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화 〉추방과 타락 (1/72)



〈 1화 〉추방과 타락

"클레온.  아웃이야."

파티의 리더이자 중심축인 금발의 남성.

용사 `알베인`이 입을열었다.



술잔을 부딪치는 소리.

서로의 무용을 자랑하는 소리.

종업원을 부르는 우렁찬 소리와 대답 소리.

시시각각 변화하는 다양한 소리에 둘러싸인 이곳은 대륙 변경에 있는 모험가 길드의 안이었다.

벽에 걸린 장식에는 다양한 마물들의 수급이장식되어 있었고

게시판에는 심부름 수준의 시시콜콜한 의뢰부터 마을 하나의 명운이 걸린 거창한 녀석까지.

안내원들의 데스크가 있는 구역과 합쳐진 식당에는

오늘의의뢰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온 승리자들이

저마다의 노고를 풀기 위해 테이블을 차지하고 술병을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클레온의 파티는 그러지 못했다.

오늘 수행한 것은 정기적인 던전 청소의 의뢰.

필드로 마물들이 새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주기적으로 내부에 모험가를 파견하여 마물의 개체 수를 줄여야 하는 일상적인 임무이다.

난이도는 때에 따라 다르지만,

일행의 평균 레벨로는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는 의뢰였다.

이 의뢰를 제대로 수행할  있느냐에 따라,

길드에 의한 파티의 평가가 결정되기도 하는 의뢰였다.


클레온은 자신을 원망하는 알베인에게 항의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자, 잠깐."

"잠깐이고 자시고. 오늘도 의뢰를실패한  너 때문이잖아."

클레온의 말을 가로막듯, 알베인의 옆에 서 있던 적발의 마법사 `라일라`의 말에 클레온을 제외한 일행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라일라가 말했듯이 클레온의 파티는 오늘 의뢰달성을 실패했다.

이유라고 한다면 던전의 마물들이 생각보다도 강했다는 것.

그리고 던전 내부에 발생한 흑마력 영역의 힘 덕분에 회복 계열 주문의 위력이 반감한 것이 가장 크겠지.

다만, 그만큼 공격 계열 마법의 주문이 강해지니 라일라와 같은 마법사들에게는 오히려 호재인 경우였다.

전위가 잘 버텨 준 다면의 이야기지만.



"라일라의 마법이 강해졌으니, 한 번에 여러 마리를 상대하자고 한 건 알베인의 아이디어잖아!"

클레온이 그렇게 항의하면 알베인이 쾅! 하고 테이블을 내려친다.

"그럼, 내가 잘못했다는 거냐?"

그래! 라고 클레온이 대답하기도 전에 또 한명의 파티원.

에메랄드빛의 머리카락을 가진 성직자인 `쿠온`이 입을 열었다.

"그만해. 클레온. 내 회복 마법이 약해졌던  문제지, 알베인에게 잘못은 없어."

"큭..."

클레온을 제외한 3명의 파티원 중, 그의 편을 들어주는 인물은 없었다.

이유는 안다.

쿠온이고 라일라고, 모두 알베인의 사랑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알베인은 용사. 성검의 선택을 받은 존재이다.

 세계에 용사가 하나는 아니지만, 그 수는 절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혼자서 공격, 방어, 회복을 모두 전담할 수 있는 둘뿐인 클래스.

신의 가호를 받고 있으므로 용사의 파티는 언제나 지원자가 끊이질 않는다.

더불어, 국가에서도 용사를 중요한 전력으로 취급하고 이것저것 지원해주니 인기가 없을 수 없는 클래스이다.

게다가 알베인은 훤칠한 키에 금발에 벽안이라는 귀족 특유의 외모를 지니고 태어났다.

아마 어딘가 귀족의 사생아라는  같으니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농축시켜놓은 듯한 인간이었다.

──그에 비해 클레온은. 그런 알베인과는 정반대의 존재이다.

클레온은 마검사.

용사와 함께 여러 가지 역할을 담당할  있는 직업이지만, 성검을 사용하는 용사와는  궤를 달리한다.

용사는 주변을 보조하고 강화하는 형태로 모두와 합을 맞추며 나아간다.

그러나 마검사는 모든 것을 자신의 안에서 완결시킨다.

타인을 회복시키는 것도 불가능하고 강화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거기에 성장 곡선에서도 마검사는 용사에게 뒤처진다.

용사는 모험에서 성공할수록, 성취감, 기쁨, 즐거움, 우정 등의 플러스 감정을 바탕으로 성장한다.

파티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성장곡선이 가팔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마검사는 분노, 슬픔, 증오, 공포와도 같은 마이너스 감정으로 성장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모험이 즐거우면 즐거울수록 마검사는 약해지는 것이다.

거기에, 마검사가 얻는 경험치를 마검이 멋대로 흡수하여 레벨 역시 뒤처지게 된다.


그것이 지금,

클레온이 파티에서 짐 덩어리 취급받는 이유였다.

창백한 피부에 흑발 흑안 이라는 흔치 않은 외모로 배척받아, 마검의 선택을 받은 그는.

 몇 년간 동료들과의 모험에서 이루어낸 인연 등에 취해 있었다.

물론 같은 파티의 여성 둘이 알베인에게 연정을 품고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성검의 선택을 받은 유망주 `알베인`

아카데미 출신의 천재 마법사 `라일라`

용사의 파트너이자 성녀 후보 `쿠온`

이들과 함께 모험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클레온에게는 자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클레온.  지금 레벨이 몇이야?"

"...9야."

알베인의 물음에 클레온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그리고 알베인은 크게 한숨을 내쉰 뒤, 코웃음을 쳤다.

"우리는 지금 14야. 이 차이를 알겠어?"

알고 있다.

레벨 하나를 올리는 데에 필요한 노력을 생각해보면 레벨 5 차이는 성인과 어린아이 정도의 차이이다.

그걸 알고 있으니까 모두에게 비밀로 하고 혼자서 마물을 사냥하거나 해서 겨우 레벨을 따라가려고 노력을 빼먹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것.

그들에게 있어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알고 싶지도 않겠지.

알베인에게 있어서도,

라일라와 쿠온에게 있어서도.

클레온은 `짐 덩어리`이었다.



"너랑 파티를  것도 벌써 3년이다. 그동안은 정을 생각해서 봐 줬지만…. 이젠 무리야."

알베인...

"미안. 클레온.우리는 좀 더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쿠온...

"애초에 마검사라는 직업 자체가 문제라고."

라일라...


"너, 너희들…."

"여기까지다. 클레온."

 말을 마지막으로 알베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클레온은 참지 못하고 알베인의 어깨를 잡았다.



"너희가! 오늘 살아남은 건 내 덕분이라고!"

클레온이 큰소리로 외치자 주변의 시선이 파티에 집중되었다.

알베인은 물론, 쿠온, 라일라 역시 얼굴을 찌푸린다.

"너희가 모두 기절한 뒤에도 나는 알베인이 끌어온 마물들을 겨우겨우 쓰러트렸어! 그야 물론, 너희 소모품까지 전부 사용하긴 했지만! 세 사람을 끌고 마을까지 돌아온 것은 나라고!"

"어떨런지. 숨어 있다가 마물들이 사라지고  뒤에 우리를 끌고 돌아왔을 수도 있지. 던전의 마물들은 기본적으로 기절한 모험가들은 나중으로 돌리니까."

알베인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진 클레온이 어금니를 꽉 물자, 옆에 있던 라일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잠깐, 우리들의 소모품까지 썼다고? 그럼, 우리 몸을 뒤졌다는 거야?"

"뭐?"

라일라의 말에 당황한 클레온이 반응하자 그녀는 더욱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클레온을 쏘아붙였다.



"그렇잖아! 포션 같은 것은 허벅지의 벨트에 끼워 놓는걸!"

"...그, 그러고 보니. 저도 가슴팍이 헤쳐져 있어서…."

"쿠, 쿠온...?"

충격을 받은 듯한 쿠온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알베인에게 달라붙는다.

지금까지 자신을 직접 탓하지는 않아 온 쿠온의 그런 모습을 보자 클레온은 잠시 경직되어. 다음 행동을 취할 수 없었다.


"이, 쓰레기 새끼!"

그러니까, 알베인의 주먹을 맞고 뒤로 넘어진다.

레벨 차이가 5가 나면, 용사의 펀치를 맞고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인간은 적었다.

클레온은 심적인피로, 육체적인 피로에 데미지까지 더해지며 일순 정신을 잃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은 똑바로 응시할 수 있었다.

어딘가 경멸스러운, 흉물스러운 무언가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은



묻어 두었던 과거의 그것과 흡사했다.


001

3년 전. 신출내기 모험가였던 클레온은 마검의 힘으로 혼자서도 의뢰를 해결할 수 있는 길드의 유망주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희귀한 외모를 가진 그를 경계하던 길드의 안내원도 계속해서 성과를 거두는 클레온의 활약에 조금씩 그를 살갑게 대해주었다.

변방의 다크호스. 아주 잠깐이지만, 그렇게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클레온씨...?"

그런 클레온에게 말을 걸어온 것은  길드 등록을 마치고 당신에게 다가온 소년 검사와 소녀 성직자였다.

클레온과 비슷한 나이의 그들은 변방의 도시보다도 더욱 시골에서 찾아왔으며.

클레온의 소문을 듣고 자신들과 파티를 이루어 줬으면 한다는 부탁을 받았다.

 혼자서 다니던 클레온은 자신이 이들과 어울릴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이윽고 사람 좋아 보이는 두 사람의 제안을 승낙해 함께 모험을 다니기 시작했다.

 사람의 모험은 그 뒤로도 실패 없는 고공행진.

클레온은 사람과 부대끼며 사는 즐거움을 배워갔다.



1년 후.

소년은 성검의 선택을 받아 검사에서 용사가 되었다.

부쩍 키도 커서, 클레온을 따라잡았다.

소녀는 그런 소년을 뒷받침하기 위해 밤새도록 기도를 올리며 그런 마음을 클레온에게 상담해왔다.



또다시 1년 후.

소년은 이미 클레온보다도 커버렸고.

레벨도 추월당했다.

이전처럼 소녀에게 상담 받는 일은 없어졌다.

용사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아카데미 수석 마법사 소녀가 파티에 들어왔다.

그녀가 반년 간 클레온의 이름을 제대로 외우지 않은 것은 조금 신경 쓰였지만 이렇다 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1년 후.

클레온은 다시 혼자가 되었다.

비가 내리는 모험가 길드의 뒷골목에서 눈을 뜨자 얼굴이 아팠다.

소년-알베인에게서 맞은 곳이 부어올라 비를 맞을 때마다 따끔거렸다.

"크, 윽…."

비틀거리며 벽을 잡고 일어서자, 허리춤에 걸려 있던 마검이 떨어졌다.

마검 -갈라테아.

이 녀석은 클레온에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지만.

모두에게 미움 받던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있어서, 유일한 파트너였다.

그리고 다시 인과는 돌고 돌아.

클레온에게는 갈라테아만이 남았다.

이전으로 돌아온 것뿐인데, 지금 그의 안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우....으으...우아아아아아아아악!"

그 모든 것을 뱉어내기 위해. 

레온은 울부짖었다.

볼을 타고 내리는 것은 비였다.

하지만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우중충한 회색 하늘을향해 소리 질러도 마음에 낀 먹구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것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것을 원해서 사람과 엮인 것은 아니었다.

이럴 거라면, 처음부터 혼자였으면 좋았다.

모두 내 탓이다─.



"아니, 아니지. 그게 왜 네 탓이야? 바보 같은 클레온."

그런 클레온의 생각을 부정하듯.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듣는 듯하면서도, 어디선가 들어 본 적 있는 매혹적인 목소리.

뒤를 돌아보면 거기에 `그것`은 서 있었다.


옅은 갈색의 피부.

허리까지 내려오는 청록색의 머릿결.

눈꼬리가 올라가 고압적으로 보이는 인상의 여성.

눈의 색은 어딘가 위험한 느낌을 주는 바이올렛.

동공의 안에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한 검은 역오망성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자연스럽게 클레온의 시선은 비가 내리는 방향을 따라  아래로 향한다.

얼굴을 타고 내려간물방울은 그녀의 가슴에 부딪혀 한번 터져 나갔다.

가슴과 허리, 그리고 국부를 감싼 노출도 높은 의복은 가죽인지, 고무인지 모를 검은 재질로 되어 있었다.

"──넌..."

클레온이 누구지? 라고 물으려 하는 순간,

여성은 가까이 다가와 클레온의 입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알고 있잖아?"

"갈라테아…."

눈앞의 여성이 자신의 마검이라는 사실을 파악한 것은 이상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영혼의 근본적인 부분에서 연결되어 있으니.

"갈라테아... 어째서...?"

"너의 절망이 극에 달했기 때문…. 이라고 해둘까?"

갈라테아는짐짓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클레온의 얼굴을 자신의 손바닥으로 닦아냈다.

느껴지는 냉기가, 그녀가 사람이 아닌 존재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갈라테아의 입은 웃고 있었다.

마치 주인의 약한 모습을 즐기기라도 하는 듯한 요부와도 같았다.

"네가 이렇게  건 네 탓이 아니야. 은혜도 모르고 육욕에 빠진  인간들의 탓이지."

갈라테아가 클레온을 끌어안은 채 귀에 속삭였다.

"슬퍼하지 마 클레온. 분노하렴. 절망을 원동력으로 삼아. 너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어."

마치, 악마의 속삭임.

타인에게 해가 없도록 살아온 클레온에게 있어서, 지금까지 억눌러온 것의 뚜껑을 해방하려는 듯한 충동질이었다.


"그게  강하게 하고.  강하게 하고…. 이윽고. 네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힘을 가져다줄 거야."

조금씩.

"원한다면, 쿠온도, 라일라도. 아니, 그런 여자들보다도 훨씬 매력적이고 강한──"

조금씩.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갈라테아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클레온은 이미 한계였다.

조금. 아주 조금. 확실하게 누군가가 등을 떠밀어 준다면.

클레온은 여기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렇게 확신한 갈라테아는 클레온에게서 떨어졌다.


"그 전에."

갈라테아는 웃으며 손가락을 튕긴다.

그러자, 비가 내리던 뒷골목은 그녀의 결계로 인해 흑마력으로 가득한 격리공간으로 바뀌었다.

바깥에서 안쪽으로 아무런 간섭이 불가능한 불가침의 소영역이다.

클레온은 크게 숨을 내쉬고 들이쉬며 자신의 안에서 부글부글 끓는 감정의 배출구를 찾고 있었다.


"첫걸음을 떼야겠지? 주인님.  건방진 여자를 정복하고, 굴복시키기 위해."

마력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물침대에 갈라테아가 뒤로 쓰러지며 몸을 비틀었다.

비에 젖었던 몸도 머리도 어느새 말라 있었으며 그에 따라 상기된 피부의 색이 조금 더 잘 보였다.



"네 욕망을 해방해."

클레온은 여기서 타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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