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53화-수치스럽지 않아
53화-수치스럽지 않아
"세상에..."
"뭘 그리 놀라느냐. 이미 예견된 것인데."
루카스가 놀라 입을 막은 세나를 보고 피식 웃었다.
두 사람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작은 수정구.
그 수정구 안에, 두 여인의 상스러운 모습이 보였다.
[잘 찍히고 있습니까?]
"그래, 아주 잘 보인다."
루카스는 자신의 머릿속에 들려오는 리아의 목소리에, 들리지도 않을 대답을 중얼거렸다.
리아의 말을 전해듣고 몰래 설치한 이 수정구 안에서는 복도 한 구석, 스스로 치마를 들어 올린 은발의 여인이 무릎 꿇은 흑발의 소녀에게 자신의 음부를 핥게 하고 있었다.
"흐..흐으읍.."
그녀는 손으로 입을 막는 등 필사적으로 소리를 막아내고 있었으나, 잘게 떨리는 허벅지와 허리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경련, 물이 리아의 얼굴을 적시고 바닥까지 뚝뚝 떨어지는게 보일 정도였다.
"하, 하아아...♡"
절정에 이른 아리아가 고개를 젖히고 뜨거운 숨을 토해냈다.
파들거리는 다리가 금방이라도 꺾일 듯 보였다.
하지만 루카스는, 그녀의 절정이 완벽하지 않다는 점까지 캐치해 냈다.
"남이 봐 주지 않아서 그런 것이겠지. 혹시나 들킬까 싶은, 그 아슬아슬한 상황 역시 쾌락이 되었으나 본심은 이 치태를 들키고 싶었던 변태스런 계집."
"그렇다면 이제 이 영상을..."
"보여주어야지. 그리고 협박해야지. 여지와 명분을 친히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녀의 실력이라면 날 꺾고 이깟 수정구를 가로채는게 어렵지 않을 것이나, 과연 그럴까?"
루카스는 영상이 종료된 수정구를 들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제 길었던 사전 준비는 다 끝났다.
남은 건 본격적으로 조교하는 건 뿐.
하지만 그는 이 상태인 아리아를 조교하는데는 단 며칠이면 충분하다고 확신했다.
"귀여운 아이."
아침 햇살에 눈을 뜬 아리아는 곁에 잠들어 있는 리아의 뺨을 부드럽게 쓸었다.
그리고선 너무나 자연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너무 아름답고, 자신을 좋아해주고, 자신에게 헌신적이며 무엇보다 자신의 욕망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준다는 것에 이제 그녀에게 처음 손을 대었을 때 들었던 죄악감 따위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여신께서도 우리 사이를 인정하신 거야.'
이것은 음습한 욕망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진실된 사랑이라고, 여신도 인정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납득한 아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친 성행위의 흔적이 여실한 침대, 어지럽혀져 있는 방 안.
모두 전이라면 꿈도 못 꾸었을 광경이지만 오히려 아리아는 이 모습이 좋았다.
다시 태어난 이후 느껴보지 못한 해방감과 자유로움이.
"안에 계십니까? 성녀님."
"...누구냐."
"세나입니다."
"조교사의 하녀..?"
그런 평화로움에 방해가 들어왔다.
대번에 경계심을 끌어올린 그녀가 슬쩍 주변을 훑어 보았다.
...이 광경을 굳이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잠시 기다려라."
기다리라고 말하곤 옷을 입으려는데, 가진 것이라곤 역시 그 짧은 메이드복 밖에 없었다.
혀를 찬 아리아는 채 10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안에 고민을 마치곤 결국 그 옷을 입기 시작했다.
"...오."
"옷, 옷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문이 열리고, 세나는 자신과 똑같은 차림새를 하고 있는 그녀를 보곤 눈이 커졌다.
괜히 찔끔한 아리아가 한 마디 덧붙였다.
"그보다 무슨 일이냐."
"주인님께서 긴히 뵙길 청하셨습니다."
"나는 그 쓰레기에게 볼 일이 없다."
코웃음을 친 아리아가 손을 내저었다.
이제 클리토리스를 괴롭히는 마도구도 없고, 리아도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었다.
그녀는 더 이상 루카스와는 엮이기도 싫었다.
더 막나가던 예전 성정이었으면 눈치고 뭐고 곧바로 목을 쳐버렸을 것이다.
"거절하실 줄 알고, 주인님께서 이걸."
"...수정구?"
세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품에서 꺼낸 무언가를 건넸다.
그녀가 수정구를 받아들자, 자동으로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으음..그래, 거기다 리아. 조금더 거칠게 훑어주렴."
수정구에서 흘러나오는 자신의 목소리와 펼쳐지는 음탕한 광경에 아리아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기 시작했다.
"그 수정구는 복제품의 하나일 뿐입니다."
수정구는 아리아의 손 안에서 단번에 부서져 조각나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럴 줄 알았다는 세나의 목소리는, 아리아의 눈썹을 꿈틀거리게 만들었다.
"...서라."
"잘 못들었습니다."
"앞장 서라. 난 여자 몸에 손대기 싫으니까, 알아서 조용히."
방 문을 걸어 잠근 아리아가 머리를 가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세나를 보며 황금빛 눈을 번득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옷이 아주 잘 어울리...좀 진정하시죠."
"내가 널 죽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나?"
방안으로 들어 온 아리아는 곧바로 신성력을 끌어올려 칼날을 만들었다.
그녀의 팔에 휘감긴 신성력이 칼이 되어 루카스를 겨누자, 깜짝 놀란 세나가 검을 뽑아들고 그녀를 향했다.
"아서라 세나. 네 상대가 아니야. 우선 제 이야기나 들으시죠. 지금 누가 우위인지 모르시나 본데, 제 몸에 조금이라도 손대신다면 미리 일러둔 이들이 수정구들을 사방팔방으로 보내버릴 겁니다."
"어이가 없군. 여기서 죽으면, 날 파멸로 이끄는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냐."
"그러니 서로 합의점을 찾자는 것이죠. 그리고 파멸에 이르는게 성녀님만일까요? 교국의 성녀와 정분이 난 하녀는, 어떻게 될까요."
리아를 언급하는 루카스의 말에 찌푸린 아리아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손을 슬쩍 올리고 있던 루카스가 히죽 웃으며 목 앞까지 들어 온 칼날을 밀어냈다.
아리아는 그 손길에 맞춰 천천히 칼날을 집어 넣었다.
"원하는게 뭐냐 쓰레기"
"그 옷, 잘 어울리시는데 말입니다. 성기사들이 도착할 때까지, 제 하녀가 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뭐?"
"그 누구도 성녀님인 걸 알아보지 못할 겁니다."
루카스는 손가릭을 튕겼다.
동시에 곁에 서 있던 세나가 무언가를 가져왔다.
그 손에 들려 있는 것, 그것은 검은 가죽으로 된 마스크였다.
"자, 이걸 쓴다면 성녀님은 더 이상 성녀님이 아니게 되는 겁니다. 무슨 옷을 입고 무슨 행동을 하든 사람들은 당신을 알아보지 못할 겁니다. 성녀가 아닌 그저 한명의 암컷이 되고 싶진 않습니까? 갑옷을 입지 않고 사람들 앞에 서고 싶진 않습니까?"
루카스가 아리아의 앞에서 그걸 흔들었다.
미묘했던 감정을 정확히 저격하고 자극하는 그의 말에 아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심지어 명분도 방법도 이미 그가 다 만들어 준 상태.
'알겠다고만 대답한다면...그, 그래. 이건 어디까지나 이놈의 협박 때문에..!'
아리아는 조금 전과는 다른 종류의 흥분으로 쿵쿵거리는 가슴을 느끼며, 떨리는 손으로 마스크에 손을 가져갔다.
차갑고 매끈하고 질긴 가죽의 감촉.
그녀가 그걸 집어든 순간, 루카스는 피식 웃었다.
"세나, 착용을 도와드려. 그리고 가서 리아를 데려 와라."
"리, 리아는 어째서..."
"마스크를 쓰면 앞이 안 보일 텐데, 도와줄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나는 아리아의 뒤로 돌아가, 천천히 그녀의 얼굴에 마스크를 씌우기 시작했다.
아리아는 저항하지 않았다.
질긴 가죽이 얼굴을 덮고 시야를 차단하고.
뚫린 구멍은 입구멍 뿐이었다.
"성, 성녀님."
계획대로 잘 풀렸나보다.
나는 일단 두렵고 놀란 목소리를 연기하며, 그 모습을 여유롭게 감상했다.
아리아로 추정되는 여인은 답답했는지 머리를 삼켜버린, 착 달라 붙는 마스크를 더듬거리고 있었다.
찬란한 은발도 어떻게 숨겼는지 보이지 않는 상태.
"우으읍.."
입에는 단단히 채워진 붉은 개그가 물려 있어 말의 자유도 빼앗긴 상태였다.
루카스는 그런 그녀의 팔을 거칠게 잡아 끌었다.
"후으읍!"
"저항하지 마라 일개 하녀야. 네가 누구지?"
그는 기겁한 아리아의 귀를 향해 그렇게 속삭였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아리아의 저항이 점차 멈추기 시작했다.
"꿇어."
그리곤 그의 명령대로, 천천히 무릎을 굽히기 시작했다.
루카스는 그 이후 내게 목줄을 내밀었다.
"보다시피 네 새주인님은 당분간 내 노예가 되었다. 그러니 너도 다시 내 노예가 되었고. 칠칠맞은 신입 노예의 교육은 네게 맡겨 볼까?"
루카스가 꿇어 앉은 아리아의 머리를 탁탁 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기 무릎을 짚은 아리아의 주먹쥔 손이 살짝 떨리고 있지만, 그녀는 반항하지 않았다.
구멍 뚫린 개그에서 침이 통제되지 못하고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도 차봤지만, 정말 사람 바보 만드는 물건이었다.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겠군. 이런 암컷에게 안 어울리는 성녀라는 말고 제대로 된 이름이."
내가 아리아에게 목줄을 채우고 있을 때, 루카스가 중얼거렸다.
"뭐가 좋겠느냐?"
그가 내게 물었다.
물론 이 역시 사전에 계획된 것, 나는 살며시 아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슬슬 우리도 본색을 드러낼 때다.
"아리아."
"흐읍?!"
"하긴, 그 누구도 이 천박한 암컷이 성녀 아리아 폰 레스트펠트인 건 모를 것이다. 그 누가 그 이름 하나만 듣고 그렇게 생각하겠느냐."
루카스는 아리아의 배덕감을 증폭시켰다.
애초에 이곳에서 아리아라는 이름 자체는 그리 드문 이름도 아니었다.
결국 놀란 그녀도, 어쩔줄 모르고 있다가 이내 고개를 떨궜다.
"슬슬 산책이나 나가 볼까."
준비가 끝났다고 판단한 루카스가 곧장 다음 계획을 실행시켰다.
내가 아리아의 목줄을 당기자 그녀가 엉거주춤 일어났다.
세나가 그녀의 손을 뒤로 돌려 엄지수갑을 채웠다.
그녀의 힘이라면 그저 살짝 힘을 주는 것 만으로 끊어낼 빈약한 구속구.
이것 역시 일부로 선정한 것이었다.
"우, 우우!!"
"어서 따라 와라. 성이나 한 바퀴 돌아야 겠으니."
방문이 열리고 우리가 그녀를 그곳으로 인도하자, 아리아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며 저항했다.
"가자 아리아."
내가 그녀의 허벅지를 살짝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걸 무슨 뜻으로 받아들였을까.
겁에 질린 자기 애인의 목소리? 아니면 즐거워 하는 주인의 목소리?
"우으.."
어쨌든 저항을 멈춘 그녀는 천천히, 방 밖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내가..내가 지금..'
"이쪽이야 아리아."
리아의 목소리가 들리며, 목줄이 팽팽히 당겨진다.
아리아는 그 인도를 따라 조심스럽게 복도를 걸었다.
신겨진 높은 굽의 구둣굽이 또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안녕하십니까?"
"아, 벤 자작님."
"점심 식사는 어디서..."
지금은 한밤중이 아니다.
복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 당연히 아리아에게 쏟아져 내렸다.
'날, 날 보고 있어. 내 다리를, 팔을..! 이 치욕스러운 모습을...!'
그 시선들을 여실히 느끼고 있던 아리아의 몸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이젠 제대로 된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목줄의 인도와 리아의 명령에 따라 걷기를 반복할 뿐.
그녀는 지금 흘러넘친 한줄기 애액이 흥건히 적신 자신의 속옷을 넘어 허벅지를 타고 흐르고 있는 것도, 다른 이들이 그 애액을 보며 수군거리는 것도 모두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