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6화 〉잠입 (36/72)



〈 36화 〉잠입

결국 그들의 행위가 끝난 것은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뒤였다.

페르디아도 클레온도 녹초가 될 정도로 서로의 몸을 탐하고.

하나의 침대 위에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클레온이 눈을 뜨면 페르디아의 모습은 없고.

깨끗하게 몸이 닦인 채 침대에서 자는 자신의 모습만이 있었을 뿐이다.



`...너무 많이 했다.`

클레온의 머릿속에 울리는 후회.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없지 라고 깨끗하게 털어버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우선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적당히 옷을 갈아입고 옆방으로 가면.

침대에 등을 기대고 앉아있는 루베라의 모습이 보였다.

병실의 입구와는 반대편에 있는 창문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클레온의 인기척에 고개를 돌리면

그녀의 피곤한 듯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클레온은 조금 당황하며 묻는다.

"...뭐야, 안 잤나?"

"...잘 수 있겠나요. 바로 옆방에서 끼익 끼익 앙앙. 부끄럽지도 않나요?"

"... ..."

 나름대로 최대한 조심….

아니, 중간부터는 완전히 고삐가 풀렸었지.

"...미안하군."

클레온이 면목 없다는 듯이 사과하자 루베라는 잠시 클레온을 바라본다.

그러고는 입가를 가리며‘후후.’ 하고 웃는다.

"재밌네요. 사람에게 장난을 친다는 것은."

"...?"

"아아. 죄송해요. 사실 깔끔하게 잤어요. 당신들이 나가고 나서 10분 정도 뒤…? 그러니까 정말로 조금밖에  들었단 이야기죠."

아무래도 루베라의 성격은 조금…. 타인을 괴롭히는 것을 좋아하는 듯했다.

클레온은 이것도 설마 마검의 영향인가 잠깐 생각했지만.

길드에서 유스테스에게 행하던 독설이나 폭행을 떠올리고는 쉽게 이해했다.

"그 아이도 당신이 마검의 힘을 사용하여 지배한 건가요?"

그러고는 클레온에게 물어온다.

확실히 페르디아에게도 지배의 각인이 부여되어 있다.

원한다면 그녀의 힘을 빌려 쓰는 것도 가능하고,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도 가능.

하지만 어떨까.

페르디아의  태도는 몸을 섞기 전부터 그러했다.

은혜에 보답하려는 의도로 행해진 성행위부터.

"... ..."

그렇기에 클레온은 대답에 곤란해 한다.

지배의 각인이 부여되어있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확실히 자신은 페르디아를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의지를 종속시키고 있느냐고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그런 클레온의 모습에 루베라는 잠시 침묵하다가 한숨을 내쉰다.



"뭔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네요."

"...무엇이 말이지?"

"각성한 마검사의 모습이 말이죠. 좀 더 난폭하게 힘을 다루고 자유롭게 타인을 속이고,지배하고."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는 루베라.

그리고 옆에 세워져 있는 그녀의 검 `바리사다`를 바라본다.

검은 칼집의 안에 들어가 있는 그녀의 마검은 클레온의것과는 생김새도 분위기도 달랐다.

폭은 갈라테아보다 좁지만, 그 길이는 장검인 갈라테아보다 길었고.

날이 나 있는 방향도 외날.

크로스 가드는 타원형의 얇고 작은 모양.

고풍스러운 디자인의손잡이는 마치 예술품 같았다.



"어제.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습니다."

"마검의... 그렇다면 너도."

루베라는 다시 클레온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고개를저었다.

"아뇨. 칼을뽑기 직전에 당신이 나타나서. 그 뒤에는  들립니다."

"... ..."

그럼 클레온은 잠시 경직된 얼굴로 바리사다를 바라본다.

갈라테아가 허리춤에서 깔깔대고 웃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굳지 않더라도. 별로원망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곳에서 각성해서 폭주했다간 어떤 일이 생겼을지 모르니까요."

그런 루베라의 말에 클레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알기 쉬운 클레온의 반응에 루베라는 다시 한 번 입가를 가리며 웃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알기 쉽군요. 당신이 그 용사 알베인을 몰락시킨 클레온이라니."

"내가 자기소개를 했던가?"

"아뇨. 하지만 알 수 있는 이유는 차고 넘치죠. 아카데미 수석과 면식이 있고, 마검을 다루는 흑마의 일족. 휴즈 후작으로부터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후작은 알베인의 후원자였으니까요."

클레온은 입을 다물었다.

알베인의 이야기가 나온 것도 이유 중 하나였지만.

역시 자신이 기억하던 대로, 휴즈 후작이 알베인을 후원하고 있던 것은 사실이었던 듯하다.

"클레온. 복수는 어떤 느낌인가요? 달콤한가요? 아니면 쓴가요?"

루베라는 클레온을 향해 몸을 들이밀며 물어본다.

그럼 클레온은 잠시 눈을 감은 채 고민하다 대답한다.



"...직접 경험해 봐. 맛의 평가만큼 타인의 것을 믿으면 안 되는 없는 법이지."

클레온의 말에 루베라는 잠시 눈을 깜빡거리다가 가늘게 뜨며 클레온을 바라본다.

"엄청나게 적당한 대답이네요. 하지만 당신의 말대로 이 복수는 저의 것이니. 타인의감상을 물어보더라도 어쩔 수 없겠죠."

조금 불만인 듯하면서도 묘한 이해를 느낀 루베라는 다시 몸을 침대의 등받이에 기댄다.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정중한 듯한 태도이면서도 안에는 장난기를 품고 있고.

얼음처럼 차가운듯하면서도 복수의 불꽃을 태우는 데 여념이 없다.

클레온으로서는 조금 대하기 까다로운 타입이었다.


그때, 병실의 문에 노크 소리가 울렸다.

"페르디아입니다. 클레온님. 그리고 여성분. 들어가도 될까요?"

묘한 예의를 차리는 페르디아에게 클레온이 괜찮다고 이야기하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녀.

옷은 의원 내에서 입는 간호사복이 아닌, 소녀다운 흰색의 원피스 외출복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클레온님. 그리고..."

"루베라입니다."

"루베라님. 어젯밤은 잘 주무셨나요?"

루베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녀의 모습을  살피고 클레온에게 돌아본다.


"작군요. 이 색마."

"?"

루베라의 말에페르디아가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운다.

클레온은 입을 가리며 고개를 돌린다.

부정할 없었다.


루베라는 방금 전 페르디아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몸에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신가요. 다행입니다. 우선 간단한 진찰을 한 뒤에 약을 드시고 기력을 보충해 주세요."

페르디아의 말에 루베라는 잠시 침묵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클레온님. 전해드릴 말이..."

자세히 보면 그녀는 손에 양피지 두루마리를 들고 있었다.

파란색의 인장.

모험가 길드의 것이다.



"길드에 갔다 온 건가?"

"네. 아이 중 몇은 오늘부터 길드에서 임시직원으로 일하게 됩니다.  모습을 보려고 갔다가. 이런 것을."

그렇게 말하며 스크롤을 클레온에게 건네는 페르디아.

받아든 스크롤을 열어보면 안의 내용에 클레온은 조금 경직될 수밖에 없었다.

[흑발 흑안의 여검사를 찾고 있다! 미스릴 대검을 가볍게 휘두를 수 있으며 살아있는 숲의 우두머리와도 대등하게 싸울  있는 실력자다!]

[추기 : 덤으로 미인!]

"어젯밤. 후작 가문의 아드님이 길드에서 그런 여성을 찾으려고 날뛰었다가 직원들의 제지를 받았다고 합니다."

"잠시. 저에게도 보여주시죠."

후작 가문의 아들.

유스테스와 관련된 이야기에 루베라도 눈을 빛내며 의뢰서를 가져간다.

그러고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메마른웃음을 뱉으며 다시 클레온을 돌아보았다.

"이거군요. 저를 추방한 이유가."

"아니, 음…."

클레온은 순식간에 자신이 앉은 의자에서 가시방석이 솟아난 느낌이었다.

반쯤 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루베라.

그 시선이 아팠다.

노골적으로 미안해하는 클레온을 잠시 바라보면 루베라는 다시 고개를 돌린다.



"정말. 알기 쉬워요. 당신."

그러고는 한숨을 내쉬며 의뢰서를 클레온에게 돌려준다.

"별로. 당신의 탓이 아닙니다. 유스테스는 원래 그런 인간. 제멋대로에 안하무인. 흥미가 생긴 것에 쉽게 시선을 옮기죠."

마치 지긋지긋하다는 듯한 목소리.

13년의 세월을  옆에서 지내면서 생긴 것은 빨리 남은 기한을 채우고  지옥 같은 저택에서 떠나겠다는 것뿐이었다.

그를 위해서라면 가짜 충성도 할  있었고.

자기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그들을 떠받드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니 사과 같은 것은 생각하지 마세요."

"...그래."

클레온은 루베라의 말을 곱씹으며 다시 번 의뢰서를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이건 기회일지도 모르겠는걸."

"기회인가요?`

클레온의 말에 귀를 쫑긋하는 페르디아.

그녀에게는 이미 후작가의 뒤를 캐고 있다고 이야기해두었기 때문에 사정은 알고 있지만.

그것보다도 클레온이 암약하는 것에 대해서는 묘한 동경이 있는 듯했다.


"상대가 유스테스 정도라면 나의 변장이 들킬 일도 없고. 가까이에서 후작에 대한 정보를 캐낼 수 있을 테니 말이야."

"...괜찮은겁니까? 말해두지만 휴즈 후작과도 대면하게 될 겁니다. 아들의 옆에 두는 인물은 자신이 확인하고 싶을 테니 말이죠."

 말에 클레온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없어. 휴즈 후작은 마법사가 아닌 거지?"

"네. 그는 상인 외길인 사람입니다."

루베라의 말에 클레온은 자리에서 일어서 자신의 몸에  가지 마법을 사용한다.

그러자, 어제와 같은 경장의 여검사가 그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확실히. 가까이 가더라도 눈치 채기 어렵겠네요."

루베라는눈을 크게 뜨며 눈앞의 청년이 여성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어제 자신이 등을밟았을 때.

분명 그 감촉은 남성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는 것은-

루베라가한쪽 손을 뻗어 클레온의 가슴 위를 잡는다.

"... ...  봐."

"아뇨. 휴즈 후작이 만져올지도 모르기 때문에 확인한 것입니다. 확실하게 감촉은 있군요."

"나한테 감각은 없지만 말이야. 가슴 부분에 스펀지 같은것을 달아놓은 느낌이야."

폴리모프로 만들어진 기관은 의도적으로감각을 차단할 수 있으므로.

자신에게는 움직일 때 걸리적거리는 가슴 따위의 감각은 필요 없었다.

"그렇다면 조금 연기를 해두는 것도 좋을지 모릅니다."

"연기라니…. 신음이라도 내라는 거야?"

"그게 가능하다면 가장 좋겠지만. 당신의 프라이드가 용납하지 않을 것 같군요."

확실히 그 돼지 후작 앞에서 신음을 내는 자신이라니.

클레온은 조금 속이역겨워졌다.



"뭐. 휴즈 후작은 실력을 갖춘 인물을 중요시합니다. 외모도 그 실력 안에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곧바로 손을 대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서둘러야겠군, 돼지에게 갑자기 덮쳐지면 내가 참지 못하고 베어버릴 수도 있으니."

[클레온이 하지 않더라도 내가 하겠지만.]

클레온의 말에 덧붙이는 갈라테아.



"마음 같아선 저도 따라가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감시하고 싶지만…."

그녀는 손등에 새겨진 추방의 문양을 바라보고 분하다는 듯 주먹을 쥐었다.

"저는 지금 우드녹커 가문의 인간에게 다가갈 수도, 그쪽을 바라볼 수도 없는 상태입니다."

"해주의 방법은?"

루베라는 조금 고민하는 듯했지만 자신은 모른다는듯 고개를 저었다.

"조사해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클레온은 페르디아에게 시선을 돌린다.



"페르디아, 그녀를 저택으로 안내해 줘."

"알겠사옵니다."

"...저택? 당신이 소유한 것입니까? 도시에서 사라진 인물치고는 꽤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도 그렇고."

루베라는 그런 클레온에게 조금 의외라는 듯이 이야기한다.

"아니.  소유랄까…. 멋대로 빌려 쓰는 거랄까."

"아아. 무단침입이었습니까."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끄덕이는 루베라.`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이었다.

클레온은 잠시 그 표정을 보며 입을 다물었지만 이윽고 몸을 돌려 의원을 나선다.

뒤를 맡긴다며 페르디아의 어깨를 두드려 주는 것이었다.


클레온이 병실을 나서면 페르디아와 루베라 사이에 묘한 침묵이 맴돌았다.

"연인과의관계를 자랑하고 싶었습니까?`

루베라의 말에 페르디아는 작게 웃어보인다.


"네. 클레온님의 곁에는 조금 여성분들이 많은 듯하여. 저도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없던 지라..."

 경쟁자가 생길  같으니. 라는 말은 생략된다.

그녀의 잿빛 눈에는 사랑하는 이에 대한 경애의 빛과 그를독점하고 싶다는 어둠이 함께 스며들어 있었다.



"세뇌 없이 이 정도라니.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요."

"클레온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고 싶으시다면. 지금부터 가는 곳으로 같이 와주시면 됩니다."

루베라는 그런 페르디아의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조용히 기대져 있는 바리사다를 바라보며 그녀를 허리에 가져가는 것이었다.


001

떠들썩한 길드의 풍경.

길드 마스터가 귀여운 여성으로부터 돼지 같은 추남으로 바뀌었다고 하지만 길드 자체에 큰 변화는 없었다.

원래부터 난폭하고 혈기 넘치는 이들이 모이는 곳이었으니.

거기에, 루티 시온스가 10년 동안 이루어낸 길드의 분위기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반갑지 못한 불청객의 존재만없었더라면.

쾅! 하고직원의 데스크를 내리치는 남자.

"그러니까! 의뢰를 내놨으면 누군가가 받아서 수행할 것 아니냐!지금 어떤 상황이냐고 묻고 있는 거다!"

"그, 그러니까 유스테스님.  번이고 말씀드리고 있지만, 의뢰에 진전이있으면 반드시 의뢰 주님께전달해 드리고 있습니다."

울상이된 여성 직원이 유스테스를 말리지만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행패를 부린다.

"그러면 어째서 그 여자를 찾아오는 놈이 하나도 없단 말이냐!"

마치 어린아이가 떼를 쓰듯,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는 성격.

주변의 모험가들은 그런 그를 보면서 눈을 찌푸린다.

이런 녀석이 아버지의 권력을 등에 업고 난리를 피운다니.

누군가가 나서서 따끔하게 한마디 해주면 좋으련만.


하지만 이곳에 반골 정신을 가진 이들은 많더라도 그런 배짱을 가진 인물은 없었다.

어제와 같이그의 시종이라도 나서서 그를 조용히 시키면 좋겠지만.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도보이지 않았다.

그저 빨리 이 남자가 제풀에 지쳐 얌전해지길 바랄 뿐.

"너희들…. 내가 아버지의 덤이라고 생각해서 날 얕보고 있는  아니겠지…?"

"그, 그럴 리가요! 유스테스님은 어엿한 저희 모험가 길드의 일원이십니다!"

"그렇다면 그에 상응하는 태도를 보이란 말이야!"

마침내 주먹을 들어 올리는 유스테스.


그 주먹이 어디로 향하던 사단이 일어날 것이라 판단한 모험가  일부가 움직이려 한 순간.

솔선해서 그 주먹을 잡는 이가 있었다.


"어이. 그만해."

길드에 울리는 허스키한 여성의 목소리.

감히 자신의 손을 붙잡은 것이 누구인가.

유스테스는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가 눈을 크게 떴다.



그곳에는, 어제 자신을 구해준 흑마의 일족의 여성 검사가 인상을 구긴 채 자신의 손을 잡고 있던 것이다.

"오 오오! 당신은 어제의! 내가 당신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제 발로 찾아와 준거군!"

클레온은 두통이 일기 시작했지만 우선 거기서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붙잡아두었던 그의 손을 놓자-

"크흠. 정식으로 나를 소개하도록 하지."

지금까지의 난폭했던 모습을 없던 일로 하듯이 점잖을 차리며 과장된 자세를 취하는 유스테스.

"나의 이름은 유스테스 우드녹커. 이 길드의 길드 마스터인 휴즈 우드녹커의 장남이자 세상을 구할 용사로서 점지된 남자다."

"... ..."

그런 그의 소개에길드 전체가 찬물을 끼얹은  조용해졌다.


"...레오나. 그냥 모험가."

"그냥 모험가라니! 그대는 자기 키만  대검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그 괴물 같은 곰 녀석의 심장을 꿰뚫지 않았는가!"

 말에 클레온은 유스테스가 좀 닥쳐줬으면 좋겠다는 욕구가 목 언저리까지차올랐지만.

꿀꺽. 침을 삼키면서 가식적인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건…. 당신의 시종과 함께였으니까.그러고 보니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

"아아…. 루베라인가. 그녀는 안타깝게도 그대가떠나간 뒤 목숨을 잃었다네. 살아있더라도 멀쩡하진 않겠지."

짐짓 슬픈듯한 표정을 짓는 유스테스.

그럼 클레온은 유스테스의 그런 모습에 `알베인`을 겹쳐본다.



아아. 확실히. 용사건 용사 후보건.

힘을 가진 녀석들의 대부분은 이런 식인가.

"그래서 그대가 필요하단 거야. 부디 그대가 나의 파티의 일원이 되어줬으면 좋겠네!"

"... 알았으니까  느끼한 말투 좀 어떻게 해."

클레온에 말에 유스테스는 조금 당황한  헛기침을 하지만 이윽고 웃어 보이며 이야기한다.

"그래? 아니  그편이 편하다면야. 아니 그보다, 정말로 나와 파티를맺어줄 거야?"

눈을 빛내며 물어보는 유스테스에게 클레온은 어쩔 수 없지만. 이라는 단어를 덧붙이며 대답한다.

"내가 너와파티를 맺어주지 않으면 길드에서 계속 날뛰었을 테니. `정말로 어쩔 수 없이` 다."

"아니! 아니아니. 그런 일은 없으니까. 하하! 하지만 뭐 깔끔하게 들어와 주는 편이 나한테도 좋지."

좋은 게 좋은 거지! 같은 말을 하며 클레온의손을 잡는 유스테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지? 바로 의뢰를 받을 건가? 나라면 적어도 두 명 정도  사람을 모집하겠는데…."

"아니! 그 전에 우선 아버님께 인사! 그다음에는 네 아버님에게도 인사를..."

이 얼간이의 입을 누가  닫아줘….

클레온은 진심으로 마음속에서 비명을 내질렀다.

002


도시에 있는 우드녹커의 저택은 그 크기야말로 고르티안 백작의 저택만큼 거대하지는 않았지만.

도시 내에 있는 건물 중에서는 가장 화려하고  대량의 경비들이 진을 치고 있는 만큼 눈에 띄는 곳이었다.

클레온이 기억하기로 이 건물은 이전에 이 도시에 있던 몰락 귀족의 대가 끊기면서 그대로 방치되었던 저택.

소유권은 도시가 가지고 있었지만, 이 정도의 저택을 주민의 대부분인 모험가 중에서 구매할 수 있는 인간은 없었다.


그것을 이번에 휴즈 우드녹커가 이 도시에 오면서 자신이 사들여 새롭게 단장한것이다.

상인답게 일 처리 하나는 신속한 듯 부임이 결정된 바로 직후부터 작업을 시작하여.

자신이 도착할 때쯤이면 이미 전부 준비된 상태로 만들어  것은 확실히 감탄할만한 솜씨였다.

유스테스가 당당하게 앞을 걸어가면 클레온은 조용히 그 뒤를 따라간다.

저택의 안 역시 여기저기 화려한 장식품이 가득했다.

휴즈 우드녹커의 취미이겠지만 조금 기분 나빠 보이는 장식들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커다란 쇠 송곳이 이마의 가운데가 박혀 있는괴상한 가면이었다.

 모양은 아무리봐도 인간의 것은 아니었고.

다 드러난 날카로운 이빨. 흉악한 눈.

마치 불이 뿜어져 나올같은 코.


"...이건 대체 뭐야?"

클레온의 질문에 유스테스는 잠시 그곳을 돌아보면서 무심하게 이야기한다.

"아아. 그건 아버지가 고가에 사들인 `악마 봉인의 가면`이야."

"...악마 봉인의 가면?"

확실히 악마 같은 외견이긴 하다.


"조심하는  좋아. 그 악마 아직 살아있거든. 고위의 성직자가 목숨을 바쳐서 봉인한물건인데, 송곳을 뽑으면 부활한다는 것 같아."

클레온은 그런  집에 장식해 두는 휴즈 후작의 악취미.

그리고 그것이 고가에 거래되었다는 사실에 다시  번 두통을 느꼈다.



그런 식으로 몇 번이나 이상한 장식품과 마주치기를반복하여 도달한 저택의 가장 안.

외부인의 침입에서 가장 안전하게 설계된 커다란 방의 앞에  사람은 섰다.

유스테스는 지금까지의 여유 있는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방문을 두드린다.

"아버지. 유스테스입니다. 어제 말씀드린 모험가를 데리고 왔습니다."

잠시의 침묵.

그리고 안쪽에서들려오는 대답 소리는 휴즈의 것이었다.



"아니. 됐다. 네가 알아서 해라. 여자 모험가건 남자 모험가건."

"... ...네?"

"지금 바쁘니까 알아서 하라는 거다! 한 번에 알아먹어! 미련한 놈!"

아들에게 거침없는 폭언을 내뱉는 휴즈.

클레온은 유스테스에게 동정의 마음은 들지않았지만, 휴즈에게 혐오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 그렇다더군. 잘됐네. 솔직히 조금 걱정했으니까."

"걱정?"

"그래. 아버지는 연세도있으신데 조금…. 그쪽이 과하셔서 말이야. 본가에 두고 온 첩만 두 자릿수야."

어깨를 붙잡고 부들부들 떠는 유스테스.


"아름다운 네 모습을 보았다가 혹시라도 아버지께서 이상한 마음을 품으시면…."

"... 됐어. 거기까지. 상상하고 싶지 않군."

"그렇지? 괜한 발걸음을 하게 만들었네.그러면 이대로 다시 길드로 돌아갈까?"

클레온은 기껏 후작가의 안에 들어올 기회였지만, 이상하게 행동해서 유스테스의 의심을 받는 것은 상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쩔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복도를 걸어가는 두 사람.

클레온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은 복도의 전시품들을 보며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003



두 사람의 발걸음이 멀어져 가는 것을 확인한 휴즈는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쉬며 손님과 이야기를 계속한다.

"죄송합니다. 저희 모자란 아들이 때를 가리지 않고."

"아니. 상관없다. 한창 저럴 나이지."

크크. 하고 웃는 남자.

그는거칠게 자신의 앞에 놓인 컵의 액체를 들이켠다.

"...설마, 당신께서 먼저 만나고 싶다고 말씀하실  몰랐습니다."

"이상한가? 나는 그저 길드의 새 마스터님과 사이좋게 싶었을 뿐인데. 여기는 시골구석이지만 그래도 내가 예전에 잠깐은 지냈던 곳이니까 말이야."

마치 자신의 집이라는 듯 예의 격식 없이 앉아있는 남자.

하지만 휴즈는 그런 남자에게 아무런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허리를 구부린  얌전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찾아와서 불만인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저 역시당신과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휴즈의 머릿속의 주판이 빠르게 움직인다.

루베라를 잃은 것은 뼈아프지만, 이것은 예상외의 수익이다.

설마, 이 남자가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올 줄이야.


물론, 무슨 꿍꿍이가 있을지 모른다.

다만 적어도 이 남자는 자신과 공통의 목적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벌써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느낌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검성 탈체크님."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휴즈.

그리고 그런 휴즈를 보며 광기 서린 웃음을 지어 보이는 탈체크.

조금씩이지만 새로운 운명의 수레바퀴가 회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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