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유도
붉은 제복의 인간들은 기습에 가까운 형태로 나타난 자신들에 대해
곧바로 전투 태세를 취한 아루루와 클레온을 보며 조용히 무기를 잡았다.
그들이 들고 있는 무기는 하나같이 마력을 머금고 있는 인첸트 된 무기들.
모자나 제복 곳곳에 보이는 `천칭`의 문양.
`심판`을 의미하는 집행과의 상징이 엿보인다.
이전의 실패에서 배운 것일까.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의 양은 이전의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닌
모험가로 치면 중견 이상의 실력을 갖춘 베테랑들처럼 느껴졌다.
"죽어라, 마검사. 엘리제 님의 원한을 갚겠다."
그 중 리더격으로 보이는 남자가 입을 열며 검을 휘둘러온다.
클레온은 스승의 검으로 그 검을 막아내면서 인상을 찌푸린다.
"누군데 그건."
"마안의 조련사. 엘리제 휴트러스."
들은 적 없는 이름이었기에 질문한 것인데, 대답은 아루루에게서들려왔다.
"아아…. 집행과의 마안술사인가. 차석이라고 했지."
그 칭호를 듣고 떠올린 것은, 역시 자신이 마무리 한 마안술사.
아루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앞에 있는 집행과의 암살자들을 향해 아론다이트를 휘둘렀다.
한번 휘둘렀을 뿐인데 그들이 들고 있던 무기가 산산조각이난다.
물론 아론다이트를 포함해서였다.
흩날린 아론다이트의 조각들은 허공에서 다시 그 모습을 검으로 바꾼다.
10에 가까운 성검이 갑자기 나타나면, 당황한 집행과들은 곧바로 방어자세를 취하지만.
그것이 오판이었다고 바로 다음 순간 깨닫게 된다.
놀랍게도 아루루는 방어태세를 취한 그들의 곁을 걸어가듯.
어느샌가, 그들의 뒤에 서 있었다.
눈으로 좇기 힘든 그 이동에 그들이 재빨리 몸을 돌리지만.
이미, 공격은 끝나 있는 상태였다.
자신이 베였다는 사실조차, 뒤늦게 깨달을 정도의 쾌검.
아루루의 가벼운 검이 허리로 되돌아가자
그들은 자신들의 붉은 제복 위의 스스로의 피를 뿌리며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래 맞아. 최근 행방불명 되었지만. 클레온씨가 그녀를어떻게 했다면 집행과로부터 노려질 만 한걸."
"민폐로군. 먼저 싸움을 걸어온 건 그쪽이었는데 말이야."
잡담하듯 평범하게 이야기를 하며 클레온이 움직인다.
검을 잡고 있던 손과는 다른 손을 움직여 마법을 준비는 듯 손을 쥐면.
리더격의 적의 뒤에 있던 마법사가 그런 클레온을 견제하기 위해 지팡이를 겨눈다.
하지만 다음 순간, 팔에 힘을 주자 근력의 차이를 견디지 못한 집행과의 검사는.
그대로뒤로 밀려나며 클레온에게 신경을 쏟던 검사를 피하지 못하고 몸을 부딪쳐 자세를 무너트린다.
"블레이징 체인."
조용한 목소리와 함께 천장과 바닥을 관통하는 불타는 사슬이 나타난다.
사슬은 마치 살아있는 뱀과 같이 움직이며 적을 향해 날아가.
검사의 몸을 둘둘 감아올리며 옥죄여 온다.
치익! 하는 소리가 나며 사슬이 닿은 부분에서 연기가 올라왔다.
"크으윽...!"
다음 순간, 남자의 몸이 빛났다고 생각하면.
"엣!? 크익...!?`
올라오는 것은 여성스러운 비명.
어느샌가 뒤쪽에 있던 여성 마법사와 위치가 뒤바뀌어
화염의 사슬에 의해 고통을 받는 것은 마법사 쪽이었다.
"마검사아아아아!"
그런 부하를 본 채도 안 하고
클레온에게 검을 휘둘러오는 검사.
느리다.
며칠 전의 아루루의 대전.
탈체크와 마지막으로 검을 겨룬 사투.
몸에 새겨진 싸움의 경험과 비교하면 이 싸움은 너무나도쉬웠다.
검사의 검이 클레온의 몸에 닿으려는 순간.
클레온의 검이 휘둘러진다.
붉은 검이 소리를 내지르며 `그 공간`을 베어내면.
검사는 부러진 검과 함께 땅바닥에 쓰러지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사슬의 열기가 자아내는 고통으로
입에 거품을 물며 여성 마법사가 쓰러진다.
4명의 습격자가 쓰러지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2분이 채 되지 않았다.
"이전의 습격은 내가 혼자 있었다지만.이번에는 검술과의 수석이 있는데 대체 무슨 생각이지?"
"상대가 맨손에 움직이기 힘든 정장이라면 승산이 있었다고 생각했나 보지."
아루루는 그렇게 말하며 클레온에게 다가가, 그의 조금 흐트러진 넥타이를 고정한다.
"...크흠."
그 모습을 보며 퍼시스가 헛기침하자, 아루루와 클레온은 동시에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이 아비에게도 설명해 줄 수 있겠지?"
"보시다시피, 지금 아카데미는 집행과라는 녀석들이 날뛰고 있습니다. 조직이 내분해서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말썽을 부리고 있죠."
"그리고 그 녀석들이 노리는 게,지금 네 옆에 있는 그놈이라는 거군."
퍼시스는 게슴츠레 클레온을 바라본다.
그의 눈에는 아까와 같은 분노는 꽤 사그라들어 있었다.
대신, 어딘가 그리운 것을 보는 듯한 눈이었다.
"그 검. 네가 왜 그 검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 그리고 그 검술은..."
퍼시스의 말에 클레온은 잠시 검을 내려다보다가 조용히 대답한다.
"스승에게서 물려받은 겁니다. 검도, 검술도."
"탈체크의 제자란 건가…. 네가."
클레온은 그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지만.
퍼시스는 조용히 의자에 앉으며 이마에 손을 올렸다.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 사이에 소란을 듣고 찾아온 종업원이 습격자들을 보고 허둥지둥 경비를 데리러 가는 것이었다.
"오랜 친구의 후계자가 있다는 사실이 기쁘지 않으신가요?"
"... ..."
아루루가 웃으면서 퍼시스에게 말하면
퍼시스는쓴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왕국의 영웅, 검성 탈체크의 제자가 제국의 후예인 흑마의 일족이라는 것은…. 예상 밖이다."
감정의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듯 아루루에게 이야기한다.
"...네가 원한다면 그와의 교제를 허락하마."
나지막이 딸의 고집을 이길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
클레온은 별로 그럴 생각은 없다는 말을 괜히 꺼내지 않고 조용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그리고 아루루는 잠시 눈을 두세 번 깜빡이다가.
웃으면서 말했다.
"싫어요."
"...뭣."
그 반응은 퍼시스로서는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방금까지 그녀 자신이주장하던 것과는 정반대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아버님께서 클레온씨를 인정한 건. 그가 `검성 탈체크`의 제자이며 후계자이기 때문이죠."
"... ..."
"만약 그를 사위로 얻으시면 영웅의 공백을 채울 수 있을 거로 생각하셨나요?"
아루루의 말에 퍼시스는 조용히 고개를 떨어트렸다.
"아버님은 더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희생시켜 오셨죠. 가문을 위해 저의 의지를. 왕국을 위해 자기 자신을."
아루루는 웃으면서 의자에 앉는다.
그 눈에는 자신의 아버지조차 꿰뚫어 볼 것만 같은 날카로운 빛이 있었다.
"하지만 모름지기 용사라는 것은. 그런 것을 천칭 위에 걸지 않고 양쪽 모두를 구하려고 하는 존재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 존경해 마다하지 않은 용사 퍼시스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요."
그 목소리에는 연민조차깃들어 있었다.
용사가 아닌 왕국의 신하로서, 조국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었다.
하루하루 머리가 새어가고, 주름이 많아지고.
"저는 용사로서 살겠습니다. 강요당한 천칭을 부수고 어느 쪽도 버리지 않는 용사로서."
그렇게 말하며 아루루가 클레온에게 팔짱을 껴오면.
퍼시스는 충격을 받은 듯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어머님이 사고를 당하셨으면 어머님 옆에 계주세요."
"크, 크윽..."
아루루의 마무리에, 할 말이 없다는 듯 퍼시스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을 흑마의 일족이라고 차별한 퍼시스의 그런 모습을 보며.
클레온은 약간의 통쾌함을 느끼는 것이었다.
001
결국, 제대로된 식사는 하지 못한 채 퍼시스는 어깨를 떨구고 마차를 타 아카데미로 떠났다.
결과는 아루루의 완전 승리였다.
멀어져가는 마차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루루는 뒷짐을 진 채 미소를 띠고 있었다.
승리자의 여유와 어딘가 개운한 듯한 얼굴이었다.
"이게 목적이었군."
클레온은 조용히 그런 아루루의 옆에서 말했다.
아루루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클레온 쪽을 본다.
"이용한 것 같아서 미안해. 하지만 아버님은 한 번쯤 따끔하게 혼나야 했거든."
"아니, 괜찮다. 원래 거래 같은 거였으니."
클레온은 고개를 저었다.
아루루는 그런 클레온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마차 쪽.
아니, 어쩌면 고향인 왕국 수도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버님은 말이야. 사실 승마랑 낚시가 취미이셔. 아카데미에 오기 전, 몇번이고 데리고 가 주신 적이 있어."
그리운 것을 떠올리는 듯, 아루루의 시선이 먼 곳을 향해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방위 대신의 자리를 물려받으면서왕성에 며칠씩이나 머물며 업무에 매달리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지."
그야말로 몸과 수명을 깎아내는 듯한 격무의 연속.
어린 아루루의 눈에도 날로 여위어 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뭐. 몇 년이나 걸렸지만 겨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던 느낌이야. 고마워, 클레온 씨."
"...그런가."
어느 아버지들도, 너무 솔직하지 못한 게 탈이다.
퍼시스와는 정반대이면서도 닮은 자신의 스승을 떠올리며,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약속대로 `석건`의 사용에 대한 동의는 맡겨 줘. 아무리 나라도 다른 과의 수석을 설득하는 건 힘들지만."
"...그것도 그렇지만 묻고 싶은 게 있다. 집행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건가?"
이전의 습격은 밤 중이었지만.
이번에는 시내에서 한낮에 그것도 타인이 있는 앞에서 덤벼들었다.
앞으로 이런 일이 계속된다고 하면 자신의 동료들에게도 위험이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한 클레온은.
`마안 술사`의 본명을 알고 있던 아루루가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
아루루는 그런 클레온을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입을 연다.
"아카데미의 수석들을 중심으로, 아카데미 치안에 중대한 악영향을 끼치고, 아카데미의 이념에 위반하는 `집행과의 축출`이 예정되어 있어. 나도 그 일환으로 조사에 참여해서 알고 있는 거야."
"집행과의…. 축출? 수석들이라고? 라일라는 그런 말 안 했는데."
아루루는그 말에 `아-`하고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 회의라는 게 수석들 사교회에서 진행되고 있거든."
"... ... 다른 학과의 학생들이 라일라를 싫어하는 건 알겠지만. 다음에는 좀 데리고 가 줘. 그녀도 이전과는 좀 달라졌으니까."
마치 자식의 교우관계를 부탁하는 듯한 마음으로 클레온이 아루루에게 고개를 숙인다.
"응…. 그렇게 할게."
아루루도 볼을 긁적이며 멋쩍게 웃어 보인다.
어찌 되었든 클레온은 최대한 그녀로부터 정보를 캐내려는 듯 말을 이어간다.
"집행과는 차석의 부재가 원인으로 내분이일어났다고 들었다."
"아아. 응. 집행과에서 나온 학생의 증언으로는 둘은 자매이면서도 엄청나게 사이가 안 좋았다나 봐. 수석과 차석이 서로를견제하고 과 내부도 그에 따라 편이 갈려 있었다는 것 같아."
언제 슬쩍한 것일까.
아루루가 손에 `천칭`의 배지를 만지작거리면서이야기한다.
"...그리고 차석이사라지면서, 그녀를 따르던 학생들이 제어 불가가 되었다. 이건가."
"맞아. 그러니까 클레온을 습격하는 건 아마 `차석파`의 집행과일 거야."
클레온의 말에 아루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제 휴트러스인가.
죽이기 직전까지 이름을 몰랐던 여자였다.
"...문제가 있다면 원인을 끊는 게 맞겠지. 시간이 되면 나도 `집행과의 축출`에 협력하지."
"그래 주면 우리야 고맙지만…. 아니, 그게 클레온 씨의 결정이라면."
아루루는 작게 웃어 보이며 클레온에게 손을 내밀었다.
클레온은 잠시 그 손을 내려다보다가-
"...이번에는 끌어당기려는 거 아니겠지?"
"응? 아하하! 그래도 되는데, 시험해 볼래?"
장난스럽게 웃는 그녀의 미소를 보며 손을 마주 잡고 악수를 한다.
살짝 그녀의 쪽으로 팔이 끌려갈 뻔하지만.
이번에는 클레온이 힘을 주고 견디는 것이었다.
002
`이대로헤어져도 되지만. 기왕의 휴일인데 친목을 다지기 위해 조금 어울려 줘.`
라고 말한 아루루에 의해, 그녀의 손에 이끌려 자유시장에 도착한 클레온.
상업과에 의해 운영되는 학생자치의 상업구로, 그들이 다른 과와 연계하여 운영하는 각종 가게로 인해.
학생, 친족, 관광객, 교사들로 북적북적한 곳이었다.
사람이 많은 곳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 클레온으로서는 조금 꺼려지는 곳이었지만.
옆에서 눈을 빛내며 서 있는 아루루의 표정을 보면 돌아가고싶다는 말은 목구멍을 통과하지 못한다.
"어째서 그렇게 신난 거야?"
"평소에는 세실과 오는 게 보통이거든. 클레온 씨 같이 이성이랑 오는 건 처음이야."
"세실…. 아아, 그 범생이 안경."
클레온의 말에 아루루는 볼을 부풀리며 그를 올려본다.
"세실은 소중한 내 친구야. 클레온씨."
"...미안."
솔직히 틱틱대는 첫인상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그런 것을 내보이는 것은 아루루에게 있어서도실례일 것이다.
"거기에 세실은 범생이처럼 생겼지만, 사실은 꽤 뇌근육이야."
아루루가 제일 세실에게 실례였다.
"어쨌든 돌아보자! 세실이 옆에 있으면 기껏 자유 시장에 왔는데 자유롭게 돌아보지 못했거든!"
"어, 어이. 진정해."
클레온과 팔짱을 낀 채, 흥분하여 박자가 빨라진 발걸음을 밟으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아루루.
키는 자신보다 살짝 작은 정도인데도, 언제나 눈을 반짝이고.
호기심이 향하는 곳마다 시선을 돌려본다.
그녀와 처음 만난, 도구함에서의 첫인상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검을 마주하고.
그녀를 확인하고.
서로를 인식하여.
겨우, 사람은 이해의 영역에 도달한다.
퍼시스 트로메이아는 국방대신이라는 지위에서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왔다.
아루루는 그것을 기우하여 그에게 조금이라도 자신의 걱정을 전했다.
하지만, 아루루 역시.
검술과의 수석. 용사 가문의 일족. 공작가의 아가씨.
짊어지고 있는 직함에 어울리는 인간으로서 행동하려고
무의식적으로 진짜 자신을 억눌렀던 것은 아닐까.
"클레온 씨!이거 봐봐! 고양이 인형이야!"
조금 퉁퉁하게 못생긴, 목에 방울이 달린 커다란 고양이 인형이 신기하다는 듯 손에 들고 웃어 보이는 그녀.
살짝 헐거워진 가면의 밑의 모습은.
19이라는 나이에 걸맞은 천진난만한 소녀의 것이었다.
결국, 클레온의 지갑에서 인형의 값이 빠져나간다.
"내가 사도 됐는데."
아루루가 조금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손에 든 인형에 얼굴을 묻으면.
클레온은 괜찮다고 대답한다.
`생각보다는 비쌌지만.`
가계부를 담당하는 쿠온에게는 조금 미안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며.
두 사람이 길을 걷다 보면….
"음? 클레온 강사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그곳에는, 양손 가득 짐을 들고 있는 데미스.
비교적 빈손인 파이즈리 쌍둥이 자매.
...그리고 처음 보는 푸른 머리의 청초한 여성이 서 있었다.
푸른색 머리는 가지런히 뒤로 넘기고, 그 머리와 잘 어울리는 하늘색의 눈.
안경을 끼고 있어서인지, 지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어른스러우면서도 청초한 여성이었다.
빼어난 미모가 조금 아깝게 느껴질 정도로 몸의 라인이 잘 드러나지 않는 수수한 옷이었지만.
입가에 걸린 은은한 미소가, 그녀의 매력을 끌어내고 있었다.
"역시 강사님이셨군요. 음, 옆에 계신 분은 아루루님 아니십니까."
데미스는 클레온에게반갑게 인사를 한 뒤 그의 옆에 서 있는 아루루를 보며 귀족식의 예법으로 인사해 왔다.
"레일의 친구셨죠. 데미스님이셨나요?"
"기억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클레온 강사님과 데이트 중이셨나요?"
재치 있는 농담을 해 오는 남자 데미스.
그러고 보니, 금발 벽안이 취향이라고 했는데.
잠시 클레온과 데미스와 눈이 마주친다.
`걱정 마세요 강사님. 저는 물론 금발 벽안이 취향이지만 `연인 뺏기`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같은 의지가 그의 눈에서 전해져왔다.
`참고로 `연인 뺏기`를 목격하면 전신에서 두드러기가 솟아올라 죽습니다.`
어떻게 된 몸이냐.
"뭐!? 클레온님이 검술과의 수석과 데이트!?"
"거짓말!가슴은 내 쪽이 더 큰데 어째서!?"
옆에서 떠들썩한 쌍둥이는 무시하고.
"잠깐! 방치 플레이는 취향이지만 그저 무시하시는 건 섭섭하다고요!"
"맞아요! 이렇게 만난 것도 무언가의 연. 오늘에야말로 저희 쌍둥이으읍!?"
클레온에게 자랑의 가슴을 들이대 오며 소리를 울리는 쌍둥이들.
하지만 그런 쌍둥이 중 여동생 쪽의 입을틀어막는 것은
처음 보는 청초한 인상의 여성이었다.
"강사님의 데이트 중에 무슨 짓이니. 파이루, 루즈리."
이름.
"수업 밖에서 뵙는 건 처음이네요. 클레온 강사님."
그리고 가볍게 웃어 보이며 클레온에게 인사해 오는 그녀를 보며 클레온은 눈을 가늘게 떴다.
수업의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은, 그녀도성학과의 일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떠올려도 매치 되는 학생이 없어 고민하고있으면.
"클레온강사님. 이쪽은 제 누님인 `리오메스`입니다."
"... 뭣."
눈앞에 있는 이 청초한 여성이…?
가련하고 성행위의 `ㅅ`자도 모를 것 같은 그녀가….
"아카데미 탑클래스 빗치...?"
"어머, 부끄럽네요."
정말로 부끄럽다는 듯이 살짝 몸을 돌리며 입가를 가리는 그녀가.
평소에 수업 중에 `멍멍` `왈왈` 밖에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클레온은.
인지 부조화가 일어나 잠시 그곳에 멈췄다.
"음? 인상이 좋지 않군요. 강사님. 조금 쉬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데미스는 클레온의 변화를 보며 심각한 표정이 된다.
아루루 역시 갑작스럽게 처리능력이 오버플로 하여 멈춰 선 클레온을 걱정하는 듯 바라보았다.
"쉬실 거라면, 이 앞쪽- 자유 시장 R지구의 입구 부근에 있는 작은 `성` 같은 건물이 최적입니다."
데미스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가리킨다.
자유 시장을 N지구와 R지구로나누는 관문의 옆.
확실히, 커다란 저택 크기이지만 제대로 `성` 같은 외견을 한 건물이 있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데미스님."
아루루는 작게 데미스에게 인사를 하더니 조용히 클레온을 데리고 그곳으로 향한다.
데미스는 그런 두 사람의 뒤를 보며 코를 `쓰윽` 하고 닦는 것이었다.
"아~아~ 아루루님 좋겠다! 강사님이랑 저기서 쉰다니~"
파이루(언니)가 그렇게 말하면 루즈리(동생)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데미스도 기특하구나. 역시 내 동생이야."
"무엇을, 누님에게 여러모로 가르침을 받은 덕분이지."
훈훈한 남매애가엿보이는 순간이었다.
003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클레온이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이미 아루루와 함께 방 안에 들어와 있었다.
보라와 핑크색 기조의 벽지와 바닥.
그리고 방의 가운데에는 두 사람이 눕기에는 너무나도 커다란 침대.
겉보기에는 아무런 문제 없이 조금 튀는 색조의 방이지만.
모험가로서 일하다 보면, 이러한 숙소에 관한 지식은 싫더라도 배우게 된다.
커다란 도시라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있는 곳.
"오오. 클레온 씨. 이거 봐. 이 마력 등, 이 버튼으로 막 불빛이 바뀌어. 이쪽은 샤워실인가? 그런데 바깥에서 안 쪽이 보이는데. 결함인가...?"
그런 이곳이 마냥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돌아다니며 확인하는 그녀.
"저기,아루루. 나는 이제 괜찮으니까."
"응?"
클레온의 말에 아루루는 그쪽을 돌아보았다.
눈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지만, 상황은 파악하지 못한 듯했다.
"그러니까 이곳은……. 그, 어른들의 숙소라고 해야 할까. 그저 조금 쉬고 가는휴게소가 아니라고 해야 하나."
클레온의 말에 아루루는 잠시 멈췄다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고는 조용하고 가뿐한 발걸음으로 클레온에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침대 위에 앉아있던 클레온의 어깨를 꾸욱 누르며 그의 몸에 체중을 올리는 그녀의 표정은.
이전, 검을 부딪친 뒤 흥분했을 때의 야성적인 그녀였다.
"알고 있어. 클레온 씨. 그럴 목적으로 온 거니까."
그렇게 말하며 드레스의 왼쪽 어깨를 내리기 시작하는 아루루.
클레온은 당황한 듯 그녀에게 무언가 말하려 하지만.
아루루의 손가락이 그의 입에 닿았다.
"설마, 여기까지 와서 도망치지 않겠지?"
속삭이듯 도발해오는 아루루의 말에 클레온은 잠시움직임을 멈춘다.
"이번엔 어떤 춤을 출까?"
"정말이지, 이 말괄량이가…!"
클레온이 눈앞의 암컷에게 상하관계를 알려줄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