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화 〉바보
어린 시절의 꿈을 꾼다.
태어났을 때부터 타인의 눈을 피해 숨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마을의 어른들에게 배웠다.
본인들은 태양의 빛을 받으며 살아갈 수 없는 일족.
몸에 흐르는 혈통에 업과 죄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 증거가 검은 머리와 검은 눈 그리고 흰 피부.
인간들의 세상에서 `흑마의 일족`이라고 불리는 이들.
과거, 마왕이라고 불리는 남자가 인간의 여자를 범하여 자신의 아이를 낳게 했을 때부터.
그 후예들은 악마와 피를 나눈 존재들로서 세상의 증오를 한 몸에 받았다.
그렇다 보니보통은 사람이 발을 디디지 않는 가혹한 환경.
예를 들면 첩첩산중으로 이루어진 계곡의 사이, 하늘을 올려다보면 와이번이 날아다니고.
어른들이 눈을 잠깐 떼면 아이들이 그들의 먹이로 잡혀가는 상황이 종종 일어나는
용의 계곡.
하지만 악의가 없다는 점에서는 날짐승들이 인간들보다 낫다며 일족의 마을을 버리지 못한 채 그곳에서 서서히 멸망해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느릿한 멸망은 갑작스럽게 가속했다.
흑마의 일족이 지닌 높은 마력적성을 눈여겨본 이들이, 마을의 아이들을 노예로 팔아넘기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그것을 도운 것은 평소 마을에 식량을 배달하던 인간이었다.
마차에 고용된 용병을 숨기고 마을에 들어왔다.
평소와 같이 식량을 배달해 온 마차에서 이상한 기운을느낀 마을의 인간들이었지만, 마을에 들어온 순간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전송마법의 스크롤이 발동하며 차원 문이 열린다.
그 안에서 튀어나온 것은….
어딘가의 학자.
교단의 성직자.
길드의 모험가.
아비규환의 밤이었다.
저항할 능력을 갖춘 인간들은 모두 죽였다.
조금이라도 외모가 빼어난 자들은 족쇄를 채워 노예의 각인을 새겼다.
마을 전체가 불타올랐다.
계곡의 그림자가 드리워 늘 어두운 마을이 가장 밝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일족이 멸망한 날이었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흑마의 일족에는 마검사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아이가 눈앞에서 범해지는 광경을 보고 분노하고, 절망하였다.
당연하게도 그의 마검이 각성하고, 이어서 폭주했다.
눈앞의 침략자들을 모두 도살하였지만, 그폭주는 멈추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가 그 날 밤 그 마을 전체에서 펼쳐졌다.
흑마의 일족의 대부분은 마음속에 어둠을 간직한 채 마검과 살아가는 인간들이다.
마치, 각성이 또 다른 각성을불러일으키듯.
지금까지 쌓였던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폭발하고 공명하는 광기의 밤.
침략자가 일족의 어른들을 죽이고.
일족의 어른들이 침략자를 죽이고.
폭주하는 이들이 다른 이들을 죽이고.
그 폭주를 막기 위해 이웃이 그들을 죽였다.
아이들 역시 광기에서 무사하지 못했다.
침략자들로부터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남았던 아이가 폭주하는 자신의 아버지에 의해 죽었다.
벽장 속에 숨어있던 아이가 탈출하지 못한 채 불타는 집 속에서 죽었다.
참살. 박살. 교살.
그리고피와 광기.
마을에서도 평소에 가장 약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소년.
언제나 계곡 사이로 보이는 별을 보기 위해 어른들 몰래 첨탑에 올라가 있던 소년은
아래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차마 바라보지 못해눈을 감고 귀를 틀어막은 채 조용히 두려움에 울고 있었다.
쿵! 하는 충격이 첨탑의 아래에서 울렸다.
누군가가 이쪽으로 온다.
그렇게 생각한 소년은 재빨리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았다.
그의 옆에는 아직 그 힘을 제대로 발현하지 못한 약한 날붙이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첨탑의 옥상으로 이어지는 사다리. 가느다란 손이 가장 위에 도달한 순간.
소년은 검을 휘둘러 그 손을 찌르려 했다.
캉!
"위험하네…! 뭐하는 거야 인간!"
하지만 올라온 인물은 아래에서 마을을 침략하고 있는 이들과는 달랐다.
분홍색 머리. 그리고 이형의 꼬리. 호박색의 눈. 동공이 인간과 다르게 세로로 찢어져 있었지만 귀여운 인상의 소녀였다.
"인간. 기껏 구해주러 왔더니 그렇게 나오면 안 되지."
소녀는 그렇게 말하며 소년의 곁으로 가더니 양손을 깍지 낀 채 인을 맺어 마력을 주입한다.
그러자, 소녀와 소년 주변에 반투명한 막이 펼쳐지는 것이었다.
소녀는 소년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그 몸을 꽉 붙잡은 채 첨탑 밖에 있는 누군가에게 이야기했다.
"네가 말한 대로, 멀쩡한 건 이 인간뿐인 것 같아. 시작해도 돼."
[----...]
누구에게 말을 거는 것일까.
어디선가 그 대답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제대로 이 몸이 보호하고 있으니까! 해버려!"
다음 순간.
계곡의 사이로 별이 떨어졌다.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색이었다.
그 별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한 손에 검 한 손에 방패를 든 채.
아름다운 은빛 갑주를 몸에 걸치고.
마을의 중심에 내려섰다.
그 충격만으로 주변에있던 이성을 잃은 `짐승으로 떨어진 인간`들이 날아갔다.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며, 땅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용사 레시아의 이름으로…. 이곳을 정화합니다."
전설의 용사.
그 힘은 산을 부수고 바다를 가를 정도로 강력하다.
그렇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목소리는 자신의 무력함을 탓하는 듯 슬픔에 잠겨 있었다.
용의 계곡에 숨겨진마을은 그날,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지도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폭발하듯 빛나는 황금색의 섬광속에서.
001
그 고릴라 때문에 악몽을 꾸었다.
클레온은 이마를 부여잡으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탈체크와 이오나가 돌아간 뒤, 사냥을 위해 자리를 비웠던 사샤는 평소와 다르게 어딘가 불안한 눈치였다.
그리고 그 불안을 달래기 위해 평소보다도더욱 어리광을 피우며 클레온에게 달라붙어 왔던 것을 떠올린다.
옆에서 새근새근 숨소리를내며 아직 잠을 자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소녀가 아직 어림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 ..."
클레온은 사샤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침대를 빠져나와 욕실로 향했다.
어제의 이야기.
메모리아 큐브를 보수로 `휴즈 후작`의뒤를 조사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즉. 다시 한 번 그 도시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폴리모프. 일루젼. 컴포트."
루티와의 계약을 통해 그녀의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된 클레온.
다만, 폴리모프를 하더라도 인간의 한계 상 본인의 육체에서 아주크게 변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성별까지 감추기 위해서는 여전히 라일라와 쿠온의 마법이 필요했다.
거울의 앞에서 클레온의 모습이 변화한다.
이전에도 잠시 가짜 신분으로 사용했던 여성의 모습이다.
덤으로, 갈라테아도 그 체형에 어울리는 레이피어로 모습을 바꾼다.
이전과 다른 점이라면…. 환영에 실체를 주어 누군가가 가까이 오더라도 들키기 어렵다는 점…?
클레온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잠시 바라본다.
잘 생각해보면 평범하게 변태 같은 행위였다.
폴리모프 덕분에 움직일 때마다 이곳저곳이 흔들리니, 이전보다더 했다.
그걸 자각하고 나니 클레온은 오한을 느끼며 마법을 해제한다.
"...꼭 여자일 필요는 없나."
이번에는 다른 모습.
클레온이 다시 한 번 마법을 발동하면 거기에는 평소의 자신보다 10살은 어려진 모습이 되어 있었다.
이쪽은 폴리모프 만으로도 가능했다. 몸의 성장을 되돌리거나 진행하는 수준의 변형이기 때문인 듯하다.
그런 꿈을 꾼 직후여서일까.
거울에 비친그의 모습은 무언가 낯간지러운 것이 있었다.
"와! 어린 시절의 클레온이다!"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내는 갈라테아.
몸을 움직임에 있어 위화감을 줄이기 위해, 시선까지 낮아진 상태이니.
클레온의 머리가 적당하게 갈라테아의 가슴 바로 아래에 위치하게 된다.
"... ... 역시 관둘까. 이 모습도."
"왜!?"
갈라테아는 그러지 말라는 듯이 클레온을 끌어안는다.
푹신.
부드러운 갈라테아의 몸과 밀착하며 클레온은 금세 얼굴을 붉혔다.
평소와 같은 그녀인데 이상한 기분이었다. 설마, 정신마저 어려진 것인가?
"클레온~ 이대로 한 번 할까♡"
콧소리를 섞으며 작아진 주인을 유혹해 오는 악마.
클레온은 잠시 갈등하지만, 심호흡하고 주먹을 꽉 쥐며 그것을 이겨냈다.
"...바보냐, 지금부터 일하러 가야 하는데. 너랑 시작하면 해가 질 때까지 끝날 것 같지 않아."
"후후. 그러면 나중에♡"
그렇게 말하며 다시 검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갈라테아. 이번에는 평소와 같은 `롱소드`가 아니라 `숏소드`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지금의 자신에 체격에는 조금 크다.
"...좋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저택을 빠져나가는 것부터 시작이로군."
클레온은 조용히 숨을 죽이고. 어둠의 장막을 펼친 채 저택을 이동했다.
002
이 모습을 하고 오는 게 아니었다.
클레온은 지금 막심한 후회를 하며 도시를 걷고 있었다.
머리에는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기념품의 머리띠를 쓴 채.
옆에 있는 은발 여성의 손을 잡고 있었다.
"어이…. 언제까지 돌아다닐 생각이냐."
"조금만 더요. 마을 사람들에게 위화감 없이 녹아들어야 하잖아요?"
어제와는 다르게 중갑을 벗은 그녀.
오늘은 활동하기 쉬운 평상복을 입고 머리는 하나로 묶어 뒤로 넘긴 상태이다.
`은발의 붉은 눈`
`백옥같이 흰 피부`
`뾰족한 귀`
하나만 있더라도 눈에 띌 텐데 그것이 한군데에 모두 모여 있으니 도시에 있는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덤으로, 중갑 아래 갑갑하게 갇혀 있던 그녀의 신체는 갈라테아와 비슷한 수준으로 여러모로 대단했다.
물론 그 부분의 최고봉은 오늘도 저택에서 요리를 만들며 체형을 걱정하는 쿠온이었지만...
이지적인 얼굴과의 갭 덕분에 그녀의 존재를 더욱 부각했다.
클레온도 약속한 장소에서 처음 이오나를 보았을 때.
그 미모에 잠시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 고민했다.
본인은 모습을 바꾼 채이니 갑작스럽게 말을 걸면 경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고민은 10초 만에날아가고 만다.
클레온과 눈을 마주친 이오나.
잠시 그녀의 시선이 아래로 갔다가 몸 전체를 훑듯이 위로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클레온의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다.
다시 한 번, 클레온과 시선이 마주치더니. 그녀는 웃으면서 다가왔다.
그러고는 몸을 숙여 클레온과 눈높이를 맞춘 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저기…. 잠깐 저쪽 찻집에 가서 누나랑 이야기할래?
하아... 하아... 하는 거친 숨소리.
이오나 슈발리에는 쇼타콘이었다.
"... 코피나 닦아."
"...그 목소리…. 클레온…!?"
얼마나 충격을 받은 것인지 10걸음은 뒤로 물러서는 이오나.
그녀는 다시 한 번 클레온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코에서 흐르던 피를 멈추게 하더니, 다시 평소의 이지적인 얼굴로 돌아온 것이었다.
"오셨군요. 어찌 되신 겁니까? 그 모습은."
"아니…. 응. 그래. 자세하게 묻지는 않을게."
그런 클레온의 배려도 무색하게, 이오나는 그의 손을 이끌고 도시 전체를 빙글빙글 돌며.
디저트를 탐닉하거나, 기념품을 사거나, 또 다른 디저트를 탐닉하거나.
결국, 약속 시각을 일찍 잡은 이유는 무엇이었던 걸까.
두 사람은 잠시 광장에 있는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이미, 그녀의 옆에는 짐이 한가득하다.
"어이…. 너 휴즈 후작을 조사할 마음이 있긴 한 거겠지?"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임시라고는 하더라도 거점으로 삼은 도시니까요. 전체의 구조를 파악하고, 어디에 어떤 건물이 있는지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본격적인 일은 지금부터죠."
거침없이 말을 쏟아내는 이오나를 보며, 클레온은 더는 딴죽을 걸 기운조차 나지 않았다.
눈웃음을 지으며 즐거운 듯이 말을 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면 화를 내는 것 자체가 바보 같아졌으니까.
"하지만. 서점이 없군요. 이 도시에는."
"아아. 이곳은 모험가 길드를 중심으로 발전한 도시니까. 모험가들을 상대로 하는 가게들이 많거든. 아니면 관광객이라던가."
이오나는 잠시 턱을 괸다.
"확실히. 모험가의 문맹률을 생각하면 서점은 장사가 잘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건 편견…. 이라고 할 수 없겠네."
의뢰서를 읽지 못하는 모험가에게 내용을 대신 읽어주는 직원 서비스(10G)를 생각한 루티에게 박수를.
"...아."
그때, 클레온은 문뜩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 모습을 본 이오나도 클레온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십니까?"
"...있어. 서점….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일단은 책을 다루는 곳."
그 말을 들은 이오나가 눈을 반짝이며 클레온에게 몸을 들이댔다.
"정말이십니까!?"
"저, 정말이니까 좀 떨어져."
눈앞에 지금의 자신의 얼굴만 한 가슴이 다가오는 광경은, 갈라테아만으로 충분했다.
클레온이 이오나의 어깨를 밀어낸 뒤, 벤치에서 일어난다.
"...미리 말해두지만. 꽤 오래전에 들렸던 곳이라 없어졌을 수도 있어."
"괜찮습니다. 크게 기대는 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거짓말하네. 뒤꿈치를 들었다 내렸다 하고 있으면서.
클레온이 이오나를 데리고 간 것은 도시의 변두리.
중심가의 모험가 길드와는 거리가 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발전이 덜 된 곳이었다.
"...이런 곳에 서점이?"
"말했잖아. 서점은 아니라고."
클레온은 기억을 더듬어가며, 복잡하게 얽혀 정비되지 않은 길을 걷는다.
벽이나 거리는 오랫동안 청소되지 않은 것일까. 이끼나 덩굴이 제멋대로 자라나고 있었고.
전체적으로 우중충한 공간이었다.
"10년도 더 전에, 이 근처에 작은 학교가 있었어. 학생이 적었으니 서당에 가까웠지만…."
"학교인가요?"
클레온의 말에 반응하는 이오나.
학교라는 단어에 관심이 동한듯하다.
"그래. 모험가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교육하는 곳이었지. 네 아버지…. 탈체크도 거기에서 잠깐이지만 검술을 아이들에게 가르쳤고."
"고릴라에게 아이들을 부딪치게 한 겁니까…? 분명 피도 눈물도 없는 교육이었겠죠."
확실히 그건 맞다.
탈체크는 기본적으로 아이들을 싫어하는 편이었고 자신의 수준을 강요하니.
아이들 사이에서의 평판은 `생고기 아구아구 악마 고릴라`.
하지만 성과는 있었다.
실제로 학교에서 탈체크에게 수련을 받은 아이들이 지금은 대륙 중앙의 모험가 길드에서 뛰어난 검사로서 이름을 널리고 있다고 루티로부터 전해들은 적이 있다.
그런 이야기, 이오나에게 하더라도 그다지 기뻐할 것 같지는 않지만.
오히려 신묘한 표정을 짓겠지.
"그럼 클레온도 그 학교에 다니셨나요."
"나? 아니. 나는 아니야. 그때는 지금보다도 흑마의 일족에 대한 편견이 심했으니까. 탈체크의 훈련을 받은 것은 개인적으로."
"... ..."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이, 둘은 작은 구멍가게와 같은 곳에 도착했다.
낡아빠진 간판에 다 스러져 가는 전시장. 안에 들어있는 막과자들이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조차 알기 힘들었다.
주인은 이미 없는 듯했다.
"아아…. 역시. 그야 그런가."
클레온은 아쉽다는 듯이. 가게의 안을 둘러보지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학교는 아이들이 있고, 아이들에게는 책을 읽게 해야 한다는 게…. 그 학교의 교육방침 중 하나여서. 이 가게에서 책을 들여와서 팔고 있었거든."
"과연…. 아, 여기 있네요. 확실히 낡아서 먼지가…."
이오나는 그렇게 말하며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을 한 권 꺼내 들었다.
"...이거…."
[제국의 드래곤 루티오스와 용사]
그야말로, 4 영웅과 관련된 전설을 동화처럼 풀어낸 책이었다.
물론, 10년이나 방치되어 있었으니 낡고 오래되어 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이걸로 할게요."
"그걸로 한다니…. 주인은 없는데?"
클레온은 그녀의 말이 이상하다는 듯 이야기했다.
이오나는 고개를 저으면서 자신의 지갑에서 은화를 꺼내, 사람이 없는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멋대로 가져가면 도둑이니까요."
002
두 사람이 모험가 길드로 향한 것은 해가 중천에 뜬 뒤였다.
책의 먼지를 털어 가방에 집어넣은 그녀가 시간을 확인하더니
"예상보다 늦었습니다! 서두르죠!"
라고 말하기에 급하게 뛰어온 것이었다.
몸이 작아진 탓인가? 보폭도 줄어들어, 예상보다 목이 타는 클레온은 휴게소로 들어가자마자 자리에 앉았다.
"맥주 한 잔."
"...이 아니라 냉수로 두 잔 부탁합니다."
클레온 자신도 말이 헛 나왔다는 듯이 입을 가린다. 종업원은 아이의 장난 정도로 생각한 것이겠지. 가볍게 웃어 보이며 돌아갔다.
"...아무래도 폴리모프로 육체를 변화시키면, 정신도 영향을 받는 것 같은데."
"그런 것 같습니다. 지금의 당신은 어제보다 훨씬 수다쟁이에, 표정도 잘 변하고. 어리숙하거든요."
"... ... 다음부터는 이 모습으로 오면 안되겠군."
일에 지장이 생기겠어. 라고 중얼거리는 클레온.
덥석!
하고 이오나가 클레온의 손을붙잡는다.
"아뇨 안 됩니다. 저와 당신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마을 사람들에게 새겨놓았으니 다음에도 이 모습으로 와주세요."
"너…. 대체 코피는 왜 흘리는 거야?"
이 녀석도 탈체크만큼 이상한 녀석이다.
라고 생각하며 종업원이 가지고 온 물을 들이켜려는 찰나….
"하하하! 그래서 내가 거기서 말했지! 이 악당 녀석! 인질을 놓고 항복하지않으면, 나의 성검 `미스틸테인`으로 베어주겠다! 라고!"
쿨럭! 하는 소리가, 클레온에게서 울린다.
너무나도 바보 같은 소리가 들려왔기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와 사레에 걸린 것이다.
기침하는 클레온을 바라보며, 이오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대체 왜 인질이 잡혀 있는데 검으로 베려고 하는 걸까요…."
"쿨럭…. 커 흑…. 조, 조금 조용히 해…."
몇 번이나목을 걸러내다가, 겨우 진정된 클레온이 바보를 바라본다.
갈색의 머리카락. 초록색의 눈. 입을 다물고 있으면 외견만은 나쁘지 않은 편인 청년이었다.
다만, 경박하게 입을 벌리고 웃거나. 몸에 걸치고 있는 최악으로 디자인 센스가 나쁜,크고 화려한 갑주가 모든 것을 망치고 있었다.
그리고 등에 메고 있는 아무리 봐도 중갑과 무게가 비슷할 것 같은 크기의 검.
"내가 없는 사이에 길드에 바보가 늘어났어…."
클레온이 조금 절망적이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면, 이오나가 이어서 이야기한다.
"괜찮습니다. 저 바보는 최근에 추가된 바보거든요."
"...알고 있는 거야?"
이오나는 클레온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유스테스 우드녹커. 휴즈 후작의 아들이자 용사 후보입니다."
"...용사 후보?"
이오나는 눈을 빛내며, 가방에서 작은 책을 한 권 꺼냈다.
[10살 소년이라도 알기 쉬운 대륙 상식 백과]
"일단 제목은 뭐라고 하지 않을게. 계속해 봐."
"네.용사 후보라는 것은 `성자의 가호 교단`에서 다음 용사로 지목하고 있는 인물을 말합니다."
본래, 용사는 성검의 신탁을 받은 `성녀`, 혹은 `성직자`의 계시를 통해 점지 된다.
성검을 찾으러 가는 모험 자체가, 용사에게 있어서 시련인 것이다.
알베인이 그러했고, 용사 대부분이 그러하다.
한데, 간혹. 용사가 점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성검이 발굴되는 일도 있었다.
그 경우, 교단에서 성검을 회수.
그리고 용사 후보 중 하나에 성검을 부여하여 용사로 계약시키는 것이었다.
"... ... 그게 되나?"
"교단이 가지고 있는 비술로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용사 후보가 되는 것은 여러 가지 길이 있지만.
가장 빠르고 흔한 경우가 교단에 대량의 헌금을 내서 발언권을 획득한 후, 추천을 받는 방식이었다.
용사가 된다는 것은 곧 국가에서도 중요시되는 인물이 된다는 것.
성과를 올리면 영웅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성검이라는 강력한 전력을 손에 넣는 것이 가능하다.
고르티안 백작이 살아있었을 시절에 이런 제도가 있었더라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물론. 눈앞에 있는 바보. 유스테스 역시 그런 부류이다.
휴즈 후작이 교단에 쏟아 부은 돈으로 용사 후보가 되어있는 상태였다.
"아직 성검을 받지는 못한 것 같지만."
"맞습니다. 만약에 알베인의 성검이 회수되었을 경우, 그에게 갔을 거라 생각됩니다."
"...끔찍한걸."
갈라테아 역시 조용히 진동했다.
"휴즈 후작은 능구렁이입니다. 아버님은 그를 무능하다고 하지만, 절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닙니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바보인 그의 아들을 이용하자는 거군."
이오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클레온과 함께 유스테스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때, 갈라테아가 입을 연다.
[클레온. 저 바보 뒤의 검은 머리의 여자.]
그러면, 지금까지 눈에 띄지 않았던 여성이 클레온의 시선에 들어온다.
검은 머리, 검은 눈. 하얀 피부.
몸에 걸친 것은 흰색의 레이스가 달린 검은색의 흔한 시종들이 입는 복장이지만 허리춤에는 기다란 외날 검의 칼집을 차고 있었다.
"... 마검사다. 흑마의 일족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