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7화 〉37화-관계의 재정립 (37/74)



〈 37화 〉37화-관계의 재정립

37화-관계의 재정립


처참하게 초토화된 현장은 나름 마음에 들었다.


이 정도로 힘을 써본 것도 처음이고, 게임에서 봤던 안카리아스는 본체여서 전투 장면 자체가 좀 다르긴 했지만.

"후, 별것도 아닌..큭.."


그러나 순간 폐부를 관통하는 강렬한 통증, 주체하지 못하고 입에서 튀어 나온 검붉은 핏덩이는  예상 밖이었다.


다리는 속수무책으로 꺾였다.

땅에 무릎을 처박은 채, 나는 손으로 땅을 짚고 본능적으로 숨을 들이켰다.


[내상(37%)]

...불길한 예감 대로 내상 수치가 상승했다.


이 보이지 않는 빌어먹을 상처는 내가 시스템의 제약을 깨부수고 얻은 상처, 일종의 패널티다.

낫는 방법도 안 알려주는  그렇다 치고 하다 못해 악화되지는 말아야 하는 거 아니야?

"하..."

고통은 빠르게 가셨지만 몸에 힘이 돌아오려면 시간이 좀 필요했다.


핏물은 대충 닦고, 차분히 몸을 점검했다.


지금 당장은 그리 크지 않지만, 내상이 심해지면 심해질 수록 상처가 벌어지는 그 속도는 가속화될게 뻔했다.


"망했다."

문제는 조금 있으면 해가 뜰 것이라는 것.


지금 당장 움직인다 해도, 루카스가 깨기 전에 도착하는 건 불가능하다.


뭐라고 변명해야 하지?





"...."

도시에 도착해 몸을 닦고, 옷을 갈아 입고 다시 그의 앞에 섰을 때.


그는 이미 아침 식사까지 마친 상태였다.

나는 차마 먼저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넌 나가 봐라."


그는 시중을 들어주던 다른 하녀를 내보냈다.

본래 내가 했어야 했던 일이었다.

 둘이 남았는데, 침묵만 흘렀다. 어색하기 그지 없다.

그의 분위기도 심상찮았다. 이렇게 무겁고....무심한 그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주인님."


"어디 갔다 온 것이냐."

"그게..."


나는 필사적으로 생각해 냈던 변명을 늘여놓았다.

"라스는 어제 창관에서 머물지 않았다."


"하녀 라벳은  보지 못했다고 했다."


"화장실을 청소하던 노예 말릭은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모든 변명을 조금의 망설임 없이 논파했다.

점차 공기가 무거워지며 머리가 새하얗게 변해간다.

분위기는 심상치 않음을 넘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어제 글레트리아와 싸웠을 때보다 더.


"내가 어떻게 이것들을 알았느냐고? 네가 없어졌다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사방을 다 뒤졌으니까. 사람들을 모조리 깨우고 헤집었으니까."

"아..아아.."


나는 순간 털썩 주저 앉았다.


머리가, 머리가 도저히 돌아가지 않았다. 왜 이렇게 된 거지?

나는 분명...아니 그보다 이렇게 까지  일이야? 내가 누굴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선 그가 저벅저벅 걸어서 내게 다가왔다.

"주, 주인님?"

"이게 보이느냐."


그의 손엔 어제 행위를 즐기느라 빼두었던 플러그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타오르고 있던 벽난로에 던져 버렸다.

그걸 두 눈 뜨고 지켜보며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통증이 철렁한 가슴을 찔러댔다.


"아으..."

빌기라도 해야 하는데, 충격 때문인지 말이 안 나온다.


어째서..내가 뭘 잘못했는데? 이게, 이게 그렇게 잘못인가? 이건 다 당신을 위한 행동이었는데!

"나는 네가, 그래도 날 믿어줄 줄 알았다. 너는, 너는 날 배신한거야. 역시...역시 당신은 내게 왔었을 때처럼 언제든 떠날  있던 거였어."

그는 멍하니 주저 앉은 나를 지나쳐 방을 나가버렸다.

아무짓도 하지 않은 채.





'젠장..!'


방을 나온 루카스는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스스로에게 끓는 분노였다.


'차라리 갔다 오고서라도 솔직히 이야기해 줬다면. 아니 차라리...모른  해줄 것을.'


"대, 대리자님?"

"...내가 어디 갔는지, 절대 리아에게 말하지 마라."


"네, 넷!"

그의 험악한 분위기에 하녀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비틀거리며 창관을 나왔다.

본디 오늘은 원래 갈 곳이 있었다. 하지만 리아에겐 말하지 않았으니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반쯤 멍하니 정신을 놓은 상태로, 루카스는 터덜터덜 길을 걸어 도시 외곽으로 향했다.

"오셨군요. 그런데..혼자십니까?"


익숙한 길을 걸어 익숙한 오브제를 지나 들어선 길, 어김 없이 그를 먼저 반겨주는 건 단정하고 차분한 메이드복을 입고 있는 티나였다.

그녀는 루카스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으나, 곧 혼자서 찾아 온 심상찮은 그의 모습에 당황했다.


"스승님..."

"이놈은 또 왜 이래?"


헤이즐 역시 그를 보더니 슬쩍 주변 눈치를 살피곤, 혀를 찼다.


"분명 그 암캐를 보러 온 줄 알았더니."


"세나를 보러 온게 맞습니다."

"헌데 무슨 일이길래 얼굴이 그 따위냐?"

헤이즐은 답지 않게 계속 루카스의 눈치를, 정확히는 그가 정말 혼자인가를 살폈지만 굳이 입을 열지는 않았다.

"..영감님은 마법사니, 당연히 잘 알겠지요."

"뭘?"


"강하고, 아름다우며, 신비롭고, 알 수 없으며, 사람의 모습을 할 수 있는 존재."


그러나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감싼 루카스의 말이 이어지자, 그는 후룹거리던 찻잔을 놓칠 뻔 했다.

시중 들던 티나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빠르게 마주쳤다.

"용에 대해서."

"요, 용은 그냥 허구에 가까운 신화 속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보였다는 용이 수백 년 전인 마당에 크흠."


"최근 제가 가장 두려워 했던 건 어느 날 그녀가 갑자기 사라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그녀가 사라졌을 때, 전 미쳐버리는 줄 알았지만 동시에 올 것이 왔다 생각했습니다."

당황한 헤이즐이 뭐라 말하던 루카스는 자기 말을 이어갔다.


 듣고 있군이라고 중얼거린 헤이즐은 그 이야길 계속 들으며 찻잔을 후룹거렸다.

"애초에 첫 만남 부터가  같았죠. 습격한 도적들이 알아서 자멸하지 않나, 그 뒤로는 일이 술술 풀리는 것도 이상했습니다."


"너,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진 마라. 본디 용의 속내는 도통 알 수가..아니 그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루카스는 차분히 헤이즐에게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용이라니?! 솔직히 그의 직감은 남이 듣기에 따라선 미쳤거나 과장된 것 아니냐 할 수도 있겠으나, 하필이면 헤이즐은 이미 리아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고작 그딴걸로 지금...하, 골치 아프게 굴었구만. 서로 조금이라도 이야기가 되었다면 모를까.'

헤이즐은 한순간에 폐인이 되어 버린 루카스를 보고 혀를 찼다.

그가 판단하기에 루카스는 이미 그녀에게 모든 걸 바칠 수 있을 정도로 빠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로서는 리아의 의중을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뭘 노리고 루카스의 옆에 붙어 있는 건지.


확실한 건 루카스는 지금 이 관계가 너무나 간절하단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일로 입은 타격도 이렇게 생각 밖으로 큰 것이고.

"차라리..지금 헤어지는 것이.."

"거짓말 하지 마라. 그리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너도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이 관계, 네가 원한다고 맺고 끊는게 가능할 것 같으냐."

그렇기에 루카스의 자포자기에는 코웃음을 쳤다.

'그 정도의 변태 용이라면, 어쩌면.'

하지만 동시에 헤이즐은 철저한 제 3자로서 무언가 알 것 같기도 했다.


리아와 루카스 양쪽을 다 만나  그의 입장에서는 분명 보이는게 있었다.

"어쩌면 간단할 지도 모르지."

"그게 무슨 소립니까?"


"결국 네게 원하는게 있어서 옆에 있었다는 거 아니냐. 너도 알고 있을 텐데?"

헤이즐의 말에 루카스가 움찔했다.


본인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걸 보여 주려고, 채워 주려고 노력해 왔다. 그녀의 성대한 처녀 개통식도 그 중 하나였다.


"...너무 두려워 하지 마라. 넌 조교사야. 분명 그녀가 바라는 걸 줄 수 있어. 용이면 어떻고 사람이면 어떠냐 넌 그녀의 주인이야.

널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떠냐. 네가 주는 쾌락이 얼마나 좋았으면 노예 취급 받으며  모신단 말이야. 그녀는  버리지 않아."


"제가 말입니까?"

헤이즐의 말에 루카스는 쓰게 웃었다.


세상  누가 용을 노예로 부릴  있을까.

하지만 동시에, 어쩌면이란 생각도 떠올랐다.


억지 희망이어도 상관 없었다.

'보고 싶다.'


그의 내면에 어느새 다시 리아의 생각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생각이 바뀌었냐?"

"내게 원하는게 뭔지 직접 물어 봐야지요. 주인이니까. 숨기고 싶다면, 굳이 아는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뭐 그렇게 하던지."


"그런데...정말 제 이야길 믿으시는 겁니까? 리아가 용이라는 소리를?"


"어엉?"


순간 당황한 헤이즐이 헛기침을 했다.


리아에 대해 필사적으로 모른척 하는 이유는, 자신에 대해 아는 척 했다간 가만두지 않겠다던 그녀가 했던 엄포 때문이었다.

'어차피  들켰으면서. 멍청한 새끼용!'

물론 이제 와 의미 없는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감히 약속을 어길 순 없었으니.


"안 돌아가냐? 혼자 남았다며."

"...이왕 온 것 일을 마치고 가겠습니다."

루카스는 다시 돌아갔다 오는 대신 서둘러 일을 마치고 가기로 결정했다.


고개를 끄덕인 헤이즐은 지하가 아닌 방으로 그를 안내했다.

"좋은 소식이라 해야 겠지."


방 문을 열며, 헤이즐은 피식 웃었다.




"아..."


"나를 알아 보는건가?"


루카스도, 세나도 서로를 보고 놀랐다.

루카스는 그녀가 총기 있는 눈으로 자신을 알아봤다는 점에서, 그녀는 자신을 끔찍하게 조교했던 그가 다시 나타났다는 사실에.

"기적. 말 그대로 기적이지."

'분명 그 용과 관련이 있는거지만.'

헤이즐은 속으로 리아를 떠올리며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신이 돌아  겁니까?"

"그래. 어디 한 군데 부족한  없이, 기억을 모두 가지고.  번 물어보든지?"


루카스는 멍한 눈이었다.


나신이던 세나는 그의 시선을 피한채, 이불을 끌어 올려 드러난 가슴을 가렸다.


멀쩡해 보이는 그녀의 팔에는 상박까지 오는 검은 오페라 글러브가, 허벅지에는 검은 사이하이삭스가 신겨져 있었다.

루카스는 직감적으로  내용물이 사람의 팔다리는 아님을 알아차렸다.

"어디까지 기억하지?"

"...전부 다."


"그래? 그럼  말투는 뭐지?"

그의 말에 세나의 눈이 움찔거렸다.

그는 이불을 거칠게 들추었지만, 그녀는 저항하지 못하고 이불을 뺐겼다.


그녀의 나신은 전처럼 아름다웠다.

다만 혀와 젖꼭지, 클리토리스의 피어스, 엉덩이의 흉터등은 리아가 읽어내린 끔찍한 기억들을 그대로 보이고 있었다.

"이걸 받아라."

"이건 뭡니까?"

헤이즐은 루카스에게 무언갈 건넸다.

평범한 목걸이 같지만, 버튼이 하나 달려 있었다.

"눌러 봐. 그건 내가 특별히 만들어  것이니."

"아,  돼. 싫어어!!"


루카스가 목걸이를 받아든 순간 세나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그러나 루카스는 단번에 버튼을 눌러 버렸고, 그 순간 세나의 몸은 앞으로 기우뚱 쓰러져 버렸다.



"뭔지 알겠군요."

"힉...끼잉.."


피식 웃은 루카스는 어느새 팔다리가 사라진 세나의 몸통을 잡아 일으켰다.

그녀는 팔다리와 함께 총기도 잃은  두려워 하며 낑낑거렸다.

"확실하지? 그럼 알아서 데려 가라고."


헤이즐은 히죽 웃으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침대에 앉은 루카스는 알  없는 얼굴로, 몸통만 남은 그녀의 몸을 무릎에 올리고는 만지작 거렸다.


"여전히 몸은 솔직하군."

"흐그윽♡"

유두를 조금 괴롭히니 그녀는 목을 꺾으며 짐승 같은 신음을 흘렸다.

글레트리아의 촉수 더미에 파묻혔을 때부터 이미 개발의 끝을 달린 그녀의 몸은 순식간에 이성을 날려버리는 강렬한 쾌락에 휩싸였다.


흥건한 그녀의 애액을 보던 그는, 다시 버튼을 눌러 그녀의 팔다리를 돌려 주었다.


"넌 누구지?"


"주, 주인님의 암캐. 세나입니다. 제, 제 하찮은 보지를 범해주세요."

"그럴 순 없지."

음액을 질질 흘리고 스스로 다리를 벌리며 애원하는 세나는 철저히 조교된 상태로 다시 돌아왔다.


"만약에 너처럼 만들면, 리아도 못 도망가지 않을까?"


멍하니 그걸 보고 있던 그는 특수 재질로 만들어진, 그녀의 광이 나는 사이하이삭스를 만지작 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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