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절계
하늘의 색이남색으로 변한다.
해는 아직 중천에 떠 있건만, 살아있는 숲의 미개척 영역은
그 이질적인 마력의 확산으로 인해서인가?
그 시간이 아직 이름에도 불구하고 마치 밤과 같은 하늘이 되었다.
사방팔방에서 울리는 비명과 고함.
아비규환이라는 것은 이것을 말하는 것인가.
무모하게도 발을 들여놓은 인간군상의 제물들이.
하나둘, 그 피를 땅에 스며들게 하고 있었다.
미개척영역은 이미 하나의 별개의 세계처럼 분리되어 있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그 경계선을 눈치 채지 못하고 안으로 들어섰겠지만.
그 순간, 바깥과는 단절된 세계에 들어가
사방팔방에서 달려드는 절계수의 권속에 희생되는 것이었다.
비행마법을사용하면 그것마저 덩굴줄기를 뻗어와 지상으로끌어당기려고 하므로.
세 사람은 숲을 달려 나가며 다가오는 권속들을 하나하나 불태우며 나아가고 있었다.
""플레어스파이크!""
동시에 영창 되는 라일라와 클레온의 마법.
8개의 가시가 뻗어 나가 그들을 불태우지만
순식간에 한 마리를 잿더미로 만든 라일라와 달리
클레온의 가시는 그 절반의 위력 정도밖에 내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이 연구하여 개발한 마법을 사용하는 라일라와
아직 마법을 사용하는 숙련도가 부족한 클레온의 차이였다.
그리고 그 차이를 메꾸는 것이.
"하앗!"
라일라에 의해 마법을 부여받아, 마검에 불을 휘감은 루베라였다.
클레온이 붙들어 놓은 권속의 목을 베어내면, 그곳에서부터 화염이 침입하여 결국 전체를 불태운다.
주변에 있던 권속들을 한 번 정리하고 나면, 라일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강렬한 화염 원소를 본능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인지.
이런 식으로 한 번 권속들을 물리치고 나면, 한동안은 가까이 오지 않지만.
질리지도 않고 숲의 어둠 속에서 기어 나오듯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수가 많고, 영악해져 있군요."
루베라는 이전의 이오나와 협력해서 쓰러트렸던 것들이
절계수의 권속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마치 여유를 부리듯 하나하나 튀어나왔지만.
오늘의 녀석들은 처음부터 전력으로 이쪽을 향해 덤벼왔다.
라일라 가진 화염 원소를 위험시해서인가.
혹은, 주인의 강림이 가까워져 난폭해진 것인가.
거기에 영역 전체를 감싸는, 끈적끈적하고 기분 나쁜 마력.
"마력의 회복속도가 더뎌…. 이런 식으로 가다간 녀석들에게 도달하기 전에 마력이 고갈될 거야."
가방 한가득 가져온 마력포션을 확인하지만
이 공간은 이질적으로 숨을 쉬기만 해도 몸의 기운을 빼앗기는 듯했다.
거기에, 이곳까지 오면서 만난 모험가들을 억지로 제압하고
차원문을 통해 도시로 되돌려 보내면서.
필요 이상으로 기운을 쓰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무시해도 좋았습니다만…."
루베라의 말에 라일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하면 결국 제물이돼서 절계수의 강림을 빠르게 할 뿐이야."
클레온 역시 라일라의 말에 동의했다.
"...가고 있는 방향은 맞아. 조금만 더 서두르자."
라일라는 마력 포션을 한 병그 자리에서 들이킨 뒤 선도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묘하게 의욕적이군요."
그 뒤를 지켜보며 나지막이 내뱉는 루베라.
그녀 역시 아카데미의 수석이라고 불리는 학자의 한 사람.
이런 상황에서 호기심이 동하지 않을리 없었다.
선악의 구분을 떠나, 이 세계의 학자라는 것은 그런 인간들이었으니까.
클레온은 생각한다.
라일라는 이 사태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알베인의 폭주가 이 사태의 원인이라면.
자신이 클레온을 파티에서 추방했던 것 또한 알베인의 폭주의 원인이기도 하다.
인과는 돌고 돌아 죄는 업을 지고 벌이 된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 사태의책임을 지고 있는 인간으로서.
목숨을 내던지더라도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잘못되더라도, 쿠온이나 사샤가 이 사태에서 목숨을 잃는 일은 없어야 했다.
클레온은조용히 그 뒷모습을 바라본다.
동정은 하지 않았다.
일련의 사건 이후로, 라일라가 조금은 둥글어진 것은 인정한다.
진심으로 과거의 일을 뉘우치고 있다는것도.
하지만 라일라의 이론대로라면.
알베인의 폭주를 일으킨 본인 역시, 그 책임이 있다.
"...서두르지."
클레온은 조용히 앞으로 나아간다.
숲의 핵심으로 나아갈수록 커져만 가는 술렁거림이.
전에 없는 시련을 예고하고 있었다.
001
벽에 처박힌 채 반쯤 정신을 잃은 유스테스.
이오나는 휴즈 후작의 저택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찾다가.
그와 대련 중인 유스테스의 상처를 보고 가까이와 회복 마법을 사용했다.
"오. 마침 잘 왔군. 이 녀석을 낫게 해 줘라. 조금이라도 더 봐줘야 하니까."
이오나의 귀환에 탈체크는 턱을 쓰다듬으며 딸에게 지시했다.
"미개척영역으로 가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 부분은 내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크크. 하고 웃으면서 말하는 탈체크.
"대체 무슨 생각이신 건가요,아버님. 잘못하면 세계 전체에 커다란 위협이 닥칠 수 있습니다."
결국, 회복 마법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양아버지에게 항의하는 이오나.
탈체크는 무심히 어깨를 으쓱인다.
"나는 용사가 아니다. 검사지. 세계의 적과 싸우는 건 내 일이 아니란 거다."
"큭…! 그게 4 영웅이 할 말입니까!"
이오나가 분노한 표정을 보자, 탈체크는 재미없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그런 건 왕국 녀석들이 멋대로 붙인칭호다. 나는 그냥 `검투사 탈체크`로도 좋았어."
"하지만…. 당신은 용사 `레시아`와 함께 악의 제국을…."
거의 울상이 된 얼굴로 말하는이오나를 보며, 탈체크는 말했다.
"늘 말했지 않으냐. 그건 어쩌다 보니까. 라고."
어쩌다 보니까.
우연.
검성 탈체크가 아직 검투사 탈체크였던 시절.
아직 대륙에 왕국과 제국이 팽팽하게 신경전을 벌이던과거.
국경 부근에 있는 왕국의 한 작은 마을이 제국의 침략군에 의해 불탔다.
아직 무력했던 소녀가 유일하게 살아남아, 마을을 침략한 이들에게 복수하기 위한 여행을 떠났다.
소녀는여행의 과정에서 자신의 진정한 운명을 깨닫고.
성녀와 만나, 성검을 손에 넣어.
제국으로부터 왕국을 구할 용사가 되었다.
그녀가 용사가 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탈체크는 그녀와 만났다.
운명의 장난으로, 혹은 누군가의 의도대로.
제국의 검투장에 몰래 숨어들어온 용사 레시아.
탈체크와 그녀는 목숨을 걸고 전투를 벌였다.
3일에 걸쳐 이루어진 결투.
성검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고.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비겁하다고 불릴지언정 평범한 검투사인 자신이 용사에게승리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그리고 패배했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용사 레시아에 의해 검투장의 노예들이 해방되며, 탈체크 역시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리고 레시아는 탈체크에게 자신의 동료가 되어줄 것을 부탁했다.
탈체크는 알지 못했다.
이렇게나 강한 존재가 어째서 자신을 동료를 원하는가.
그녀에게 성검을 전해준 성녀도 아니고.
그녀에게 지혜를 빌려주는 대현자도 아니고.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끈질기게 살아남아 검을 휘두르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자신을.
그때 용사 레시아의 손을 잡은 것은 정말로 `어쩌다 보니까`였다.
그 뒤의 제국과의 싸움도 그랬다.
용사 레시아는 늘 그런 운명을 짊어지고 태어난 것처럼
제국과의 싸움을 이어나갔고.
탈체크도 그 옆에 서 있었다.
마침내, 제국의 황제를 꺾고.
그에게 지배당한, 절멸의 폭풍이라 불리던 용을 쓰러트려.
제국과의 길고 긴 싸움이 끝날 때까지.
탈체크는 단 한 번도 레시아와 검을 마주하지 않았다.
"성녀도, 대현자 녀석도. 그 자리에 있기에 어울리는 존재였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지."
탈체크는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저, 용사에게 끌려 다니며 어쩌다 보니 역사적인 순간에 있었을 뿐이다."
"그런…! 그럴 리 없잖아요! 용사 레시아는 분명 아버지를 동료로…!"
양아버지를 위로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바보 같은 그를 훈계하려는 것일까.
이오나가 절박한 마음으로 그렇게 외친 다음 순간.
"큭..."
뒤쪽에 쓰러져 있던 유스테스가 눈을 떴다.
"시끄럽군…. 대체 누구야…?"
조용히 눈을 뜨면, 유스테스의 눈에 이오나의 모습이 보였다.
"...이오나? 어째서 네가 여기에…."
분명, 좋지 않은 이별을 한 뒤의 첫 재회였기 때문에 유스테스는 조금 놀란듯했다.
"뭐냐. 통성명은했나? 이쪽은 내 딸이다."
"... 이오나가 검성 탈체크의 딸...?"
유스테스는 그러면 얼굴을 찌푸린 뒤 `하하….`하고 힘없이 고개를 떨어트렸다.
"그럼, 레오나는 뭐지? 탈체크의 제자라도 되는건가?"
"... ..."
아무리 바보 같은 유스테스라도, 이오나와 탈체크의 관계를 알고.
그리고 그런 이오나와 구면인 듯한 레오나를 떠올리면.
그녀들이 우연히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은 조금 억지였다.
그리고 탈체크와 싸우면서 느낀 것.
그의 검과 레오나의 검은 닮아있었다.
다만, 그런 것을 깊게 생각할 여유도 없이.
덤벼들고, 쓰러지고를 반복하며머리에서 잡념을 지워냈다.
"좋아. 역시 나만 바보 같은 녀석이었군. 언제나처럼."
유스테스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손에서 검을 놓았다.
탈체크는 그런 유스테스를 바라보며 무언가 이야기 하려 했다.
하지만.
"탈체크님."
자신을 부르는 남성의목소리에 멈추고 그쪽을 돌아본다.
이오나 역시 갑작스럽게 나타난 인기척에 탈체크와 함께 그곳을 보면.
그곳에는, 초록색의 로브를 뒤집어쓴 남성이 서 있었다.
"당신은…!? 회귀자들과 함께 있던…!"
이오나가 그를 알아보며 전투 자세를 취했다.
그럼 탈체크가 팔을 뻗어서 이오나를 가로막았다.
"아버님...!"
자신을 지키는 듯 앞으로 나서는 탈체크를 바라보는 이오나.
"... 뭐냐."
탈체크는 얼굴을 찌푸린 채로 후드의 남자, 미카시아를 바라보았다.
"맥스웰이 모든 준비가 마쳐졌다고 합니다."
"...어?"
이오나가 그렇게 말한 다음 순간.
탈체크가 웃었다.
"그러냐,드디어군."
"아버…. 님…?"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변하며, 창백한 표정이 되는 이오나.
그리고 탈체크의 손이 그녀의 목에 닿자.
저항할 새도 없이, 그녀의 몸이 `성검`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더는 그 검에서 `이오나 슈발리에`의 의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뭐, 뭐야…? 사람이 검으로…?"
단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주저앉아 있는 유스테스.
미카시아가 몸을 돌려 저택을 빠져나가려고 하면.
탈체크 역시 그 뒤를쫓는다.
"기, 기다려! 탈체크!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일생일대의 싸움이지. 내 목숨, 자존심, 그리고 어울리지도 않게 꿈까지 걸은."
탈체크의 웃음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유스테스는 전신을 감싸는 살기에 숨이 막히는 듯했다.
그런 유스테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탈체크는 미카시아에게 말한다.
"녀석은 살아있는 숲에 있는 건가?"
"네. 티오와 함께 미개척영역에."
"...그래."
움직이지못하는 유스테스를 놔둔 채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진다.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
그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정신을 잃기 일보 직전에서.
겨우 호흡을 되찾은 유스테스만이 남은 저택의 수련장.
주먹을 꽉 쥔다.
"젠장…! 결국, 나는 또…! 아무것도 모르는 채…!"
무력함과 무지에서오는 수치.
잠깐이라도 탈체크를 스승으로 여겼던 자신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미카시아는 맥스웰이라는 이름을 댔다.
그 이름은, 아버지가 늘 친분을 유지하던 교단 사제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조금 이상한 남자였다.
언제나 희귀한 고대의 유물을 아버지에게 가져다주던 그가.
검성 탈체크와 함께무언가를 벌이려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거기에 자신의 아버지가 엮여있지 않을 리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탈체크를 부르러 온 남자 역시 아버지의 측근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 했다.
자리서 일어나 몸에 감았던 붕대를 푼다.
잠깐이지만이오나의 회복마법을 받은 덕분에 몸은 충분히 움직일 수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유스테스는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002
"프로메테우스...카흑...!"
마법의 발동이 도중에 중단되면서, 쇳소리가 흘러나온다.
입에서 피를 토하는 라일라.
마력이 벌써 고갈되어 버린 것이다.
"루베라!"
"하앗...!"
클레온과루베라가 동시에 플랜트 골렘의 같은 곳을 베어낸다.
클레온의 검이 외피를 깎아내면, 그곳을향해 바리사다가 내리쳐지고.
그 부분이 불타오르며 플랜트 골렘이 주춤하고 뒤로 물러선다.
"재생한다! 뒤로!"
"알고 있습니다…!"
클레온의 지시에 따라 크게 뒤로 도약하는 루베라.
플랜트 골렘은 압도적인 재생력으로 몸에 붙은 불을 덮어서 꺼버리고는
광분하여 주먹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그 사이에 포션을 마신 라일라가 다시 한 번 마법을 사용한다.
"프로메테우스 게이트!"
쏟아지는 화염의 창.
이번에야말로 재생할 틈도 없이 잿더미로 화하는플랜트 골렘을 바라보며 클레온과 루베라는 땀을 닦았다.
"괜찮아? 포션은 얼마나 남았지?"
"...앞으로 1병."
라일라는 가방의빈 병중에, 유일하게 액체가 들어있는 병을 꺼낸다.
권속들 하나하나의 개인적인 무력은 화염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다만, 그 때문인가? 화염 외의공격에 대해서는 압도적으로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것이었다.
베기, 꿰뚫기, 찢기 등 물리적인 공격을 당하더라도 땅에서 에너지를 흡수해서 회복한다.
그렇기에 라일라가 가지게 되는 부담도 컸다.
일반적인 권속이라면 커다란 소모 없이도 쓰러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나아갈수록 그 수가 많아지고.
플랜트 골렘까지 등장하면.
아무리 막대한 양의 마력을 가지고 있는 라일라라고 하더라도.
마력고갈이 찾아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차원문으로 도시에 돌아가서 보급을…."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자 라일라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이쪽에서 그곳으로 여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쪽으로 돌아올 때는 차원문이 열리지 않아."
"...어째서죠?"
라일라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입을 열었다.
"이곳이 `절계`이기 때문이야."
클레온은 그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절계?"
오직 루베라만이 모른다는 듯했다.
"그래. 단절된 세계. 무엇인가의 방법을 통해 세계에서 개념적으로 분리된공간. 이 경우에는 절계수의 존재 자체가 그 원인이겠지. 지금은 아직 살아있는 숲의 나머지 영역과 물리적으로 연결되어있지만…."
라일라는 그렇게 말하면서 남은 마력 포션을 들이킨다.
그럼, 클레온이 그 뒤를 이어서 말하는 것이었다.
"이곳은 이미 이차원이 되었다는 거다. 절계는 바깥에서 이쪽으로 향하는 모든 개념적인 간섭을 거부해. 그러니 바깥에서 들어오려면 아까처럼 걸어 들어오는 수밖에 없어."
루베라는 클레온의 말에 잠시 침묵한다.
"아직. 이라고 했죠."
"그래 맞아. 절계수가 완전히강림하면 녀석이 이곳을 탈출함과 동시에 이 미개척 영역 전체가 이차원으로 떨어질 거야."
라일라의 말에 클레온도, 루베라도 침묵했다.
"클레온도 알고 있는 것은 의외였습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는 루베라.
"...예전에 조금…. 아니. 이 이야기는 나중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서둘러야 해."
클레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라일라.
그녀의 다리는 조금 떨리고 있는 듯했다.
"...다쳤나?"
"아냐. 조금…. 무서울 뿐."
두려움의 감정을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라일라는, 이전의 지하 감옥 이래로 처음이었다.
다만, 그때와는 다르다.
그녀는 그 공포를 `책임감`을 통해 이겨내려 하고 있었다.
"... ..."
클레온은 말없이 라일라를 잠시 바라보다, 그녀의 어깨를 두들겨 주고 앞으로 나아갔다.
"...매정한 남자군요."
루베라는 그런 클레온을 보며 조금 볼을 부풀리지만.
라일라는 잠시 그가 두들긴 어깨 위에 손을 올리더니 눈을 반짝였다.
그녀의 눈에 용기의 불꽃이 돌아왔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그 입은 웃고 있었다.
"... 후우…!"
앞으로 남은 거리는 조금.
자신의 역할은, 길을 뚫어 회귀자들을 막을 수 있는 곳까지 가게 하는 것.
그렇다면….
꼭 자신이 마지막까지서 있을 필요는 없어!
"클레온 비켜!"
"...뭐?"
라일라의 말대로 클레온이 잠시 옆으로 비켜서자.
다음 순간,강렬한 화염의 기둥이 뿜어져 나오며.
그 앞 수백 미터를 감싸고 불탄다.
"... ...!"
그 결과, 땅마저 갉아낸 화염의 일격이.
일직선으로 숲을 관통하며길을 만들었다.
다음 순간, 라일라가 다시 한 번 피를 토하면서 자리에서 쓰러졌다.
마력 탈진. 고갈을 넘어 몸에 무리가 올 정도로 무리한 마법 행사.
자칫하면 마력신경을 다치게 할 수도 있는 무모한 행위였다.
루베라가 재빨리 라일라를 붙잡으면, 클레온이 다가왔다.
"자…. 이걸로 빨리 갈 수 있지."
"...너…."
"걱정 마. 결계석은 가지고 왔으니까…. 물론, 얼마 가지 않겠지만."
라일라는 떨리는 손으로 가방에서 붉은색의 결계석을 꺼내 보인다.
라일라 본인의 마력을 담은 화염의 방벽이 펼쳐지는 물건이었다.
절계수의 권속들이라면 닿지 못하겠지.
"가. 클레온. 나는…. 조금 쉴래."
루베라가 클레온을 바라본다.
정말로 이곳에 두고 갈 것인가.
클레온은 잠시 라일라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고맙다 라일라. 나도 내 책임을 다하고 오마. 그러니까…. 나에게 맡겨 줘."
라일라는 그의 말에 피식하고 웃으며 결계를 발동했다.
루베라는 뒤로 물러서며 라일라가 화염의 벽 안에 둘러싸여 지는 것을 본다.
클레온은 루베라에게 이야기한다.
"가자. 맥스웰은 이 앞이야."
"...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