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화염
마력의 흐름은 빠르게 숲에서 도시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나무들이흔들리는 것이, 마치 살아서 움직이기 위한 준비 동작처럼 보인다.
절계수가 강림한 것으로 인해 세계가 변하고 있다면.
정말로 뿌리를 다리로 바꿔서 달려 나가는 나무들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네 사람은 작전을 정하고 각자의 위치로 향한다.
라일라는 루베라와 함께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기.
클레온은 성검으로 변한 이오나를 들고 절계수의 정면에 선다.
클레온은 그 압도적인 크기를 가진 적을 올려다보며, 조금 전의 일을 떠올린다.
"스크롤의 주문을 절계수의 몸에?"
라일라와 이오나가 제안한 방법은 조금 막무가내처럼 느껴졌다.
원래라면 양피지나 종이로 만들어야 하는 마법 스크롤의 대신.
절계수의 몸에 직접 주문을 써넣어서.
그것을 발동시키자는 것이 그들의 제안이다.
"가능한 건가? 그런 게."
"마력의 소모가 조금 비효율적이긴 하지만 이론상 불가능하지는 않아."
클레온의 질문에 라일라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전에 이 미개척 영역에 떨어졌을 때. 플랜트 골렘을 상대로도 시험해본 적이 있어요. 그때는 제 피를 썼었지만."
이오나의 말에 루베라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라일라는재빠르게 써야 하는 주문을 클레온에게 가르친다.
그 길이는 지금까지 들어왔던 라일라의 어떤 영창보다도 길고 처음 듣는 용어들로 가득했다.
"처음 듣는 마법인데."
"개발한 지 얼마 안 된 마법이야. 사실, 내 마력이 가득 찬 상태에서도 사용하지 못할 정도니까."
그 말에 클레온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라일라가 이전 자신에게 사용했던 성위마법은 5티어.
인간의 순수한 재능과 노력의 범위 안에서 도달할 수 있는 한계이다.
라일라 역시 마력을 전부 소모하고, 긴영창을 모두 외워야 겨우 사용할 수있는 마법.
그런 마법보다도 상위에 있다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인간은 사용할 수 없는 마법이라는 뜻이었다.
즉, 6티어 이상의 마법이라는 소리이다.
클레온의 그런 시선을 느낀 것인지 라일라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생각하는지 알겠는데. 별로 대단한 건 아니야. 이건 루티의 마법을 보고 베낀 거니까."
루티는 드래곤.
그들이 사용하는 마법은 인간의 마법과는 체계를 달리한다.
루티가 레시아를위해서 자신에게 건 맹약 역시 용들의 마법의 일종이며.
즐겨 사용하는 바람의 마법 역시 그 위력이나 캐스팅 속도를 생각하면.
영창도 없이 그 정도의 마법 행사를 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인간보다 훨씬 마법적인 종족인 드래곤이기 때문이다.
즉, 이 마법은 인간용이 아닌, 드래곤의 마법에 가깝다.
그러므로 라일라 혼자서의 마력으로는 사용할 수없다.
이론적으로는 완성되었지만, 실제로 발동하려고 하면 방대한 마력과 준비 기간, 그리고 다른 술자의 협력을 받아야겠지.
"그럼. 처음 써보는 거군."
"그래 맞아."
클레온의 말에 라일라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본인의 성격상,한 번 완성한 것은 정말로 실용성이 있는지 몇 번이고 확인한 뒤에야.
실전에서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도 상황.
만들어진 마법은 실험 한번에도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
"너답지 않은걸."
클레온의 말에 라일라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입꼬리를 올렸다.
"그야, 많은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으니까. 상대가 평범하지 않다면, 이쪽도 평범하지 않은 수단을 써야지."
그렇게 말하며 클레온의이마에 손을 올린다.
"잠시 텔레파시의 채널을 닫을 거야. 나는 나대로 마법의 발동을 준비해야 하니까."
"그래."
라일라와 클레온 사이에서 이어져 있던 마력의 연결이 단절된다.
각인의 지배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바로 옆에 있는 것만 같았던 존재가 훌쩍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좋아. 이걸로 준비는 끝. 루베라는 권속이 나에게 다가오면 그걸 막아줘."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숲의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두 사람.
"라일라."
클레온이 그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라일라는 멈춰 그를 돌아본다.
"...안심했다."
"뭘? 지금부터 죽을지도 모르는데?"
라일라는 클레온이 이상한 소리를 한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네가 죽지 않아도 돼서."
"... ... 쿠온 때문에?"
라일라는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린다.
"아니. 쿠온만이 아니야."
잠시 이어지는 침묵.
라일라는 발을 멈추고 클레온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사샤도, 루티도…. 네가 무사히 돌아오는 걸 바라고 있을 거야."
"큿…!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결국, 참지 못하고 클레온 쪽을 돌아보는 라일라.
클레온은 그 모습을 보고 작게 웃어 보였다.
"물론이지."
"최악이야! 너부터 불태워줄까!?"
발을 동동 굴리며 화를 내는 라일라.
루베라는 그런 라일라의 어깨를 붙잡고 `워워.` 하고 진정시킨다.
"하지만. 각오는 잘 알겠어."
"... ..."
클레온의 말에 몸을 멈추는 라일라.
그는 클레온의 말을 듣고, 조용히 그 눈을 바라보았다.
이전, 지하 감옥에서 보았던 그의 눈에 서려 있던 자신을 향한 악의. 증오.
그런 것들이 응축되어 있던 어둠의 사이에, 조금이지만 라일라를 향한 호의의 빛이 보였다.
"변했구나. 라일라."
"...당연하지. 누구 때문인데."
그렇게 말하며 라일라는 성큼성큼 발걸음을 움직인다.
클레온도 조용히 몸을 돌려 절계수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마지막 싸움이 아직 남아있었다.
001
[심술궂네요…. 클레온.]
[그녀가 한 짓을 생각하면, 상당히 잘 대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검의 모습을 한 소녀들의 이야기에 클레온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질주한다.
머리로는 절계수를 쓰러트리는 것만을 생각하고 몰두한다.
"써넣어야 할 주문은 길이가 꽤 돼. 마법이 발동하면 강렬한 여파가 일어날 테니…. 살아있는 숲에서 빠져나가기 전에 결착을 내야 한다."
[그, 그렇네요. 절계수를 내부에서 불태운다지만, 그 위력이 꽤 될 테니…. 잘못하면 숲 전체가 불타버릴지도….]
"...라일라가 조절을 잘해주길 바라야겠지."
드디어, 그 커다란 몸의 발에 해당하는 위치에 도착한다.
인간으로 치면 몸의 절반밖에 없는 상황.
그런데도 넘어지지 않고 느릿느릿 오직 도시 방향만을 보고 다가오는 그 모습은.
거대한 몸집과 더해져,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조용히 자신의 몸에 몸을 가볍게 하는마법을 걸며, 클레온은 그 다리를 박차고 위를 향해 달려나간다.
발을 타고 전해져오는 감각은 나무의 껍질에 더해 기분 나쁜 이차원의 마력.
[큭….]
거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갈라테아의 쪽이었다.
이오나는 성검으로서 가지고 있는 신성마력의 덕분에 이차원의 힘에 저항할 수 있지만.
원래부터 비틀린 마력을 가지고 있는 갈라테아에게 나무의 마력은 조금 꺼려지는 듯하다.
[괘, 괜찮아요. 갈라테아? 힘들다면 저 혼자서라도….]
[당신이랑 클레온만 보낼 수 있을 리 없잖아! 클레온은 내 것이야!]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를 높이는 갈라테아의 목소리에.
클레온은 약간의 두통을 느끼면서 일을 시작한다.
이오나를 절계수의 표면에 휘두르면, 얕은 흔적과 함께 마력이 그 자리에 남는다.
원래라면 재생을 시작해야 하지만 신성마력이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조금 시간이 지나자, 마력의 흔적이 사라지면서 재생이재개된다.
"썩을…."
클레온 역시 우려했던 대로라는 듯 잠시 다리를 멈춘다.
그러자, 재생한 곳에서 나무의 가시가 튀어나오면서 클레온을 공격해 왔다.
"쳇, 몸도 큰 녀석이 민감하군…!"
혀를 차면서 튀어나오는 가시를 피하는 클레온.
하지만 그중 하나가 발목을 묶어서 그 몸을 들어 올린다.
"큭…!"
[클레온!]
다음 순간, 클레온의 몸이 저절로 움직이면서 이오나를 강하게 휘두른다.
그러자, 베기와 동시에 궤적을 따라 방출된 마력의 칼날이.
클레온에게 달려든줄기들을 절단한다.
방금 그건-.
"탈체크의 검술인가…!"
[아버지는 마력 방출은 사용하지 않았지만요.]
어떻게든 줄기들에서 벗어나 다시 몸 위에 착지하는 클레온.
주문을 적으려해도 몸이 재생한다면 작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주입하는 이오나의 마력의 양을 늘리면, 주문을 완성하기 전에 마력이 고갈되고 말 것이다.
[큭…. 적어도, 절계수가 반응하기 어려운 곳…. 예를 들면. 체내의 마력의 흐름이 적은 곳을 파악할 수 있다면.]
"...그거다."
클레온은 이오나의 말에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다.
그곳에는 사냥꾼의 각인이 떠 있었다.
그리고 절계수의 몸을 살피면 마치 사람의 혈관이나 신경처럼.
사방 곳곳에 마력이 흐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큭…!"
하지만 그 양이 너무나도 많다.
각인의 사용이 익숙지 않은 클레온은 그 엄청난 정보량을 처리하는 순간 눈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다음 순간, 클레온의 눈앞에 검은 안개와도 같은 마력이 덮어지며.
클레온의 눈을 보호한다.
[뭐 하는 거야! 눈은 물론이고 뇌까지 타버릴 뻔 했잖아!]
소리를 높이는 갈라테아.
자신의 신체 일부와도 같은 흑마력을 안대로 삼아 눈을 보호한 것이다.
"하지만, 방금 걸로 보였다. 이 녀석의 몸에도 마력이 제대로 통하고 있지 않은 곳이 있어. 그곳을 중점으로 주문을 새겨 넣으면 돼."
[하지만 다시 각인으로 녀석의 몸을 보면….]
걱정해하는 갈라테아.
그러면 이오나가 입을 연다.
[저희랑 클레온씨는강하게 연결되어 있으니까. 마력을 이용한 정보의 처리는 어느 정도 부담을 나눠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마력시는 `시각`보다도 `마력제어`에 가까운 기술이니까요]
그렇게 길게 풀어서 설명하지만.
즉, 쉽게 말하자면 클레온이 받는 부담을 마검과 성검을 더해.
셋이서 나눠 받는 것으로 그에게 주어지는 부담을 줄인다는 것이었다.
"...부탁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각인의 제어에는 주의해.]
갈라테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검은 안대를 벗는 클레온.
다시 한 번 각인의 불을 켜고 절계수의 몸을 살피면.
아까와도 같이 대량의 정보가 눈을 통해 들어온다.
그러면 갈라테아와 이오나가 거기에 개입하여
정보 중에서도 클레온에게는 필요 없는 정보를 걸러내어 받아들인다.
[큭….]
[아윽...]
그럼에도 그 양이 꽤 되는지 고통의 소리를 울리는 두 검.
클레온 본인은아까보다 꽤 편안해졌지만, 검을 잡은 손에 힘을 넣는다.
[괜찮아…! 시작해!]
[해주세요! 클레온!]
두 사람의 목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음속에 가까운 속도로 질주하는 클레온.
절계수의 몸에서도 둔감한 부분을 각인으로 분별해내.
그곳에 이오나를 휘둘러 라일라로부터 건네받은 주문을 각인해간다.
때때로 그런 클레온을 붙잡기 위해서 절계수가 가시를 뻗어오지만.
검성 탈체크의 검술이나 움직임을 재현 가능한 클레온에게 있어서.
반신밖에 없는 절계수의 공격은 너무나도 느리게 느껴졌다.
라일라가 루베라에게 해주었던 것과 같이.
갈라테아의 검신에 화염을 부여해서 휘두르면.
가지들은 마치 버터와도 같이 손쉽게 잘려나간다.
그러면서 한 글자 한 글자.
그 몸에, 라일라의 연구의 성과가 새겨져 나가는 것이었다.
"이오나가 기억력이 좋아서 다행이군."
클레온은등에서 식은땀을 흘리면서 농담이라는 듯 작게 내뱉었다.
[아, 하하…. 확실히 써야 하는 글자 수가 많으니까요.]
클레온은 절반 정도 썼을 때 그 뒤의 글자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이오나는 잠깐 주문을 본 사이에 전부 외운 것인지.
그다음부터는 이오나의 지시에 따라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200자가 넘는 주문을 그 짧은 시간내에 외울 수 있는 것은 라일라나 이오나 정도일 것이다.
성검의 신성 마력 방출, 각인의 정보 처리, 그리고 주문의 지시까지.
이오나가 혼자서 너무 많은 양의 부담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클레온이었지만.
하나라도 빠지면 계획을 완성 시킬 수 없다.
절계수는 벌써 숲의 절반을 나아간 상태였다.
주문을 거의 완성한 다음 순간.
클레온의 발이 멈추었다.
"이런…."
전신이 땀범벅이 된 상태에서 클레온은 다시 한 번 절계수의 몸 전체를 확인한다.
표면에 떠오른 신성마력의 글씨.
지워지지는 않고 있었지만.
그 부분을 제외하고도, 몸 전체에 마력이 흐르고 있다.
"...쓸 곳이 부족해."
[어, 어떻게 하죠?]
남은 주문은 아주 조금.
앞으로 한 문장만 더 완성한다면 라일라가 마법을 발동시킬 수 있다.
이미 각인한 주문 중 일부를 지우고, 글씨를 조금 작게 쓸까?
하지만 그런 짓을 하기에는 시간이….
[클레온! 멈추지 마!]
갈라테아가 외치자, 절계수의 몸이 흔들리면서 다시 한 번 클레온을 붙잡기 위해 움직인다.
클레온은 혀를 차면서 어떻게 할까 고민한 다음 순간.
뻗어 나온 가시들에는 마력이 통하고 있지 않은 것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다
공격하는 곳에도마력이 통하는 신경들이 있으면.
파괴되면 안 되는 곳을 노출 시키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너무 표면이 적다.
그리고 고정되어있는 절계수의 표면과 다르게.
끊임없이 꿈틀대며 움직이고 있는 줄기에 글자를 새겨 넣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잠깐 클레온!?]
갈라테아가 무엇이라 말하기 전에, 클레온은 남은 마력 대부분을 신체 강화에 쏟아 부어 질주한다.
아마, 절계수의 방어체계는 무의식적인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까지 몸에 새겨진 글자가 있는데도.
절계수는 단 한 번도 클레온을 내려다보지 않았다.
그렇기에.
클레온은 절계수의 머리끝까지 올라, 그 눈이 있는 앞으로 뛰어내린다.
공중에서 절계수와 클레온의 눈이 마주친 다음 순간.
엄청난 수의 줄기들이 뻗어져 나오며 클레온을 잡았다.
"크윽…!"
머리를 제외한 몸 전체가 압박되는 감각.
전신에 힘을 넣고 버티려 하지만, 질량의 차이는 어떻게 할 수 없다.
남은 약간의 마력으로 신체의 강도를 강화하는 것으로약간의 시간을 번다.
하지만 붙잡힌 그의 손에 더는 성검과 마검은 쥐어져 있지 않았다.
붙잡히기 직전, 하늘로 던진 마검과 성검.
그중에서 갈라테아가 인간의 모습으로바뀌며 이오나를 잡았다.
"미쳤어!?"
갈라테아는 클레온을 향해 외치지만.
어쨌든, 그를 구하기 위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뻗어 나온 줄기는 뭉쳐져 있어서, 발을 디딜 수 있는 것은 물론.
그 위에 검을 휘둘러도 어느 정도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클레온의 검술을 재현한 갈라테아가 이오나를 통해 마지막 문장을 완성한다.
이것으로 주문은 완성.
남은 것은 모두가이 절계수에서 떨어지는 것이었다.
이번엔 갈라테아가 검의 모습으로, 이오나가 인간의 모습으로 바뀐다.
노리는 것은 클레온이 잡혀 있는 줄기의 뭉치.
갈라테아는 자신의 몸에 라일라의 화염 부여 마법을 사용하며.
이오나가 줄기를 베어내 클레온을 꺼낼 수 있도록 도왔다.
새겨 넣은 문장이 망가지지 않도록 휘둘러진 섬세한 일섬은.
그가 누구의 딸인지를 상기시켜주는 군더더기 없는 솜씨였다.
클레온이 미끄러지듯 줄기에서 빠져나오면, 재빨리 이오나와 손을 잡는다.
그리고 갈라테아, 이오나 둘을 다시 양손에 잡은 채.
비행마법을 사용하여 마력을 추진력 삼아 절계수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휴우…. 어떻게든 되었군."
[[다시는 이런 무모한 계획은 쓰지 마(세요)]]
결과적으로는 잘 됐는데.
절계수를 돌아보면 그 몸 전체에 신성마력의 글씨가 빛나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녀의 몫이었다.
"부탁한다. 라일라…!"
002
"글씨가 완성된 것 같군요."
루베라는 검을 휘두르다 절계수가 있는 쪽을 보고 이야기 한다.
각성한 덕분에 권속들 정도라면 라일라의 화염 부여 마법의 힘을 빌려 쉽게 쓰러트릴 수 있지만.
라일라는 아까부터 눈을 감은 채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라일라?"
그런 라일라가 이상하다는 듯, 돌아보는 루베라.
그 재서야 라일라는 퍼뜩 눈을 뜨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응? 아아. 알겠어."
"어딘가 몸 상태가 안 좋은 겁니까?"
루베라의 말에 라일라는 고개를 젓고 절계수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냐. 그저…. 조금 생각하고 있었어."
"클레온입니까? 두 사람 사이에서 정확하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클레온은 굉장히 무르고 알기 쉬운 사람입니다."
"...그래. 나는 그런 인간을 속이고, 나락에 빠트리려 했지."
잠시 침묵이 흐른다.
"용서…. 받을 수 있을 일이 아니야."
아카데미를 이전의 순수한 모습으로 돌리기 위해서.
라는 대의명분을 가지고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던 수많은 일들.
알베인을 유혹하고 파티원의 모두를 속인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방해된다며 클레온을 치우려 했던 것.
자신이만약 클레온과 반대 입장이면 어땠을까.
절망해서 나락으로 떨어진 뒤.
도시 전체를 불태우는 마녀로 전락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클레온은 자신의 목숨을 살려두었다.
자신이 살아있는 것은 오직 쿠온의 동정심과 사샤의 상냥함 덕분.
클레온과 지내면서 알았다.
역시, 자신은악인이다.
염치도없이, 그에게 용서받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되도록 자신도 쿠온이나 사샤와 같이 그의 사랑을 받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지는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화가 나는 것은.
자신이 그저 알베인을 잃고 그 대체재로서 클레온을 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신의 감정에 대한 불신감이었다.
라일라 플레임워치는 프라이드가 높고, 숭고한 목적을 가진 지성인이다.
감정에 휘둘리는 것은 그녀의 자세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어떤가.
클레온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작은 상처를 입는 자기 자신이 너무 우스웠다.
알베인의 무신경한 말이나, 독재에 가까운 폭주에도 이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한 적은드물었다.
그 자리에서 화를 냈으면 냈지.
쓴웃음을 짓거나, 가슴 한쪽이아려와서 고개를 돌리는 일은 없었다.
"...뭐가 됐든. 빨리하는 게 좋겠군요. 슬슬 미개척영역을 완전히 빠져나갈 겁니다."
"있지 루베라. 당신은 클레온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
그 말에, 루베라는 잠시 한심하단 눈으로 라일라를 바라보았다.
"뭐,뭐야."
"아뇨. 지금 상황에서 물어볼 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정론에 정곡을 찔린 듯 `큭….`하고 소리를 내는 라일라.
"괜찮잖아. 물어볼 타이밍이 따로 없기도 하고."
"...그렇네요.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멀쩡하게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동족이기도 하고. 몸을 섞을때도 궁합이 잘 맞는다는 것은 느꼈습니다."
그 말에 라일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사랑하고 있지는 않는 거야?"
"...뭐. 그건 어떨까요. 한 손으로 셀 수 없는 여자를 데리고 있고.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서 여자와 몸을 섞는 남자. 사랑할만한 요소는 아직 제게는…."
묘하게 대답을 회피하는 루베라.
라일라는 오히려 더 신경 쓰인 다는 듯 루베라의 눈을 바라본다.
"큭…. 알았으니까 어서 주문을 사용하세요!"
결국 화를 내는 루베라에게 못 이겨, 라일라는 하늘로 올라간다.
"...하아."
크게 한숨을 내쉬며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절계수를 바라보는 라일라.
몸에서 빛을 내며 반짝이는 신성마력이 멀리서 보면 글자의 형태로 보인다.
이윽고 작게 입이 열리며 영창이 시작된다.
"모여라. 만상에 펼쳐진 진리의 법칙이여. 자연계의 지배자인 찬란한 영광의 일원으로서 명할지니. 대적하는 이들에게 우리의 분노를 보여라."
그와 동시에, 라일라의 전신에 나타나는 각인의 확장.
신경 위를 달리는 마력의 감촉에 고통을 느끼는 듯, 라일라는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마법의 발동에 필요한 마력은 자신의 것, 클레온이 새긴 신성마력.
그리고 그 주문이 나타나 있는 절계수의 내부의 이차원의 마력.
세 마력을 잇는 보이지 않는 실이 길게 뻗어져 나간다.
"이것은 고대의 맹약에서 나와 나의 심장에 각인된 불변의 고동. 영혼을 달리는 혼돈과 함께 세상에 내려와 그 형태를 이루어라."
그 실이 절계수의 몸에 닿은 순간.
라일라의 손끝에 순수한 화염의 마력이 응집한다.
그리고 그 손에는 작은 분홍색의 비늘이 들려 있었다.
"나의 이름은 `루티 시온스`(라일라 플레임워치). 절멸의 폭풍의 이름으로 제창하노니. 이것은 원초의 불꽃이노라."
용의 마력이 담긴 비늘을 촉매로. 그 이름을 빌린다.
그렇게 해야만 반응하는 `원소`가 세상에 존재했다.
일반적인 마력이나 마법으로는 불러낼 수 없는.
가장 순수하고 강력한 원초의 원소.
자신의 조부가 이것을 찾기 위해 평생을 바쳐 왔다는 것을
라일라는 알고 있었다.
"용언 마법."
그리고 완성된 불꽃은 마치 도화선을 타고 움직이듯 라일라에게서 뻗어 나간 보이지 않는 실을 타고 움직인다.
그것은 작지만 강력했고.
순수하면서 아름다웠다.
"화염."
거창한 수식어가 붙지 않은 마법의 이름은.
그 현상 자체.
이윽고, 불꽃이 절계수의 몸에 닿자.
전신에 각인된 주문이 강력하게 빛난다.
그 색은 신성마력의 하얀색에서.
화염 속성의 마력의 붉은색으로 전환 되었다.
다음 순간.
하늘 전체를 꿰뚫는 붉은 기둥이 있었다.
절계수를 발끝에서부터 머리까지 태우는 것도 모자라.
대기권을 뚫고 올라가는 거대한 화염의 현현.
라일라는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마법을 본다.
클레온이 가까이에 있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자신이 이루어낸 경지에 작은 만족감을 느끼며.
공중에서 거꾸로 떨어졌다.
회복되었던 마력이 다시 고갈되며 탈진 형상이 찾아온 것이다.
[루베라!]
그것을 본 바리사다가 외침과 동시에, 루베라의 몸이 재빠르게 라일라를 받아낸다.
라일라는 입에 웃음기를 띈 채 기절해 있었다.
작게 한숨을 내쉬는 루베라.
저 멀리서 검은 남자가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