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화 〉준비 (13/72)



〈 13화 〉준비

일반인의 수 배 노력해 왔다고 자부해 왔었다.

시골에 은거하여 약초 따위를 팔고 있는 마법사 가문 따위

인정하지 않는 아카데미의 노인네들의 잘난 태도를 꺾어주기 위해.

자신의 조부가 일구었던 긍지 높은 학원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라일라 플레임워치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생각이었다.

그를 위해선 실적이 필요했다.

연구. 논문. 새로운 마법. 연금술의 제조법 발견.

마법적 현상의 분석. 인체 실험. 마수의 적응 능력의 검증. 악마의 소환.

마법사나 연구자이기 

인간으로서 아슬아슬한 라인의 줄타기를 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왔다.

그 과정에서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인간이 희생되기도 했다.

하지만  희생에 슬퍼하거나 할 시간은 없었다.



[아카데미는 나날이 새로워진다.]

새로운 학생. 새로운 지식.새로운 학문. 새로운 발견.

본래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 하는 이것은

어느 샌가 세계의 선두를 달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집념에 의해 뒤틀려.

긍지 높은 아카데미의 심부를 안에서부터 부패시켰다.

`12석의 원로` `집행과` `검은 교전`



아카데미 부패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들.

라일라는 이들이 싫었다. 혐오스러웠다.

하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이 올라타 있는  역시 썩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뒤를 돌아보면 지금까지 희생한 모든 것들의 피가 그 줄에 스며들어.

끊어지기 일보 직전에  있었다.

추락한다.

실패한다.

마음과 정신이 죽어간다.

아카데미 수석이라는 것은 허울 좋은 칭호일 뿐.

결국,  인간이 마법의 발전을 위해 얼마나 비인도적으로 뒤틀린 인간이라는 것을 이야기해  뿐이다.

조부의 묘를 찾아가지 않게 되었다.

어떤 얼굴을 해야 할지 몰랐으니까.



하지만 아카데미는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았다.

라일라는 차기 12석의 일원으로 추천되었다.

가장 검은 곳으로 향하는 길.

분명 학원을 바꾸기 위해 그 자리로 올라가려 했다.

바깥에서 보이는 어둠은 너무나도 밝았으니까.

그리고 자아.

안을 들여다보면 어떤가.

라일라 플레임워치는 현명했다.

그렇기에 행동했다.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거절할 권리는 없었으니까.

누구의 탓인가?

비웃음만이 그녀의 안에서 메아리쳤다.

주변에 남은 것이 어둠뿐.

발을 지탱하던 줄마저 보이지 않게 되었던 그때.

그녀에게 작은 빛이 날아들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유혹적인 빛이었다.

모험. 우정. 동료. 신뢰. 사랑. 성취감.



자신에게는 과분한 것이었다.

빛은 자신에게 약간의 유예를 부여하며 천천히 그녀를 말려 죽이고 있었다.

 빛을 자신의 손으로 지워버려야 하는 것이 그녀가 해야  일이었으니까.

빛을 부수기 위해 손을 뻗으면 가시와도 같이 튀어나와 그녀를 막아내는 어둠이 있었다.

라일라는 그 어둠이 싫었다.

증오스러웠다.

어째서 자신과 같은 어둠 속에 있으면서.

너는 빛무리의 안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배제하면 되는 일이었다.

밤은 가시가 있는 상태에서 먹을 수 없고.

복어는 독이 있는 상태에서 조리할 수 없다.

그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랬을터이다.



001


적막이 지배하는 저택의 지하.

감옥의 창살 너머로 머리를 땅에 붙인 채 엎드린 소녀.

영혼이 비명을 내지르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마치, 머리를 구둣발로 짓밟힌 듯.

움직이지 않은 채 멈춰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10초? 30초? 아니, 1분?

결국 자신의 모든 것이 증오스러운 가시에 관통당해 절망하여.

라일라 플레임워치는 여기에 무너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클레온.

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목걸이를 라일라가 있는 쇠창살 너머로 던져 넣었다.

"네가 싫다. 라일라 플레임워치. 처음부터."

나지막이 이야기하는 클레온.

라일라는 땅에 떨어져 부서지는 보석을 보고 눈을 크게 뜬다.

"네 과거를 알고  싫어졌다. 동정 따윈 하지 않아. 너는 쿠온과사샤와 달라. 나와 같은 악인이다."

말의 칼날이 라일라의 가슴에 틀어박힌다.

그의 말대로 그의 목소리는 조금 전과 변하지 않은 채 차가운 음성이었다.


"너는 내 것으로 하지 않아. 그럴 가치가 없다. 그렇기에. 용서도 하지 않겠다."

동시에, ‘찰그랑.’ 하는 쇳소리.

기름칠하지 않아 기괴한 비명을 내지르며 열리는 철창의 문소리.

라일라는 고개를 들어 클레온을 올려보았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슬픈 얼굴의 쿠온.



"하지만 그런 너라도. 쿠온은 아직 동료라고 생각해 주고 있어. 너를 살려두는 건, 쿠온의 자비다."

"...읏…!"

감옥의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쿠온.

그녀의 손에 빛무리가 모이며 라일라를 치유해 간다.

그 따뜻함은 자신이 과분하게 여기던 빛에서 느껴지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쿠온을 위해 네 목숨을 써라."

아이 같이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눈물을 흘리는 라일라.

그녀는 떨리는 몸으로 서서히 슬픈 목소리를 울린다.


"널 살린 쿠온의 결정이, 나중에 그녀를위험에 처하게 할지도 모른다."

쿠온은 조용히 라일라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라일라는 감히 쿠온에게 손을  생각도 못 하고.

그저, 힘없이 흐느낄 뿐이었다.

"아아아아아아아...!"

라일라는 조부의 사망 이래로.

처음으로 목을 놓아 울었다.

16살의 소녀에게 부족했던 눈물이었다.



"만약 그때가 오면. 나도 책임을 지마. 너를 놓아준 책임을."


002


클레온은 조용히 감옥의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올라 지상의 저택으로 돌아간다.

걸음을 걷는 도중 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것도 예정대로?]

갈라테아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차가운 듯했다.

그것이 어떤 이유일까 클레온은 짐작하고 있었다.

"...아니."

그리고 나지막이 자신의 무름을인정한다.

마검사인 그로서는 필요하지 않은 부분이었다.


[쿠온에 당해서 독기가 빠진 걸까. 클레온. 그래선 원하는 일을 해낼  없어.]

"내가 해야  일은 바뀌지 않아. 알베인에게 복수하고. 녀석에게 후회와 고통을 안겨준다."

[그건, 복수자로서 일까. 아니면  동료로서 일까.]

"걱정하지 마 갈라테아. 내게 동료는 너뿐이야."



잠시의 침묵.

순간, 클레온의 그림자가 일렁거리고.

마검에서 갈라테아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는 순식간에 클레온을 계단의 벽으로 밀어붙이고 그의 입술을 탐한다.

부족했던 무언가를 채우듯.

길게 이어지는 입맞춤.

폐의 들어간 산소가 부족해지며.

머릿속이 멍해지기 시작한 순간에야, 갈라테아는 얼굴을 떼어냈다.



키스에서 얻은 쾌감으로 살짝 풀려버린 얼굴.

몽롱한 눈. 상기된 볼. 윤기가 흐르는 입술.

자신의 주인과 몸을 겹칠 때마다 갈라테아에게 있어서는 쾌락 이상의 것을 얻고 있었다.

확인이었다.

마력 따위로 연결되지 않아도. 가장 오랜 시간 이 남자와 함께하며 알고 있는 것.

아무리 어두운 감정을 가지더라도, 그 안에 없어지지 않는 빛이 있다는 것을.

"후후…."

클레온은 갑작스러운 갈라테아의 행위에 당황하지 않고.

조용히 행위를 끝마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만족한 듯한 미소.

외모는 성인 여성의 그것이었지만 사랑하는 소녀의 얼굴을 한 채.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 경애하는 존재의 몸에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그러고 나서 갈라테아는 마검의 안으로 돌아갔다.

[뭐어. 알고 있다면 괜찮아. 네가 무른 인간이라는 것은 내가 제일  알고 있으니.]

설마 자신의 마검에게까지 접대를 해야 하다니.

클레온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계단을 오르는 것이었다.


003

"클레온씨!"

계단을 마저 오르자 위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샤의 모습이 보였다.

안절부절못하며 계속 걸어 다닌 걸까.

그녀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혀져 있었다.

클레온이 그런 사샤에게 다가가자 ‘와락!’ 하고 사샤가 클레온의 몸에 안겼다.


"... ..."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클레온이 잠시 멈추면.

사샤 역시 잠시 침묵하다가 얼굴을 붉히며 떨어진 것이다.

"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그만!"

내, 내가  그랬지?

같은 말을 하면서 얼굴에 부채질하는 사샤.

클레온은 마력시를 통해 그녀의 어깨의 문양이 완전히 발현한 것을 보았다.



그 영향일까.

사샤가 클레온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전보다도 조금 물기를 띄고 있었다.

클레온은 이 눈의 정체를 알고 있다.

때때로, 쿠온이 알베인에게 보내는 시선과 흡사했으니까.

자신보다 다섯 살은 어린아이에게 이런 시선을 받는다는 것이 클레온으로서도 조금 복잡한 기분이었지만.

잠시 전의 갈라테아의 행위를 떠올리고.

죄책감에 조금 고개를 돌려 버리는 것이었다.


"클레온...씨?"

"아, 아아. 라일라와 쿠온이라면 아직 지하다. 곧 올라올 거야."

그런 클레온을 조금 이상하게 여긴 것일까.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샤의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고 클레온은 그녀에게 대답했다.

그러자 사샤는 다행이라는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쓴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죄송해요. 제가 라일라씨에게 일을 알리는 바람에…."

"아니, 괜찮아. 네가 쿠온을 걱정하는 것은  알고 있으니."

그런 클레온의 말에 사샤는 다시   얼굴을 붉힌다.

다시 한 번 찾아오는 어색한 침묵.



어색한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서일까.

사샤가 허리에 걸린 작은 작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검은 보석 상자.

잠금쇠로 봉인된 그것은 갈라가 자신의 보수로써 챙긴 그것이었다.

클레온 역시 그 상자를 보고 눈빛이 변한다.

"이건?"

"갈라씨가 클레온씨에게 전달해달라고…."

[안의 내용물은 이전에 이야기한 그거야]


클레온은 조용히 상자를 받아들었다.

마력시로 안을 살펴보아도 역시 내부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 클레온을 보며 사샤는 머뭇거리며 입을 연다.


"저기, 갈라씨와도 아는 사이신가요…. 역시?"

"역시?"

"네, 네에…. 갈라씨가 클레온씨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마치 오랫동안 알고 있는 친구인 것 같은 얼굴을 하셔서…."

[... ...]

 말에 클레온은 잠시 입을 다문다.

부정하면 간단한 것이지만 거짓말을 싫어하는 클레온이었기에 여기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아는 사이야.  옛날부터."

"그, 그렇구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색하려 하지 않지만 그녀의 볼이 조금 부풀어 오른 것이 보였다.

무엇이 불만이었을까….

클레온은 몰랐지만 갈라테아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클레온? 아, 사샤. 로비에서 기다리라니까."

그런 두 사람의 사이에 끼어드는 목소리.

뒤쪽에서 라일라의 손을 붙잡은  걸어 올라온 쿠온의 목소리였다.

라일라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하, 하지만. 라일라씨가 걱정됐는걸요."

사샤는 쭈뼛거리며 쿠온에게 대답했다.

그러자, 쿠온은 상냥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이다.

"라일라라면 걱정하지 마. 조금 여러모로 지쳤을뿐이니까."

그렇게 말하며 라일라의 어깨를 쓰다듬어 준다.

라일라는 기어들어갈 것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미안."

"아, 아뇨! 오히려 제가 사과해야 한다고 해야 할까!"

라일라의 사과에, 사샤는 펄쩍 뛰며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라일라는 그 이상 말하지 않고. 쿠온의 손에 이끌려 사샤의 앞에까지 왔다.


"... ... 아래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혹시, 클레온씨가 세뇌 주문을..."

"아냐."

사샤의 말을 클레온이 일축하고.

로비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클레온. 이제 알베인이지?"

그런 클레온의 뒤에서 쿠온이 나지막이 이야기한다.

무엇을 이라는 것을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알베인의 이름이 나오자, 라일라와 사샤 역시 ‘움찔.’ 하고 반응했다.

클레온은 잠시 멈춰 서더니 쿠온을 돌아보았다.

쿠온의 눈에는 어느 정도 각오가 서려 있었다.

"그래. 그를 위해서 준비할  있어."

"...알았어. 따라갈게. 하지만 약속해 줘."

쿠온은 그런 클레온의 손을 잡아 조용히 하지만 확실한 의지를 담아 이야기했다.

"...죽이지는 말아줘."

"노력하지."

004

모두가 향한 곳은 저택의 응접실.

커다란 창문에서 들어오는 정오의 햇살이 초봄도 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듯

따뜻한 빛을 비추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것은 모두 고급 가구들.

클레온은 마치 자신이 주인인  행동하고 있었지만

본래는 이전에 살고 있던 인간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일 뿐.


낡았지만 커다랗고 호화스러운 테이블의 상석에 클레온이 앉는다.

그 왼쪽에 사샤. 오른쪽에 쿠온, 라일라가 나란히 앉으면.

클레온은 사샤로부터 건네받은 보석 상자를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아. 이거…."

그것을  라일라가 자신도 모르게 반응하자.

클레온이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라일라는 `히익...!`하고 몸을 움츠리는 것이다.

"클레온."

"아니, 방금 건 반사적으로…."

마치 그런 클레온이 나쁘다는 듯 타이르는쿠온의 목소리에 클레온은 억울하다는 듯 대답했다.

아무래도, 지금의 라일라에게 클레온은 `언제나 자신을 죽일 각오가 되어있는 극악무도한 남자` 수준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저, 그래서. 이게 대체 뭔가요?"

호기심을 감출 수 없던 것은 사샤도 마찬가지인 듯.

상자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손을 들었다.

클레온은그런 사샤의 질문을 받고

솔직하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했다.

"고르티안 백작의 유산이다."

"금광경(金鉱卿)..."

라일라는 반사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을 내뱉는다.

과거, 이 일대를 지배했던 귀족 가문의 당주.

드워프들을 노예로 부리며 수많은 황금과 보석을 손에 넣어 부를 축적한 자.

그리고 이들이 모여 있는 저택의 원래 주인.

알베인 일행이 찾았던 폐광 역시 고르티안이 생전에 소유하던 것  하나이다.

하지만 한계를 모르던 그의 욕심이 불러온 재앙에 노예인 드워프도, 백작 일가 모두.

그 재앙에 휘말려 사라졌다.


클레온은 주머니에서 작은 열쇠를 꺼내 든다.

크기는 보석 상자에 딱 맞는 크기였다.

"설마, 그게 이 상자의 열쇠?"

"그래. 이 저택을 청소하며 찾아낸 거다. 가고일이 지키고 있더군."

쿠온의 질문에 클레온이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했다.

"가고일!?"

라일라가 소리를 울린다.

주변 인물들의 시선이 모두 그쪽으로 집중되었다.

그러자, 라일라는 다시 고개를 숙인다.

가고일은 고대의 기술로 만들어진 석상류의 골렘.

뛰어난 마법저항력과 술자가 죽더라도 유지되는 생명력.

하지만 현대에는 그것을 재현할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다.

학자로서의 그녀의 본능이 파괴된 가고일이라도 보고 싶다고 마음속에서 비명을 지른다.



클레온은 조용히 열쇠를 상자에 꽂아 넣고, 돌렸다.

그러자 ‘딸깍.’ 하고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상자가 열렸다.

안에 들어있는 것은 붕대와 같은 것에 의해 둘둘 말려있는 작은 구슬.

상자가 열려, 마력의 형태는 보이지 않고.

그저, 보석 같았다.

하지만 라일라는  붕대를 보며 조금 눈을 크게 떴다.

"──봉인의 띠…."

"그런 것 같군. 안에 있는 것의 마력을 조금씩 제거하며, 긴 세월을 봉인하기엔 적합한 물건이지."

클레온은 그렇게 말하며, 구슬에 붙어있는 봉인의 띠를 제거해간다.

특별한 공정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띠도, 구슬도.

모든 마력을 소실한 상태였으니까.

클레온이 방해되는 띠를 찢어버리자,

그러자, 라일라는 ‘앗,’ 하는 소리를 내며 클레온의 손을 붙잡으려는 듯 우물쭈물 댔다.

"왜, 왜 그래 라일라?"

"보, 봉인의 띠도 재현 불가능한 마도구…. 샘플이라도 있으면…."

"...하아."

라일라의 말에 쿠온은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조용히 클레온을 바라보자.

그러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클레온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남은 띠를 조심스럽게 떼어내는 것이었다.

그것에 안심한 듯 라일라가 진정하자.

이윽고, 안에 둘러싸여 있던 구슬이 모습을 드러낸다.



생긴 것은 완전한 구.

색은 회색. 내부에 특별한 문양이나 마법적 처리가 되어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모두가  구에서 느껴지는 쓸쓸한 기운에 침묵한다.

어째서일까.


"결국. 이게 대체 뭐야?"

쿠온이 구슬을 바라보며 이야기하자 클레온은 대답했다.

"검의 핵(核)이다."

"...검? 마검이나, 성검할 때  검인가요?"

클레온이 끄덕이자 사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검이라는 것은 보통 쇠와 철로 이루어지는 법.

이런 구슬이 들어가 있었나?

알베인의 성검도. 클레온의 마검도 조금 화려한 장식이 달려있긴 하지만.

이런 구슬은 보이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죽은 성검의 핵이지."

그 말에 라일라가 눈을 크게 뜨며 구슬을 향해 손을 뻗었다.

클레온은 재빠르게 상자를 닫아 그녀의 손이 닿지 않게 한다.

라일라의 손이 허공을 가르면 클레온의 눈이 다시 라일라를 향하고.

라일라는 쿠온에게 달라붙으며 몸을 움츠리는 것이다.


"클레온."

"아니, 그러니까…. 페이스가 말리는군."

클레온은 머리가 아프다는 듯 다시 구슬을 책상 위에 돌려놓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고르티안 백작이 부를 손에 넣은 뒤에 원한 것은 힘이었다. 그것도 작은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거대한 힘."

당대의 최고의 부를 지닌 고르티안도 본인에게는 검의 재능도, 마법의 재능도 없었다.

그렇기에, 강력한 병사나 병기를 원한 것이다.

거기에서 눈독을 들인 것이 소유자에게 강력한 힘을 선사한다고 하는 전설의 `성검`.

당시에도 용사는 존재했고.

대륙 각지에서 활약하고 있었으며 용사의 전설은 모두 성검과 함께 전해져 내려왔다.

고르티안은 거기에 착안했다.

자신은 성검의 선택을 받지 못했지만 그렇다면 타인의 성검을 자신의 것으로 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자신의 마을에도 나타난 성검의 용사를 저택으로 끌어들였다.

입에 발린 칭찬과 호화로운 식사.

소년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그저 선의와 호의로 착각하여 백작의 희생양이 되었다.

독이 든 식사로 마비시키고 사지를 절단하고 죽지 않게 생명만을 유지한 채.

그로부터 성검을 탈취한 것이다.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성검이 고르티안의 손에 쥐어진 다음 순간 반전했다.

자신의 주인을 이렇게까지 고통스럽게 하는 인간에 대한 실망, 분노.

본래라면 긍정적인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성검이.

깊은 절망 때문에 마검으로 타락한 것이다.

마검은 자신을 손에 쥔 고르티안의 몸을 순식간에 지배했다.

그리고 가족에게, 드워프에게 자신을 휘두르게 했다.

수많은 피가 영지에 흘렀다.



마치 악마와도 같이 변한 고르티안을 쓰러트린 것은 또 다른 성검의 용사였다.

그때는 이미 소년은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용사는 주인을 잃고 절망한 검을 영원한 안식에 들게 했다.

검이 부러지자 그 안에서 검의 영혼이 담긴 핵이 떨어져 나왔다.

그것을 봉인하고.

열쇠와 상자로 나누어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시킨 것이다.

그리고, 성검에 대한 공포를 퍼트리지 않기 위해.

고르티안과  일가는 유적에서 풀려난 악마에게 살해당한 것이라. 이야기를 전달한 것이다.

열쇠와 함께 보관되어 있던 용사의 수기로 발견된 것이다.

갈라테아는 핵의 존재를 알고 있는 듯했지만 자세한 사정까지는 알지 못했다.


"성검이 마검으로…. 처음 듣는 현상이야."

라일라는 중얼거리며 클레온을 바라보았다.

그에 대한 공포보다, 그런 현상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진 듯했다.

클레온은 그런 라일라를 응시하며 구슬이 담긴 상자를 그녀에게 건넨다.


"...어?"

"내 마검이 말하길…. 핵에 있는 기능 중 일부를 사용하면. 성검의 힘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검의 핵은 성검의 시체.

존재 자체가 다른 성검에게 있어서 죽음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다.

"그럼, 알베인씨의 성검을 멈출 수 있다는 건가요?"

사샤의 질문에 클레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보다시피….  핵은 기능이 완전히 정지되어 있어. 봉인의 띠가 천천히 마력을 뺏어간 탓이겠지."

"안에서 마력은 느껴지지 않아. 완전히 텅 비었어."

라일라는 구슬을 집어 들고 이야기했다.



"라일라. 너라면 고칠 수 있겠지?"

"어?"

클레온의 말에 라일라가 믿을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돌아본다.

지금, 뭐라고?

자신에게 이걸맡기겠다는 건가?



"내가  때문에 널 살려뒀다고 생각한 거냐. 단순히 쿠온의 자비 때문이라면 나는 얼마나 무른 녀석이냐고."

클레온의 말에 쿠온이 ‘으음….’ 하고 소리를 울리며 라일라를 바라보았다.

라일라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꾸욱.’ 주먹을 쥔  고개를 저었다.

"무, 무리야... 성검도 마검도. 이제는 복원되지 않는 고대의 기술의 결정체…. 가고일보다도 수천 년 더 전의 물건이라고…."

"그런 걸 연구하는 게 너희들 아카데미의 일이지."

클레온의 말에 라일라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실패하면 어떻게 되지?

어쩌면 이걸 기회로 클레온에게 용서받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수만 가지 잡념이 그녀의 머리를 가득 채우면.

이전의 현명함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라일라를 바라보던 클레온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할 거냐. 라일라 플레임워치. 또 어쩔 수 없다면서 자신을 비관하다 끝날 건가? 아카데미의 수석도 별거 없군."

폭언에 가까운 도발.

사샤도 쿠온도 깜짝 놀라 클레온을 돌아본다.

그러자 라일라는 잠시 경직되더니.

이내, 축 쳐져 있던 붉은색의 머리에 마력의 빛이 돌아온다.

"해, 주겠어…. 해주겠어! 해버리면 되잖아!"

콰앙! 하고 솟구치는 영혼의 불길.

방금까지 공포에 떨던 그녀가 소파와 테이블을 박차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얼마나 힘차게 일어났는지  충격으로 테이블이 뒤집어질 정도였다.

그 눈에는 분노라던가, 수치라던가. 공포라던가.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 아직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동시에.

그녀의 이지적인 광채가 불을 지피며

‘호기심’이라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미지의 기대를 태우고 있었다.



"각오하라고 클레온! 내가 이걸 정말 완벽하게 복원해 버리면. 네 마검의 힘도 무력화시켜버릴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을 치켜들어 클레온을 가리킨다.

쿠온도 사샤도 그 박력에 조금 당황한 채 라일라를 바라보다가.


"테이블 돌려놓고 앉아."

"앗, 네."

엎어진 테이블에 이마에 핏줄을 올린 클레온의 말에 라일라는 다시 움츠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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