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수단
머리 위를 뒤덮는 비명의 하늘이 싫었다.
가혹한 환경의 용의 계곡은 맑은 하늘을 보이는 날이 거의 없었고.
설령 날이 개더라 하더라도 하늘을 올려다보다 와이번과 눈이 마주치면.
그날로 그들의 일용할 양식이 되는 것이 결말이었다.
마을이 싫었다.
그런 삶을 강요받는 자신의 일족이 싫었다.
그리고 거기에 순응하며 살 수밖에 없는 스스로의 무력함이 싫었다.
가족이 싫었다.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채 나를 낳은어머니.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나를 사랑하셨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 더더욱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가정 자체가.
나라는 인간의 인생의 근본조차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 참을 수 없었다.
내가 싫었다.
눈앞에서 같이 놀던 아이가 와이번의 발톱에 의해 피를 흘리며 하늘 위로 날아가던 순간.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자기 자신이 싫었다.
울지도 않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던 내가 너무나도 미웠다.
싫다.
싫다.
싫다.
단 하나 좋아하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첨탑에 올라 별을 보는 것.
나만이 알고 있는 소중한 비밀의 장소.
하늘이 맑고, 달이 밝은 날.
이곳에 올라 위를올려다보더라도.
창공의 포식자들은 이쪽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비밀의 장소는 비밀이 아니게 되었다.
나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남자아이가 첨탑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본 것은 언제였을까.
어린아이의 욕심은 때때로 이유 따윈 아무래도 좋아서.
그저, 자신의 장소를 빼앗겼다는 생각에 눈물이 돌았다.
그러니까. 그날도.
별을 보기 아주 좋은 화창한 밤에도.
그저,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나갈 수 있을 날만을 기다리며.
밤 자리에 들었다.
자기 전에 어머니가 했던 말씀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말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집이 불탔다.
사람이 불탔다.
마을이 불탔다.
죽이고 범하고 부수고 때리고.
사방팔방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고함.
눈앞에서어머니가 자신에게 마법을 걸며 목이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머니를 살해한 자의 손길이 나에게 닿는다.
그 순간.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다.
황금색 섬광과 함께.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옆에 있는 남자가 차원문을 찢으며.
모아두었던 마을의여자 중 일부.
자신을 포함하여 열 몇 명을 데리고 그곳을 벗어난다.
별을 바라보던 첨탑으로 고개를 돌렸다.
약한 빛이 보였다.
저기에 혹시라도 그 소년이 있더라면.
자신의 별것 아닌 감정으로,함께 별을 보는 것을 포기한 소년이 있다고 한다면.
아아.
함께였으면 좋았을 텐데.
반짝이는 하늘의 경치를 공유했으면 좋았을 텐데.
여기서는 별이 잘 보이지 않아.
001
클레온이 눈을 뜬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어젯밤의 일이 서서히 플래시백 되면,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몸을 일으켰다.
그곳에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 조용히 한쪽 눈에서 눈물을 흘리는.
무표정한 루베라가 있었다.
그녀의손등에그려진 추방의 문양은.
클레온이 새긴 지배의 각인에 덮어씌워 져.
기하학적인 문양을 나타내고 있었다.
"루베..."
그녀의 이름을 부르려는 순간, 루베라가 클레온을 돌아보았다.
정면에서 보면, 어딘가 분한 얼굴이었다.
"보았죠. 변태."
그녀가 말하는 클레온이 `본 것`.
아마, 각인을 통해 흘러들어온 루베라 본인의 과거.
클레온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악이에요. 멋대로 제 과거를 들여다보다니."
"... ..."
클레온은 말하지 않았다.
분명, 지배의 각인을 사용하여 타인의 과거를 엿보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때때로.
각인된 자가보여주고 싶은 과거가 자신에게 꿈의 형태로 흘러들어올 때가 있다는 것을.
어쩌면 루베라는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멋대로 포기한 장소에 들어간 것이.
그 소년이 클레온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해서 바뀌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클레온과 루베라. 두사람이 함께 루티에게 보호받아.
이 마을에 같이 오게 되는 미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과정에서 희생된 마을의 사람들이나.
루베라의 어머니의 죽음이 뒤집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루베라는 똑같이.
증오하던 모든 소중한 것들의 상실로 소중함을 깨닫고.
복수의 칼날을 갈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클레온은 말하지 않았다.
루베라도 더는 묻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클레온의 손이 닦아낼 뿐이었다.
002
조용히 그녀의 눈물이 그치길 기다리면 라일라가 노크를 한 뒤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이런저런 검사용의 마도구를 쥔 채.
묘한 분위기의 두 사람을 보고는 쭈뼛 거리며 가까이 왔다.
"몸 상태는 어때?"
라일라가 루베라에게 묻자, 루베라는 천천히 몸을 움직인다.
"문제없습니다. 오히려 더 좋아진 것 같기도 해요."
"다행이야. 클레온이 제대로 해줬구나."
"예에…. 그거야. 질펀하게 해댔죠."
마치 비꼬는 듯한루베라의 말에 라일라는 얼굴을 붉히고.
클레온은 멋쩍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몸의 마력신경들도 대부분 정상으로 돌아왔어. 이걸로 마검의 각성에도 문제가 없을 거야."
"마검의 각성…. 바리사다."
루베라가 조용히 자신의 마검의 이름을 부르자, 벽에 걸려있던 그녀의 아름다운 검이.
은은한 마력광을 낸다.
"어때?"
"모르겠습니다. 각성은 제 의지로 가능한 것이 아니니까요."
루베라는 그렇게고개를 저었다.
라일라도 그런가, 하고 아쉬운 듯 내뱉은 뒤.
클레온에게 고개를 돌렸다.
"클레온도. 갈라테아의 상태는?"
"문제없어."
그 대답은 클레온이 것이 아니었다.
마검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며 클레온의 곁에 나타나는 초록색 머리의 여성.
루베라는 그 모습을 보며 조금 놀란 듯했다.
"당신이, 클레온의 마검?"
"그래. 갈라테아야."
루베라의 말에 자신을 소개하는 갈라테아.
루베라는 살짝 눈을 가늘게 뜨며 클레온에게 이야기했다.
"놀랍군요. 유아체형의 화신이 아니라니."
"뭘 오해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소아성애가 아니야."
어째서일까. 그 말에 데미지를 입은 것은 라일라였다.
"당신의검이 각성하기 위해선, 계기가 필요해."
갈라테아가 무심히 루베라에게 이야기한다.
루베라는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계기…. 인가요?"
"그래. 말하자면, 강력한 충격일까. 각성은 말 그대로 `일어나는 것`. 잠에서 깬다고 표현해도 되겠지."
갈라테아의 말에 루베라는 턱에 손을 가져가고 곰곰이 생각한다.
그때. 비가 오는 뒷골목에서.
절망의 늪에 빠진 자신에게 들려온 목소리는 틀림없이 바리사다의 것이었다.
갈라테아가 말하는 계기라는 것은.
아마, 주인의 격렬한감정의 기복.
절망. 분노. 슬픔. 증오.
부의 감정의 단계가 최고 수준에 도달했을 때.
마검은 길었던 잠에서 깨어나, 주인에게새로운 힘을 부여한다.
클레온에게 엉겨 붙으며 볼에 키스하려는 갈라테아를 바라본다.
혹시라도 바리사다가 이런 부류의 마검이라면….
같은 생각을 하지만, 그렇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럼, 두 사람 모두 옷을 갈아입고 응접실로 와 줘.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
라일라는 방금 전까지의 풀려있던 표정에서 진지한 얼굴로 바꾸고.
자리에서 일어서, 방을나섰다.
루베라도 클레온도 옷을 입으려 하지만.
"아."
루베라의 말에 그곳을 돌아보면.
소중한 부분과 겨드랑이 부근에 구멍이 나 있는 옷이 보였다.
"... ..."
003
"옷을 갈아입고 오라고 했는데…."
라일라는 이마에 힘줄을 띄운 채 인상을찌푸리고.
눈앞의 루베라를 바라봤다.
클레온과 함께 응접실로 나타난 그녀의 차림은.
속옷 위에 클레온의 조금 큰 셔츠를 걸친 채였다.
"옷이 없다면 사샤의 옷이라도 빌려 입으란 말이야!"
"제 옷인가요!?"
라일라가 불같이 화를 내면 사샤가 깜짝 놀라 입을 열었다.
쿠온은 살짝 얼굴을 붉힌 채 루베라로부터 시선을 돌렸고.
루티만이 진지한 표정으로 책상위의 서류를 빠르게 살피고 있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업무모드의 루티였다.
"길드에서 살아있는 숲의 `미개척 영역`에 대한 의뢰를 발행했어."
그 말에 눈이 크게 띄어지는 클레온.
지금까지 그곳의 의뢰를 만드는 것도, 수락하는 것도.
루티가 만들어 놓은 길드의 규칙에 의해 금지되어 있었다.
설마, 루티가 떠나자마자 그규칙이 바뀌게 될 줄이야.
하지만 회귀자들의 목적이나 휴즈 후작이 그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찌 보면 당연한 절차였다.
"의뢰의 내용은?"
"미개척 영역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탐색 대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야."
"어정쩡하군."
라일라는 고개를 끄덕인다.
모험가들은 확실한 목표가 있는 의뢰를 좋아한다.
그편이 완수하였을 때도 보수를 주장할 수 있기 편하기 때문이다.
아마, 일반적인 모험가들이라면 루티를 생각해서라도 이 의뢰를 거절할 것이다.
"보수는 확실히 좋지만."
쿠온이 말하며 양피지의 보수 부분을 가리키면.
웬만한 모험가가 10년 가까이 쉬지 않고 일해야 벌 수 있는 금액이 적혀 있었다.
물론, 위험도를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부족한 정도지만.
"아마. 이 의뢰를 받는 건 회귀자들의 입김이 닿아있는 모험가들이겠지."
루티가 양피지를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래도 미개척 영역을 허가 없이 드나들면 주변에 의심을 사게 돼. 그걸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모두에게 기회를 주듯 의뢰로 발행한 거야."
"회귀자들과 그 수하들은 그저 돈에 미친놈들 정도로 생각된다는 이야기인가…."
응접실에 침묵이 감돌았다.
아마, 여기까지는 그들의 의도대로 일 것이다.
중간에 휴즈 후작의 패에서 루베라가 사라진 것만이 가장 커다란 예상 밖이겠지.
그들이 미개척 영역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는 뻔했다.
절계수 슈라드셀의 부활.
자신의 마력만으로 세계를 변형시키는 것이 가능한 존재가.
인간의 증오로 그 형태나 성질을 바꾸어 다시 이 세상에 나타난다면.
대체 얼마나 커다란 희생이 일어날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할래? 지금이라도 루티가 돌아가서 이 의뢰를 파기시키도록 하는 것이..."
라일라가 한 가지 아이디어를 꺼내지만, 루티는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해. 나는 이제 완전히 길드 마스터의 권한을 내려놓았으니까. 길드에서는 외부인이야."
"하지만 설득 정도는가능한 게 아닐까요?"
그렇게 말하는 쿠온에게, 루티는 잠시 고민한다.
그러고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몇 명이나 내 이야기를 들어줄지는 모르겠지만…. 알겠어.해볼게."
"제가 이대로 후작가로 가서 그의 목을 베는것도 방법입니다만."
섬뜩한 말을 하는 루베라.
클레온은 잠시 고민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지만, 그가 죽는다고 회귀자들이 멈출 것 같지 않아."
"그렇습니까…."
다시 한 번 조용해지는 응접실.
그때, 클레온은 계속해서 마음에 걸리는 사실을 입에담았다.
"애초에, 휴즈 후작은 어째서 회귀자들과 함께 하는 거지?“
"...? 그거야, 고대의 유물로 이득을 얻으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왜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루베라의 말에 라일라는 고개를 젓는다.
"아니, 절계수가 부활하게 되면 도시에 자리를 잡고 있는 본인도 위험에 빠질 수 있어."
"거기까지 생각 못 하는 얼간이…. 라고 하고 싶지만. 그 정도로 멍청한 건 유스테스 정도군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클레온.
"자신의 목숨은 안전하게 보장되어있다. 라는 건가?"
"목숨이 보장된다니…. 상대는 세계수라고 불리던 존재잖아요?"
사샤의 말에 클레온은 어제의 회귀자들과의 대화를 떠올린다.
그들은 절계수를 토벌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맥스웰은 미쳐있지만, 그들은 죽었다고 알려진 클레온을 계산 안에 넣고 행동할 정도로 치밀하게 계획을 만들어 두었다.
그렇다는 것은 즉-.
"녀석들은 절계수를토벌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어느 의미에선 다행이군요. 적어도 절계수를 멈출 수단이 있다는 것이니"
루베라의 말에 클레온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수단이란 게 실제로 유효할지는 아무도 몰라. 상대는 수천 년 전의 존재잖아."
"... ..."
수천 년 전의 존재.
세계의 적.
무언가를 계속해서 생각하는 라일라.
이윽고 퍼뜩, 자신이 도달한 결론에 경악하여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오나 슈발리에... 성검...!"
"... ... 설마."
라일라는 클레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용사가 세계의 적과 싸우다 쓰러지게 되면, 성검이 가지고 있는 기능이 발동해서 폭주하게 돼. 알베인이 그랬잖아!"
"...하늘을 찢을 정도로 강력한 신성마력의 폭주. 세계의 적이 소멸할 때 까지 멈추지 않는 빛의 화신. 하지만 이오나는 반은 성검, 반은 인간이야."
"검의 핵이 작동하는 것을 봤지? 그녀에게도 성검의 기능이 제대로 들어있다는 증거야. 이오나의 성격 상 절계수를 막기 위해 자신의 희생이 필요하다고 하면..."
라일라가 거기까지 말하자, 쿠온은 걸린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하지만...그 사람들. 회귀자들은 슈라드셀은 죽일 수 없는 존재라고 했어."
"그건 세계수일 때의 이야기. 그들의 말 대로라면, 이미 그들은 별과의 연결이 끊어진 채야.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겠지."
"...그래서 그것과 공멸할 수 있는 성검의 폭주를 노리는 건가…."
클레온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오나를 찾아야 해."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루베라.
잠시, 클레온은 루베라의 모습을 본다.
"...너는 우선 옷을 어떻게든 하자."
"... ..."
004
루베라는 루티가 소장하고 있던 귀여운 여자아이용옷 컬렉션 중에서 하나를 받아 몸에 걸쳤다.
루티가 말하길, 클레온과 놀기 위해 준비해 두었던 복장 중 하나라고 하는데.
전체적인 인상은 몸 전체에 딱 달라붙는 활동하기 편한 복장이었다.
대신, 팔 부분은 어깨까지밖에 존재하지 않고.
가슴의 윗부분이 노출되어 있었다.
허리에는 양쪽 허벅지를 가리는 판자와 벨트를 대신하는 노끈.
그 외의 부분은 모두 검은색의 타이즈와 같은 재질이다.
"잠깐…. 좀 더정상적인 옷은 없는 겁니까…."
루베라는 루티에게 그렇게 불만의 뜻을 표하지만.
나머지는 전부하늘하늘한 드레스거나, 귀여운 장식들이 잔뜩 달린 옷이었다.
"...큭..."
루베라는 분하다는 듯 침음을 흘렸다.
클레온으로써는 이전에 입던옷에서 시종 복장만 벗은 것뿐인데.
같은 감상밖에 일어나지 않았다.
"자, 그럼 갔다 와. 우리도 루티가 준비되는 대로 도시로 갈 테니까."
"그래."
라일라가 차원문을 열어젖힌다.
클레온은 자신의 몸에 체인질링 마법을 사용하여 우선 신분을 숨긴 채.
차원문을 통과해 도시 안으로 들어섰다.
발을 내디딘 곳은 도시의 뒷골목.
"이오나는 어제 탈체크에게 간다고 이야기했다…. 어찌됐든 휴즈 후작의 저택으로 가야겠군."
클레온의 말에 루베라는 잠시 자신의 문양을 내려다본다.
"걱정하지 마. 추방의 문양은 더는 기능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길 바라야겠죠."
루베라와 함께 휴즈 후작의 저택으로 다가가, 클레온의 마법으로 두 사람의 몸을 감춘다.
가볍게 담을 뛰어넘어 들어가 이오나나 탈체크의 모습을 찾으면.
"잠깐."
루베라가 클레온을 멈춰 새우고 벽 뒤에 숨었다.
그곳에는 몸 이곳저곳에 붕대를 감은 채 검을 들고, 저택의 수련장으로 향하는 유스테스의 모습이 보였다.
"뭐지? 검의 수련이라도 하고 있는 건가?"
"제가 알기로 유스테스는 첫째로 노력. 두 번째로 근면. 세 번째로 성실을 싫어하는 인간입니다."
그런 인간이 수련이라니 있을 수 없죠. 라고 말하는 루베라.
하지만 클레온은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유스테스의 눈은 그저께 던전에서 겁에 떨던 그때와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분노.
그 분노가 어디로 향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
바로, 약한 자기 자신을 향한 분노였다.
"설마, 탈체크가 녀석을 훈련하고 있는 건가?"
"바로 그렇다."
클레온이 중얼거리자, 대답이 돌아왔다.
기척 없는곳에서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루베라와 클레온이 동시에 검에 손을 올리자.
그곳에는 웃고 있는 탈체크가 보였다.
"탈체크...당신. 우리가 보이는 건가?"
"엉? 아니. 하지만 인기척이나 살기 같은 건 느껴지는군."
살아있는 숲의짐승들도 눈치 채지 못한 클레온의 장막을 꿰뚫어 보는 검성의 짐승적인 감각.
클레온은 대체 이 고릴라는 평소에 뭘 먹고 사는지에 대해 진심으로 궁금해질 뿐이었다.
주변에 다른 인간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장막을 푸는 클레온.
탈체크는 루베라를 보더니 클레온을 보며 웃었다.
"또 여자를 늘린 거냐 클레온. 너도 꽤 하는구나."
"저는 클레온의 여자가 아닙니다. 고릴라."
얼굴을 찌푸리는 루베라.
탈체크는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탈체크. 휴즈 후작과 함께 지내면서 무언가 알아낸 게 있나?"
"음. 녀석이 조금은 술에 대한 안목이 있는 녀석이란 것은 알겠더군. 창고의 술들이 하나같이 맛이 좋아."
"벨까요."
"참아. 나도참고 있으니까."
손잡이에 손을 올리는 루베라를 제지하는 클레온.
"이오나에게서 절계수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겠지."
"아아 들었다고. 녀석들이 무엇을노리고 있는지도. 정말 일이재밌게 돌아가지 않느냐 클레온."
그런 태평한 말에 클레온은 더욱 인상을 구길 뿐이었다.
명색이 왕국 정보기관 소속의 인간이, 국가를 넘어 대륙 전체에 위험이 될 만한 사건을 보고.
`재밌다`라는 감상을 남기는 것이 클레온으로서는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검성 탈체크.
오직 검 하나만으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달성한 사나이.
그렇기에강자에 대한 욕구가때로 양심이나 상식을 앞선다.
"녀석들이 절계수를 토벌하기 위해 이오나를 이용하려 할지도 몰라."
"호오. 슈발리에를? 녀석은 그렇게 강하지 않은데."
"... 그녀는 강해. 당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클레온의 말에 탈체크는 잠시 클레온을 내려다봤다.
마치, 무언가를 품평하는 듯한 눈.
그렇게 한참을 무언으로 바라보더니, 입을 크게 열어젖히며 웃는 것이었다.
"딸은 안준다!"
"좋아. 베자."
클레온이 검을 뽑아들려 하자, 이번엔 루베라가 막았다.
"진심입니까? 그녀는 당신의 딸인데…."
"시끄럽구만. 그렇게 걱정되면 본인에게 말하면 되잖냐."
하는 말은 열받지만 지금으로선 그것이 최선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클레온은 탈체크에게 물었다.
"... 그녀는 어디에?"
"길드에서 미개척영역의 탐험 의뢰를 냈다는 것을 듣고 그곳으로 갔다. 허둥지둥 뛰어가더군."
루베라는 자신과 이오나가 미개척영역에 떨어졌었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이오나로서도 그곳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잘 알고 있을 테니.
혹시 모를 바보들을 말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겠지.
"이 고릴라에게서는 부성애의 'ㅂ'자도 느껴지지 않는군요."
루베라의 말에 끄응, 하고 소리를 내는 탈체크.
"주변의 녀석들이 나를 이름보다도 고릴라라고 부를 때가 더 많은 것 같은데."
클레온은 가볍게 탈체크의 푸념을 무시하고 루베라와 함께 움직인다.
"어이, 클레온."
그런 그를 탈체크가 가볍게 불러 새웠다.
"이럴 때 그 녀석이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회귀자도, 휴즈 후작도. 놓치지 않고 빠짐없이 베었겠지."
"어쩌면, 절계수가 나타나더라도 그것마저 말이야."
클레온은 탈체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그 녀석이 될 수 없어.베어야 할 대상을 틀리지 마라."
탈체크의 말은 어딘가 자조에 가까웠다.
클레온은 그런 옛 스승을 잠시 바라본 뒤.
조용히 저택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부탁한다고. 클레온. 네가 베어야 할 녀석은…."
무언가를 맡기는 듯 나지막이 이야기한 탈체크는
유스테스가 기다리고 있을 수련장으로 발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