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1화 〉고립 (21/72)



〈 21화 〉고립

"──."

지독할 정도로 무거운 침묵. 모험가 길드, 길드장인 루티시온스의 사무실.

탁자의 뒤쪽에 창문으로부터 들어오는 햇살은 이제 따뜻해진 봄날에 어울리는 화창하고 따스한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사무실 내의 공기를 녹여내기에는너무나도 약한 빛이었다.

얼굴이 창백해 진 금발의 청년. 알베인은 이마에 손을 올리며 몸을 비틀 거렸다.

"하...?"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한 목소리. 그도 그렇겠지. 지금. 그의 앞에 앉아있는 여자가, 자신에게 뭐라고─?

"당신이 원하는 대로 됐지 않나요? 용사 알베인."

그녀의 앞에 놓인,붉은 양피지의 조각. 파기 된 의뢰의 일부분.

현상수배가 무사히 완료되어. 도시와길드의 질서가 회복되었다.

 과정에서 뒷골목의 건물 중 일부분이 파괴되고, 그 일대의 주민들의 항의가 있었지만...

도시를 위협하던 길드의 배신자 '마검사 클레온'이 토벌되었다.



용사 알베인이 꼴사납게 기절해 있던 사이에.


알베인은 손바닥에서 피가 날정도로 손에 힘을 쥐며, 이빨에서는 뿌드득.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어떤 놈이 내 공을 가로챘어!"

분명 자신의 업적이다. 그 때. 암살집단 '장막의 이빨'의 아지트에서 보았던 마법을 사용하던 여자.

지금 생각  보면, 어딘가 클레온과 닮은 외견을 가진  여자가. 클레온 본인이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알베인은 생각한다. 클레온의 죽음에 제일 기여한 것은. 자신이라고.

자신과 클레온의 싸움에서, 클레온은 알게 모르게 피해를 입어, 틈을 보였고...

그것을, 다른 모험가가... 마무리를...



──거기까지 생각하면. 알베인은 그것이 본인의 과대망상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부정하는 일말의 양심에 짓눌린다.

클레온을 죽여, 도시의 영웅이 되는 것은 자신이어야 했다. 그렇게 되면, 쿠온도, 라일라도, 사샤도, 갑자기 모습을 감춘 '갈라'도. 자신의 것이 되리라.

 그렇게 이야기 했던 여자마저도. 도시에서 모습을 감췄다.

연락을 취하는 것은 언제나 그 쪽에서.

알베인이 아닌 다른 이가 의뢰를 완수해서, 실망한 채 떠난 것인가.


"...클레온의 시체는?"

"목 아래는 없고- 머리는 아카데미에 의해 수거되었습니다. 마검과 함께."

루티의 대답에. 알베인은 주먹을 책상위에 내리친다.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서류들이 흩뿌려지면. 루티는 미간을 좁히며, 난폭한 짓을 구는 남자를 올려보았다.

"너무 예의가 없는 것이 아닌지?"

"예의...? 너야말로 도시의영웅에게 예의를 보여야지...! 내가 현상 수배를 의뢰하지 않았다면, 지금  마을의 여자들이 전부 클레온에게 범해졌을 거다...! 녀석은 그런 놈이니까."

그녀의 면전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대며, 분노와 광기로 점칠  눈을 보이는 알베인. 루티의 인내심도 바닥에 달하고 있었다.


"당신은 도시의 영웅 따위가 아닙니다. 당신의 제멋대로인 증언에 증거 따위는 없었어요."

"그게 무슨 상관이야! 녀석은 마검사라고! 그 녀석이 힘을 키운다면, 결국 사람을 증오하고, 복종시켰다는 거다!"

언성은 점 점 커져만 간다. 지리멸렬한 논리. 루티는 점점 알베인과 대화를 하는 것이 지쳐만 갔다.



"애초에 말이야... 너도 공범이라고! 나의 증언을 듣고 현상 수배를 시작한... 아아. 그렇지, 그 여자는 사라졌지만. 네가 나한테 뭐라고 할 처지가 되나?"

루티는  말에 침묵한다. 알베인은 기세등등해지더니, 자신에게 대들었던 건방진 여자의 뺨을 후려 갈겼다.

─그것이 방아쇠였다.

루티의 몸이 호흡을멈출 정도로 얼어붙었다. 알베인은, 그것이 루티의 공포라고 생각하고, 다음의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나한테는 네가 절대로 들키기 싫어하는 비밀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은 거겠지!"

알베인의 말에. 방 전체의 온도가 서서히 떨어져 간다. 바깥에서 들어오는 햇살마저도 삼켜버리는, 극도의 한기.

알베인은,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것인가. 루티를 바라본다.



"무, 무슨 짓을 한 거야. 마법인가? 너는,  절대로 공격할 수 없을 탠데."

"당신의 말대로. 저희는 인간을 공격할 수 없도록 명령 받았습니다."

루티의 눈은,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된다.  안이 차가워 진 것은, 그녀의 깊은 숨에서 뿜어 나오는 차가운 공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노예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죠... 우리는, 우리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힘의 행사를 허락 받습니다."

그녀의 목에서부터 돋아나는 분홍색의 비늘. 클레온은 눈을 의심했다. 눈앞의 여자는─ 인간이 아닌 것인가?

"어중간하게 비밀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이 독이군요... 당신의 생각 없는 행동 덕분에... 당신을 죽일 수 있으니..."

"주, 죽여? 나를? 길드의 희망이자, 도시의 영웅인... 이 용사 알베인을?"

그 말에, 루티는 폭소한다. 높은 웃음소리가 사무실에 울리면. 이것이 평소에 '행복의 바람'이라고 불리는 소녀와 동일인물인가, 의심이  정도였다.

"까불지 마라 애송이... 이 대륙에 존재하는 용사 따위, 대신할 녀석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살을 에는  한 바람의 칼날이, 그녀의 주변에 떠오른다. 단순한 공기일 탠데도, 얼마나 마력을 머금은 것인지. 검은 분홍의 마력이. 마치 신선한 핏물처럼  위를 흐르고 있었다.

"크...오오오오...아아아악!"

알베인은 틀림없이 살해당한다는 공포에 휩싸인다. 한걸음, 두걸음. 뒤로 물러난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 사무실에서 뛰쳐나가는 것이었다.

"후우~"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본 루티는 한숨을 내쉰 뒤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휴추워."

그렇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바깥의 따뜻한 공기를 받아들이기 위해.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들어오는 바람에 의해 책상 위의 서류가 하늘을 날면. 루티는 '으갸아악!'소리를 내며, 그 더미를 붙잡으려 하는 것이었다.



001



알베인이 꼴사납게 뛰쳐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길드의 모험가들.

이미, 그들의 관심은 죽은 클레온에 관한 것보다도. 오늘 하루를 어떻게 벌어서 살아갈까에 몰려 있었다.

클레온과는 관련이 없는 암살집단에 혼자 쳐들어갔다가, 정신을 잃고.

그 사이에 공로를 빼앗겨 버린 용사 따위. 그들의 관심거리는 아니었다.

알베인이 흔들거리는 발걸음으로 향한 곳은 동료인 '쿠온'의 숙소였다.

─분명. 자신은 클레온을 쓰러트리지 못했다. 하지만, 클레온이 죽은 것은 사실이었다.

모험가가 되기 전부터, 자신과 함께였던 쿠온이라면─ 클레온이 죽은 것을 계기로. 마음을 정리하고...

자신의 곁으로 되돌아오리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 ..."

짐을 싼 채,숙소를 나서는 그녀를  때 까지는.



"쿠...온...?"

"...알베인."

쿠온은, 만나고 싶지 않았다는 듯이 알베인의 시선을 고개를 돌려 피한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거절은, 알베인에게 있어서도, 마음에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 있었던 것일까. 떨리는 발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간다.


"너... 어디로 가려는 거야?"

"...모르겠어."

그런 애매모호한 대답에. 알베인은 손을 뻗어, 쿠온의 팔을 잡으려 했다.

그럼, 쿠온은 몸을 뒤로 빼, 그런 알베인의 손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아니, 야... 모르겠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어이가 없다는 듯, 믿지 못한다는 듯. 쿠온을 바라보는 그 눈빛에. 그녀 본인도 마음이 아팠던 것일까. 그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몸을 돌리려고 한다.

"─설마, 클레온이 죽었다고? 그 것 때문에 그러는 거야? 겨우 그  때문에!?"

"──... 겨우  거?"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떠나가려는 여자를 붙잡겠다는 마음에 내뱉은 말.

그 한마디가, 쿠온이 가지고 있던, 그에 대한 마지막 정을 완전히 떼어낸다.

"──나. 클레온에게 안겼었어."

"───..."

알베인의 정신이 혼미해진다. 눈앞의 그녀가 하는 말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겠지.



"강제로 범해진 것도 아니야. 내 쪽에서 부탁했어."

"그, 게... 무슨 말이야? 대체 왜 그런 짓을..."

─순간, 알베인은 자신이 했던 일을 생각해낸다.  날. 클레온이 비겁하게도 자신의 뒤를 기습해서, 쿠온을 데리고 사라졌던 날.

분노에 의해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한, 어리석은 행동.  손으로, 쿠온을 범하려 했었다. 하지만, 쿠온은 거절했었다.

그런 쿠온은, 클레온에게 안겼다. 그와 몸을 섞었다.

자신은 안 되지만... 클레온은 된다는 것인가?


알베인은, 허리의 검으로 손을 가져간다.순식간이었다.

사람을 지키고 마물을 베기 위해서 단련되었던 검이. 가장 소중한 이를 향해 뽑혀 휘둘러진다.

─돌이킬 수 없는 만행이, 쿠온에게 이빨을 드러낸다.



─다음 순간.

"로즈 탠글!"

땅에서 솟아 오른 장미의 덩굴이. 알베인의 팔과 검을 묶는다. 성검은, 쿠온의 앞에서 멈추며. 겨우 그녀를 지켜낼 수 있었다.



"알베인! 너 미쳤어!?"

알베인을 저지  것은, 붉은 머리의 마법사. 쿠온과 마찬가지로, 그와 함께 모험을 했던 천재 소녀. 라일라이다.

지팡이를 알베인에게 겨눈 채. 경악한 표정으로  있었다.그녀 역시, 등에 짐을 맨 채인 것을 확인하고.

알베인은 얼굴을 구긴다.

"이 녀석은 클레온에게 세뇌 당한거야! 라일라!"

그러면서. 또다시 자기 형편에 좋은 말을내뱉는다. 쿠온이 제정신으로 자신을 배신할리 없다.

클레온과 몸을 섞는다는 부정을 저지를 리 없다고.

자신의 판단 기준으로, 타인을 규정한다.



"알베인... 너, 정말..."

그런 알베인을, 쿠온과 라일라는. 절망적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 며칠간. 그에 대한 신뢰는 많이 사라져 있었다. 그가 도를 넘었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때는 마음을 맡겼던 동료이자... 사랑했던 남자.

클레온의 힘을 빌어서라도,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충격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비록, 이전의 관계로돌아가지 못하더라도. 알베인에게는 필요한─ 필요한 패배였다.


허나. 알베인의 아집은. '도를 넘다'수준으로 정리될만한 것이 아니었다.

광기였다. 성검에 의해 증폭된 긍정적인 감정에 의한 자아도취.

당연하게도, 생각은 바뀔 리 없고. 언제까지고 현실을 부정할 뿐이었다.

자신이 '패배'했다는 것을 깨달으면─ 부정적인 사고를 가지게 되면─

성검의 힘이 자신을 떠날 것이라 생각했기에.


"들어봐 라일라! 쿠온 녀석, 클레온과 몸을 섞었다고!"

"... ..."

그 말에.  사람은 침묵한다. 그저─방황하는 눈초리의 알베인만이. 라일라에게 변명하듯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아니.  녀석이 제정신을 차리면. 수치에 의해 자살할거야. 차라리, 내 손으로 평안을 주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쿠온은 그렇게 약하지않아. 무엇보다. 그녀는 제정신이야. 아카데미수석인 내가 보증할게."

 이상 혐오스러운말을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알베인의 말을 부정하는 라일라.

그럼 알베인은 큭... 같은 침음을 내뱉으며 다시 한 번 얼굴을 구겼다.


"아아. 그리고. 별로 클레온과 섹스한건 쿠온뿐만이 아니니까. 나도, 사샤도. 이미  녀석과 했어."

"라, 라일라!"

라일라의 폭로에 반응한 것은, 쿠온이었다. 정작, 알베인 본인은 충격을 받은 것인지 검을 떨어트린다.

라일라뿐만이 아니라- 사샤마저? 언제? 그런 내색은  적이없는데-


"바보네. 타인을 제대로 보지 않는 네가. 사람의 변화를 알 수 있을  없잖아."

그런 라일라의 말에 알베인은 머리를쥐어뜯었다.



"바보...라고...? 바보는 너희들이다... 멍청한 건 너희들이야...!"



"어째서 내가 아니라 클레온인거냐!녀석은 약해 빠지고, 쓸모없고, 짐 덩어리니까 파티에서 쫓겨났다!"



"할  아는 것이라고는 비겁하게 뒤를 치고, 사람을 속이고, 범하는 것뿐인 쓰레기!"


"기분 나쁜 힘을 가진 검을 들고 다니는 미치광이 범죄자가...! 클레온이란 말이다...!"


추하게 얼굴가죽을 잡고 아래로 당기며 절규하는 알베인.

그럼. 라일라는 쿠온의 손을 잡아 당겨. 자신의 쪽으로 오게 한다.

움직이지 못하는 알베인을 향해 내려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내뱉었다.

"그거, 전부 너잖아."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몸을 돌리는 라일라. 그리고, 그녀의 뒤를 따르는 쿠온.

알베인은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향해 소리친다.

"기다려! 라일라! 어디로 가는 거야!"

"아카데미로 돌아갈 거야. 쿠온도 함께. 너 같은 녀석이 끈질기게 달라붙으면 혼자서는 위험할 테니..."

라일라가 알베인을 돌아본다.그 눈에, 더 이상 알베인에 대한 인연은 남아있지 않았다.

알베인은 그런 라일라의 붉은 눈에 담긴 자신을 향한 증오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마법이 풀릴 때 까지 몸을 비틀어야만 했다.



002



얼마나 지났을 까. 초봄의 날씨는 시시각각 변하는 것.

아침과 점심에는 구름  점 없이 맑다가도. 갑자기 내리는 비에 재난을 당하는것이 봄의 날이라.

우중충하게 흐려진 하늘에서 한 방울, 두 방울. 물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사람 둘은, 하나 둘. 싫은 얼굴을 하면서 실내로몸을 피한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인물도 있었다. 예를 들면- 한참을, 발버둥 쳐도. 마법에서 벗어나지 못해.

길거리에 방치 된 채 있던. 금발의 청년이라던가.

힘이 완전히 빠진 채. 몸을 추욱, 늘어트리고 있으면.

그런 그의 가까이로다가와, 우산을 건네는 이가 있었다.



"... ..."

알베인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로브로 몸을 감싼 채. 서 있는 여성. '갈라'의 모습이 보였다.

"후후... 길거리에서 SM 플레이라니. 좋은 취미네."

갈라의 목소리는, 절망의 빠진 알베인에게는 너무나도 감미로운 것이었다.

그녀가 덩굴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자, 검은 불꽃이 일어나, 덩굴만을 태워낸다.


비에도 꺼지지 않는 불꽃과 함께 덩굴이 땅에 떨어지면. 갈라는 그대로 우산을 둔 채. 걸어간다.

알베인은 고개를 잠시 들어. 그런 갈라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자, 잠깐만... 갈라씨..."

버려진 강아지 같은 목소리로, 갈라를 불러 새우면. 갈라는 조용히, 그를 언제나의 상냥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쿠온의 그것과는 방향성이 다르지만.



"나... 파티의 모두와 헤어져서... 괜찮다면... 이야기를 좀..."

자신이 생각해도, 인과관계가 엉망인 이야기. 허나, 갈라라면. 쿠온이나 라일라와 같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는 계집아이들과는 달리.

성인의 여유를 지닌그녀라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지도 모른다. 자신을 인정해 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녀에게매달린다.



갈라는 잠시 그런 알베인을 보더니. 입 꼬리를 올리며 웃어 보인다.

"그럼... 잠깐 같이 갈까?"

그런 갈라에 의해 유혹되듯. 알베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뒤를 쫓는다.

그녀는 느릿한 발걸음으로. 알베인의 발 앞에 서서 걸어갔다.

내리는 비조차도 기분 좋다는 듯이 맞으며. 머리카락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이.

볼록하게 튀어나온 엉덩이나, 가슴에서 튕겨져 나온다.

뒤에서  모습을 바라보며 걷는 알베인은. 그 모습에 욕정 하여.

검은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알베인 말이야. 술은 마실 수 있어?"

그런 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갈라는 순수한 목소리로 알베인에게 묻는다.

"...네. 일단은 성인이니까요."

그런 갈라의 질문에 조용히 대답하며. 알베인은 어느 샌가.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한명이라도 좋아. 클레온의 손이 닿지 않은 여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모를, 이방의 주술사.남자를 유혹하는 몸을 가진 여자.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녀에게도 책임을 지게 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눈앞의 여자가 절호의 먹잇감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라고. 알베인이 착각과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동안.

그는, 갈라가 자신을 어디로 이끌고 가는 것인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손에 들고 있는 병의 정체도.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뒤를 따라 조용히 걷다가 도착한 곳은, 어딘가. 기억에 있는 장소였다.



"사샤~!"

"아, 갈라씨!"

그리고 갈라가 손을 흔들며 부르는 것은.주황 머리의 여자 아이.

똑같이 비가 내리는 곳에서 우산을  채. 폐허가 되어 무너진 건물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꽃이 보인다. '추모'를 상징하는 하얀 국화.

알베인은, 흐릿한 기억 속에서. 떠올린다.


암살 집단, 장막의 이빨의 아지트가 있던 장소.

자신과 클레온이 싸웠던- 아니, 그것은 싸움이 아니었다. 일방적인 압도.

그런 불쾌한 기억을떠올리며. 알베인이 얼굴을 찌푸리자. 사샤 역시 알베인을 보고는 몸을 움츠리며 갈라를 향해 돌아보았다.


"어째서 알베인 씨가 여기에..."

"음─ 불쌍한 척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조금은  분수를 알게 해주려고."

갈라는 턱에 손가락을 얹은 채. 사샤에게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알베인은, 머리를 마치 망치로 얻어 맞은 듯, 얼얼한 기분이 들었다.


"갈라...씨...?"

그러면서,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었던 여성의 이름을 불렀다. 갈라는 그 불음에 응답하지 않은 채. 액체가 든 병을 사샤에게 건네주었다.

사샤는 술을 병에 따라 건물의 잔해 앞에 놓고, 국화를 올렸다.



"어이 사샤... 뭐하는 거냐... 거기에 누가 있다고..."

"있어요. 분명히 여기에."

암살집단의 쓰레기인가? 아니면 죽은 클레온인가? 어찌되든 좋은 일이다.

이 여자는 이미 자신을 배신하고, 클레온의 앞에서 엉덩이를 흔들어 댄 음탕한 매춘부다.

그런 여자와는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도, 갈라의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었다.


기도를 마친 사샤가 알베인을 돌아보면. 그녀의 눈에는 사냥꾼의 각인이 떠올라 있었다.

평소와 같은 색이 아닌, 조금 어두운 색으로 빛나는 그 각인이, 신비한 분위기를 내보인다.

"사냥꾼의 각인은, 영혼의 궤적도 쫓을 수 있어요."

바로 얼마 전, 마안 술사에게당하면서 활성화 된 그녀의 각인은. 이전보다도 강해져 있었다.

그 덕분인가. 이제는, 이승에 남은 영혼의 흔적을 쫓는 것도 가능해질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바로 얼마 전. 이곳에 남아있는 영혼의 흔적을 발견한 것이다.

'악인'으로 짜 올려진 이를 암살하려 하여, 자신의 검의 명예를 더럽히고  늙은 암살자의 영혼을.

갈라에게 이것을 상담하니, 갈라가 그 영혼이 이승을 떠날 수 있도록 의식을 가르쳐 주었다.



알베인은─ 그것이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자신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클레온'을 암살하려 한 시도가 있다는 사실 자체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임무를 실패한 암살자가 스스로 목숨을 대가로 바쳤다는 것도.

결국, 암살자 쓰레기 주제에. 라고 생각했었다.


폐허의 잔해. 구름으로 인해 빛이 없는 데도, 그림자는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그림자는, 자꾸자꾸 커져만 가고. 마침내, 형체 없는 칼날처럼 변하여. 알베인에게 다가온다.

속도는 전혀 빠르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이 떨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살의를 가지고 접근하는 영혼의 그 증오가. 알베인의 영혼에도 울리고 있었다.


"히, 익...!"

꼴사나운 목소리를 올린다. 알베인은 무심코 자신의 옆에 있던 갈라에게 달라붙었다.

"저, 저리 가! 내가  잘못했다는 거야! 임무를 실패한 쓰레기 주제에...!"

반성 따위는 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모두 클레온 때문이다.


"가, 갈라씨. 당신 주술사지? 그러면, 영혼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거 아냐?"

"으음~ 그걸 물어 본다면. 미안. 나 주술사가 아니야."

갈라가 그렇게 말한 다음 순간. 그녀의 로브가 마력으로 분해되어 허공에 흩어진다.

지금까지 감춰져 있던 그녀의 로브 밑이 모습을 드러내면. 그녀가 '주술사'가 아닌 것은 물론 '인간'조차 아니라는 것을.

그제야, 알베인은 깨달았다.


"아, 악마..."

"...후후. 너도 나를 그렇게 부르는구나. 뭐, 좋아."

'갈라' ──아니,갈라테아가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자, 사샤는 조금 표정을 굳히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사이에도, 영혼의 칼날은 서서히 알베인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나는 말이야... 네가 정말 싫단다. 알베인."

"... ...!?"

갑작스럽게 부딪혀 오는 혐오에, 알베인은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 없었다.



"형편 좋을 때만 클레온에게 매달리고. 스스로 힘을 얻자마자 그를 방해자 취급 하고 쫓아낸 너..."



"성검의 힘에 취해, 본래의 선심을전부 잊어버리고..."


"악의로 검을 더럽히며, 이제 미세하게 남은 영혼마저 갈가리 찢어버린... '부적합자'"

"인간으로써의 너는 싫어하지만... 악마의 주식인 영혼으로써의 너는... 정말 맛있을  같아."


"왜냐 하면 우리들은, '악인'의 영혼을 좋아하니까."



그녀의 얼굴이 ─ 일그러진다.

눈은 마치 초승달처럼. 입은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다.

그것은. 절대로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눈앞의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니다. 악마다. 인간의 영혼을 탐하는 악마. 그리고, 이 여자도 '클레온'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알베인씨!"

사샤가 그렇게 외친 순간. 검은 칼날이 알베인의 목을 노리고 휘둘러진다.

알베인은 퍼뜩 정신을 차리며 몸을 움직이지만. 어깨를 조금 스치고 지나가는 칼날에 상처를 입고 만다.

"크아악!"

"엄살은... 그것보다 더 한 상처도 받은 적 많으면서."

갈라테아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상처에 가져가려고 하자, 알베인은 재빨리 그녀로부터 떨어졌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비로 인해 온 몸을 적신 채. 피와 땀을 흘리며 알베인은 갈라테아를 노려본다.

"아아. 어째서 클레온의 편을 드냐고?"

"... ..."

그럼, 갈라테아는 당연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 한다.

"그야, 나는 클레온의것이니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겉과 안. 탄생부터 종말. 육체와 영혼이 모두... 그만의 것."

"─빌어먹으으을!!!"

알베인의 성검이 다시 한 번 뽑혀진다. 이번에는, 그 본래의 목적대로. 악마를 베어내기 위해서이다.

허나. 공포로 인해 흐려진 그의 검이 갈라테아에게 닿을 리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날아온 화살이 성검의 궤도를 바꾼다. 사샤가 손에 든 활은, 평소와는 다르게 작은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알베인을 방해하기에는 충분했다. 알베인이 귀신같은 얼굴로 사샤를 바라보지만. 사샤는 침을 삼키며 담담히 이야기 했다.


"...알베인씨. 알베인 씨는 지금까지, 수많은 죄를 저지르며. 영혼을 더럽혀 왔어요. 지금의 저한테는 그게 보여요."

그녀는 슬픈 듯, 활을 든 팔을 아래로 내리고 땅에 남은 술을 뿌렸다.

그러자, 그림자는 서서히 줄어들며. 이윽고 모습을 감춘다.


"그 영혼은 이미 정화할 수 없을 정도로 검게 물들어. 성검과의 연결마저 아슬아슬 한 상황..."

알베인은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뒤로 물러선다.

"─혹시라도. 용서 받고 싶으시다면... 죗값을. 치르세요. 본인의 영혼을 구할 방법은 그것뿐이니..."

"나한테... 나한테 명령하지 마!!!!"

그러면서 손을 뻗어 사샤를 향해 겨눈다. 평소와는 다른 왼손의 끝에, 마력이 집중되면-



"세인트 레이!"



황금색 섬광이. 말 그대로 빛과 같이 나타나. 사샤의 어깨를-


카앙-

꿰뚫지 못했다.

어느 샌가, 그 모습을 감춘 갈라테아.

그 대신, 폐허의 위에 내려 와. 사샤를 지켜낸 것은- 아름다운 검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은.

"... ... 네가, 어떻게...“



흑발 흑안의 마검사.

"클레온..."

"...알베인. 이제 끝낼 시간이다. 네게 어울리는 최후는... 고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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