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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화 〉40화-레라플 방어전 (40/74)



〈 40화 〉40화-레라플 방어전

40화-레라플 방어전

"순순히 항복하시오!"


"..."


"그렇지 않으면, 끝을 장담하기 힘드오!"

 아래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루시안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예상과 달리 적들은, 끔찍한 괴물 군대가 아니었다.

"악마와 손잡은 이들의 말을 믿을  있겠소."


"...당연히 믿지 않겠지만, 우리도 되도록이면 저들이 나서는 걸 말리고 싶소."


정확히 말하면 주축이 아니었을 뿐 전장의 한쪽에는 등장만으로 아군의 사기를 떨궈대는 그 괴물들이 정렬해 있었다.

루시안의 말에 성 앞까지 나온 적장 역시 반박하거나 발끈하는 대신 그것들을 흘긋 보며 고개를 저었다.

"후회하지 마시오 헥트 공자."


하지만 루시안의, 그리고 주축인 황금 사자 기사단은 이미 항전을 결정했다.


루시안의 신분을 알고 있던 상대는 혀를 차며 조심스레 자기네 진영으로 물러났다.

곧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나발 소리가 사방에 울리기 시작했다.



"젠장. 저 괴물들은 우리가 막아야 한다..!"


루시안은 성을 향해 달려드는 적들을 보며 혀를 찼다.

그중 일부엔 당연히 그 괴물들도 있었다.

루시안은 레아나와 몇몇 기사들을 이끌고 기괴한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놈들 방향으로 성벽을 가로질렀다.

'전력의 차이가 너무 나. 부디 놈들의 기사 전력이 덜해야 할텐데.'

루시안이 이를 악물었다.

공성전의 주축은 공성병기나 궁수 따위가 아니었다.

야전에서도 그렇듯 어디가 얼마나 많은 기사를 보유하고 있느냐.


초인인 기사들은 전장에서 말도 안 되는 변수를 만들어 내는 존재들로, 다른 건 몰라도 반드시 기사 숫자만큼은 맞추는게 기본이었다.

"공자님!"

레아나가 바람을 두른 검을 휘둘러 성벽을 타넘으려던 괴물의 머리를 쪼개버렸다.

가장  문제는 이것이었다.


안 그래도 수가 부족한데, 기사급인 괴물들이 너무 많았다.


"큭.."

전쟁 개시 10여 분 만에, 성벽 전체에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야, 너는 뭐 없어? 마법이라곤 진짜 그게 전부야?]


"그게 전부라니!? 윽."


헤이즐이 내 목소리에 빽 소리를 질렀다가 화들짝 놀라 주변을 살폈다.

그래도 루카스와 세나는 창에 붙어 루시안이 있는 성벽을 살피느라 분주한 모양이었다.

밖에선 전투가 한창이었다. 다만 들리는 소음에 따르면, 아군이 열세다.


[아니, 상대 마법사는 지금 불덩이며 바윗덩이며 던져대고 있는데 우린 뭐 하는 거냐고]


"크.."

내 말에 헤이즐은 이만 갈 뿐 반박하지는 못했다. 진짜 쓸모 없기는.

"못쓰는게 아니오. 단지 난사하지 못할 뿐이지. 내가..타고난 마력량이 적어서 그렇소."


[왜 그런 눈으로 보지? 미안하지만 못 줘, 당신은 자궁이 없잖아]


내 눈치를 보는 눈에 피식 웃었다. 그래도 알고는 있는지 미련 없이 깔끔히 눈을 돌렸다.


"...그래서 지난 세월 한계를 넘기 위해 노력해 왔지. 티나 처럼 성과를 보기도 했지만, 그걸 나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건 실패해 왔소."


헤이즐은 혀를 차며 회상에 빠져들었다.


그의 일대기는 조금도 관심 없다.


단지 지금,  전쟁을 이길 수 있느냐 없느냐.

마음 같아선 다 때려 부수고 싶지만 정체를 드러낼 수도 없는데다가, 내상도 존재하니 무턱대고 움직이긴 싫었다.

혹시나 뭐 루카스가 위험해지는게 아닌 이상에야...


"이런..! 성벽이 뚫렸어! 나가자!"


그러나 곧바로 비보가 전해졌다.





"자, 잠깐! 지금 전장으로 가겠단 거냐?!"

"어쩔 수 없습니다!"

루카스는 확고했다. 도대체 갑자기  저러는지.

헤이즐도 우리를 따라 나왔다. 정확히는 나를.


길거리는 이미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반대쪽 성벽으로 뛰어 가고 있었다.

"저건..."


그렇게 길 한복판에 나온 우리에게,  멀리 무언가가 보였다.

갑주를 입고 으르렁거리며 병사들과 싸우고 있는 놈, 내가 일전에 부숴버렸던 괴물 병사.

[오호라. 그 옆의 비루먹은 늙은 마법사가 네 노리개냐?]

그리고 이죽이는 놈의 입을 빌어 말하는 글레트리아의 목소리.

[아니면...그 옆의 비실한 놈?]


순간 내 이성이 끊어져가는 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였다.


"제길! 일단 피하기나 하자!"

"윽.."


그때 옆에서 뜨거운 열기와 함께 작렬하는 화염탄이 뿜어져, 놈을 향해 날아들었다.


헤이즐이 식은땀을 쏟으며 뿜어낸 화염탄은 정확히 놈에게 명중해 폭발했고, 놈의 육신은 조각나 흩어져 버렸다.


"영감님!"

"티, 티나. 이제 다음은 네 차례다. 지켜."

쓰러진 헤이즐은 티나의 품에 안겨 헐떡이고 있었다.


루카스는 크게 당황해 허둥대고 있었고.


힘이 세졌다지만 그래봤자 아직 초짜나 다름 없는 세나는 답이 없네?

티나에게 힘을 넣어 줄까 했지만 집어 치웠다.


루카스도 루카스지만 빌어먹을 글레트리아를 쳐죽이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내가 나서야 한다.


[빙의]

나의 마지막 수. 나는 여기서 내가 배운 마법을 시전했다.

탐색과 함께 헤이즐이 내게 보여주었던, 내게 직접 시전했었던 마법.


당연히 그 구성과 방식은 완전히 분석해 두었다.


"리, 리아!"


루카스가 기겁하며 쓰러진 '내 몸'을 붙잡는게 보인다.

지금 나는, 지난 번 처럼 세나의 몸에 들어와 있다.

다만 전처럼 기억을 보는데 그치지 않고 더 우월한 격의 차이를 이용해 그녀의 몸을 강탈했다.


미안하지만 어쩔  없어.

나는 의식의  구석에서 경악하는 세나를 무시하고 몸을 움직였다.

"공자를 구하러 가겠습니다."

"뭐?! 지금은.."


"그렇게 하는게 좋겠다. 루카스, 티나가 우릴 지킬거다. 어서 그 애나 안아 들어!"


패닉에 빠진 루카스는 헤이즐이 휘어 잡았다.


그의 눈치를 보니 지금 무슨 상황인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건 꽤 큰 도움이었다.

어쨌든 덕분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된 나는 곧바로 함락 직전의 성벽으로 뛰었다.



"이런..."

"자리를..자리를 지켜!"


성벽은 아비규환이었다.

레라플의 병사들과 황금 사자 기사단은 사력을 다해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적은 너무 많고, 너무 강했다.

"끅.."

"괴, 괴물.."

육중한 할버드가 가벼운 장대마냥 휘둘러지며 병사 둘을 일격에 살해했다.

투구 속 일그러진 얼굴에서 거친 울음소리를  괴물은, 곧바로 다음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누구도 놈을 가로막지 못했다.

심지어 분명 같은 편일 북서부 군의 기사나 병사들도 괴물들이 다가오면 달아나기 바빴다.

"레아나!"

적측 기사를 상대하던 루시안이 그걸 보고 한계인 폐를 쥐어짜 소리쳤다.

지금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건 순전히 괴물들의 모든 이목을 끌어들이고 있는 레아나 덕분.


그녀는 괴물들의 시체 위에서 바람을 두른 주먹으로, 발로 달려드는 괴물들을 갑옷째로 우그려뜨렸다.

[엘프라...너는 그 아름다운 몸으로, 날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너는 누구냐."


하지만 괴물들은 끝이 없었다.

레아나는 자신을 둘러 싼 괴물들에게서 느껴지는 한기에 소름이 돋았다.


동시에 직감적으로 이 괴물들 너머에 있는 초월적인 존재를 알아 차렸다.


[너 같이 어린 엘프가 내 이름을 들어도 알아듣기나 할까. 너보다 잘난 엘프들도 모두 내게 먹혔지. 황금 숲의 애송이 엘프왕이 내게 공물로 바친 그년들을]

글레트리아는 그녀를 보며 한껏 비꼬았다.


괴물 병사들에게 명령해 그녀를 집중 공격하란 것도 그의 명령이었다.

"레지골드..!"

동시에 그녀의 눈에서 불길이 일었다. 그녀의 분노에 호응한 정령들 덕에 일순간 돌풍이 불어닥쳤다.



[잡아라. 사지를 자르고 목숨만 붙여라]

"큭."

그러나 지금의 글레트리아에게 레아나의 저항은 보기 좋은 여흥거리이자 무의미한 발버둥이었을 뿐.

[너 같은 애송이에게 즐기는 건 이쯤 하겠다. 애초에 또 다른 애송이를 보러 온 것이니]


여유가 넘치는 그는 점차 힘이 빠져가는 레아나를 보며 낄낄대고 조롱했다.

그리고 마침내 힘이 다한 그녀가 창대에 얻어 맞아 쓰러졌을 때.

[허, 이거 이리 음탕한 몸이었다니]


"끄윽.."


가느다란 목을 움켜쥔 굵고 거친 손에 레아나의 얼굴이 고통으로 붉어졌다.

동시에 글레트리아는 그녀의 몸에서 음문과 피어스를 읽어내곤 비웃었다.

[다른 감정들도 보인다. 그래, 인간들의 노예로 조교된 주제에 저 애송이 인간을 연모하고 있는 건가. 그렇다면 사지가 잘린 네 몸뚱이를 보여주면 어떻게 될까. 분노해서 달려들까]

"아, 안 ㄷ.."


이가 딱딱 부딪힐 정도의 한기가 몸을 침식해오기 시작했다.


일그러진 흉한 괴물의 얼굴 너머, 한 없이 무거운자의 힘이 그녀를 짓눌렀다.


'이런놈에게 잡혀 그에게 폐가 될 바엔 차라리..'

루시안을 언급하는 그의 말에 이를 악문 그녀는  혀를 내밀고 씹으려 했다.


[허..]

"헛짓거리 하지 말고 빨리 일어나서 쟤나 데리고 가."


그러나  순간, 이죽이던 괴물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발로 걷어 차 괴물의 머리를 부숴버린 사람은 메이드복을 입고 있는 크림색 머리의 여인.

레아나는 익숙한 형태인  옷을 보고 순간 굳었다. 애초에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레아나..."


[서로 껴안을 시간 없어. 빨리 후퇴해]

주변 괴물들을 다 쳐죽이고 루시안에게 레아나를 데려왔더니 아주 가관이다.

레아나는 내 말을 듣고 재빨리 정신을 차렸지만 그 말을 들을 수 없던 루시안은 여전히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분명 본 적 있는..."

"그렇습니다 공자님. 주인님께서 공자님을 돕기 위해 절 보내셨습니다."


"조교사 벤이."

루시안은 약간 놀랐다는 얼굴이었지만, 지금 한가로이 소개나 하고 있을 시간 없었다.

"제가 길을 뚫겠습니다."

나는 이미 체력을 거의 다 쓴 그들을 뒤에 달고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이미 앞에는 괴물놈들에, 북서부군 병력도 깔려 있었다.

 몸은 내 몸이 아니고,  수 있는 마력도 자궁에 부여한게 전부였다.

 나도 쉽지 않은 상황이란 뜻이었다. 애초에 나, 쌈박질 같은거 배운 적도 없다.


[슬슬 꺼져 글레트리아]


[내가  그래야 하지?]


[애초에 끝장 보자고 온 건 아니잖아? 나도 내 놀음 깨고 싶지 않으니, 나중에 제대로 붙어]


[흐하하!]

놈은 내 말에 재밌다는 듯 경박하게 웃어재끼기 시작했다. 짜증나게.

[뭐 좋다. 여흥은 여기까지 하도록 할까]


하지만 결국 내 의도는 먹혔다.


나만큼이나 오만하고 욕심 많은 이 녀석의 목적은 결국 나였다.

결국 내 밑천  봤으니, 슬슬 가겠단 소리였다.

"뭐, 뭐야!"

"어째서 우리를..으아악!"


그리고 그 순간 괴물들의 기세가 급변했다.


놈들은 조금 전까지 아군이었던 북서부군을 마구 때려 죽이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돌변한 놈들에게 혼란에 빠진 그들은 제대로 저항도 못하고 쓰러져 갔다.


나는 루시안과 레아나를 뒤에 두고, 그 참상을 눈에 담았다.


흐르는 피, 흩날리는 살덩이, 흘러내리는 내장, 부러져 나뒹구는 뼈.

내가 보기에도 참혹하기 그지 없다.


[흐, 그럼 나중에 보지. 그때까지 상처는 제대로 치료해 두어라. 내가 완전히 부활했을 때, 굴복시켜 애완동물 삼아 길러줄 테니]

그리고 놈들은 물러나기 시작했다.

 끔찍한 참상과, 어리둥절한 아군을 그대로 두고서.

나는 놈이 남기고 간 마지막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판정패다. 내가..놈에게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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