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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1화-보스몹 때려침 (1/74)



〈 1화 〉1화-보스몹 때려침

1화-보스몹 때려침

평소처럼 평범하게 게임을 즐기던 내가 난데 없이 이 세상에 끌려들어 왔을 때.

당연히 들어야 할 황당함이나 억울함, 의아함은 거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런 감정들은 지금의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

성향: [오만]

캐릭터의 설정에  하니 박혀 있는 성향 오만.

 그대로 오만하단 뜻이었다. 그리고 이 몸, 마룡 안카리아스는 오만한 만큼 무심하고 나태했다.

성향 답게 아무래도 자기 주인의 의식이 통째로 바뀌어도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그냥 늘 그러던 것 처럼, 이 둥지에서 하루 하루 지내면서 자신의 적수를 기다리는게 전부였다.

언젠가 자신의 목과 심장을 베어갈 영웅을 기다리며.

이제는 플레이어였던 기억마저 점차희미해져갔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았다.

귀찮은 건 이해하지만, 적어도 내 미래를 알고 있으면서 대놓고 죽어 줄 수는 없으니까.

[ERROR!ERROR!ERROR!]

애써 찾은 각오가 흩어지기 전에 둥지를 벗어나기 위해 힘을 움직였다.

동시에 눈 앞이 번쩍이는 시스템 메시지로 도배되고 있었다.

예상대로 강력한 저항이 느껴졌다. 보통 저항이 아니었다. 살과 뼈를 파고드는 엄청난 고통.

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저항이 거세면 거셀수록 어째 아프긴 커녕 오기가 솟았다.

감히, 네까짓게 나를 막으려 드냐는중2병 같은 심리와 함께.

내가 끌어낸 거대한 마력이 마침내 저항을 부숴버렸다.

동시에 일어난 거대한 폭발, 그 반동으로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

문득 정신을 차렸다. 그 폭발에도 죽지는 않았나보군.

나는 지금 땅에 누워 있었다.

몸에 직접 닿는 차가운 흙과 풀이 느껴졌다.

둥지는 돌바닥 뿐이었으니 둥지를 벗어난게 확실했다.

다만 감촉이 이상했다.

움찔거리려는 날개도, 꿈틀거리려던 꼬리도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더 익숙한  감각. 천천히 눈을 떴다.

예상대로 나는 흙바닥에 엎드린 채 누워 있었다.

슬쩍 몸을 일으키니, 윤기 나는 검은 머리칼이 스르륵 흘러내렸다.

새하얗고 가느다란 팔다리엔 비늘도 없었다.

완전한 인간의 몸이었다.

"음."

당황스럽진 않았다.

애초에 여느 창작물이 그렇듯 이 몸, 마룡 안카리아스도 인간으로 변할 수 있었다. 이런 쪽이 훨씬 잘 팔린다 뭐 그런 거겠지.

"...원래 암컷이었나?"

몸을 내려다봤다.

하지만 마룡 안카리아스가 여자라는 사실은 이 게임을 수백시간 해오면서 지금 처음 알았다.

단지 이 게임의 폴리모프에는 성별과 종족을 포함, 외형을 마음대로 바꾸는 능력은 없었으니까 아마 이 모습이 진짜일 것이다.

유저들은 보통 폴리모프가 아니라 커스터마이징 패키지를 사서 썼지.

RPG게임 아스피라는 그저그런 인기와 그저그런 평판을 가진 평범한 게임이었다.

사냥을 하고 모험을 하고 퀘스트를 깨고 보스몹을 잡는. 나는 그런 게임을 꽤 즐겁게 했었고.

일단 빙의한 안카리아스의 성향 덕분인지 혼란함도 적었다.

이 무신경함과 귀찮음의 효과는 상당해서 내가 지금 이런 여자의 몸을 하고, 심지어 알몸으로 있어도 그러려니 하고 넘길 정도였다.


[마룡 안카리아스(101세, 폴리모프)]

[성향: 오만]

[특이사항-내상(36%)]

[*내상을 회복하지 못하면 본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몸을 완전히 일으켰다.

상태창은 지금 내 상태를 알려주고 있었지만 굳이 상태창을 열어보지 않아도 나는 내 몸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었다.

내상이라, 실제로 겉으로 보기엔 멀쩡하지만 속은 조금 욱신거리는 곳들이있었다.

시원한 야외의 바람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살에 닿는 감촉은 이곳으로 오기 전엔 쉽사리 느끼기 힘든 것이었다.

만약 거기서 그랬다면 곧바로 경찰서로 끌려가고 뉴스로 나올 테니까.

하지만 지금 나는 몸을 뭐로 가릴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애초에 안카리아스는, 자신의 몸을 누군가에게 보인다고 수치심 따위가 들리 없었으니.



슬쩍 뒤를 돌아봤다.

대수림 한복판에 서 있는 화산. 저곳이 내 둥지였다.

폭발한듯 연기를 내뿜고 있는 건 내가 뛰쳐 나온 여파겠지.

당연하지만, 조금의 신경 따위 쓰이지 않았다.

둥지 안에 가득한 보물? 안타깝게도 지금의 내겐 그냥 반짝이는 쓰레기일 뿐이었다.

다시 고개를 돌린 나는 다시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아쉬움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목적지도 목표도 없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막상 나오긴 했는데, 딱히 하고 싶은 일 따윈 없었다.

그냥 어디 틀어 박혀서 잠이나 잘까.

그나마 이렇게 걷는 것도 가까스로 이 무신경한 성향과 맞서 싸우는 일말의 호기심과 흥미 때문이었다.

맨발에 닿는 흙의 감촉이 은근히 좋다.

나는 땅을 박차고 전속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어느 방향이든 상관 없이, 숲의외곽을 향해서



해가 슬슬 져가고 세상은 어둑한 푸른색이 되었다.

귀에 들리는  소리.

나도 모르게 그곳으로향했다.

길이 거칠기 짝이 없었지만 거친 수풀과 돌부리, 독충은 어차피 내 피부에 조금의 생채기도 내지 못했다.

돌부리는 내 발에 부숴지고, 독충의 턱은 알아서 부러졌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작은 계곡.

나는 나도 모르게 천천히 물에 다가갔다.

수면에는 태초의 모습을 간직한 아름다운 소녀가 핏빛의 붉은 눈을 빛내고 있었다.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얼굴도, 티 하나 없는 몸도 분명 엄청났으나.

"분명 백살 이상이라 들었는데."

당연하게도  몸은 인간과는 성장 속도부터가 달랐다.

애초에 이런 밋밋하고 미성숙한 몸은 내 취향도 아닐 뿐더러, 안카리아스도 오만하고 자부심 가득하긴 하지만 자기 몸에 끌리는 나르시스트도 아니었다.

아마 원래라면 호기심에서라도 관심을 가졌겠지만 내 원래 이름도 기억 안나는 지금은 그런 것도 없었다.

이번엔 천천히 계곡물에 발을 담궜다.

발목, 종아리, 허벅지까지.

강건한 용의 몸이라 한들 감각 자체는 평범한 인간과 다를게 없었다.

시리도록 차가운 물이몸을 타고 흘렀지만 춥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이젠 해야 할까.

일단 둥지에서 도망쳤으니 죽을 걱정은 덜었다.

그렇다고 성향대로 어디 쳐박혀서 시간이나 보내는  필사적으로 거부했다.

애초에 이런 고민 따위 하지 않고 살아 온 녀석이라 그런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딱히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

 상태로 잠들었었나.

적어도 5m는 되어보이는 깊은 계곡물 속에서 눈을 떴다.

어느새 밝은 햇빛이 투명한 수면으로 비추이고 있는데, 무슨 소음을 들은 내 귀가 움찔거렸다.

지금 수면에선 무언가 거대한 것이 물을 마시고 있었다.

다만 내 귀에 감지된 기척은 단순한 짐승의 기척이 아니었다.

마력을 가진 존재의움직임.

마의 화신인 이 마룡의 몸뚱이는 극히 미세한 마력의 흐름도 감지해냈다.

천천히 수면으로 몸을 움직였다.

물을 마시고 있던 건 평범한..멧돼지.

그러나 지금 저 멀리서  멧돼지를 노리고 창을 던진 녀석은 평범한 짐승이아니었다.

"크륵.."

적어도 3m는 되어 보이는 거인이 멧돼지의 시체에서 조잡한 나무창을 뽑아냈다.

트롤이라 불리는 이 게임의 몬스터. 다만 놈은 트롤의 계파 중에서도 약한 축에드는 숲트롤 계통으로생김새와 달리 그리 강한 놈은 아니었다.

작중 안카리아스의 둥지 주변에는 의외로 강한 마물들이 없었다.

강하고 고등한 마물들은 안카리아스의 기에 눌려 전부 도망쳤으니까.

애초에 안카리아스의 둥지 자체는 스토리 후반부에나 밝혀지며  위치도 어디 땅 끝이나 버려진 땅 따위가 아닌 여러 왕국들이 접하는 대륙 중앙의 대수림이었다.

그나저나 어쩔까.

마음 같아서는 신경 끄고 다시 가라앉고 싶은데.

다만 수면 위로 얼굴을 반쯤 내민 내 기척을 느꼈는지 놈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회백색 피부에 일그러진 얼굴의 대머리.

정말 혐오스럽게 생긴 생물이었다.

안카리아스가  지금의 나는 물론 이전의 나조차도, 당연히 추한 것 보다는 아름다운  좋아했다.



"크아악!"

주제 파악도 못하는 놈이 나를 향해 위협적으로 포효했다.

내가 본체였다면 아마 여기 오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지금 나는 기척도 감춘 평범한 인간 소녀의 모습이었으니, 이 멍청한 괴물이 알아 볼리가 없었다.

놈의 도발은 내 신경을 건드렸다.

무신경하고 나태한 것도 어디까지나 평소 성격이지, 지금 굳이 이런 미물에게 무시당했는데 가만 있을 이유가 없었다.

예고 없이 수면에서 포탄처럼 몸을 발사했다.

당황한 놈의 얼굴이 보였고,  입꼬리는 나도 모르게 비틀렸다.

 게임의 세계관에서 용들은 마력을 다루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하지만 안카리아스는 원래 마법 따위는 쓰지 않았다.

다른 허접한 용들과는 달리 굳이 마법 따위는 쓰지 않아도, 강건한 신체와 강력한 마력에 적수 따윈 없었으니까.

순간 뾰족하게 돋은  손톱에 힘이 응축되는 순간 당황한 트롤의 몸은 그대로 토막났다.

토막나 피를 뿌리는 놈의 더러운 피를 뒤집어 쓴 채, 땅에 착지했다.

트롤뿐만 아니라, 길게 그여진 5줄기 참격의 흔적이 땅을 뒤집고 나무를 베어버리며 뒤로 주욱 이어져 있었다.

찝찝한 마음에 곧장 다시 물에 들어가 몸을 씻어냈다.

"...아악!"

그러나 소란의 근원인 트롤을 죽였음에도 내 귀에 들리는 소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이곳과 그리 멀지않은 곳에서, 희미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짐승의 비명이 아니었다. 분명 사람의 비명이었다.


"그, 그만! 살려..."

땅을 박차며 기척이 느껴지는 쪽으로 숲을 가로질렀다.

고래고래 질러대는 다급한 비명은 점차 가까워져 갔다.

목소리는 남성, 나이는 젊어보였다.

그리고 그를 뒤쫒는 마물의 기척은 역시 트롤이었다.

달려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서로 추격전을 벌이고 있는 놈들의 모습이 보였다.

"히이익!"

미리 예상한 대로, 쫒기고 있는 쪽은 검은망토를 두른 인간 사내. 쫒는 쪽은 통나무 곤봉을 들고 있는 트롤이었다.

비실비실해 보이는 다리로 달리다가 바닥에 대차게 넘어진 사내는 벌걸 떨며 주저앉은 채, 엉덩이 걸음으로 뒤로 기어가며 두려운 눈으로 자신을 내리치기 직전인 트롤의 몽둥이를 보고 있었다.

그들은 내 모습을 눈치채지 못했다.

나설까? 구경할까?

사실 답은 나와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만난 지성체였다.

이미 내 흥미가 성향을 이긴지 오래였다.

"뭐, 뭐..."

"그아아..."

고의로 숨겼던 내 본연의 기운을 조금 흘렸다.

대놓고 자신을 노리는 기운에 트롤은 곤봉도 내버리곤 기겁을 하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와중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걸 보니, 지금 어벙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는 저 놈은 그닥 대단한 놈은 아닌 것 같았다.

"이럴 수가."

멍하니 도망치는 트롤의 뒷모습을 보던 그의 시선이 이제서야 나를 향해 돌아왔다.

서로의 시선이 공중에서 얽혀들었다.

"..."

그리고 그의 멍청한 시선의 내 눈을 떠내 위아래로 내 몸을 쓱 스캔할 때, 그제서야 내가 나체임을 깨달았다.

근데 뭐 어쩌라고.

다만 이어지는 그의 반응은 꽤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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