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차이
유스테스의 머리 위로 비싼 술이 뿌려졌다.
머리는 물론, 어깨 그리고 입고 있는 옷이 포도주의 붉은 색에 젖는다.
후작가의 자제가 받기에는 너무나도 치욕스러운 처사.
허나 그것을 행한 것이 자신의 아버지라면 유스테스는 고개를 숙인 채 그 매도를 받아야 했다.
"멍청한녀석! 얼간이 놈!"
의자에 앉은 채 눈앞의 아들을 책망하는 남자.
휴즈 우드녹커.
이전 탈체크가 말했던 대로 그 풍채는 옆으로 퍼져 있었다.
유스테스와 정말로 피가 통한 것이 맞는지 의심 될 정도로 추악한 얼굴.
튀어나온 입술, 뭉툭한 코,그리고 축 처진 눈.
머리카락은 대부분 빠져 있는 대머리였으며 덕분에 뒤쪽이 튀어나온 두상이 드러나 있다.
그 몸은 또 얼마나 커다란지 2인용의 소파를 혼자서 쓰고 있을 정도였다.
그마저도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다리가 휘어있는 것이 보인다.
그런 그가 평소에도 못마땅해 하는 아들에게 소리를 질러대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루베라`를 잃고 돌아온것에 대한 질타였다.
"루베라가 이 가문에 있어서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기는 한 거냐? 그녀 하나면 솜씨 있는 용병을 수십 명 고용하는 것보다도 가치 있단 말이다!"
어린 시절 거둬들여 자신의 검으로 사용하기 위해 길러온 노예이자 시종.
아직 가문을 계승하기에는 너무나도 모자라기만 한 아들을 지키기 위해 호위로 붙여놓은 것이 실수였다.
"하, 하지만 아버지. 그 녀석이 검을 붙잡고 안 놓은 게 잘못…."
"유스테스! 제발. 그녀는 마검사야! 검을 빼앗기는 건 영혼을 빼앗기는 것과 다름없다!"
짧은 팔을 뻗어 그 멱살을 잡으면 유스테스는 아버지로부터 풍겨 오는 술 냄새와 악취에 얼굴을 찌푸리지 않도록 진땀을 뺄수밖에 없었다.
"아, 아버지. 하지만…. 제, 제가 이렇게 무사히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이게 다 루베라의 희생 덕분입니다!"
뻔뻔하게도, 마른 웃음을 띠며 능청을 떠는 아들을 보면, 후작은 열불이 다 터질 것만 같았다.
"지랄하지 마! 지금의 너는 `루베라`는 물론 동행한 모험가 쓰레기들보다도 가치가 없는 존재란 말이다!"
결국, 아들의 따귀를 때리는 휴즈.
유스테스는 그 충격에 옆으로 쓰러지며 얼얼한 얼굴을 문지른다.
"...큭…."
유스테스는 자신보다도 시종 한 명에 더 신경을 쓰는 아버지의 행태에 주먹을 쥔다.
물론 그가 사람을 숫자로밖에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태도가 가족에게까지 유지된다는 것을 오랜만에 떠올리면.
유스테스는 속이 울렁거렸다.
"... 후우…. 그래. 어쩔 수 없지. 그 녀석이 죽었다면….그 대신을 구할 수밖에…."
유스테스는 그 말에 잠시 침묵하다가 문득 낮의 일을 떠올린다.
우두머리 곰과 대등하게 싸웠던 흑발의 여검사.
"아, 아버지! 좋은 모험가를 알고 있습니다."
"...뭐라고?"
유스테스는 그렇게 말하며 루베라와 대등한 솜씨,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검술 실력을 가지고 있는 여성 모험가에 관해 이야기 한다.
"흑발의 흑안. 분명 그랬다고?"
"네! 루베라와 같았습니다."
"...흑마의 일족 출신의 탈주 노예인가? 여자라면 그렇게 쉽게 도망칠 수 없었을 텐데…."
잠시 턱을 문지르며 생각을 정리하는 휴즈.
그러고는 유스테스를 보며 이야기한다.
"그럼 네가 그 여자를 찾아와라. 내가 직접 보고 판단하지."
"아, 알겠습니다!"
유스테스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키고 아버지의 방에서 나간다.
휴즈는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더니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편지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이 편지를 받았을 때까지는 좋은 기분이었는데…. 쯔쯔…."
흰색의 봉투에 새겨진 문장은 `성자의 가호 교단`의 것이었다.
001
아버지의 포도주 세례를 받은 유스테스는 우선 몸을 깨끗이 하고 도시로 나왔다.
이미 해가 져서 밤이 되어 있었지만, 하루라도 빨리 그 여성 모험가를 찾아야 했다.
가련한 몸에서 나오는 괴력.
자신 있는 눈빛과 도도한 태도.
유스테스는 그 여자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리는 것을느낀다.
"... 루베라와 그렇게 다르게 생긴 것도 아닌데."
저절로 웃음이 나오며 그녀와의 앞날을 생각한다.
모험가를 찾는다면 역시 길드겠지.
직원들에게 물어보면 누구인지 말해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빠른 길로 가기 위해 골목에 들어서면-.
뚜벅. 뚜벅.
천천히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어둠 속에서 걸어오는 이가 있었다.
이곳저곳 옷이 해진 채.
몸에 상처야말로 없었지만, 치유 마법으로는 `기력`과 같은 체력은 회복할 수 없는 법.
탈진 직전의루베라는 그대로 자신의 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도련님."
"루, 루베라... 너살아있던 거냐?!"
그런 루베라를 만나 적잖이 당황한 유스테스.
루베라의 몰골을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간신히 도망쳐 왔다는 느낌이로군. 하. 뭐가 마검사인지…. 그깟 검이 중요해서 그대로 끌려가?"
"...죄송합니다."
아래에서 있던 일에 관해서 이야기 하더라도 바뀌는 것은 없겠지.
여기서는 그저 유스테스의 비위에 맞추는 것이 상책이라고 루베라는 생각했다.
"후작님께 보고 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루베라가 그런 유스테스의 옆을 지나치려 할 때 유스테스는 루베라의 팔을 잡았다.
"잠깐! 잠깐잠깐! 너 그 꼴로 아버지한테 가겠다는 거냐? 아버지가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유스테스는 그런 루베라를 보면서 말린다.
오랜 시절 자신을 보조하던 시종인 만큼 정이 하나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유스테스로서는 지금, 그녀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살아있다면 그녀를 대신할 모험가를 불러들일 필요가 없으니까.
"벌이라면 받을 각오가 되어있습니다…. 도련님을 지키지 못한 것도 저의 죄니까요."
"아니... 그..."
유스테스는 잠시 고민하다가 묘안이라는 듯 표정을바꾼다.
"아니!너에겐 실망했다. 아버지께서도 그렇게 이야기하시더군."
"... ..."
유스테스는 고개를 숙이는 루베라를 보며 입 꼬리를 올렸다.
그래, 아무리 검 실력이 뛰어나고 희귀 클래스인 마검사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시종.
주인의 말에는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검사 루베라. 너를 우드녹커 가문에서 추방한다!"
유스테스가 손에 낀 반지를 들어 보이며 선언한다.
그 반지는 차기 당주의 증거이자, 가문 내에서 맺어지는 여러 서약을 관장하는 마도구이기도 하다.
그녀와맺었던 주종계약의각인이 발동하고.
루베라의 손등에, 추방자의 문양이 새겨졌다.
"...네…? 자, 잠깐…. 기다려 주세요. 도련님…!"
눈에 띄게 당황한 루베라.
손등에 새겨진 추방자의 문양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유스테스의 바지에 매달린다.
"놔! 애초에 말이야…. 네가 이상한 거지! 주인보다도 검이 중요하다니!"
"그, 그것은…. 어,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가문에서의 추방만큼은…!"
"그 추방이 네 벌이란 거다! 더는 귀찮게 하지 말고 꺼져!"
유스테스가 그렇게 말하고 반지를 치켜든다.
그러자, 추방자인 루베라의 손에 스파크가 흐르며 그녀를 유스테스로부터 떼어놓는 것이었다.
추방에 원한을 품고 주인을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
루베라는 손을 채 뻗지 못한 채 유스테스를 보며 울부짖었다.
"아직 휴즈님으로부터 약속받은 것을 받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조금, 앞으로 조금이면 되었는데…!"
루베라의 그런말을 들은 유스테스는 완전히 그녀로부터 정이 떨어졌다는 듯 입 꼬리를 올렸다.
"하하... 과연. 아버지로부터 막대한 보수를 약속받은 거였군…? 그럼 그렇지. 네게 충성심 따위가 있을 리 없는데."
"아닙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그런 의미가...!"
"시끄러워! 더는 듣기 싫다!추방자 루베라! 내 앞에서 입을 여는 것을 금한다!"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추방자의 손등에 새겨진 문양이 한 획 추가된다.
너무나도 불합리한 계약.
그저 추방한 자는 추방당한 자에 대해 어떤 권리라도 인정되는 종속의 계약이었다.
"... ...!"
입을 열지 못하고 소리를 내지 못하게 된 루베라.
"추방자 루베라! 우드녹커 가문의 인물을 바라보는 것을 금한다!"
다시 한 번 문양에 획이 추가된다.
루베라는 그럼 강제적으로 머리가 돌아가 유스테스를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추방자 루베라! 우드녹커 가문의 저택에 접근하는 것을 금하고, 가문의 소속원에게 다가가는것을 금한다!"
유스테스가 떠나간다.
그리고 루베라는 그저 그 자리에 홀로 남은 채.
보이지도 않는 도련님을 향해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다.
002
루베라가 움직일 수있는 것은유스테스의 기척이 주변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였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 하면, 힘이 빠진 몸과 정신적인 충격이 더해져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상태였다.
천천히 고개를 올리면 어두운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볼을 적셨다.
13년. 그 저택에서 갖은 모욕을 당하며 자라왔다.
어린 시절의 행복이 고향과 함께 불타 사라진 날부터.
오직 단 하나의 단서만을 찾아 지금까지 살아왔다.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다.
그저, 너무나도 분했다.
대체 신은 몇 번이나 자신의 인생을 뒤집어 놔야 속이 풀리는 것일까.
참을 수 없는 절망이 그녀에게 다가온다.
"내가…. 내가 바보 같은 탓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아이처럼 목을 놓았다.
메마른 눈물 대신에 터져 나오는 소리가 뒷골목에 울려 퍼졌다.
[….베라….루….라….]
그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루베라가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면.
그곳에는 자신의 마검이 작게 진동하고 있었다.
"...바리사다...?"
나지막이 자신의 검의 이름을 부르며 손을 뻗는 루베라.
그리고 칼집과 검의 손잡이를 동시에 잡고 그것을 뽑으려는 순간.
"루베라."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 황급히 고개를 돌린다.
거기에는…. 자신과 같은 흑발 흑안의 청년이 서 있었다.
허리에 걸친 아름다운 검.
"...흑마의일족..."
루베라는 그런 그를 보고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어느 샌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멎었다는 것을 깨닫고 검을 허리춤에 올린다.
"...낮의 그분이군요. 여성이 되었다가 남성이 되었다가. 어느 쪽이 진짜입니까?"
조용히 적의를 보이는 루베라.
"역시 눈치 채고 있었나."
"동족이라는 것은. 하지만 마검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낮의 당신은 무장하지 않았었으니까요."
"아아. 너에게 보이면 안 될 것 같아서 검은 숨기고 뛰쳐나갔지."
정확하게 말하자면, 잠시 이오나에게 맡겼던 것이지만.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오나 슈발리에와 한패입니까?"
"뭐…. 대충 그렇다고 보면 돼."
"그럼…. 저를 죽이러 온 겁니까?"
자세를 낮추며 검을 잡는 루베라.
조금이라도 가까이 오면 발도와 함께 베어버리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그럴 생각은 없어. 그저…. 그냥 둘 수 없었을 뿐이야."
"아아…. 지켜보고 있던 겁니까. 엿보기라니 그다지 좋은취미는 아니군요."
"... 그렇게 서럽게 울고 있으면 누구라도 신경 쓰인다고."
클레온은 머리를 긁적인다.
클레온에게서 적의가 없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일까.
루베라는 조용히 검에서 손을 떼며 바로 섰다.
아까까지의 추태는 어디로 갔느냐는 듯 단정한 자세로 클레온을 바라본다.
"... ..."
"... ..."
침묵이 흐른다.
클레온으로서도 사실 감시 도중에 모습을 드러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방금 그 광경은 자신이 아는 누군가와 너무나도 흡사했기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러니…. 기껏 얻은 기회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너, 용의 계곡 출신인가?"
그렇게 클레온이 물어보면 루베라도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을의 존재를 안다면…. 설마, 당신도?"
"...그래. 하지만 놀랐는걸. 설마 나 말고도 생존자가 있었을 줄이야."
그렇게 말하는 클레온의 말에 루베라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대답했다.
"당신과는 다릅니다. 저는…. 저희는. 그 날. 황금의 빛이 마을에 떨어지며 모든 것이 불타고 끝난 날."
그리고 조용히 인상이 찌푸려진다.
눈은 감은 채 마치 생각해 내고 싶지 않은 과거를 떨쳐내듯.
"저를 비롯한 몇몇 일족의 아이는 차원 문을 통해 도망친 상인에게 끌려갔습니다."
"... ..."
클레온은 조용히 그 이야기를 들었다.
"대부분은 성 노예가 되었습니다. 아마 지금도 어딘가에서 학대당하고, 착취당하고 있겠지요."
루베라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그것은 분노그리고 증오에 의한 것이었다.
"하지만 저는…. 그들 중에서도 운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침략자들에게 붙잡히기 직전, 어머니로부터 받은 보호의 주문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죠."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그 날의 기억.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가 사용한 주문.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
인간은 죽기 직전에 가장 강력한 마력을 남긴다.
그 마력이 루베라의 몸에 새겨진 보호의 주문과 합쳐져 누구도 해제할 수 없는 술식으로 남아 그녀에게 각인된 것이다.
"효과는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침략자들을비롯한 이들에게 `능욕`당하지 않는 것."
"그야말로 순결을 지키고, 저에게 외설적인 행위를 시키려고 하면 강력한 결계가 펼쳐져 모든 것을 튕겨내는 것."
"하하. 처음 당한 사람은 뒤로 날아가 모서리에 머리를 박았는데 그 꼴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클레온은 어린 루베라를 향해 더러운 욕망을 쏟아내려는 어른들에 대해 상상하고 기분이 나빠졌다.
"그 덕분에 저는 성 노예로서 팔리지 않고 후작 가문에 거두어져 전투 요원 겸시종으로서 자라난 것입니다."
이제 알겠느냐는 듯 클레온을 바라보는 루베라.
"휴즈 후작은 저에게 말했습니다. 20살이 되는 해까지 자기 아들과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검을 휘두른다면…. 그 날. 일족을 배신한 상인을 알려주겠다고."
그녀의 말에 눈이 크게 띄어지는 클레온.
설마, 그 말을 진심으로 믿으며 지금까지 후작을 따라왔다는 것인가?
그 표정의 진의를 알겠다는 듯 루베라 역시 자조한다.
"네.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압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그렇게 해서라도복수하고 싶은 대상이 있습니다."
"...복수의 대상이 이미 이 세상에 없다면?"
"….그러네요. 그때는…. 더는 살아갈 이유가 없으니."
잠시 마검을 내려다보는 루베라.
클레온은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지."
"똑같은 질문입니다. 제게 있어서 유일한 희망이었던 우드녹커 가문은 저를 추방했고 저는 맹약에 따라 그곳에 돌아가지 못합니다."
그런 자신에게 더는 무엇이 가능할까요.
"어쩌면, 이대로 20살이 될 때까지 떠돌다가 어머니의 가호가 사라지면. 다른 아이들이 있는 창관에 몸을 맡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그런…. 바보 같은 소리는 그만둬."
클레온의 진심이었다.
"바보 같아? 무엇이 말이죠?"
"...모든 것이. 휴즈 후작에게 매달리는 것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 ..."
루베라는 클레온을 바라본다.
그리고 허리에 걸려있는 마검을 본다.
갈라테아는 고동 하듯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다.
눈앞의 그녀가 맘에 들지 않는 듯 했다.
"당신의 마검은 이미자아가 눈을 뜬상태로군요. 그 과정에서 몇 명을 상처입혔나요?"
"... ..."
"그런데도…. 그런 식으로 타인을 걱정한다는 말투. 마검사에 대해서 잘 모른다면 순순히 따랐을지도 모르죠."
클레온은 시선을 돌리고 고개를떨어트린다.
그녀의 말은 사실이다.
복수를 위해서 간계를 새우고 그 과정에서 쿠온이 상처 입었다.
결과적으로 사샤를 속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말주변이 없는 클레온은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힘들게 만난 동족이죽는 것을 바라지 않아.`
`너에게도 새로운 목표가 생길 수 있어.`
그런 입에 발린 소리를 해 봤자 그녀의 마음에 울리지 않는다.
"...정말로 곤란해졌다는 얼굴. 후후. 보기 좋네요."
루베라는 그런 클레온의 얼굴을 보며 입가를 가리고 웃었다.
그러고는잠시 자신의 마검을 내려다보다 클레온을 본다.
"저도 힘이 필요합니다."
"...힘?"
루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처럼 마검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타인을 지배할힘이."
"...그 힘으로 휴즈 후작을 칠건가?"
그럼 루베라는 입 꼬리를 올릴 뿐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그 행위 자체가 이미 대답이었지.
클레온은 생각한다.
후작가에 대해서 잘 아는 그녀가 자신들과 같은 목적을 가져준다면 확실히 이후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은 자신이 걸었던 것과 같은 타인을 몇 번이고 상처 입히는 길이다.
"... ..."
"무엇을 고민하는 거죠?"
잠시 후 클레온은 `하.` 하고 웃었다.
무엇을 고민했냐니.
자기 자신의 이기심에 웃음이 나왔다.
자신은 복수를 끝마쳐놓고 타인이 그 길을 걷는 것을 걱정한다니.
언제부터 그렇게 선한 인물이 된것일까.
클레온은 고개를 저으며 손을 내밀었다.
"...동참하지. 나도."
"... ..."
"따지고 보면 그 상인에 대한 정보는 일족 전체의 원한을 갚을 수 있는 물건이다. 내가 돕지 않을 이유가 없어."
"...그렇습니까. 그럼."
내밀어 진 클레온의 손을 붙잡는 루베라.
그리고 악수를 하기 직전에 그녀의 몸이 앞으로 쓰러졌다.
"어이, 이봐!"
클레온은 그런 루베라를 앞에서 받아내며 혀를 차고 그녀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