기 전에 물도 빼고 잤는데 왜 이렇게 멀쩡하게 일어난 거지? 어제부터 아침에 일어날 때 너무 상쾌하다.
"으으으."
일단 일어나자마자 침대에서 간단하게 스트레칭을 했다. 간단하게 기지개를 켜고 스트레칭을 해주면 훨씬 일어나기가 편하다. 간단히 일어나서 씻고 시리얼을 우유에 말아먹은 다음에 원룸을 나섰다. 햄스터 쳇바퀴 굴러가듯 반복되는 일상. 어떤 고딩이라도 그렇겠지만 나 역시 똑같다. 일탈하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확 하루정도 학교도 땡땡이치고 놀러가고 싶은 마음. 하지만 그랬다가는 학교에서 부모님한테 바로 전화를 때릴 것이고. 또 학주가 얼마나 갈굴 지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런. 괜히 생각했다. 상상해버렸어. 나는 자연스럽게 방울을 챙기고 원룸에서 나왔다. 잘 몰랐는데 아무래도 나는 방울을 좋아하는 남자인 것 같다.
"그럼 그렇지."
버스 정류장에서 도착한 버스를 타는데. 역시 어제가 운이 좋았던 것이었다. 일찍 일어났기에 평소보다 20분 정도 먼저 버스를 타는 건데도 버스 안에는 앉을 자리가 없었다. 물론 평소에 비해 승객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은 서서 가야 될 운명인 것 같다. 고작 하루 지난 것뿐이지만 벌써 버릇이 되어 버린 것처럼 내 손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방울이 들려있었다. 솔직히 나도 왜 이렇게 이 방울에 끌리는 지 이해를 못하겠다. 이 방울의 딸랑이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게 난 너무 신기하다.
"어이쿠."
방울을 만지고 멍 때리며 버스를 타고 가다가 나는 덜컹이는 버스 때문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 순간 버스가 정류장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
저절로 터져 나오는 어. 소리. 지금 버스에 오르는 한 명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어제 그 연예인 급 커리어우먼. 저 여자가 원래 이 버스를 매일 타던 여자였나? 여하튼 이틀 연속 보는 그 기분. 그것도 어제 초면치고 아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었던 미녀. 오늘 또 보니 뭔가 기분이 묘했다.
혼자 콩닥거리는 가슴을 감추려고 버스 봉을 잡고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 작품 후기 ============================그러하다. 언제 쯤 알콩달콩하게 가려나 ㅋㅋ=====================================================================
그러하다. 언제 쯤 알콩달콩하게 가려나 ㅋㅋ=====================================================================Text Load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