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1화 〉반격 (51/72)



〈 51화 〉반격

"언니, 정말로 그 남자와…."

정숙한 성가대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 대신전.

흰색의 대리석 기둥과 붉은카펫으로 장식된 바닥.

보고 있기만 해도 신에 대한 믿음이 생길  같은 웅장한 스테인드글라스.



성자의 가호 교단 소속의 성직자들이 성지로 여기며 수많은 고위 성직자들이 기거하는 이곳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신도와 성직자들, 그리고 교단의 후원자들이 출입하고 있다.

견습 성직자 티오의 자매 역시 장래가 촉망받는 한 명의 성직자로서

매일 대신전에서 기도를 올리며 자신에게 내려질 신탁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내려온 것은 신으로부터의 신탁 따위가 아니었다.

교단의 결정에 따라 거대한 후원자인 우드녹커 후작과의 정략결혼.

여동생 외의 가족이 없는 그녀로서 지금까지 교단에 진 신세를 생각했을 때.

교단의 명령을 거부할 명분 따위는 없었다.


그런 그녀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티오는 언니에게  번이고 물어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녀의 대답은 같았다.

"휴즈 후작은 분명, 선인이 아닐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사람을 교화시키는 것도 우리 성직자의 일이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용사 후보로 만들려고 대량의 돈을 부어대는 작자야. 분명 권력과 돈에 미쳐있다고."

티오의 대답에 그녀의 자매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티오. 그의 후원이 있기에 교단에서도 더욱 많은 사람을 구할  있는 것도 사실이란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자신의 결심을 굽히지 않은 것이었다.

티오 역시 다른 일반인들에 비하여 성직자로서 필요한 신앙심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교리에 대한 신앙심이지 교단의 상층부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언니 몰래 몇 번이고 그들에게 이야기를해보려 했지만.

휴즈 후작이 가진 돈에 눈이 먼 교단의 상층부들은 티오의 말을 묵살하기 일쑤였다.

결국,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언니의 결혼식을 지켜봐야만 했다.

1년이 지날 때쯤 언니의 아들.

 티오에게 있어서는 조카가 되는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첫 몇 년은 그저 조용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4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

그녀의 주변에 좋지 않은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휴즈 우드녹커의 아내가 며칠이나 집을 비우며 가정을 소홀히 한다는 것이었다.

개중에는 모험가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이야기마저 들려왔다.

그리고 휴즈 후작에게 그런 이야기가 들어갈 때마다 저택에서 여성의 비명이 들여온다는 것도.



결혼 이후 제대로 얼굴을 마주한 적이 없는 언니와 다시 만난 것은.

그러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고 난 뒤로부터 수개월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불 꺼진 성직자들의 숙소.

자신의 방문을 두들기는 노크 소리에, 졸린 눈을 비비며 문을 열면.

그곳에는 티오의 언니가 서 있었다.

로브를 뒤집어써서 얼굴을 가린 채.

다시 만난 그녀의 얼굴은 초췌해져 있었고, 눈에는 이전과 같은 선한 빛이 마치 꺼져가는 등불과도 같이 약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이전에는 없던각오가 있었다.

조용히 자신을 찾아온 언니.

그녀는 천으로 꽁꽁 싸맨 채 가져  것을 티오의 눈앞에 보여주었다.

찬란한 은빛으로 빛나는 츠바이핸더.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신성마력.

티오는 그것을 보자마자, 그 정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성검. 미스틸테인."

조용히, 그녀의 언니가 입을 열었다.

"어디서 이걸…."

당황한 티오의 목소리에, 언니는 조용히 지금까지 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성검의 신탁을 받았다.

예견된 미래는 그 성검이 그녀의 아들을 용사로 만들고.

이윽고, 회귀자들에 의해 이용될 것이라는 최악의 예언.

그렇기에 자신이 신탁을 받았다는 것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모험가들을 통해 성검을 회수했던 것이었다.

이 사실은 휴즈 후작도, 교단의 누구도 모르는 일이라고.

그녀는 이야기했다.


"성검의 힘은 세계를 구원하는 데 사용할 수 있어. 회귀자들의 손에 이용되게 둬선 안 돼."

티오 역시 그녀의 말에는 동의했지만.

일반적으로 성검을 감추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봉인이 해제된 성검의 마력만을 전문적으로 탐지하는 이들이 교단에 소속되어 미등록된 성검을 회수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이 성검을 부러뜨릴 거야."

티오의 질문에 그녀는 조금 입을다물었다가 미스틸테인을 내려 보며 대답했다.

"부러뜨려…?"

언니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티오가 되물었지만.

그녀는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이미, 성검과는 이야기를 마쳤어. 그 역시, 나의 의견을 존중해 주고 있어."

"이해가  돼. 그는 누군데?"



그녀는 이번에는 대답하지 않은 채.

티오가 보는 앞에서 검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조금 진동하는 듯 떨리던 성검 미스틸테인이.

가운데로부터 금이 가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은색의 구슬뿐이었다.

"무슨 짓을 한 거야?"

"성검의 육체를 파괴하고. 핵만을 남겼어. 그 핵을 너에게 맡기고 싶어."

"언니! 제대로 설명해 줘! 대체 무슨 일을 하려는 거야!?"

티오의 말에 그녀의 언니는 슬픈 얼굴이 되었다.

"이전에 휴즈 후작을 교화하는 것도 나의 일이라고 했지?"

티오는 언니의 말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포기, 지침, 그리고 절망이 보였다.

성직자로서 언제나 밝은 모습과 희망을 노래하던 그녀가.

이렇게까지 변한 것은 티오에게 있어도 큰 충격이었다.


"그와 지내면서 알게 됐어. 세상에는 내 상상을 넘는 악도 충분히 존재한다는 것을."

"언니..."

티오는 조용히 언니의 손을 잡았다.



"그 핵…. 성검의 힘이 휴즈 후작에게 넘어가는 것은 막아야 해. 그리고 나도, 되도록 그로부터 도망칠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

"무슨 소리야? 이대로 교단에 보호를 요청하면 되잖아?"

아무리 휴즈 후작이 교단과 사이가 좋다고 하더라도

교단의 고위 성직자 수준의 실력을 지닌 티오의 언니가 보호를 요청한다면.

그녀를 내버려둘 리 없었다.



"...유스테스를 데리러 가야해."

"제, 제정신이야?!"

휴즈 후작이 허락할 리 없었다.

그녀를 필사적으로 말렸지만, 티오의 언니는 떠나갔다.

그리고  다음 날.


우드녹커 가문에서 시체 한 구가 실려 나갔다.



티오에게 남은 것은 언니가 떠맡기고간 성검의 핵과 절망뿐이었다.

교단은 그녀의 죽음에 대해 상관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날 자신의 곁에 남아 교단에 보호를 신청했더라 하더라도.

강제적으로 후작의 곁으로 돌아가게 됐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언니가 느꼈던 모든 분노와 슬픔, 그리고 절망이

그대로 티오에게도 이어졌다.

교단에 대한 배신감.

우드녹커 후작에 대한 복수심.



그런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준 것이.

당시, 대신전에서 난민들을 구제하기 위해 힘쓰던 `맥스웰`사제였다.

그는 티오에게 말했다.



"교단은 부패했고 세계는 어둠에 둘러싸였습니다. 우리는  세계를 원래 있어야 할 모습으로 되돌려야 합니다."

그의 사상에 완전히 동감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교단을 뒤엎고.

간접적으로라도 휴즈 후작에게 복수할 수 있다고 한다면.

설령 자신이 악인이라 불리더라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티오는 몇 년 후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맥스웰 사제야말로 휴즈 후작과 가장 가까이 있는 인물이었으며.

이대로 자신이 휴즈 후작의 계획을 돕게 된다고.

이미 그녀의 몸에는 회귀자들의 각인이 새겨져 있었고.

맥스웰의 명령을 거스르는 일 따위는 불가능했다.



거기에, 맥스웰에게 검의 핵의 존재마저 들키고 말았다.

그가 휴즈 후작에게 핵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은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다만, 언니가 남겨준 의지마저도 그에게 이용당하게 되었다.



유스테스에 대한 감시를 명령받았다.

그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언니가 죽었다고생각하면.

도저히 유스테스에게 좋은 감정은 일지 않았다.

그의 얼굴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분명, 선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제멋대로였다.

어리고, 미숙하고, 오만하고, 겁이 많은 인간.

휴즈 후작의 밑에서 자라나면서 그런 성격이 되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얼굴에서 자신의 언니를 떠올릴 때마다.

그녀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 아이에게 일말의 선함이 있다면.

그를 교화시키는것도 자신들 성직자의 일이었다.


그렇기에 유스테스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졌다.

아니, 깨달았을 때는 이미 몸이 움직인 후였다.

그때도.

이번에도.


001

"그럼, 당신이 내 어머니의..."

유스테스는 믿을 수 없다는듯, 상처 입어 죽어가는 티오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티오는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연다.

"순수한 선의의 희생이 아니라 실망했나요."



티오가 자신을 감싼 것.

분명, 유스테스는 어딘가 행동에 대해  감명을 받았었다.

그날 처음 만난 자신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진 선의.

그렇기에 더 큰 죄책감을 느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티오가 자신을 구한 이유가 그저 그녀의 조카라는 이유라면.

유스테스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하지만, 이윽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혈연이라고 하지만. 나는 휴즈 후작의 피를 이은 인간. 당신에게는 원망의 대상이기도 해. 그런 나를 구한 건…. 역시 당신이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야."

유스테스는 정리되지 않은 말을 내뱉으며 이야기했다.

티오는  말에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쉰다.

피는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당신은..."

"나는…. 맥스웰이 말한 것을 부정할 수 없었어. 도망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거야."

제멋대로에, 주목받기 좋아하고.

어리고, 미숙하고, 오만하고.

"아뇨. 당신은 바뀌었습니다…. 분명,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단 한 가지.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는 미덕."

티오는 그렇게 말하며 유스테스의 손을 잡았다.

그 손에는 검의 핵이 쥐어져 있었다.


"바로, 용기입니다. 진실을 알려고 하는 용기. 그리고 적의 앞에서 도망치지 않는 용기."

"나, 나는..."

떨리는 손과 다리를 내려다본다.

공포는 분명히 자신을 뒤덮고있었다.

이런 자신이 용기 있는 인간일 리 없다.

맥스웰이 말한 대로.



"용기라는 것은 `겁이 없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에 맞서 자신의 길을 관철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죠."

"... ..."

티오의몸에서 점점 힘이 빠져나간다.

포션으로도, 회복 마법으로도.

맥스웰이 사용한 이차원의 힘에 오염된 그녀의 몸을 완전히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용기를 가지고 맞서 싸우는 이들을 사람들은 `용사`라고 합니다."

"용사..."

단순히 용사가 성검을 가지고 그 힘을 휘두르는 이들을 말한다면.

마검사와 같이 `성검사`라고 불리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그러지 않는 이유는.

진정한 용사란 사람들을 위해, 스스로 공포와 맞서는 용기를 지닌 이들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물론 성검을 잡고 그러지 못하는 이들은 수없이 많다.

용사 알베인이 그러했다.

"성검은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그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라도 용사로 설  있습니다."

심지어 그것이 마검사라고 하더라도.

검 하나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는 미숙한 청년이라고 하더라도.

"어리석군요…. 티오. 당신이 원하던 세계의 붕괴가 곧 일어났을 텐데."

"맥스웰...!"

신성마력의 영향에서 벗어난 것일까.

나무껍질을거두며 맥스웰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아까와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권속들과 마찬가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나무로 변한 괴물의 외모였다.


"이제 곧. 슈라드셀이 이 세계에 강림합니다. 당신이 목숨을 날려 지킨 유스테스도 절계수의 앞에서는 나뭇잎보다 못한 존재이죠."

티오는 그런 맥스웰을 잠시 바라보다가, 유스테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는 어쩔 수 없는 악인입니다. 결국, 상황이 이렇게 될 때까지 맥스웰에게 맞서는  따위 불가능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유스테스에게 쥐어준 검의 핵을 잠시 바라보다 손을 놓았다.


"당신은 저 인간이 뭐라고 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당신의 의지로."

그리고 눈을 감는 티오.

유스테스는 건네받은 성검의 핵을  쥐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맥스웰은 그 모습을 보더니 잠시 표정을 바꾸었다.

그가 손에 쥔 검의 핵에서 마력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무리야, 나한테는."

하지만. 유스테스가 입으로 내뱉은 말은 맥스웰을 금세 미소 짓게 했다.

그럼 그렇지.



"괴물처럼변한 맥스웰을 쓰러트리는 것도. 그 뒤에 튀어나올 나무 괴물을 베는 것도…."

"그렇다면 이쪽으로 오시죠. 이제 당신이 죽든 살든 변하는 것은없습니다. 슈라드셀의 강림을 함께 지켜보는 겁니다."

맥스웰이 두 팔을 펼친다.

그의 몸은 흉흉한 이차원의 마력으로 가득  있었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과 ‘하기 싫은 일’은 달라…. 그렇지?"

"...무엇을."

다음 순간, 검의 핵과 그가 가지고 있던 장검이 서로에게 이끌려 하나가 된다.



그리고 찬란하게 빛나는 은빛의 양손 검이 유스테스의 손에 쥐어졌다.

"핵에서 성검을…!? 복원했다는 건가!"

재빨리 줄기를 뻗어오는 맥스웰.

하지만 성검의 마력이 유스테스를 지키고.


유스테스는 분노의 함성을 내지르며 직선으로 달려간다.

"맥스웰!!!"

미스릴의 대검 때와는 달리 깃털처럼 가벼운 성검.

미스틸테인은 유스테스를 지키는 것에 모든 마력을 쏟아 부으며 그가 맥스웰에게 도달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그 검이 맥스웰에게 닿는 순간.

이차원의 힘에 굴복한 사제는 그 자리에서 양단되었다.

"이럴…. 수가…. 당신 따위에게…."

흔해빠진 대사를 내뱉으며 그대로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맥스웰의 신체.

유스테스는 거칠게 숨을 들이 내쉬다가 성검을 바라보았다.

분명 자신은  검을 휘두르기에는 아직 한참 모자란 인간이다.

그런데도 성검은 자신에게 힘을 빌려주었다.



"...미스틸테인."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 이름.

죽기 전의 어머니에게 서였을까.

퍼뜩 정신이 들어 티오에게 달려가지만.

티오는 이미 그 몸에서 영혼이 떠난 뒤였다.

유스테스는 주먹을 꽉 쥐며 그녀의 시신을 옮기려 했다.

이전, 모험가들이 자신에게 이야기했던 길드의 규칙.

그것을 자신이 실천해야 할 때였다.

다음 순간.

낭떠러지에서 무언가,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며.

차원의 벽이 무너지는 것을 본다.


그 너머에서 마치 손가락처럼 기어 나오는 굵은 나무줄기.

유스테스는 티오의 시신을 최대한 낭떠러지에서 떨어트린 채.

그 틈 너머에서 흘러나오는 강렬한 기척을 보고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저, 저것이…. 절계수, 슈라드셀...!"

세계로부터 추방되었던 절망이 귀환했다.

002

시간을 조금 되돌려.

장막의 바깥.


루베라와 탈체크는 일진일퇴의 공방을 펼치며.

서서히 서로의 체력을 깎아내고 있었다.

각성한루베라의 힘은 그야말로 성가신 것이어서.

아무리 감에 의존하여 그것에 대응하려 하여도.

루베라의 마력이 허락하는 한.

탈체크가 유효타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물론, 탈체크 역시 어느 정도 그 힘에 적응하여.

그녀의 공격이 파고드는 방향을 예측하였지만.


"하아... 크윽..."

점점 몸 안에서 퍼져나가는 고통이  움직임을 둔하게 하고 있었다.



"클레온이 당신에게 병이 있는  같다고하던데.  말이 사실인가 보군요."

"쳇. 그 녀석 눈치 챘나…."

탈체크가 재미없다는 듯 루베라의 말을 받아친다.


"저는 별로 당신이 병에 걸려서 죽든 말든 상관없지만…. 이오나 슈발리에는 어떤 겁니까?"

"그 녀석은 이미 알고 있어. 그러니까 나 보고 제발 왕도에 처박혀 있으라고 잔소리다."

"어째서 그러지 않는 거죠? 아까 말한 용사 레시아와 관련이 있는 겁니까?

루베라의말에 탈체크는 코웃음을 친다.


"너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네. 그렇군요. 하지만 당신은 하나뿐인 딸의 걱정마저도 뿌리치고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최악의 아버지군요."

탈체크는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나는 검사다. 아버지 따위가 아니야."

"이오나 슈발리에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도구라고요?"

"그래. 말하고 사람처럼구는 검이라니, 신기해서 곁에  것이다."

루베라는 그런 탈체크의 말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소리를 내서 웃었다.

마치,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했다.


"뭐냐."

"아뇨. 당신이 클레온과 닮았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뭐라고…?"

루베라는 바리사다로 탈체크를 가리키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오늘. 당신을 찾으러 후작 가로 갔을 때. 클레온과 했던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 ..."

"당신은 이오나 슈발리에가 `그렇게 강하지 않다`라고 했습니다. 클레온은 그것을 부정했고요."

"아아, 그랬지."

루베라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하는 탈체크를 보며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모르겠나요? 이오나는 검으로 보자면 분명히 강합니다. 당신의 허리에 걸린 붉은 검보다도. 하지만 당신이 보기에 인간으로서는 약하다고 생각되겠죠."

"... ..."

"실제로 객관적으로 보아도 그녀는 강합니다. 마법에 대한 지식, 검술 실력. 모두 수준급이죠. 하지만 당신에게 있어선 그저 어린아이의 장난 수준으로 느껴지겠죠. 그게 당신의 본심인 겁니다. `검`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그녀를 평가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탈체크의 얼굴이 점점 구겨져 갔다.

이마에돋아나는 핏줄.

그리고 날카로운 눈과 엄습해오는 살기.


"궤변이다."

"유스테스조차 진실에서 도망치지 않으려 했는데. 당신은 당신의 진심으로부터 도망치려는 겁니까?"

"크크…. 너무 혀가 길 군."

탈체크는 이번에야말로 루베라를 죽일 기세로 그녀에게 뛰어들었다.

[쓰, 쓸데없는 도발을 하면 어떻게 해!]

루베라에게 말하는 바리사다.

루베라 역시 자신도 모르게 머리에 피가 올라, 이오나를위해 떠든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때 탈체크의 몸이 멈춘다.

아니, 멈춘 것은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성검이었다.

허공에 고정된 것처럼.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팬터마임을 하는 것처럼 고정된 슈발리에를 움직이려 하는 탈체크.

하지만 이윽고, 그 검이 스스로 움직여 탈체크의 손에서 빠져나와 클레온이 있는 곳으로 날아온다.

클레온 역시 눈을 뜨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겨우 돌아왔군요.  무책임한 자식."

루베라는 클레온.

그리고 그 옆에서 모습을 되찾은 이오나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눈을 크게 뜨며 클레온과 이오나를 바라보는 탈체크.

"아버지."

"슈발리에…. 클레온 이 자식. 뭘 한 거냐."

자신을 노려보는 탈체크의 눈에, 클레온은 입꼬리를 올리며 갈라테아를 그에게 겨누었다.


"가족의 정을 되찾아주려고 한 거지."

"쓸데없는 짓을…! 슈발리에!  주인은 나다!"

탈체크가 그렇게 말하며 이오나에게 손을 내밀자 이오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는 이오나입니다. 세계를 구한 자랑스러운 영웅. 검성 탈체크의 딸이고요!"

하지만, 이오나는 완고히 거부하며 고개를 젓는다.

그 말에 탈체크는 눈을 크게 뜬다.

이오나가 지금까지 자신을 슈발리에라 부르면 부정하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마음 어딘가에서 탈체크가 자신을 도구로 여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진심이었다.

이오나는 진심으로 탈체크의 딸로서 그를 막기 위해.

그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



"저는 아버지가 이 이상, 길을 벗어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이오나는 그렇게 말하더니 클레온을 돌아보고 그 손을 잡았다.


"그를 위해서 클레온과 루베라와 함께 당신을 막겠습니다. 당신의 딸로서…. 책임을 지고!"

그리고 그녀의 몸이 다시 한 번 빛에 둘러싸이면.

조금 전 탈체크의 손에 들려있을 때와는 다른 조금 다른 모습의 성검이 클레온의 손에 쥐어졌다.

"... ...!"

탈체크는 그 광경을 바라보더니 서서히, 입을 열며.

웃었다.


"하하-! 크하하하하하하!"

그리고 지금까지 허리춤에 있던 붉은 검을 뽑아든다.

"그래. 이게 반항기라는 건가. 이오나."

그리고 처음으로.

타인에게 소개할 때를 제외하고.

그녀를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었다.



[잠깐 클레온. 이 여자도 같이 쓰는 거야?]

[죄송합니다. 갈라테아씨. 조금만 신세를 질게요. 저 고릴라를 멈추기 위해서입니다.]

클레온은 손에 쥔 갈라테아와 이오나를 번갈아 보다가 자세를 잡았다.

"당신이 나한테 이도류를 가르쳐  적이 있어서 다행인걸."

"젠장. 가르쳐 주지 말걸."

클레온이 자세를 잡자 탈체크는 머리를 긁적인다.

루베라역시 다시 한 번 제대로 된 자세를 잡으며 탈체크를 겨눈다.

"2:1... 아니, 3:1인가요 이제.“

"그래. 조금 비겁한 것 같지만. 검성 탈체크를 잡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클레온은 심호흡하며 탈체크로부터 배웠던 것을 상기해  뒤

나지막이 결전의 재개를 알렸다.

"반격 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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