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1화 〉용기 (71/72)



〈 71화 〉용기

클레온이 라일라의 저택으로 돌아온 것은 해가 지평선을 넘어갈 쯔음.

주변의 색이 주황색으로 물들고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 시간대였다.

주말의 소란스러움도 점차줄어들어.

평소보다 조금 활기찬 정도의 수준으로 진정된다.


클레온들이 원래 지내던 도시 `엘레시아`에 비해서

어른들의 고함 보다도,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훨씬 많이 들려오는 것은

이곳이 학교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준다.

조용히 현관문을 열어젖히고 안으로 걸어 들어가.

복도를 지나 거실에 도착하면.

그곳에는 거실의 테이블 위에 여러 가지 서류들을 늘어놓은 채.

끙끙 앓는 소리를 내는 라일라가 있었다.



몸에 걸친 것은 아침에 보았을 때와 같은 파자마 원피스다.

오늘 하루도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 온종일 책과 종이와 씨름을 하고 있었겠지.

그런데도 시간이 부족하여 어떤 연구자들은 불사의 방법을 찾는다던가….

클레온은 라일라가 거기까지 갈까, 같은 걱정을 하며 입을 열었다.



"거실에서 연구라니, 드문걸."

"응... 조금 갑갑해서…. 아, 클레온. 돌아왔구나."

라일라는 그 재서야 클레온의 귀환을 깨닫고 그쪽을 돌아보았다.

클레온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라일라는 기지개를 피며 소파에 등을 기댄다.

"그럼 벌써저녁 시간인 거네. 아. 애프터는 즐거우셨나요?"

라일라는 시계를 한 번 돌아보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다.

"...어째서 네가 그걸."

`애프터`라는 것은 아루루와 함께 `그 장소`에들어간 것을 말하는 것이겠지.

물론, 귀가시간이 늦어지긴 했지만….


"사샤가 말했어. 클레온이 금발의 여성이랑 R지구의 `성`으로 들어가는 걸 봤다고."

그러고 보니, 오늘은 친구들이랑 자유 시장에 간다고 했지.

설마 그 장면을 목격당했을 줄이야.

"그... 미안 하군."

"어째서 사과하는 거야. 그녀의 기분을 맞춰주는 게 동의를 받기 위한 일이란  알고 있으니까."

클레온의 사과에 라일라는 쓴웃음을 지으며 슬쩍 위층을 올려본다.

"...하지만. 쿠온은 조금 화나 있던 것 같은데?"

"쿠온이…."

클레온이그렇게 대답한 순간.


"클레온~~~!!"

계단의 위에서 벼락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는 잔뜩 화난 얼굴을  채로 계단을 내려오는 쿠온의 모습이 보였다.

살짝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올  마다 그 커다란 가슴이 흔들린다.

"사샤한테 들었어! 아루루씨랑 `사랑의 둥지`라는 곳에 들어갔다면서! 그것도 사이좋게 팔짱을 끼고!"

"아, 아아. 미안. 그건..."

"사샤가 그런 곳에 흥미를 느끼면 어떻게 하려는 거야! 한창 호기심넘치는 사춘기 시기의 아이한테 정서 교육상 좋지 않아!"

"그런 이유였나…."

완전히 사샤의 어머니 같은 관점에서 말하는 쿠온을 보며 클레온은 한숨을 내쉰다.

슬쩍, 쿠온의 뒤에서 얼굴을 내미는 사샤.

조금 미안한 표정이 되어 클레온과 눈을 마주치면.

클레온도, 쓴웃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혼나는 도중에 웃지 마~!"

쪼잘쪼잘. 재잘재잘.

결국, 그 자리에서 쿠온에게 길고 긴 잔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었다.

001

그 후, 네 사람은 다 같이 식탁의 앞에 앉아 언제나처럼 저녁 식사를 나눈다.

"갈라테아는?"

"낮에 점검한 뒤로는 휴식 중이야. 꽤 구석구석 살펴봤으니까 피곤한 거겠지.“

라일라가 그렇게 말하면 클레온도 갈라테아가 있을 위층으로 시선이 돌아간다.



"상태는 어때?"

"갈라테아도 배 속의 아이도 건강해. 오히려, 성장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생각될 정도야. 역시 안에 있는 건 인간이 아닌 것 같아."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는 듯하지만.

라일라가 말하길, 갈라테아의 안에 있는 것은 서서히 그 마력반응을 키우고 있으며.

현재의 마력량으로도 이미 웬만한 마도구의 수준을 넘어섰다고 한다.

`인간`이나 `생물`이 아니므로 갈라테아의 배는 부풀어 오르지는 않지만.

안에서 자라나는 검의 핵이 언제 바깥으로 빠져나오게 될지는

라일라도, 갈라테아도 예상할  없는 바였다.

"메모리아 큐브의 해석은 실패했지만, 역시 아카데미에 있는 시설들을 사용해서 조사하길 잘한 것 같아."

도시에 있는 물건들로는 상세한파악이 불가능했을 테니까.

같은 말을 덧붙이는 라일라.

자신의 마법 연구에 더해, 사샤와 갈라테아의 상태 조사.

그리고 메모리아 큐브의 해석을 위한 조력까지.


사람의 두 세배는 더 분발하고 있는 그녀지만.

도시에 있을 때보다도 더 생기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역시 그녀가, 태생의 연구자이자, 학자 체질이라는 것이겠지.


"무리는 하지 마."

다만, 그만큼 걱정되는 면도 있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아카데미는 마냥 학생들에게 친절한 곳은 아니다.



가장 윗자리를 꿰차고 있는 원로회.

문제를 반복하고 있는 집행과.

그리고 정체를   없는 `검은 교전`까지.

아직 적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널려 있었다.

"날 뭐로 보고. 너희가 없을 때는 일주일은 안 자고 연구한 적도 있는 걸."

하지만 라일라는 문제없다는 듯이 웃어 보이며 대답한다.

허세나 강한 척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러나오는 듯한 대답이었다.

"눈을 떼면 무리할  같단 말이야. 라일라는."

쿠온은 클레온의 편을 들면서 이야기하고.

라일라는 한숨을 내쉬면서 식탁에 팔꿈치를 댄  턱을 괼 뿐이었다.

"그보다. 클레온, 사샤한테 해 줄 말은?"

라일라는 자신에게 이야기의 화살이 날아오지 않게 하려고.

화제를 전환하며 조용히 모두의 눈치를 보며 야금야금 식사하고 있던 사샤의 이름을 꺼낸다.

그러면 미소 짓는 쿠온의 옆에서 클레온은 사샤에게 시선을 돌리고.

"아아. 그렇지. 그 옷, 새로 산 옷이지? 잘 어울리네."

하고, 그녀가 입고 있는 녹색 기조에 이런저런 문양이 들어간 하늘거리는 옷은.

마치 도시의 귀족 아가씨들이 입는 단정 하면서도

세련된 프릴이 이곳저곳에 달린 귀여운 옷이었다.


사샤는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모여든 시선에 머리 위의 귀를 쫑긋 새우며 세 사람을 돌아본다.

그러고는, 클레온의 칭찬이 조금 쑥스러웠는지.

"에, 헤헤…. 가, 감사합니다. 친구들이랑 같이 고른 옷이에요."

하고, 얼굴을 붉히면서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입고 있으니까 정말 귀족 아가씨 같은걸."

라일라도 클레온을 거들며 이야기한다.

평소에는 활동하기 좋은 짧은 옷이나, 경갑옷을 선호하는 그녀이지만.

상시 무장을 할 필요가 없는 아카데미에서만큼은, 친구들과 비슷하게.

여자아이다운 옷을 입고 지낼 수 있다.


"있지 라일라, 역시 영사마법으로 남겨두자!"

쿠온이 라일라에게 말하면 라일라는 `에에….`하면서 곤란해 하는 것이었다.

영사마법은 피사체의 환영을 복사하여 마법 아이템에 담은 뒤.

그것을 언제라도 확인하거나, 종이 위에 투영해낼 수 있는 마법이지만.


마법아이템이라는것이 꽤 고가이기 때문에.

정말로 중요한 순간이아니라면 귀족들도 손쉽게 손을 대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저 사샤가 귀엽다는 마음으로 터무니없는 말을 꺼내는 쿠온에게 질린 듯.

라일라는 클레온에게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낸다.


"나쁘지 않은 생각인  쿠온."

여기 있는 건 모두 바보뿐이구나.

라일라는 포기한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남은 식사를 서둘리 해치우는 것이었다.


002

그렇게, 단란한 저녁 식사가 끝나고.

언제나처럼 식후의 티타임을 즐기는 시간.

본래 라일라의 습관이었지만 쿠온이나 사샤가 그 뒤에 참여하고.

결국, 클레온도 그 자리에 있게 되면서 하루의 일과가 되었다.


하루 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다음 일을 기약하기에는 딱 좋은 시간이었다.

쿠온도 사샤도 수업의 과제가 있는 탓에 오늘은 일찍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지만.


"...수석들끼리 집행과의 축출을…. 하아."

라일라는 클레온이 아루루로부터 얻은 정보를 전달받은 뒤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이야기는 수석들끼리의 사교회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 같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 잘도 이야기를 진행했네…."

아까의 여유로워 보이던 표정과 다르게, 조금 피곤한 듯 핼쑥한 얼굴이 된다.



물론 1년간 학교를 비우기 전부터그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던 라일라지만.

어떻게든 잘해보고자 하려는 때에 자신이 그들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면.

여러모로 몸에서 기운이 빠지는 것은 어쩔  없는 일이겠지.

클레온은 그런 라일라의 얼굴을 조금 살피면서 이야기를 계속한다.

"어쨌든 좋은 기회야. 집행과의 문제와 다른 수석들에게 은혜를 입힐 수 있으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라일라의 표정에는 클레온에 대한 걱정이 깃든다.

물론 실력의 문제로 그가 다칠까 걱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카데미 상위 학생층이라는 것은 생각보다도 귀찮은 인간군상의 집합으로.

우선은 평민 출신의 수석과 귀족 출신의 수석들이 대립하고 있다.

플레임워치 가문은 아카데미의 시초가 되는 가문 중 하나이지만.

어디까지나 작위를 받지 않은 평민의 가문.

분류상으론 평민 파의 일원이다.


자연스럽게 귀족파 소속의 일원들 대부분은 그녀를 무시하고.

그렇다고 해서 평민 파의 수석들이라고 하여

엘리트의식으로 가득  있고 인간을 기본적으로 자신의 밑으로 보던 라일라의 성격에 동조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라일라가 없다고 모두가 사이좋은 것은 아니었다.

평민 파와 귀족 파와의 싸움.

또 아카데미의 역사상에서 대립한 적이 있는 학과 사이의 갈등.

그들이 하나로 뭉치는 일 따위 정말로 아카데미 자체를 위협하는 적이 없는 이상.

상상하기 힘든 광경이다.


그곳에 아루루와 친하다지만 기껏 해봐야 성학과라는 인식 최악의 학과의 임시 강사.

더하여 흑마의 일족인 그가 찾아가도 환영을 받을 리는 만무했다.

클레온이 제아무리 그런 눈길에 익숙하더라도.

동료가 그런 상황에 부닥치는 것이, 라일라로서는 걱정될 뿐이었다.

그럼, 클레온은 그런 라일라의 눈길을 받고 입을 열었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그보다 녀석들을 걱정해야 할걸?"

"...그건 그러네. 네가 화나면 무서운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까."

자조하듯웃는 라일라를 보며, 클레온 역시 쓴웃음을 지었다.


"너는 어떻게 할래?"

그러면, 클레온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라일라는 눈을 크게 뜬다.

"으, 으음... 나는 괜찮으려나. 가봤자 분위기만  좋아질 테니."

라일라는 답지 않게 멋쩍게 웃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그 집단에 있어서 달갑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러고는 클레온과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무, 물론. 클레온을 뒤에서 도와주긴 하겠지만. 거기까지 직접  필요는 없잖아? 클레온에 관해서라면 아루루에게 맡겨도 될  같고."

"... ..."

분명,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굳이 미움받는 이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필요가 없는 것도.

아루루가 있으면 클레온에 대해서도 걱정이 없다는 것도.

하지만 클레온은 라일라에게 이야기한다.

"나는 네가 같이 있어 주는 편이 더 마음이 든든할 것 같은데."

"...거짓말. 그런 식으로 이야기해서 날 그곳으로 끌어낼 생각이지. 안 속아 넘어가."

라일라는 클레온의 말을 부정하지만 조금 얼굴을 붉혔다.



"거짓말은 아니야. 나는 완전히 아카데미에서 외부인이니까. 동료가 함께 있어 주는 것은 정말 큰 도움이야."

"윽…. 그걸 말하면…."

라일라는 살짝 마음이 약해진 듯 클레온을 살짝 돌아본다.

클레온은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거기에, 녀석들은 너를 피도 눈물도 없는 마녀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만…. 이제는 아니라고 알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데."

"벼, 별로 그런 걸 학원의 녀석들에게 알려봤자 좋을 건 없어."

"...하지만 라일라. 너는 이곳…. 아카데미가 좋은 거잖아?"

클레온의 말에 눈을 크게 뜨며 그와 눈이 마주친다.



아아, 그랬다.

이 남자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숨길 수 없다.

스스로의 우행으로 모든것이 부서졌을 때.

이 남자에게는 안에 꽁꽁 감춰두었던 모든 것을 보인 적이 있다.



할아버지의 긍지와 추억.

전혀 가볍지 않은 가문의 명예.

 모든 것을 더럽힌 이들이 존재하며, 이곳을 얼마나 부패시키더라도.

설령 주변의 모든 이들이 자신을 싫어하더라도.


원하는 만큼 마법을 연구할 수 있는 이곳이 좋다.

자신이 만든 것이 남아, 누군가에게 이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즐겁다.

그리고 `그녀`와의 추억이 남아있는 장소에.

자신은 아직도 애정을 품고 있다.

그렇기에 쿠온, 사샤, 클레온 모두가 자신을 따라 이곳으로 와준다고 했을때.

마음이 들떠있었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언제까지나 계속됐으면 하고.

어딘가 바라는자신이 있었다.



허나, 필요한 일이 끝나면 그들은 이곳을 다시 떠날것이다.

그때, 자신이 어떻게 할지는 아직 정확하지 않지만.

적어도, 조부의 묘 앞에 다시 섰을 때.

아카데미의 이야기를 하며 웃을 수 있게 되어야만 했다.



라일라의 입이 몇 번이고, 열렸다가 닫혔다.

한마디를 내뱉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 용기가 있다면.

분명 바꿀  있다.

자신도, 주변도.

그리고 이 아카데미조차도─



"클레온, 나-"


003


아이온의탑.

지하로 내려가지 않고 위로 올라가면.

그곳에는 각 학과의 수석들과 교수들만이 출입할 수 회의장소가 있다.

각 학과의 휘장이 가운데에 놓인 원탁을 중심으로 벽에 장식되어있으며.

그중에서도 시초의 3학과라고 불리는 마법과, 검술과, 그리고 신성학과의 학과의 휘장에 비해서도.

낡으면서도 화려하고, 그 역사를 나타내는 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원탁의 주변에는 평소처럼 각 학과의 수석들이 출석하여 회의가 시작되는 것만을 기다린다.

모여있는 이들은 모두 아카데미 제일의 인재들.

하나같이 자신만의개성을 지니고 있거나, 결코 파묻히지않는 인상을 주고 있는 학생들이었다.

"아루루님은?"

귀족 파의 대표적인 수석인 정치과의 남학생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신성학과의 여학생이 대답한다.

"조금 늦으신다고 하셨습니다. 데려올 사람이 있다고."

"흐음."

다른 학과, 예를 들면 지금 이곳에 없는 궁술과의 수석이 지각한다고 하면, 같은 귀족 파의 학생이 상대라도 언성을 높이는 그지만.

아루루가 대상이라면 말없이 참아낸다.

같은 공작가라고 하더라도, 트로메이아 가문의 역사나 권력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평민 파의 수석들 역시, 회의시간을 지키지 않는 아루루에 대해서 불만을 하나 정도 뱉어도 되겠지만.

귀족 중에서도 평민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 없이 자신들을대해주는 그녀에 관해서는.

다들 아무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이윽고 닫혀있던 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아루루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뒤로 따라 오는 검은 머리, 흰 피부의 남성.

몇몇 학생들의 눈이 크게 띄어졌다.

"흑마의 일족...?"

"생존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어째서 이곳에…."

수근 거리는 목소리가 회의실에 울리면 아루루는 웃으며 옆에 서 있는 남성을 소개한다.

"모두, 늦어서 미안. 집행과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중요한 사람을 데려왔어."

아루루는 그런 회의실의 분위기를 상관하지도 않는 듯이 손으로 클레온을 가리킨다.



"이쪽은 클레온. 지금은 성학과의 임시 강사로 일하고 있고, 원래는 실력 있는 모험가야."

"성학과...?"

모두- 그저 웃고 있는 리오메스를 제외한 모든 학생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성학과의 강사가 어째서..."

"설마, 자유시장에서 아루루님이 남성과 걷는 모습을 보았다는 이야기는 사실이었던 건가…?"

"바보 같은 소리…! 아루루님에 한해서 그런 일은…."


당황한 목소리를 울리는 그들이지만.

이 반응조차 예상했다는 듯, 아루루는 헛기침을 하며 모두를 침묵시켰다.

클레온은 조용히 그런 그녀의 평소의 인망에 속으로 혀를 내두른다.

물론, 소리를 내지 않을 뿐 여전히 불신과 경멸의 눈초리가 따가웠다.

"그에 관해선 신뢰해도 좋아. 내가 보증하지. 무엇보다, 그가 있기에 우리는 지금 이렇게 집행과와 싸우고 있을 수 있으니까."

"무슨 의미죠?"

신성학과의 수석이 소리를 올려 물어보면, 아루루는 대답했다.

"집행과가 차석의 행방불명으로 내부분열이 가속화되어,  모습이 노출됐다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겠지."

각자 고개를 끄덕이는 수석들.

그럼 아루루는 클레온에게 고개를 돌린다.



"마안의 조련사, 엘리제 휴트러스는 내가 죽였다."

동시에 당황을 담은 수군거림이 회의실을 지배했다.

"아카데미의 외부인이 아카데미의 학생을 죽인것인가? 언제? 어째서?"

조금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는 정치학과의 수석의 질문에 클레온은 담담히 대답했다.



"그녀가 먼저 나의 동료들을 협박하고 해를 끼쳤기 때문이다."

"모험가가 집행과에게 노려졌다고...?대체 집행과는 무슨 일을 하려 했던 거지…."

"증거는 있나?"

그럼 클레온은 주머니에서 검은 스크롤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이전, 클레온이 그녀로부터 슬쩍 한 뒤.

라일라가 사용하여 갈라테아를 회복시킬  사용한 물건이었다.

내부의 마법효과는 이미 사라졌지만, 버서크 스크롤의 실물 자체는 아직 남아있었다.

그리고 집행과의 상징인 천칭 모양이그려져 있는  스크롤을 본 학생들은 다시 한 목소리를 울렸다.

"잠시,제가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까?"

마도구를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학과 `마도구학과`에서 감정을 요청하자.

클레온은 그것을 그에게 넘겼다.

모노클 앞에 달린 렌즈가 수축과 확대를 반복하더니.



남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클레온에게 돌려주었다.

"틀림없군요. 버서크 스크롤. 이전 저희가 집행과의 학생들에게서 압수한 물건과 같은 물건입니다."

"... 놀랍군. 그렇다면 정말로, 엘리제가 죽었다는 건가."

정치학과의 수석이 그렇게 중얼거리면, 아루루는 조용히 클레온에게 속삭였다.

"...엘리제 휴트러스는 정치학과의 차석으로 위장해있었어."

"...그런가."

그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지금도 집행과의 인물들에게 노려지고 있어. 원한관계라는 것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으니까. 그러므로 누구보다도 우리에게 협력적으로 행동해  거야."

아루루의 말에 회의실의 내부는 조금 침묵이 이어진다.

이유도, 실력도 이해할  있다.

하지만 그는 외부인이다, 거기에 성학과의 강사.



"정말이지, 아카데미 최고의 인재들이라는 말이 울고 가겠네. 이렇게까지 폐쇄적인 녀석들일 줄이야."

그때, 문의 바깥에서 들리는 목소리.

그것을 들은 이들 중 일부는 눈을 찌푸리고, 일부는 공포에 질린 얼굴이 된다.

문이 천천히 열리면, 그곳에는 몇  만에 수석들의 회의에 얼굴을 비친.

라일라 플레임워치가 당당하게 서 있었다.


"라일라 플레임워치... 그렇군. 동료인 건가. 그는."

금세 회의실의 내부가 험악한 분위기에 잠긴다.

하지만 라일라는 전혀 굴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와 자신에게 배당된, 마법학과의자리에 앉았다.

"나는 이곳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왔어. 집행과의 녀석들이 나의 동료를 계속해서 노린다면, 전부 불태워버리기 위해서 말이야."

"당신이 언제부터 동료라는 것을 신경 썼다는 거죠?"

신성학과의 수석의 말에 라일라는 그녀를 돌아본다.



"사람은 변하는 법이야. 나도 예외는 아니란 거지."

약간의 미소를 지으며 라일라가 대답하자, 살짝 당황한 듯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제멋대로 굴어놓고, 이제 와서우리와 협력하겠다고?"

역시 그녀가 맘에들지 않는 정치학과가 비난의 목소리를 울린다.

"그럼 지금까지의 태도에 대한 사과도 더해서, 너희가 반드시 집행과를잡을 수 있도록 약속할게."

"그런 약속, 어떻게 믿으라는 거지?"

그 대답에 라일라는눈을 크게 뜬다.

그녀의 머리카락의 불처럼 타오르는 마력에 휘감기고, 눈에는 강렬한 마력시가 깃들었다.



"나는 라일라 플레임워치. 명예로운 시초의 가문 중 화염의 원소를 담당하는 마법사의 혈통. 내가 어떤 인간인지는 당신들이 잘 알고 있겠지? 집념, 이기적, 그리고 오만. 하지만 내가 갖춘 능력에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어."

정치학과는 라일라의 말에 `큭….`하고 팔을 내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로부터 느껴지는 마력압.

그것은 이미 1년 전에 비해서도  단계는 높은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협조적인 태도가 아니라면 저희도 받아들이기에는 어렵습니다.

그런 그녀에게서 물러서지 않는 것은 역시 신성학과의 수석이었다.

방금 그 태도로, 그녀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까의 당황은 얼굴에서 지워져 있었다.



그럼 라일라는 조금 한숨을 내쉬면서 모두를 돌아보며 이야기한다.

"잘들어. 나는 절대로 이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이 평화롭게 공부할 수 있도록할 거야. 그리고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 그를 위해서라면…."

다음 순간, 라일라는 모두의 앞에서 허리와 고개를 숙인다.

"프라이드를 꺾는 것 따위, 아무것도 아니야."


"...그 라일라 플레임워치가, 허리를 숙인다고…?"

"도플갱어나 셰이프 시프터가 아닌가…?"

그 모습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바라보는 다른 학생들을, 아루루가 다시 한 번 조용히 시킨다.



"라일라도, 클레온 강사도.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프라이드와 시간을 사용한다는 거야.이런 호의를 거절하는 것은 아카데미의 지성인으로서 현명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녀의 말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저도 같은 생각이네요. 강사님은 물론 훌륭하신 분이시지만, 라일라양도 많이 변하신  같으니."

성학과의 수석.

아타데미 탑클래스 빗치- 리오메스가 입을 열었다.

"라일라양의 눈은 `사랑하는 소녀`의 눈입니다. 이런 눈을 가진 사람은 정말로 무엇이든지  수 있거든요."

"사, 사랑…? 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리오메스의 갑작스러운 말에 라일라는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린다.


"저도 찬성입니다. 라일라씨와 함께 일을 할 기회는 그리많지 않으니까요."

이어서 손을 것은 버서크 스크롤을 감정했던 마도구학과의 남학생.

그 둘을 시작으로 결국 반을 넘는 수석들이 찬성하자 다른 수석들도 조금 껄끄럽지만 어쩔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자. 그럼 이걸로 두 사람에 관한  모두 받아들여졌다는 것으로 알고…. 본제로 넘어갈까."

아루루는 만족스럽다는 듯 모두를 돌아본 뒤 클레온을 보며 한쪽 눈을 찡긋하고 감아 보였다.

사전에 마도구학과의 수석을 포섭하고, 이런 흐름이 되도록 연출한 것은 그녀였다.

정말이지, 빈틈이 없는 소녀다.

그리고 이곳에 모여있는 모두의 힘을 모아.

아카데미에서 `집행과`를 축출하기 위해.

길고  회의가 시작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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