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3화 〉수석 (63/72)



〈 63화 〉수석

"오늘의 실습실 개방은 여기까지입니다. 실습실의 정리 후, 도구를 깨끗이 정리한 뒤에 재빠르게 기숙사로 돌아가 주세요."

마법을 사용하여 증폭된 목소리가 실습실 전체에 울렸다.

들고 있던 활을 아래로 내리며 조용히머리를 뒤로 넘긴다.



정면에 있는 110m 떨어진 과녁을 바라보면

 가운데의 붉은 곳에 화살이 수십 개나 틀어박혀 있다.

개중에는 먼저 박혀있는 화살을 뒤에서부터 찢으며 들어간 것들도 보였다.



"훗…."

제국과의 전쟁에서 저격수로 활약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사격술의 재능.

올라리온 가문의 장남으로서 `궁술과`의 다른 학생들에게는 모범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였다.

이 트레이스 올라리온에게 빈틈 따윈 없다.


"우와~! 사샤 굉장해! 200m나멀리 있는 과녁의 한가운데에 전부 맞췄어!"

옆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곳을 돌아보면, 3명 정도의 여자들이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중앙에 서 있는 것은 짐승의 귀와 꼬리가 달린, 주황색의 머리를  소녀.

사나시아 루펜볼프.

몸은 가련하면서도, 사냥꾼으로서 필요한 부분은 확실하게 단련되어있는 소녀였다.

무엇보다 사람의 귀와 짐승의 귀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그녀의 특징으로.

첫날의 자기소개에서 들었던 것을 떠올리면 `무언가의 저주`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이라 한다.



처음에 봤을 때는 그냥 조금 귀여운 여자아이라는 인상이었지만.

눈에 떠오른 특수한 각인의 힘 덕분인지, 궁술의 실력은 일반 학생들보다 탁월했다.

무엇보다도 타인들보다 감각이 민감한 것인지, 작은 소리나 위화감에도 재빨리 깨닫는다.


"음…?"

봐라. 지금도 나의 시선을 느끼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물론 나는 전통 있는 가문의 장남으로서 쉽게 여성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절대로 긴장해서라던지, 가슴이 두근거려서가 아니다.


들은 바에 따르면, 특수 혈족의 일원으로 어린 시절에는 불우한 환경을 보냈다던가.

흥. 그런 것에 마음이 흔들릴 이 몸은 아니지만.

가혹한 운명의 소녀에게 일말의 동점을 느낄 정도의 자비심은 가지고 있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마음가짐이다.



하지만 절대로 이쪽에서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

그것이 나이 50에 사랑을 성취한 아버지의 조언.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성(사냥감)은 가만히 있어도 자신에게 다가온다.

그것이 사냥의 전문가가 지녀야 자세이다.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기분 좋게 꼬리를 흔드는 그녀가 혹시라도.

이 몸의 자비로운 마음에 깨닫게 되어.

자신에게 다가와 준다면, 그것을 받아들일준비는 되어있다.

"후후후... 아하하하... 하하하하하하!!!"

그 날을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져서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주변의 수군거리는 소리는 신경 쓰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의 사냥은이미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아! 클레온 씨!"

그런 와중, 그녀의 목소리가 실습장의 안을 울린다.

돌아보면그곳에는 흑발의 남성이 그녀에게 가까이가 친한 척을 하는 것이 보인다.

하지만, 사나시아는 귀를 쫑긋 새운 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그의 손을 붙잡는다.

마치 본가에서 나를 늘 반갑게 맞아주는 애견 `올토르스`와 같았다.

저렇게 환하게 웃는 얼굴, 이 몸은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옆에 있는 같은 과의 남학생의 팔을 붙잡았다.

"어이! 스팽킹! 저 남자는 대체 누구냐!"

"...나의 이름은 슈베르트다. 응…? 아아 클레온 씨인가."

스팽킹은 클레온이라는 남자의 모습을 보며 익숙하다는 듯이 이름을 꺼냈다.


"클레온…?"

"아. 트레이스는 늘 수업이 끝나면 바로 돌아가니까 모르겠지만. 클레온씨는 사나시아가 늦게까지 남아있으면 늘 마중을 온다고."

그렇다는 것은 클레온이라는 남자는 사나시아의 보호자인 것인가.

괜한 긴장을 했군, 라이벌이 나타났다고 착각해버리지 않았나.


"클레온이라는 남자도 아카데미의 학생인 건가?"

"아니? 다른 과의 임시강사라고 들었어. 성학과였나…?"

"서, 성학과!? 그 개변태들만 모인다고 하는 파렴치한 학과 아닌가!"

그것은 큰일이다.



성학과의 강사씩이나 되는 남자에게 보호를 받는다니.

언제 그의 절호의 먹잇감이 정절을 잃게 될지 모른다.

"그것보다. 빨리 실습실을 정리하지 않으면 벌점이라고."

뒤쪽에서 떠드는 스팽킹의 말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저 나의 눈은 똑바로 `클레온`이라는 파렴치한 인간에게 고정되어 있을뿐이었다.

001

밤낮을 가리지 않고 각종 교육과 연구가 진행되는 아카데미에도.

해가 지고 땅거미가 지면 어두운 밤이 내려온다.

길가에 켜져 있는 마력 등의 불빛이 주변을 비추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숙소까지 가는 길은 길고 쓸쓸한 차가운 밤바람이 불어.

혼자라면 발걸음을 빠르게 하여 단걸음에 숙소까지 뛰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옆에 클레온이 있어 준다면.

사샤는 한껏 기분 좋은 콧노래를 부르며, 그의 옆을 느릿하게 걷더라도.

고독을 부르는 어둠 속에서 쓸쓸함을 벗어던지며.

밝은 기분으로 귀갓길을 나아갈  있었다.

"아까 그 두 사람은 자주 보는 얼굴인걸."

클레온의 말에 사샤가 그를 돌아보면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네!  사람 모두 정말 친절해요!"

그런그녀를 보면서 클레온 역시 입가에 미소가 만들어졌다.



폐쇄된 부족의 일원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강한 아이를 낳기 위한 모체로서의 삶을 강요당한 소녀.

그런 운명을 거부하고 부족에서 달아나 어떤 인연에서인가, 클레온과 닿았다.

그 만남은 그녀에게 주어진 미래를 크게 비틀어-.

이윽고 족쇄처럼 달라붙는 과거와의 인연을 자신의 힘으로 끊어버렸다.

하지만 도시에서의 삶은 그렇게 풍족하다고는 할  없었다.

아니, 오히려 클레온과 함께 지내게 된 것으로 도시에서 머무는 것보다도

숲 속의 저택에서 숨어 사는 것과 마찬가지인 시간을 보냈다.

라일라나 쿠온, 루티와 함께 지내는 것 역시 즐거웠겠지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저 자유롭게. 친구를 사귀고, 새로운 것을 배우며.

가족과도 같은 동료들이 있는집으로 콧노래와 함께 돌아갈 수 있는 일상.



사샤에게 필요했던 것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클레온은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과 안심을 동시에 가졌다.

물론 알베인의 파티에 그대로 남아 그와 모험을 했다고 하면.

언젠가는 그의 폭주 때문에 큰 상처를 입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녀가 조금 부자유스러운 경험을 했던 것에는 분명.

클레온의 책임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그 책임을 덜어내 그녀의 미소를 볼 수 있다면.

아카데미에  것은 정답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귀와 꼬리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군."

클레온의 말에 사샤는 자신의 머리 위에 돋아난 여우의 것과 같은 뾰족한 삼각형의동물 귀와.

허리에서 자라난 복슬복슬한 감촉의 꼬리를 움직인다.


감각도 있고, 의지로 움직일 수도 있다.

귀는 사람의 귀보다도 훨씬 많은 것을 들을 수 있었고.

꼬리는 제 3의 손처럼 움직이며 가벼운 물건부터 조금 무거운 물건까지.

필요하다면 교실로 향할  가방을 드는 것도 가능할 정도의 힘이 있었다.

편리하다면 편리했지만.

역시, 이런 것들이 없는 채로 살아온 그녀에게 있어서는 조금 신기한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이것들이 만들어진 원인이 최대의 걱정거리였다.

혈족 능력인 `사냥꾼의 각인`의 침식.

라일라가 만들어준 특수한 렌즈를 사용하는 것으로 각인이 평소에도 떠오르는 것을다른 사람에게는 감추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외견상으로만 그런 것일 뿐.

렌즈를 벗기면,  안에는 확연한 빛을 내는 그녀의 저주가 확실하게 보인다.


그날, 짐승으로 떨어진 동족을 묻기 위하여 각인의 힘을 사용했을 때.

본래라면 그녀 역시 각인에 침식되어.

이성을 잃은 채 한 마리의 야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째서 그녀는  도중에서 멈춘 채, 어중간한 형태가 되었는가.

그 이유는 그녀 자신도, 해박한 라일라도 알 수 없었다.

몸에 생겨난 동물적인 기관들도 실체는 있지만.

실상은 갈라테아의 몸처럼 `마력`으로 이루어진 덩어리에 가까웠다.

지금 상황에서 그녀에게 불안이 있다고 한다면.

언제 다시 각인의 침식이 진행되어.

몸 전체가 바뀌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상황.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아카데미가 가지고 있는 지식의 힘은 필요했다.



"괜찮아요!라일라씨가주신 렌즈랑 쿠온씨가 주신 부적이 있고…. 무엇보다 클레온씨가 곁에 있어 주시니까요!"

사샤는 그런 불안을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 밝게 웃어 보인다.

이 태양과도 같은 소녀의 미소만큼은 지켜내고 싶다고.

클레온은 조용히 생각하는 것이었다.



"라일라 씨의 기숙사가 특급이어서 다행이네요! 공방이 딸린 저택을 기숙사로 제공한다니. 아카데미는 굉장해요!"

주제를 돌리려는 듯, 사샤는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했다.

아카데미에도 학생의 활약에 따라 차등적인 기숙사가 제공되었는데.

라일라와 같은 거대학과의 수석 정도가 되면.

아카데미 내부에 있는저택을 통째로 하나.

그녀에게 숙소로써 제공하고 있었다.

본래 수석의 위치에는 귀족 자제들이 많으므로  보조를 하는 사용인들이 함께 머물 수 있도록 하는 배려이지만.

라일라는 사용인도 없이 넓은 저택에서 혼자 연구를 하며 아카데미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 덕분일까, 집 전체가 라일라가 도시나 고르티안 저택에서 머물렀을  그녀가 사용하던 방과 같은 상태였기에.

도착하자마자 쿠온이 잔소리 모드가 되어 집 전체를 청소하여 어떻게든 머물 수 있을 정도로 깨끗이 했을 때는.

분명 아침에 도착했을 터인데 해가 훌쩍 넘어가 이미 밤하늘로 변한 상황이었다.



어찌 됐든.

네 사람에 더하여 갈라테아까지 총 다섯 명이 지내기에는 충분한 넓이였고.

라일라도 자신의 집처럼 여기라고 하면서 그들에게 방을 할당하였기에.

일행이 따로 떨어져서 지내는 일은 없었다.


"나는 클레온과 단둘이 지내더라도 상관없는데~"

라고 말하며 일행의 화목한 분위기를 흐리는 마검이 있었지만.

""안 돼(요)!""

쿠온과 사샤의 반대로 인해 무사히 클레온에게도 방이 주어졌다.

그렇게 하여.

장소도 형태도 조금은 달라졌지만.

지금도 모두가 안심하고 함께 지낼 수 있는 보금자리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002



"어때? 큐브의 해석은."

쿠온이 만들어준 식사가 끝나고, 라일라의 방을 찾은 클레온.

라일라는 자신의 방에 있는 책상 앞에 앉아 여러 가지 마도구를 늘어놓은 채.

메모리아 큐브를 살피며 신음을 내고 있었다.


"공방에 있는 대형 설비부터, 일반인은 만질  없는 특수 해석도구까지. 전부 사용했지만 만만치 않네, 역시."

라일라는 외안경을 벗으며 한숨을 내쉰다.

그녀가 아카데미로 돌아온 첫날에 상자 한 가득으로 챙겨온 각종 시대의 분석용 마도구들 모두가.

메모리아 큐브를 해석하는 데에 실패한 것은 꽤 뼈아픈 결과였다.

"메모리아 큐브는 담고 있는 정보량이 높을수록  해석이 힘들어져."

"그렇다고 들었어."

클레온이 끄덕이자 라일라는 이어서 큐브에 대해 설명을 한다.

"제조된 시대를 생각하면 꽤 구식의 큐브야. 해석도구도 그에 맞춘 고대의 물건일 필요가 있는데…."

"구할 수 있는 건가?"

라일라는 잠시 침묵했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구할 수는 없어. 존재는 하지만."

"무슨 의미지?`

라일라는 잠시 방에 있는 커튼을 바라보다가, 그것을 젖힌다.

달빛이 쏟아지는 밤 속에, 그림자 진  솟아오른 거대한 종탑이 이곳에서도 눈에 들어왔다.


아카데미의중앙에 있는 거대한 시계 종탑.

`아이온의 탑`

일반적으로는 아카데미 전체에 수업 시작과 종료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고 알려졌지만.

일부의 학생이나 교사진들에게는  종탑의 진정한 가치가 전해져 있었다.


지하의 고대 유물 보관소…. `뷔토스의 창고`로 이어지는 입구.

그것이 바로 아이온의 탑의 진정한 존재의의이다.



"뷔토스의 창고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는 수석의 권한으로도 괜찮아. 나도 몇 번 들어가 봤고."

라일라는 한쪽눈을 감으며 그곳에서 보았던 수많은 고대 유물들의 기억을 떠올린다.

어느 지역에서 신이라 추앙받았던 거대한 골렘.

기후를 지배할 있다고 전해지는 기계.

사자를 되살릴 정도의 힘을 가졌지만, 위험한 생물을 불러들인다고 알려진 금지된 마도서.

하나하나가 현대의 기술로는 복원도 재현도  수 없는 물건들뿐이며.

지금의 그녀에게는 이해도, 사용도 할 수 없는 물건들이었다.

하지만단 하나.

그녀에게도 관심이 있는 물건이 있다고 한다면.



`트리스 메기스토스의 석건(石鍵)`

끊어지지 않는 밧줄에 걸려 있는 돌로  열쇠인 그것은.

현대인들도 사용할  있는 몇 안 되는 고대의 마도구로 세상에서 단 하나.

뷔토스의 창고 내에만 존재하는 물건이었다.


그 능력은 `어떤 마도구라도 해석할 수 있는 궁극의 해석능력`.

정확히는 `닫혀있다`라는 개념을 강제로 열어젖히는 힘을 가진 물건으로.

메모리아 큐브와 같이 안에 방대한 정보를 가진 채 닫혀 있는 유물들에는

최후의 수단으로써 사용되는 물건이다.

다만- 석건은 사용할수록 그 힘을 잃는다.

그렇기에 사리사욕으로 사용되는 것은 금지되고.

메모리아 큐브보다도 중요한 유물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기에.

그런 사적인 용도로는 석건에 손을 댈 수 없었다.

여기까지 설명을 들은 클레온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런 설명을 한다는 것은 그걸 사용할 방법이있다는 것이겠지?"

"물론이야. 쉽지는 않지만."


라일라는 한숨을 내쉬며 커튼을 닫고 다시 자신의 의자에 앉았다.

"이 학교는 꽤 학생 중심적이어서. 수석 정도가 되면 웬만한학과의 교수들보다도 큰 권한을 가져."

"그런 것 같더군."

물론 그렇지 않은 학과도 분명히 존재한다.



특히, 학과장과 레즈 플레이 파트너인 성학과의 수석은.

수업시간에도 자신의 목에 `학과장의 암캐`라는 명찰을 떼어놓지 않는다.

두통이 심해져서 정신이 나갈 것 같았지만 이제 익숙해졌다.

"뷔토스의 창고에 있는 유물 중에서도 학생이 원한다면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그중 하나가 `석건`이야."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오른손을 들어 보이더니 다섯 손가락을 전부 펴 보였다.

"하지만 혼자서는  돼. 다섯 학과의 수석의 동의가 있어야만 석건의 사용 허가가 내려와."

클레온은 그 이야기를 듣고 눈가에 약간의 주름이 생겼다.


아카데미에 존재하는 21개의 학과.

그중에서 고작 다섯 명- 라일라를 제외하면 네 명의 협력을 받는 것이 어려운 일일까 생각하지만.

마법 학과는 아카데미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래된 과.

덕분에 다른 과들로부터 받는 견제도 큰 편이었다.

그리고 수석들은 대부분이 귀족 가문의 출신들.

기본적으로 평민을 깔보는 태도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았기에.

시골 평민 자제 출신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들도 있었다.

거기에 더해, 클레온과 만나기 전 라일라의 거만한 태도는.

다른 학생들에게도 좋지 않은 인상을 새겨두었던 터라.

라일라 플레임워치가 협력을 바란다는 것만으로도 고개를 저을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으으…. 미안."

거기까지 설명을 마치면 라일라는 풀이 죽은 듯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평소의 행실이 좋았더라면.

곧바로 다른 수석들의 동의를 받아 석건을 사용할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은 모두자신의 업보라고 느끼는 라일라였다.



클레온은 잠시 그런 라일라를 보다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물론 타인에게 차갑게 굴고, 그들을 깔보던 그녀의 과거를 좋다고 여기는 것은 아니었지만.

메모리아 큐브는 어디까지 자신 개인의 문제.

그 안의 내용을 보려는 것은 클레온 자신의욕망이었다.

"괜찮아. 수석들의 동의에 관해선…. 조금씩 대책을 생각해보자. 사샤와 갈라테아의 문제도 있으니까."

"응. 하지만 먼저 사과해둘게. 나, 여전히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는 인간적인 평가는 그렇게 높지 않아."

"그건…. 그렇지만도 않은  같던데."

라일라의 말에 클레온은 낮에 만났던 검술과의 수석-.

아루루 트로메이아의 얼굴을 떠올렸다.

적어도 그녀라면, 라일라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하고 있었다.

물론 그런 감정 하나로 수석으로서의 동의를 해줄지는 확정할 수 없었지만.

그녀에게는 어딘가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느끼는 클레온이었다.


아마, 그녀 본인이 아무것도 숨기지 않는 정직한 인간이라는 것을.

짧은 대화에서도 느꼈기 때문이겠지.


다만, 다른 여성을 떠올리는 듯한 클레온의 표정에 라일라가 조금 불만인 듯.

"누굴 생각하고 있는 거야?"

하고 볼멘소리를 낸다.

"아니. 너도 친구를 사귈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런 클레온의 대답에 라일라는 눈을 크게 뜨며 소리를 높였다.

"아카데미는 친구를 사귀는 곳이 아니거든요! 딸의 교우 관계를 걱정하는 중년 아버지냐! 너는!"

버럭 화를 내는 라일라를 진정시키며 클레온은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

그럼, 라일라는 그런 클레온의 표정 변화를 보고 소리를 울렸다.

고르티안 저택에서 지내는 동안은 되도록 자신에게는 미소를 보이지 않으려 하던 클레온이.

지금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앞에서도 웃어 보인다.

그런 사실이 새삼스럽게 가슴의 한편에 따뜻한 기분을 불러와.

라일라는 잠시 클레온의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클레온에게서 떨어지며 조용히 몸을 돌린다.

"뭐, 뭐어. 가식이라도 내숭이라도떨어서 다른 수석들의 동의를 구해볼게. 치, 친구가 되려는  아니지만 말이야."

훌륭할정도로 모범적인 틱틱거림이었다.

클레온은 그런 라일라를 보며 입을 연다.



"그래. 나도 다른 성학과의 수석한테  번 이야기는 해보지."

"성학과의 수석…. 뭘까. 한 번도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칭호만 들어도 등골에 소름이 돋아."

"... ..."

라일라는 몸을 부르르 떨며 조심히 클레온을 돌아보았다.



"아카데미에서 제일 변태들이 모이는 과에서 제일 뛰어난 학생이라는 거잖아? 그 말은 즉…."

한 박자, 숨을 들이쉬었다가눈을 크게 뜨며 클레온에게 이야기한다.

"학원최상위변태[아카데미 탑클래스 빗치]"

아카데미 탑클래스 빗치.

듣기만 하더라도 무서운 이름이다.

물론 클레온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지만.

과연, 그 칭호에 어울리는 학생이었다.

"어, 어쨌든! 큐브의 해석을 위해서라도 서로 힘내자. 내일도 아침의 바, 발기력 검사 때문에 일찍 가야 한다며?"

"젠장…. 잊고 있었는데."

클레온은 금세 침울한 얼굴이 되며 라일라의 방을 나선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잠시 한숨을 내쉬는 라일라.

그리고 책상 위에 엎어져 있던 액자를 슬쩍 들어 보인다.



"친구…. 인가."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과분한 이야기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쓴 차를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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