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함정
눈에 감겨있던 천이 부드럽게 풀리면. 하룻밤, 어둠속에익숙해 져 있던 각막에, 빛이 새어 들어온다.
조금씩, 클레온이 눈을 뜨면. 자신이 있는 곳이 바깥으로부터 햇살이 따뜻하게 비추어져 들어오는 방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룻밤. 환기를 하여 향의 냄새가 빠져 나가면. 다른 냄새- 시큼한 약품류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주변의 커튼이나, 위생적인 방 안의 환경. 그리고 치유를 상징하는 장식물을 보아 이곳이 도시 내의 '의원'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아아, 일어나셨군요. 클레온님."
조금 멍하니. 어젯밤의 일을 떠올리던 클레온에게 들려오는 목소리.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잿빛 눈에, 검은 머리를 가닥으로 땋아 뒤로 넘긴 어두운 피부의 소녀. 그 목소리는, 어제의 밤에 자신의 귀에서 신음소리와, 음어를 속삭이던 그것과 같았다.
즉. 이 순수하고 어려보이는 소녀가 페르디아.
복장은 어제의 검은 색, 암살자로서의 복장이아닌, 흰색의 얇고, 가벼운 간호의. 머리에 쓴 간호모까지 더해, 본격적인 것으로 보인다.
"아아, 이 옷입니까. 평소에는 이 의원에서 일을 돕고 있습니다."
신전에 가서 금화를 내면 아픔도, 고통도 없이 치유마법을 받을 수 있는 대륙의 정서상. '의원'은 병에 걸린 사람들이나, 출산을 앞에 둔 사람들. 혹은, 신체적, 정신적인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장소였다. 거기에, 비용도 신전의 그것에 비하면 비싼 편이기에 실수로라도 모험가가 찾을만한 장소는 아니다.
그런 면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암살을 하지 않는 '장막의 이빨'의 경우, '의원'같이 찾는 사람만 찾는 장소야 말로, 숨어있는 곳으로 알맞은 장소였다.
"─의원의 선생님께서 돌아가셨으니. 이곳도 곧 폐업을 해야겠지만 요."
페르디아는 조금 쓸쓸한 표정이 되었다. 클레온은 잠시 무엇인가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까 고민했지만. 이내 말을 삼키며 다른 주제로 돌리기로 했다.
"알베인은... 어떻게 됐지?"
"당신에게 마안을 사용했던 그 여자가 데리고 갔습니다. 그 뒤에 당신이 바로 정신을 잃으셔서... 뒤를 추적하고 싶었지만, 우선 그곳을 정리하는 게 우선이었기에."
그녀의 말에.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몸 상태는... 어떠신가요."
"문제없다. 눈도, 몸 안의 마력기관도... 평소보다 잘 움직이고 있어. 네 덕분이군."
"아뇨. 받은 은혜에 보답한 것일 뿐."
페르디아는, 클레온의 말에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손을 안절부절, 가만히 놔두지 못하는 것을 보니, 어제의 일을 떠올리고 있는 듯 했다.
클레온은 그런 페르디아를 잠시 바라보다, 침대의 옆에 있는 자신의 장비들을 챙긴다. 알베인을 한 번 멈추긴 했지만, 그를 조종하는 '집행과'의 여자는 아직 이 도시의 어딘가에 있다.
루티를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조금 더 빨리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알베인과의 승부는 그녀의 각본을 찢어버린 다음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저에게도 돕게 해주세요. 그 마안술사... 분명, 그녀가 용사를 부추겨 저희의 아지트를 습격시킨 것이겠죠."
페르디아는방금 전의 사랑하는 소녀의 얼굴을 지워버리고. 얼음같이 차가운 얼굴로 말해왔다. 그런 페르디아의 말에 클레온은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러면서도 이내, 그녀의 복수가 합당하다고 여겨,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클레온님. 방해는 되지 않겠습니다."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머리, 어제보다 양이 꽤 줄었는데."
클레온은, 그녀가 사용하던 '머리카락을 조종하는 기술'을 떠올리고. 알베인에 의해 반 쯤 잘려나갔던 것을 기억한다.
지금 그녀의 머리카락은, 비대칭으로되어 있어, 오른쪽의 뒷머리만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상태이다.
"괜찮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싸울 수 있기에."
그러면, 그녀의 머리끝에 달린 촉에서 검은 빛이 일어나,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머리카락이 중력을 거슬러 움직인다.
수는 줄었지만, '암살'용의 기술로 싸우기엔 문제가 없겠지.
"허나, 그 여자의 행방은 아직 불명인 상태입니다. 아이들 중 움직일 수 있는 자들에게 그 여자의 흔적을 찾게 했지만─"
"아니. 아마 그녀의 거처를 찾는 건 우리들로는 불가능하다."
클레온은 단언할 수 있었다. 라일라의 기억에서 본 것에 의하면, 집행과의 인간들은 그 존재를 완전히 어둠속에 감추는 것에 탁월해 있었다. '암살자'들 역시 그런 일의 프로였지만. 집행과는 더더욱, 깊은 어둠과 연결된 이들이다. 여러 가짜 신분. 수십 개의 은신처. 수백 개의 가명. 그것을 매일매일 바꾸어 살아가는 그들의 뒤를 밟는 것은 왕국 최고의 수사기관인 기사단이라고 하더라도 힘든 일이겠지.
땅굴 깊숙한 곳에 숨은 뱀을 찾는 것은 힘든 일이다. 잘못 손을 넣었다가 물려, 독이라도 온몸에 퍼지게 되면. 본전도 못 찾는 결과가 된다.
그렇다면... 이쪽에서 꾀어내면 되는 일이었다. 그쪽이 함정이라는 것을알면서도 나올 수밖에 없는 유혹.
필요한 것은... 미끼이다. '집행과'로써 눈이 돌아갈 만한 물건이라 한다면...
클레온은 페르디아를 바라본다. 그러고는 조용히. 자신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001
쾅! 하고 강렬한 주먹이 어두운 방의 벽에 내려쳐 진다.
삭히지 않는 분. 여유를 가장하고 그 자리에서 벗어나 용사를 신전에 던져놓고 왔지만.
집행과로써 수많은 이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꼭두각시 인형처럼 조종해 온 그녀에게 있어서.
어제의 그 일─
'다가오지 마'
"큭...!"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등줄기에 소름이 돋고 심장의 고동이 빨라진다. 분명, 그것은 미지의 존재였다.
청록색의 머리에, 옅은 갈색의 피부. 여자인 자신이 보기에도, 아름답다고 여겨질 정도의 여성. 허나, 동시에마음 깊숙한 곳에서 올라오는, 혐오감.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살기에 짓눌리지 않게, 그 자리에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겨우였다.
"대체 뭐지... 그 존재는..."
집행과는 아카데미의 겉과 속. 양쪽에 존재하는 모든 지식을 열람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빠른 발로 방으로 돌아온 그녀가 통신의 마법으로 금서고의 사서에게 '마검의 악마'에 대해 조사를 명했지만.
12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만족스러운 답변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집행과'와 같은, 아카데미의 어둠이라고 불리는 족속들도.
그 근본은 지식을 탐구하는 '학자'들.
자신이 모르는 지식과 사상의 편린을 맛보고 난 뒤. 그녀의 마음은 쉽게 진정되고 있지 않았다.
분노, 공포를 이기는 호기심, 지식욕.
물론. 지금까지도 그녀는 많은 마검이나 성검에 대해 조사해 왔다.
허나, 그 중에 '그것' 아니, '그녀'와 같은 존재를 만난 적은 없었다.
강제로 마검을 폭주시켜 마을 하나를 전멸시켰을 때도...
성검의 용사를 전쟁터로 내몰아, 일대를 볼모지로 만들었을 때도...
가능성이라고 한다면─ 클레온의 마검만이 그런 존재와 계약하고 있다는 것.
그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클레온과의 재접촉이 필요했다.
물론. 그가 자신을 만났을 때, 이번에는 마안에 대해 충분히 경계해 있을 테니 어제와 같이 일방적인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알베인을 잘 구슬려 조종하여 클레온을 무력화 시킬 필요가 있었다.
"칫..."
허나. 그 중요한 용사마저도, 어제의 싸움에서 입은 피해로 골골대며 기절해 있는 상황.
신전에서 치료를 받고 있지만, 치료주문은 정신적인 충격은 회복시키지 못한다. 결국, 마력의 힘을 빌려 몸을 복구하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그의 곁에서 누군가가 간병하지 않는다면... 회복에는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
"...이럴 줄 알았다면. 알베인을 '폭주'시켜서 도시 하나를 잿더미로 만들더라도..."
품속에 있는 검은 스크롤에 손을 올리며 중얼거린다.
물론. 그렇게 하면 자신이 공을 들인 각본을 무대 째로 불태우는 것이나 다름없다. 최종적으로 같은 결과에 도달하더라도, 그녀의 프라이드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조금 진정할 필요가 있다. 자신은 아카데미의 그림자. 지식을 탐구하기 위해 어둠을 받아들인 인간.
도시의 수장인 [행복의 바람]... 길드 마스터는 경계할 필요가 없었다. 자신이 그녀의 비밀을 쥐고 있기에, 그녀는 자신을거스를 수 없다.
... 뒷골목의 녀석들을 이용할까. 쓰레기 같은 녀석들이지만. 아직 [갱]과 [사교도]가 남아있었다.
아직 우위에 서 있는 것은 자신이다. 클레온의 은신처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는 자신에 비해, 그들은 절대로 자신을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그래. 그 저택에 관한 것을 마을에 흘려 이번에는 모든 모험가들이그곳으로 향하게 하자.
되도록 멀쩡한 상태의 시체를 손에 넣고 싶어 장막의 이빨에만 클레온의 거처를 흘렸지만, 이제는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약하고 제멋대로에 오합지졸이 녀석들이지만. 수는 있으니. 그 수를 상대하면 분명 틈이 생길 것이다.
그 때에, 자신의 마안으로... 마무리를─
"...응?"
그 때. 바깥에서 들리는 환호성 소리. 검은 방의 커튼을 걷어내, 바깥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모험가들이 환호성을 내 뱉으며 거리를 행진하고 있었다.
가장 앞에 서 있는 것은─ 검은 천으로 감싼 무언가와. 기억에 있는 '아름다운 검'을 손에든 채. 천천히 걸어가는─
"...저건..."
도시의 모험가 중 한명인가? 클레온과 알베인 외의 모험가들은 다들 똑같이 생긴 것처럼 보이니. 그녀로써는 기억에 없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저 검. 어제, 자신을 공포로 몰아넣은 악마의 검이란 것은. 멀리에서 보더라도 분명했다.
─설마. 클레온이 죽은 것인가? 자신이 공포에 질려 방 안에 틀어박혀 있는 동안?
──공포에 질려?
"하하..."
마른 웃음이 흘러 나왔다. 무의식적으로 상기된 본심에 '집행과'는 옆에 세워두었던 술병을 들이켰다.
반 정도 남아있던 액체를 모두 위장에 털어 넣고.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되었다면 틀어박혀 있을 이유는 없다.
원하는 것은 손에 넣을 필요가 있었다.
002
모험가 길드의 휴게소에서는, 잔치와도 같은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명의 모험가가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던 마검사에게 마무리를 하여.
그대로 수급과 마검을 회수하여 돌아왔다.
누군가는 그런 행운과 맞닥트린 모험가를 폄하하지만.
어차피, 결국 모험가라는 것은 운이 좋은 놈이 이기는 것이다.
실력이란 것은, 조금이라도 자신의 불운을보완하기 위한 것일 뿐.
금은보화를 찾아내는 것도. 고대의 유물을 찾아내는 것도. 잊힌 지식을 찾아내는 것도.
자신과 큰 격차가 나는 마물과 싸워 우연히 승리하는 것도.
'운'이 있다면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이 행운아의 이름을 높게 부르며 건배한다.
어차피. 모두가 진심으로 '마검사'의 사냥에 임한 것은 아니다.
분위기에 휩쓸린 녀석들도 있었고. 그저, 도시에서 암약하는 위험분자를 경계한 것일 수도 있다.
길드의 이름에 먹칠을 한 녀석을 용서하지 못했을 수 도 있다.
하지만. 그런 위협은 끝이 났다.
'녀석'은 운이 없었다.
누군가의 불행은 다른 이에게 행운이라고했던가.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다.
게시판을 점거하고 있던 붉은 양피지가 떨어져 나가며.
길드는 오늘 하루. 그 기념으로 모든 식비와 술값을 길드에서 부담하기로 했다.
이것이. 길드에서 벌어지는 잔치의 정체였다.
─그러한 떠들썩한 분위기 속.
길드 마스터 루티는,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사무실로 불러들인 채.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붉은 코트 제복의 여성. 이전, 알베인과 함께 자신을 찾아와, 비밀을들먹이며 협박해 온 인물.
클레온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에게 찾아온 거겠지.
루티는 그런 그녀에게서 시선을 때지 않은 채, 그녀가 늘어놓는 궤변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태의 원흉인 마검사 클레온의 육체와 그가 보유하던 '마검'은. 아카데미에 의해 회수되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바입니다."
결국. 결론은 이것이었다.
회수된 것은 '머리'뿐. 몸의 행방은 불명이다. 그리고 마검. 기능이 정지해 있지만. 마력이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클레온이 죽으면서 마검의 기능이 정지한 것인가?
'집행과'는 조용히 마검을 눈으로 훑으며, 입 꼬리를 올렸다.
이것이라면, 그 악마도 튀어나오지 않으리라.
"조금 욕심이 과한 건 아니실까요. 현상수배범의 목과 마검. 양쪽 모두 가져가시겠다니."
루티는, 폭거라고도 할 수 있는 여성의 말에 저항한다는 듯. 형식상의 예의를갖추어 대답한다.
허나, 집행과는 코웃음을 치며 입을 비틀었다.
"잊으신 걸까요~? 당신은 저에게 저항하실 수 없습니다."
그래. 자신은 이 여자를 완벽하게 조종할 수 있다. 거기에 마안의 힘 따위는 필요 없다. 그저, 알고 있는 사실을 내보이면 되는 것이니.
루티는 얼굴을 험악하게 하지만.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눈가에 떠오른 핏줄. 세로로 찢어진 동공. 확연한 분노가 공간을 지배하지만. 집행과에게는 그저 힘없는 자의 발악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아~아~. 무섭네요. 이렇게나 마력 압력을 높이시고~ 이게 옛 제국의─"
"그만!"
그 이상의 단어를 듣고싶지 않다는 듯. 루티는 마력을 해제하며, 눈을 감았다. 약간의 침묵. 거기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은, 집행과의 여성뿐이었다.
"──. 가져가세요. 하지만. 약속은 지켜주시겠죠."
"네에~ 물론이에요. 물론. 당신이 저를 배신하지 않았을 경우에... 이지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마력을 사용해 물건을 띄워 올린다. 보따리에 쌓여있는 클레온의 목과, 그 마검.
확실하게, '집행과'의 것이 되었다.
003
학자에는 두 분류가 존재한다.
하나는, 자신이 정해놓은 선의 내에서, 있는 힘껏 지식을 탐구하며. 그것을 자신이 속한 사회나 집단에 환원하는 이들-
또 다른 하나는... 선 따위는 존재 하지 않고. 그저 자신의 욕망에 따라 알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에 솔직한 이들이다.
근간에 있는 지식욕은 동일한 것일 탠데. 스스로를컨트롤 할수 있냐는 점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집행과의 여성은. 자신이 분명히 후자라고 자각하고 있었다.
허나, 그녀의 입장에서 보면. 전자의 인간은 그저 겁쟁이들.
도덕이라던가, 윤리관에 억매여 진정으로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학자'의 축에도 끼지 못하는 이들이다.
본인이 가진 재량을 십분- 아니, 십이분 활용해서라도 세계의 비밀을 파해쳐야 한다.
모름지기 아카데미에 재적을 두는 학자라면. 그런 삶을 살아야만 한다고, 그녀는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주저 하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한 것은. 그 자리에서 클레온의 마검을 해석하는 것이었다.
본래라면 아카데미에 돌아가 보고를 한 뒤, 원로들의 허락을 받아야 했지만-
그런 것은, 그녀가 추구하는 학자의 길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허락을 받더라 하더라도, 연구를 맡는 것이 다른 이가 될 수 도 있다.
─그 악마의 비밀은, 자신이 풀지 않으면.
그렇게, 마안에 불을 킨 채 마검을 들여다보길 10여분. 해석도구를 가까이 가져가면, 남아있는 마력으로 펼쳐진 결계가 그것을 튕겨낸다.
기능이 정지한 마검임에도, 마치 애벌레의 고치와 같이,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이 결계는 마검사가 죽기 전의 마력을 모두 짜 내 자아낸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죽기 직전. 영혼을 불태워 만들어낸 마력이 가장 강력하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옆에 놓여있던 보따리에게 눈이 돌아갔다.
루티의 사무실에서 내용물은 이미 확인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클레온'의 머리임에 틀림없었다.
─죽은 이의 뇌에도. 정보는 남아있다. 어쩌면. 죽기 직전에 그가 남긴 지식이, 이 결계를 해제 하는 데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사자의 모독이라는 '도덕'따위를 신경 쓰지 않는 그녀였기에.
문제없이, 보따리를 풀어. 모습을 드러낸 클레온의 머리에, 해석을 위한 '기다란 바늘'을 찔러 넣었다.
끝을 마력으로 강화하면, 죽은 인간의 머리 따위는 쉽게 꿰뚫을 수 있다.
그곳을 통해 마력을 주입하고, 뇌를 통과시켜, 걸리는정보들을 다시, 다른 바늘로 뽑아낸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 때문에, 뇌가 견디지 못하고 녹거나, 타버리거나 하겠지만
뭐. 그 정도의 희생 따위.
해석이 시작되면. 달구어진 바늘에서 흘러나오는 지식을 훑어낸다.
아직 초반. 실망하기에는 이르지만. 나오는 정보들은 대체로 쓸모없는 것들뿐이었다.
──그렇게. 5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석회질과 단백질을 태우는 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까지 심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몸이 편안해지는 향기이다. 정신이 몽롱해지며, 자신이 무엇을 하려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집행과는 어느 샌가 팔에서 힘을 뺀 패. 몸을 의자에 기댄 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라─ 어째서... 나... 이렇게...'
사고가 지리멸렬하게 전환된다. 악의와 총명으로 가득했던 눈에서 이지의 빛이 사라지고. 숨을 쉴 때 마다 폐를 가득 채우는 향기가-
향...기...─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다.
자신이 놓친 무언가─
"공에 목을 매다니, 판단력이 흐려졌군. 아니면, 그것마저 클레온님의 계산 안인가..."
어둠속에서 들리는 소녀의 목소리.
자연스럽게. 집행과의 시선이. 그림자로 향한다. 그곳에는, 해골의 가면을 뒤집어 쓴 검은 머리의 소녀가 보였다.
장막의 이빨─ 자신이 클레온을 죽이기 위해 버림 패로 썼던 그 집단의 새로운 수장.
"어...째서..."
소녀는 조용히, 불이 피어오르는 클레온의 머리-의 모습을 한 그것을 바라보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움직여, 창으로써 꿰뚫는다.
그러자, 그 안에 보이는 것은. 클레온의 뇌수도-, 두개골도 아니었다.
말려진 풀과, 무게를 위해 추가된 석회질의 무언가.
"'은실거미풀'이다. 너라면 알 수 있겠지. 그것의 효능을. 물론. 치료용으로 중화하지 않은. 본래의 효력 그대로다."
"마력...기관의...폭주... 비정상적인...신체의...활성화... 뇌내의...감각이...가속하여..."
느릿. 느릿. 입에서 주문처럼 흘러나오는 대답.
향의 효과로 완전히 맛이 간 그녀의 뇌는. 그녀가 느끼는 것보다도, 느리게 지나가는 현실과의 괴리에서 방황하며.
영원과도 같은 한순간을. 끊임없이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명. 소녀의 뒤에서 걸어오는 남자.
입에는 향의 효력을 막기 위해 복면을 쓰고 있었지만. 특징적인 그 외모는 감출 수 없었다.
마검사. 클레온.
그와 눈을 마주친 '집행과'는 마지막 발악이라는 듯, 눈에 마력을 흘려보낸다. 폭주한 기관에 의해 필요 이상의 마력이 집중된 눈에서, 핏물이 흘러내리지만─
클레온의 눈에는. 다른 각인이 떠올라 있었다. 사냥꾼의 각인. 마안으로부터 그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클레온은 그런 그녀를 무시한 채. 옆에 놓여있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든다.
그러고는, 한 장을 찢어 옆에 서 있는 페르디아에게 넘겼다.
"여기에 있는 녀석들이. 이 여자에게 협력하는 도시 내에 숨어있는 인간들이다. ...맡기지."
"네. 클레온님."
그 말과 동시에, 페르디아는 다시 한 번 그림자로 숨어들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갈라진 자신의 머리를 바라보던클레온은. 조용히, 그 옆에 놓여있던 갈라테아에게 손을 뻗는다.
그러자. 스스로 기능을 정지해 두었던 마검이 눈을 뜬다.
[불쾌했어.]
"미안하군. 고생을 시켜서."
나지막이 들려오는 파트너의 목소리에. 클레온이 대답한다. 검 끝이 흉흉한 마력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럼. 먹게 해줘.]
"──이걸?"
[그래. 꽤나 맛있어 보이는 걸.]
클레온은, 본능적으로 갈라테아가 지칭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의 눈은, 침을 흘리며 움찔 거리는 집행과의 마안술사에게 향한다.
정신을 차리더라도 비밀 유지를 위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겠지. 거기에, 살려두기에는 저지른 일이 너무 많다.
"... ..."
클레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마검은 본모습을 들어냈다. 언제나와 같이 매혹적이면서도 위험한 그녀가 웃음을 지으며, 여자의 목덜미로 입을 가져갔다.
크게 벌어진 입이 다음 순간. 그 목을 꿰뚫고-
서서히. 서서히.
여자의 몸은 마력이 되어 흩어지며.
전부, 갈라테아의 안으로 흡수되는 것이었다.
그녀가 마지막에 느낀것은. 공포도. 분노도. 절망도 아니었다.
'무언가를 느끼면서 죽는 것'은
그녀에게 사치였다.
그리고. 그 영혼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조차.
004
클레온은, 조용히 방에 있던 물건들에 불을 지폈다. 수첩의 내용물을 전부 확인하고. 이것들이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수많은 이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도 눈에 띄지않는 작은 건물에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미, 이 건물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분위기는 없었다. 몇 년 전 부터, 쭈욱. 누구도 살지 않는 빈 집이었다.
아마, 도시의 감시를 위해 아카데미 측에서 준비해 둔 건물이었겠지.
건물을 빠져나온 클레온은, 조용히 뒷골목으로 향한다.
그러자, 그곳에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루티 시온스'가 클레온을 맞이한다.
"... ... 루티."
"── 고마워. 클레온. 하지만 방법이 너무 악랄한 거 아냐? 깜짝 놀랐다구. 아무리 작전이라지만.“
귀엽게 볼을 부풀리는 분홍머리의 소녀.
클레온의 머리가 발견되어 자신의 앞에 대령되었을 때. 루티는 얼굴색을 바꾸지 않기 위해 요 십몇 년 동안 했던 고생을 몇 분 만에 겪는 느낌이었다.
허나, 그 수급을 직접 확인하고 나서.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파악한 다음 순간. 냉정함을 유지한 채. 그 작전에 협력할 수 있었다.
"널 믿었으니까."
"...읏. 정말. 무책임한 소리."
클레온의 말에, 루티는 손가락을 그의 입으로 가져갔다. 복면위로 느껴지는, 그의 입술.
천천히, 손가락이 올라가며, 클레온의 복면을 벗겨낸다.
그리고, 달밤의 그림자에 숨어. 조용히.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듯.
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클레온님. 정리가... 아."
허나.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의해. 루티는 황급히 얼굴을 붉히며 클레온에게서 떨어졌다.
"...죄송합니다. 제가 방해를 했나요?"
페르디아의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듯 한 목소리를 듣자, 루티는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장막의 이빨. 이번 사건에서 공로를 치하하여, 길드의 인원을 습격한 건에 대해서는 불문으로 하겠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언제나의 길드 마스터- 행복의 바람 루티 시온스로 돌아와 있었다.
페르디아는 가슴에 손을 올리며 대답했다.
"아뇨... 스승님의 원한을 갚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클레온님으로부터받은 은혜에도 보답하기 위해."
"...장막의 이빨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요?"
페르디아는 조용히 해골의 가면을 벗었다. 재의 눈이, 달빛 속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애수에 잠겨 있었다.
"...스승님께서 돌아가시면서, 조직은 저와 어린아이들만 남았습니다. 아지트도 엉망이 되었고. 그들이 성장하여 빛의 위를 걸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스승님의 의지였으니. 저도 그것을 따르려 합니다."
거기 까지 말한 다음. 페르디아는 가슴에 올렸던 손을 꾸욱 쥐며, 클레온을 바라본다.
"그리고, 클레온님의 힘이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그렇습니까. 잘됐네 클레온. 또 여자아이가 늘어났어."
"...어이."
루티의 말에 얼굴을 붉히는 페르디아. 클레온이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책망하자. 루티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농담이야. ─잘 알겠습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 것 같으니. 나중에 저를 한 번 찾아와 주세요."
"...괜찮은 겁니까? 저희는─"
"장막의 이빨은 '암살집단'. 하지만, 선대의 대 부터 '악인'을 암살하는 의뢰 외에는 받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이번의의뢰는... 뭐어, 클레온은 나쁜 녀석이라는 것이었으니."
루티의 말에 클레온이 팔짱을 끼며 고개를 돌린다.
"거기에, 선선대의 죄는. 이미 선선대가 치룬 지 오래입니다."
루티의 마지막 말에. 페르디아는 힘차게 끄덕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희망의 빛이 보였다. 그리고, 클레온을 향해 이야기 한다.
"클레온님. 제 힘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분명, 도움이 되겠습니다."
"...아아. 그렇게 하지."
클레온의 대답을 들은 페르디아는, 그대로 뒷골목의 어둠속으로 뛰어 올라. 달빛에 녹아들듯 모습을 감추었다.
루티는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클레온을 돌아본다.
"이걸로 네 명 째?"
"아니 다섯... ──뭘 물어보는 거냐."
"다섯!? 하나 많은데! 누구야 또!?"
자신이 알지 못하는 여성의 존재에 대해 추궁하는 루티를, 귀찮다는 듯이 떼어내는 클레온.
땅거미 진 그림자 속을 걷는 그의 주머니에는─
흉흉한 저주를담은 검은 스크롤이 쥐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