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33화-부활을 꿈꾸는 자
33화-부활을 꿈꾸는 자
<이번 회차는 한 단락 정도 고어틱한 묘사가 있습니다>
"그..."
"어허. 감히 어디라고 끼어드느냐."
날 알아보고 놀란 티나가 자기도 모르게 입을 열자 헤이즐이 엄한 목소리로 그녀를 질책했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그녀는 황급히 바닥에 꿇어 납작 엎드렸다.
"이런 거 필요 없어. 난 신경 안쓰니까. 당장 당신도 대충 말하면서 뭘 그러지? 일어나."
"...거 참."
나는 티나를 일으켰다.
물론 나는 남들이 내게 조아리고 벌벌 떠는 걸 천성적으로 좋아했지만, 지금은 그보다 귀찮음이 더 컸다.
내 정체를 알고도 나름 기세를 세우는 헤이즐의 건방진 태도를 내버려 두는 것도 그것 때문이고, 애초에 그걸 아니까 그도 저러는 거겠지만.
헤이즐은 어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보다시피, 지금은 잠들었지."
"...좋아."
"루카스에게 듣자니 당신이 이 아이를 사자고 요구했다던데."
"이유는 알 것 없어."
나는 제단에 반듯하게 눕혀져 있는 그녀의 배를 살짝 쓸었다.
분명 뭔가 있는게 내 눈에는 보인다.
단지 지금의 나는 그게 뭔지 모를 뿐이다.
"써."
"뭘 말이..알겠소."
쓱 쳐다보니 헤이즐이 혀를 차며 손을 들었다.
그는 세나의 몸 위에 손을 가져다 대고는,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는 내 눈에, 꿰뚫어 보는 눈에 힘을 집중했다.
그의 자세, 호흡, 마력의 움직임, 마력의 형태, 마력의 구조 전부 다 낱낱이 보고, 기억했다.
안카리아스의 머리가 텅텅 비어 있어도 그 지능 자체는 초월적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의 마법을 스펀지마냥 빨아들였다.
"크흡..이거 산채로 해부당하는 기분인데..."
졸지에 내 힘을 정면에서 직격당해, 입술을 깨문 헤이즐이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방을 가득 채운 내 마력에 티나는 꿇어 앉아 괴로운 듯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끝, 끝났소?"
"그래. 이제 비켜."
헤이즐은 티나를 부축해 구석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나는 세나를 향해 손을 들었다.
[탐색]
주문따윈 필요 없다. 나는 마룡, 마력을 움직이는 건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보다 쉽다.
주문으로 자기 세뇌를 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으음..."
강한 마력에 노출된 세나가 움찔거린다.
동시에 무언가 보인다. 그리고 단순히 보이는걸 넘어서, 탐색이란 이름답게 마법은 보다 자세한 구조와 성분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해서 내게 보이는 결과물은.
"큭!"
보인다. 그리고 느껴진다.
이건 누군가의 강렬한 기운이다.
한 없이 어둡고 한 없이 차가운 누군가의 흔적.
감히 나의 마력과 겨룰 만한 격을 가진 자의 파편.
"이, 이런..."
헤이즐이 당황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지금 그에게 반응해 줄 겨를이 없었다.
[넌 누구지?]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심연과 나는 서로를 들여다 본다던가.
내가 놈을 보고 있는 것 처럼, 놈도 나를 발견한 것이었다.
손이 떨린다. 눈이 커졌다. 식은땀이 흘렀다.
이건 안카리아스가 되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다.
내가, 이 내가 밀린다고. 내가!
"으아악!"
"꺄아악!"
강렬한 충격파가 터져 사방을 진탕으로 만들었다.
헤이즐과 티나는 휩쓸려 바닥을 굴렀다.
[꺼져]
그 와중에도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드러난 놈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렸다.
기껏해야 파편이고 흔적일 뿐이다.
곧 세나의 자궁에 깃든 이 이상한 기운은 내 힘에 밀려 깨끗하게 사라졌다.
"...."
"안 잡아먹으니 말 해도 돼."
"무슨 일이었는지 알 수 있겠소?"
내 말이 떨어지자 마자 헤이즐이 호기심으로 눈을 빛냈다.
삶에 미련 없는 늙은이, 괜히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당연히 안 알려줄건데."
"너무하는군. 그래서, 알고 싶은 건 알았소?"
"...대충."
솔직히 말하면 확신할 수 없다.
게임에서 언급되는 강자들의 스킬, 특성, 스토리 같은 거야 대충 알고 있지만 내가 직접 체감하는 기운만으로 그것들을 특정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대충 이 기운과 비슷할 것 같은 음습하고 사악한 놈들 리스트는 뽑을 수 있지만 그 중 정확히 찍는 건 힘들다.
게임의 스토리가 아닌가 하면 글쎄, 애초에 스킵충이었고 스토리 사이 사이의 자세한 일은 당연히 모른다.
....빙의자 치고 참 한심하네. 남들은 멋지게 다 꿰고서는 큼직큼직한 미래를 바꾸고 다니던데.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세나의 기억을 읽어 봐야겠는데."
"설마?"
"가능하지? 비슷한 마법이 있다는 건 알고 있어."
마치 당연하다는 듯 헤이즐을 바라보니 그가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로 혀를 찼다.
"한 번 보긴 할 생각이었소.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알아야 치료하든 말든 할 테니 말이오. 물론 좋은 기억은 아니겠지만."
"그래서 그걸 어떻게 하는데?"
"...그녀의 꿈속에 티나의 의식을 집어넣어 확인할 생각이었소."
거기까지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쉬울지도 모르겠네.
"그럼 티나 대신 나한테 시행해. 내가 직접 봐야겠어."
"괜, 괜찮겠소? 아니 그보다 당신의 항마력이면 내 마법은 통하지 않을 거요."
"그건 내가 조절할 수 있으니까 상관 없어."
"...그리고 분명 끔찍한 일을 겪었을 거요.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소."
"그걸 티나한테 시키려 했다고?"
괜히 무게 잡는 헤이즐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애초에 내가 못 견딜 정도면 티나는 그냥 죽을 텐데?
"티나는 여차하면 하루치 기억을 날려버리면 되니까...에잉, 당신이 자초한 일이오. 거기 앉으시오."
고개를 저은 헤이즐은 이내 포기하곤 나를 세나가 누워 있는 시술대 밑에 기대 앉게 만들었다.
"이건 왜?"
"혹시 모르니까. 당신 이빨이라면, 당신 혀를 자를 수도 있으니까."
그러고선 내게 재갈을 물리려 했다.
필요 없을 것 같지만 그냥 받았다.
재갈을 물고, 날 편히 앉힌 그가 다시 마법을 일으켰다.
나는 강력한 저항력을 고의로 낮춰 그의 마법을 그냥 받아들였다.
순식간에 잠이 쏟아지듯 내 의식의 일부가 흔들리고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낯선 이의 마력이 몸을 지배하는 이 감각, 의외로 나쁘지 않은데?
그리고 그 순간 내 시야가 반전되었다.
"으읍?"
나는 순간 정신을 차렸다.
여기도 어둑한 지하긴 하지만, 헤이즐의 공방이 아니었다.
내 입에 재갈이 물려진 건 똑같았지만 다른 건 전부 달랐다.
일단 나는 알몸이었다.
몸은 넓적한 제단에 똑바로 눕혀져 있는 채로. 차가운 돌의 감촉이 맨살에 닿고 있었다.
무심코 팔다리를 움직이니, 대자로 팽팽하게 당겨진 팔다리는 사슬로 제단의 모서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심지어 목에 채워진 목걸이도 고정되어, 고개를 들수가 없었다.
나는 이게 내 몸이 아님을 눈치챘다.
일단 원래의 나라면 있을 수 없는 거대한 흉부가 밑을 보는 내 시야를 방해하고 있었다.
"후, 이짓도 지친다 지쳐."
누군가 한숨을 쉬면서 들어왔다.
이때도 이 큼직한 젖가슴 때문에 누군지 볼 수가 없었다.
그저 스릉거리는 금속음과 부스럭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후, 잘 마셔둬라. 아파서 뒤지는 년들이 절반이거든."
"후으으읍!"
그때 찰랑이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내 항문 근처를 비벼댔다.
애무도 뭣도 없다. 곧 차갑고 뭉툭한 주둥이가 항물을 뚫고 들어 왔고, 그 내용물이 벌컥 벌컥 직장으로 흘러들기 시작했다.
술과 비슷한 약물일게 뻔한 그것은 순식간에 차갑던 알몸을 뜨겁기 그지 없게 만들었고, 버둥거리는 팔다리에 사슬이 찰캉거렸다.
눈앞이 흐려질 정도의 취기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저어대던 나는 문득 보이는 크림색 머리칼들을 보고 그제서야 내가 세나의 몸에 들어와 있단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때, 벌겋게 달아오른 무언가를 화로에서 꺼낸 그가 그것을 내 허벅지에 가져다 대었다.
"..■○■■○!!!"
살타는 냄새, 살이 찢어지고 뼈가 갈리는 끔찍한 소리, 온몸에 일어나는 경련.
흐릿한 시야가 암전했다 돌아왔자를 반복하고, 재갈을 악문 이는 피가 날 정도였으며, 통제를 잃고 펄떡이는 몸은 근육이 찢어질 정도였다.
아프다.
생전 처음 겪는 고통이다.
그만, 이제 그만.
"용케 정신을 붙잡고 있군, 하긴 이 약을 먹으면 뒤질 확률은 내려가지만 신경도 살아나서 정신을 놓기가 힘들지. 이제 3개 남았다?"
무언가가 내 눈물을 닦았다.
눈은 잘 안보인다. 극심한 고통 밖에 안 느껴진다.
그러나 그 고통은, 반대쪽 허벅지에 닿는 톱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
이건, 이건 플레이 따위가 아니야.
그만하라고 미친 새끼야! 씨발! 그만..!
...그만..
그만해 주세요.
너무 아파.
죽고 싶어..
제발
뭐든 할테니까
그만...
"암캐들이 참 마음에 드는군."
"그럼 이제 돌아가시는 겁니까?"
"허허, 레덴교는 그저 배신자들을 잡기 위해 이곳에 왔을 뿐이오?"
"그렇지요. 그럼, 살펴 가십시오."
그는 늙은이에게 인사했다.
...여긴 어디지. 멍하니 있던 나는 순간 정신을 차렸다.
혀에서 타액이 떨어져 땅에 고이고 있었다.
"헤으..."
반사적으로 꼴사납게 빼문 혀를 집어 넣으랬더니 고통과 함께 팽팽히 당겨지는 느낌에 움찔했다.
시야가 너무 낮았다. 마치 땅에 엎드려 있는 것 처럼.
바람이 알몸에 닿고 있었다. 무심코 움직인 팔다리는 처참히 잘려나가 금속 캡에 쌓여 있었다.
혀의 피어스는 체인으로 유두와 연결되어 있었고, 항문에서 느껴지는 큼직한 이물감에 비부에서 즙이 흐르고 있었다.
아아, 맞아. 나는 분명...
"승전 축하식을 해야지. 레라플로 가자. 엘프의 처녀혈이라면, 축하식의 볼거리로 충분하지 않겠나."
화려한 사제복을 입은 주교, 크루제가 마차에 먼저 향하자 누군가 내 목에 채워진 목줄을 잡고는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가, 가야 한다. 나는 암캐니까. 주인님이 인도하는대로...
팔다리를 열심히 놀려 땅을 기어가면, 가슴이 털렁이고 그때마다 유두와 혀가 떨어질 듯이 아팠다.
"저년도 좀 예쁘장 했으면 제 어미나 남동생처럼 가축으로나마 목숨을 부지 했을 것을."
마차에 타기 직전, 크루제는 무언가를 보고 혀를 찼다.
나도 무심코 그곳으로 시야를 돌렸다.
누군가가 목이 베여 효수되어 있다.
그 옆엔 누군가가 나체로, 말뚝에 엉덩이와 입을 관통당해 매달려 죽어 있었다.
나는 그들을 알아보았다.
한때 방문했었던 바우론 남작과, 주근깨 있는 풋풋한 처녀였던 그의 딸이었다.
"레, 레덴이시..."
"웃기는 군, 레덴? 그 빛의 창녀?"
"단장, 여기 이것 좀 보십시오."
주인님의 몸이 쓰러졌다.
나는 허겁지겁 기어가, 그의 몸을 핥았다. 그게 내 본...그만,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불현듯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주변 상황은 또 다시 바뀌어 있었다.
여긴 어디지? 크루제는 죽었다.
놈들은 나를 발견하고 흥미롭다는 듯 내 머리채를 잡아 들어 올렸다.
머리가 통째로 뜯겨나갈 것 같은 고통에 팔다리를 버둥거렸지만 입에서 나오는 건 낑낑거리는 짐승 같은 울음 소리 뿐이었다.
말을 하려해도 나오질 않았다.
"이 변태 주교의 수집품 중 하나야. 잘 되었군. 그분께서 고귀한 피의 계집들을 원하셨다."
"...이런 싸구려 창녀 보다 못한 고깃덩이도 괜찮습니까?"
"중요한 건 외형이 아니라, 이 내면이라 하셨다."
거친 인상의 사내는 매달려 있는 내 배를, 하복부를 쓸었다.
그 순간 직감했다. 이걸 위해 이 개같은 기억을 더듬어 온 거라고.
드디어 그놈에 대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