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화 〉구원 (17/72)



〈 17화 〉구원

대륙 변방의 도시.

내세울 것이라고는 모험가들과 길드밖에 없는 조용하고 작은 이곳.

평소에는 낮이 되어도 사건사고가 일어날 일도 없고.

그저. 언제나처럼 조용히 시간이 흘러가는 나날의 반복일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모험가 길드에서 발행된 붉은 두루마리. `현상 수배` 의뢰.

대상은 마검사 `클레온`.

이 도시의 길드에서 붉은 두루마리의 의뢰가 발행된 것은 정확하게 10년 만의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수근 거린다.

흑발의 흑안. 성검과 대비되는 마검을 가진 청년에 대해서.

어떤 이들은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고 그를 비난했다.

어떤 이들은 그의 도움이 받은 적이 있다고,아쉬워했다.

그러나 클레온을 도우겠다고 움직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곧 모험가 길드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되는 일.

이 도시에서 더는 지낼 수 없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여느 숙소에서도 클레온이 숨은 곳을 찾기 위에 북적거리는 와중.

 한 곳.

중급 숙소 내부의 `쿠온의 방`만이 조용히 타인의 출입을 금한  이었다.



그리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방의 주인인 쿠온과 사샤가 바닥에 앉은 채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고.

창문으로 들어와 그대로 침대 위를 차지한 채 엎드려 누워있는 라일라의 모습이 보인다.

알베인의 독단적인 의뢰 발주.

자신들에게는 상담 없이.

아니, 이미 사이에 생긴 골이 너무 깊은 것이겠지.

길드를 움직여 클레온을 뒤쫓는 현 상황에 대해  사람은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모두 너무해요. 정작 사건의 당사자인 쿠온씨의 이야기는 들어주지 않고…."

사샤는 무릎을 끌어안은 채 조용히 중얼거렸다.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어쩔 수 없지. 현상 수배는 길드 마스터의 권한이니까. 길드 전체의 신용이 걸려 있는 문제이기도 하고…."

그런 사샤를, 쿠온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위로한다.

한 시간쯤 전.

길드에서 의뢰가 발행되는 것을 본 사샤는 길드 모두에게 클레온의 무죄를 주장했지만,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 취급을 받은 것이다.



"말해 봤자 소용없어. 내심, 클레온에 대해 질투심을 가진 녀석들은 많았을 테니….  클레온에게 관심이 없더라도, 보상을 노리고 움직이는 녀석들도 적지 않으니까."

라일라는 몸을 움직이지 않은 채 입을 연다.

부동의 자세로 말할 때마다 머리만 움직이니 그 상황이 꽤 이상했다.

그런 라일라를 보며 사샤도 쿠온도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저기, 라일라씨. 어째서 쿠온씨의 침대에 누워 계신 건가요. 아까부터."

사샤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자 라일라는 잠시 침묵한다.

그러곤, 머리카락을 푹 눌러 얼굴을 가리며, 쥐구멍에나 들어갈 법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 그냥. 조금…. 허리가 아파서. 며칠째 연구하느라…."

""앗….""

쿠온과 사샤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것은… 그거다.

알고 있는 반응이었다.

어색한 침묵이 감돈다.

여기 있는 모두가 한 사람에게 안겼다는 것에 묘한 공기가 형성되었다.

그 흐름을 억지로 바꾸기 위해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라일라의 쪽이었다.

"아-뭐-…. 걱정하지 마. 클레온이 어디 있는지 아는 건 우리뿐이고. 웬만해선 찾지 못할 테니."

"하지만 만약의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저희도 지금이라도 클레온씨와 합류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사샤는 아무리 클레온이 강하더라도 수적으로열세에 몰리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듯.

걱정하는 눈빛 한가득 으로 쿠온과 라일라를 돌아본다.

하지만 쿠온은 고개를 저으며 사샤를 달랬다.

"사샤. 클레온이 말했지? 알베인이 어떤 조처를 하던우리는 되도록 움직이지 말라고."

그날. 라일라가 검의 핵을 건네받고 셋이서 도시로 돌아온 날.

클레온은 헤어지기 전에 세 사람에게 당부해 두었다.

이제부터 알베인과의 싸움을 준비할 테지만 되도록 그사이에 끼어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알베인을 돕겠다면 자신과 적대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고.

그럴 생각이 없다면 알베인의 행동을 내버려두라는 것이었다.

그편이 알베인의 행동을 예측하기 쉽다는 것이 클레온의 방침이다.

"흥. 센 척은 엄청나게 하네."

라일라는 코웃음을 치며, 사샤 쪽을 돌아보았다.

그 얼굴에는 불만이 보였다.

사샤와 마찬가지로 알베인의 만행을 두고 볼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만이겠지.

그녀의 프라이드의 문제겠지만


만약에라도 알베인이 클레온에게 승리하게 된다면.

일행은 클레온이 없는 상태로 파티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장애물을 해치우고,

더더욱 기고만장해진 용사의 곁에 쿠온, 라일라, 사샤가 돌아간다.

상상만 해도 등줄기에 소름이 돋는 미래였다.


"...하지만. 의외야. 루티씨가, 알베인의 이야기만 듣고 현상 수배를 걸다니."

일이 이렇게까지 흘러간 상황에 의문을 가진 쿠온이 조용히 다음의 화제를 꺼냈다.

사샤와 라일라의 시선이 쿠온에게 모인다.

이 중에서 이 길드에서 가장 오랫동안 활동한 것은 확실히 쿠온이었다.

사샤와 라일라는 길드 마스터 루티를 만난 적이 없다.

루티가 워낙 사무실에 틀어박혀 있는 날이 많다는 것도 원인  하나였지만

라일라로써는 길드 마스터 정도는 안중의 밖이었고.

사샤는 길드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쿠온은 루티를 만난 경험이 있다.

이전 알베인이 성검의 선택을 받아 클래스를 용사로 변경하기 위해.

그녀가 왕국을 대신하여 알베인을 용사로 인정하는 선언문을 낭독한 것을 기억한다.

그때의 그녀는 자신들에게 상냥하고 사려 깊은 여성이었다.

거짓말로라도,

알베인의 일방적인 허언만 가지고 누군가를 반드시 죽음으로 몰아가는 명령을 내릴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루티씨…. 저는 만나 본 적이 없지만. 어떤 분이신가요?"

사샤가 그렇게 이야기 하자 쿠온은 입을 연다.

"음…. 분홍색의 머리카락이 특징적인 분이시지. 우리랑 나이 차이도 그렇게 나는 것 같지 않는데, 10년 전에 길드 마스터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야."

쿠온 본인도 루티의 상세한 인물상에 대해선 자세하지 않은 편이었다.

알고 있는 것은 위에서 이야기한 내용과 외견.

그리고 도시 내의 인기 정도이다.

수완이 훌륭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녀와 사적으로 알고 지내는 인물을 본 적은 없다.



"분홍색…. 아."

쿠온의 이야기를 듣고 사샤는 턱에 손을 올리며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했다.

"...어쩌면,  어제. 루티씨를 봤을지도…."

"어제? 어디서?"

사샤의 뜬금없는 이야기를 듣고 반응을 보인 것은 라일라였다.

"어…. 제가 지내는 숙소에서요. 조금 갑갑한 느낌이 들어서 창문을 열었는데…. 제 창문의 밑의 골목길에서 이야기 소리가 들려오는  같아서…."

사샤는 ‘으음….’ 하는 소리를 내며 팔짱을 끼고 기억을 되살려 내는  힘을 쏟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졸리더라도 제대로 들어 놓을걸. 같은 생각을 한다.


"그 사람이 누군지는 몰랐지만. 로브를 뒤집어쓰고 분홍색 머리가 보였어요."

"분홍색 머리만 가지고는…. 누구랑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 ─아마, 알베인 씨에요. 목소리가익숙했고, 냄새가 났거든요."

사샤는 그때야 떠올랐다는 듯이 손뼉을 치며 이야기했다.

그런 그녀의 눈에는 마력시와 비슷한 그녀 특유의 황금색의 문장이 떠올라 있었다.

냄새를 쫓는 사냥꾼의 눈.

냄새를 시각화하고,

후각  자체를 강화하는 짐승의 힘을 담은 사냥꾼의 각인이다.

기억에 반응하여 발동한 것일까 라일라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연다.



"...그렇다면. 루티가 맞는 것 같네. 하지만 둘이서 밀회를? 그렇고 그런 사이였나?"

"알베인이…? 루티씨와? 아니.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었고. 만약 그랬다면 우리에게 자랑했을 거야."

쿠온의 부정에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과시하기 좋아하는 알베인이라면 그렇게했겠지.


"...그리고 알베인 씨의 옆에 누군가가 있었던 것 같아요."

"잠깐. 그럼 사람이 세 명 있었다는 거야?"

라일라의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샤.

점차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과 함께.

사샤는 어젯밤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000.5

`... 클레온씨.`

사샤는 흥건히 젖은 자신의 손가락을 잠시 내려다보다 고개를 저었다.

몸을 섞은 날부터 때때로 몰려오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런 식으로 자신을 달래기를 며칠.

원래라면 산이나 숲을 달리며 사냥감을 쫓는 것으로 이것을 발산했겠지만.

알베인의 외출 금지령 때문에 도시에서 나가지 못하게 되자,

쌓이기만 하는 열을 이런 식으로라도 풀어낼 필요가 있었다.

손을 수건으로 닦아내고 물병에 담겨 있던 물을 들이켠다.

차가운 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면 몸에 남아있던 열기를 쓸어내리는 듯했다.

하아….♥

하고, 자신도 모르게 물기를 띈 한숨을 내뱉은 사샤는 입을 손으로 가린다.

방금 것으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하지만  이상 행위를 할 기분 따위는 일지 않았다.

오히려 무언가가 답답한 느낌.

주변에 좋지 않은 기운이라도 다가온 것일까.

사샤는 클레온이 있을 살아있는 숲이 있는 방향으로 나 있는 창문을 열어보며 밖을 내다보았다.


"큭…. 어째서…. 당신이."

그때, 밑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4층이라 이야기의 상세한 내용은 들리지 않았지만 목소리는 여성의 목소리였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로브를 쓴 여성이 익숙한 얼굴의 남성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용사 알베인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의 중심축이 되는 남자.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믿음직하다고 여겨졌던 그의 얼굴이.

지금은 마치 숲에서 만날 수 있는 늑대의 것과 닮아 보인다.

그럼 자연스럽게, 알베인의 곁에 서 있는 다른 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망토. 그리고 허리에 걸친 검.

각진 모자.

어딘가의 제복일까 단정하면서도 위엄을 보이기 위한 붉은 색의 코트.

냄새에서 `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샤의 망막에 문양이 떠오르면,

자연스럽게. 제복의 여성의 몸에 휘감긴 냄새가 보인다.

 냄새.철의 냄새. 잉크의 냄새.

`어?`

그리고 그녀에게는 자신이 잘 아는 두 가지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것은─



여성이 자신 쪽을 올려다보는 것을 보았다.

사샤는 당황하여 창문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다음 순간 여성의 얼굴이 사샤의 바로 앞에 도달해 있었다.



"훔쳐 듣는다니…. 나쁜 아이군요."

모자의 챙에 의해 그림자  얼굴.

마력시로 인해 빛나는 눈만이 그 아래에서 보였다.

웃고 있었다.

마치, 찌그러진 초승달과 같이 뒤틀린 웃음이었다.

다음 순간, 사샤는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사실들이 보따리에 감싸져 깊은 곳으로 숨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정신이 몽롱해진다.


001


"잠깐! 이상하잖아! 4층인데 왜 사샤의 얼굴 앞에 그 여자의 얼굴이 도달 하냐고!"

사샤의 이야기에 태클을 거는 라일라.

엎어져 누운 상태에서 손가락만을 움직이니 이상한 여자였다.

하지만 사샤는 그런 라일라의 말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 고개를 저었다.

"저, 정말이에요!  앞에 갑자기 얼굴이 드리워서…. 그대로 저를 재우고, 기억을 봉인하려고 했어요. 다른   떠올렸지만, 얼굴은 제대로 기억이…."

그런 사샤의 말을 들은 쿠온은 조용히 사샤의 몸에 저주와 관련된 부정된 효과를 지우는 치유의 주문을 사용한다.

사샤로써는 딱히 자신의 안에서 무언가가 변하는 느낌은 없었지만.

어쨌든, 기억 난 것은 모두 전달한 참이었다.


"... ... 눈을 보고 목소리를 듣자 정신을 잃었다고 했지? 아마... 마안. 이네. 그건."

라일라는 조용히 사샤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타인의 기억을 조작하는 마안이라니. 꽤 등급이 높은 녀석이야. 네가 특수 일족의 한 명이라 눈의 각인이 있어 마안에 저항한 덕분에, 기억을 어느 정도 보존할 수 있던 거겠지."

사샤가 두 눈을 깜빡했다.

눈동자보다도 더 아래.

깊숙한 곳에 새겨진 각인은 유전으로 내려오는 저주이며 축복이다.

사냥에는 도움이 되지만 아무래도 너무 사용하면 사용자를 짐승으로 만들어 버린다든가.

설마, 이것에 마안의 효력을 막는 능력도 있었을 줄이야.

처음으로 고향의 무언가에 감사할 마음이 든 사샤였다.



"하지만. 마안 사용자는 대륙에도 꽤 많은 수가 있어. 그거야말로 아카데미에도..."

라일라는 거기까지 이야기 하더니 잠시 입을 닫았다.

그러고는 얼굴이 파래지면서, `아니, 설마….`와도 같은 것을 중얼거리며.

"...왜 그래? 괜찮아? 라일라."

그런 라일라를 걱정하며 얼굴을 가까이하는 쿠온.

라일라는 쿠온과 사샤를 잠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지금 여기에서 두 사람에게 이것을 전달하는 것은….

오히려 두 사람을 위험에 끌어들일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여 침묵을 지키는 것이었다.

002

다음 날 아침 길드의 휴게소.

길드에 소속된 대다수의 모험가는 어제의 아침부터 클레온의 수색에 전념하며 새 의뢰를 받을 생각도 없다는 듯이 길드에 얼굴을 비치고 있지 않았다.

지금 이곳에 나와 있는 것은 사람을 사냥하는 일에 흥미가 없는 이들이거나,

휴게소에서 눌러앉아 선배의 호의라는 명목으로 잔소리를 하려는 노인들 뿐.

그리고 그런 이들로부터 잔소리를 듣고 있는 길드마스터 `루티`이다.


"요….즘 것들은…. 근성이….부족해서…. 조금만….의뢰가 힘들면…. 내던지고…. 에잉….쯔….쯔…."

듣기만 해도 졸려오는 문구를 싫은 얼굴 하나 하지 않고 들어주고 있는 길드 마스터.

평소에는 내려오지 않는 그녀이지만,

아무래도 어제의 현상 수배가 노인들로서는 그녀를 갈굴 좋은 기회인 듯했다.

물론. 여기에 모여 있는 노인들의 대부분은 그럴만한 대사가 가능한 업적을 이룬 이들이었다.

지금은 당연하게 모험가들의 모험 터전이 된 살아있는 숲의 도로를 개척한 이.

폐광의 입구를 찾은 이 던전의 최심부에 도달하여 비보를 가지고 돌아온 이. 등등….

그런 그들이었기에 길드에 대한 애정이나 자긍심은 확실한 것이어서.

길드의 명예를 더럽힌 현상수배자가 나온 것에 대해 루티를 추궁하며 꾸중을 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느린데다가 길어서.

루티는 선 채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실시간으로 정신력이 깎여나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것을 전혀 내색하지 않은 채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리고 광경을 조용히 바라보는 여성 모험가.

검은색의 머리를 길게 길어 하나로 묶고 몸에는 딱 맞는 경장의 갑옷.

허리에는 레이피어.

주변의 다른 한가한 모험가들로부터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지만.

그녀는 내색하지 않는다는 듯이 조용히 루티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어이….  여자…. 저런 모험가, 우리 길드에 있었나?"

"그을쎄…. 있었다면알베인이 채갔겠지만…. 못   같은데…."

숙덕숙덕속삭이며 고이는 침을 꿀꺽 넘기는 소리.

아무리 무심해 보이는 그녀라도  목소리는 불쾌했는지.

찌릿. 하고 그쪽을 돌아본다.

그러자 모험가들은 무안한 듯 헛기침을 하고 시선을 피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잘혀...! 선대의 이름에…. 먹을 칠하지 말라고…!"

결국, 장장 3시간에 걸친 잔소리가 막을 내린다.

노인네들은 그대로 부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길드를 나섰다.

 주변의 주점으로 가서 젊은 날의 영광을 찾는 술자리를 벌이겠지.

루티 역시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사무실로 조용히 돌아가려고 했다.

주변의 모험가들은 그런 루티에게 동정의 시선을 보냄과 함께 자신들의 아이돌에게 이런 마음고생을 하게 만든`마검사`에게 다시 한 번 분노를 불태우는 것이었다.



그리고 루티를 바라보고 있던 여성 모험가 역시 움직였다.

루티를 따라 계단을 오른다.

계단 위는 모험가로서의 서류작업이 가능한 사무실의 복도로 이어져 있었기에 아무도 그녀를 제지하지는 않았다.

루티와 그녀는 약간의 거리를 유지한 채 걸어가다,

그녀의 사무실 앞에서 발을 멈춘 루티를 따라 모험가 역시 발을 멈춘다.



"무슨 일이야?"

루티는 조용히 지친 얼굴로 여성을 바라본다.

그러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에게 용건을 물었다.

"...뭐가 말이죠?"

그러자 여성은 잠깐의 침묵 이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런 그녀의 내숭을 보며 루티는 고개를 저었다.

"굉장하네. 진짜로 여자 같아. 어떤 마법이야?"

"... ..."

다음 순간. 루티의 눈의 동공이 세로로 바뀐다.

그러자, 여성의 모습이 아지랑이처럼흩어지며 주변의 풍경이 일렁인다.

여성의 모습 뒤에서 나타난 것은 흑발 흑안의 남성 검사였다.



"클레온."

루티는 반갑다는 듯 그리고 지쳤다는 듯.

나지막이 남자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그것에는 일말의 그리움이 깃들어 있었다.


003

타인의 눈을 피해 재빨리 루티의 사무실로 들어온 두 사람.

루티는 오랜만에 만나 키가 부쩍 큰 클레온을 잠시 올려다보며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미안. 바빠서 최근에는 이야기할 기회도 없었네."

"몇 년째 말이지. 오히려 대화하지 않는 편이 네게는 좋았을지도 모르겠군."

클레온의 말에 루티는 섭섭하다는 듯이 볼을 부풀린다.

진심으로 삐졌다기보다는 클레온의 말이 마음에도 없는 소리라는 것에 반발한 것이었다.


"그런  하지 말아 줘. 너와 나 사이잖아?"

그런 루티의 말에, 고개를 돌리는 클레온.

루티는 잠시 그런 클레온을 바라보다 사무용 탁자로 가까이 간다.

그러면서, 클레온에게는 손님용의 소파에 앉을 것을 권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거야? 아, 홍차로괜찮지?"

"뭐가?"

루티가 하는 말에 클레온은 모르겠다는 듯 시치미를 뗀다.

하지만 루티는 호기심을 해결하고 말겠다는 듯이

"아까 그 거. 여자로 변장했던 거. 환영마법인데 그렇게 고도의 것은 처음 봐. 허리에 걸린 마검의 기척을 읽지 못했다면 나라도 너인  몰랐을 거야."

그럼, 클레온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내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는 녀석의 환영 마법에…. 아는 녀석의 위화감을 억제하는 주문을 섞어서…."

"라일라와 쿠온인가~ 마검사의 힘. 제대로 쓰고 있나 보네?"

단번에 정답을 말하는 루티의 언행에 클레온은 설명할 기분이 사라졌다는 듯이 고개를 돌린다.

"잠깐! 그렇다는 건…. 두 사람이랑 했다는 거잖아!"

"어이. 목소리를 낮춰."

물론. `했다는 것`은 진실이다.

양쪽의 상황은 조금 달랐지만.

클레온으로서도 루티가 수치심도 없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거북했다.



"나랑은 죽어도  하겠다고 했으면서!"

"그건 상황이…. 아니, 지금도 그럴 생각은 없으니까."

루티는 그런 클레온의 태도에 볼을 부풀린다.

아무리 보아도 오빠와 여동생과 같은 외견 차이지만,

내용은 몇 년째 교제하고 있는 연인의 그것이었다.



물론.

 사람은 연인 관계는 아닐뿐더러 남매도 아니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럼…. 수배문의 범죄  일부는 정답이란 건가…."

`성적 고문`…. 라일라에 한한다면 확실히 그럴지도.

`동료와 싸움`…. 라일라와 싸운 것은 사실이다.

`갈등 조장`…. 라일라가 자신에게 찾아온 것이 일의 원흉이다.

"라일라 때문이다."

결론을 내린 클레온의 말에 루티는 조금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네, 네. 그렇겠죠. `성위 마법`의 뒤처리때문에 내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저택에서 지내는 건 어때?"

"알고 있었나."

"대충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그런 루티의 대답에 클레온은 어젯밤 자신과 결투를 벌인 암살자에 대해 떠올린다.

그럼, 그는 자력으로 자신의 위치를 조사해 찾아온 것일까.

그 이후로 찾아오는 이는 없었기에 그가 자신의 위치를 떠벌리고 다니지 않은 것은   있었다.


"알베인이네 비밀을 알아챈건가?"

클레온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그러자, 루티는 멈칫. 하고 움직임을 멈춘다.

그리고 얼굴에서 아까까지의 미소나 여유가 서서히 사라지고 슬프고 자조하는 얼굴로 바뀐다.

그러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미안. 클레온."

"...네 잘못이아니야. 알베인이 자력으로 그것을 알아냈을 리 없어. 분명 녀석을 자신들의 뜻대로 조종하려는 녀석들이 있다."

자신에게 사과하는 루티에게 클레온은 조용히 위로에 가까운 말을 건넨다.

알베인의 정보력으로 루티의 비밀에 도달  리 없다.

그녀의 비밀은 세계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감춰져 있어야 할 것이다.



"아마 집행과의 소행이다."

"...집행과?"

클레온의 말에, 루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긴 세월을 살아온 그녀이지만 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에 대한 설명을 전달받은 루티는 조금 얼굴을 어둡게 한다.


"라일라가…. 그랬단 말이지."

"왕실에 보고하는 것은 참아줘. 쿠온에게 부탁받아서 라일라의 비밀을 넘기지 않기로 했거든."

루티는 클레온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본래라면 왕실 쪽에 보고가 필요한 안건이기는 했지만.

현 상황에서 클레온의 판단을 믿는 것이 가장 빠르게 해결할 길이라고 루티는 판단했다.

"녀석들이 노리는 건 알베인이다. 나와 알베인을 충돌시켜서, 약해진 쪽을 노리려는 것일지도 모르지."

"어떻게 할 거야?"

"인형극에 어울리는 것은 사양이다. 녀석들의 각본을 망가트려야겠어."

클레온은 조용히 사고를 정리하며, 눈을 빛낸다.

그러자, 루티는 아까 전까지 자신을 무겁게 누르던, 클레온에 대한 죄책감에서 어느 정도 해방되는 것을 느꼈다.

루티는 그의 앞에 홍차를 내려놓고.

뒤쪽에서 팔을 감아 클레온의  뒤에서 얼굴을 내밀어, 그의 어깨에 올렸다.


낯간지러운 숨결이 클레온의 볼에 닿는다.

가까운 곳에서 느껴지는 산뜻한 향기가 코를 간지럽혔다.

마치 연인의 아침과도 같은 풍경.

클레온은 얼굴색을바꾸지 않고 다가온 루티를 잠시 바라본다.

"고마워. 이 도시를 떠나지 않고 있어 줘서."

"... ..."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루티의 말에 클레온은 자신도 모르게 천천히 그녀의 손을 잡을 뻔했다.

"귀여운 내 남동생…."

"어이."

터무니없는 사실을 날조하려 하자, 분위기가 깨져나가며 클레온이 떨어진다.

그러자 루티는 후후 하고 만족했다는듯이 웃는 것이었다.

루티와 클레온의 시선이 잠시 마주친다.

그럼 클레온은 홍차를 한입에 털어 넣은 뒤 자리에서 일어난다.


"조금 더 있다가 가도 되는데."

"바보냐. 여기  있다가 발견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자 루티는 `음~`하는 소리를 내며 자신의 턱 위에 가져다 댄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낌새를 보이더니 이내 대답한다.

"...내가 지켜줄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

클레온이 손가락을 튕기자.

다시 한  그의 모습이 `그녀`로 바뀐다.


"조금만 기다려. 해결하고  테니까."

클레온이 그렇게 말하며 문을 열고 나가자.

루티는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가슴에 손을 올렸다.

두근, 두근. 오랜만에 봐서 면역이 없어진 것일까.

클레온을 향한 마음에 `평정심`을 더하기 위해 힘쓰는 중이었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는 아니야."

그녀가 클레온에게 거짓말을 한 적은

  번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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