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95화 〉제2부. 16화. 복권 일등 당첨되기 (4) (195/195)



〈 195화 〉제2부. # 16화. 복권 일등 당첨되기 (4)

193.

수진의 눈초리는 분명 원망의 색채를 띠고 있었다.
분노.
물기마저 느껴지는 눈망울에 화르르 타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제기랄!!!


명록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어젯밤 그녀를 그냥 보냈을까.
수진이 뭐라고 하는지 차분히 얘기를 들었어야 하는데 왜 그냥 난 쏟아내고  것일까!

화가 나더라도 수진을 잡고 정확한 설명을 들었어야 했다.
하기 싫다고 화를 내고 팽 돌아섰더라도 그녀를 잡고 무슨 일인지 말하라고 했어야 했다.
거기에다가...
나희의 이름은 결코 분노의 찌꺼기에 실어서 언급해선 안되는 일이었다.

그날...
의사와 간호사의 시선 속에서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오해를 받았다고 해도....
그것을 비아냥 섞인 말에 실어서 내뱉어서는 안되었다.

후회와 함께 분노가 이번엔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대체 그녀보다 나이도 일곱 살이나  먹어놓고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뱉어버린 자신의 모습이 더없이 초라하고 옹졸하게 느껴졌다.

언제나 여유 있던 자신의 모습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인가!
수진에게 언제나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주던 그는 어젯밤 전혀 모습을 찾을  없었다.

분명....
사진 만의 모습으로는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수진도 당황하며 그에게 해명하려고 했던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혼자 확신해서 그녀를 몰아붙인 것은 자신의 잘못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 처음부터 시작이 잘못되었다.
리포트 쓰느라 바쁜 그녀에게 계속 투정이나 부리고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다고 툴툴거리던 모습은 철없는 어린애나 하는 짓거리였다.

거기에다가 수진의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그녀의 휴대폰을 몰래 훔쳐보다니.....
그녀입장에서는 얼마나 기분이 나빴을 것인가.
누군가 자신의 핸드폰을 열고 마음대로
그 안에 있는 것을 본다면 명록도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수진이라고 해도 말이다.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하자 수진이 버럭 화를 냈던 순간이 떠올랐다.

아...
젠장.....

명록은 이마에 손을 짚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숙취가 몰려오며 지끈거리는 두통이 함께 그의 머리를 욱신거리게 만들었다.

그가 나희에 대해 꺼냈을 때의 감정이 떠오르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악의에 찬 감정.

병원에서 그녀의 유산에 대해 들으며
의사에게 받았던 시선에 솔직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피임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해서 여자에게 유산의 고통이나 안기는....
그런 허접한 남자 취급을 받는 것이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조금  큰 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어쩌면 놀라움이었을지도 몰랐다.
나희가 처녀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언제나 단아한 모습을 보여 왔던 그녀가 임신을 하고
또 유산이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당황하고 있었다.

스물두 살.

어떻게 보면 어린 나이였다.
이제 막 성인으로 접어든 그녀.
가끔 수진과 만날 때 지나쳤던 나희의 주변이 떠올랐다.
만나는 남자들의 얼굴이 매번 달랐던 거 같았지만
그냥 가벼운 교제였다고 생각했던 그였다.
여자들이 여러 남자를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었고
 그것이 육체적 관계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희의 유산은 명록의 마음에 하나의 그림자를 만들어주는 기분이었다.
거기에 업고 그녀를 응급실로 나르는 동안
맡았던 옅은 술 냄새가 그의 가슴을 차갑게 만들었다.

임신한 것도 몰랐던 것인가.
아님 알고서 일부러 그런 것인가.

임신을 하고도 무책임하게 술을 마셨다는 것도
명록의 마음에 어두운 그릠자를 남겼다.
아니 몰랐다고 하면 그것 나름대로 조심성 없는
몸가짐으로 생긴 결과라는 이야기가 되었다.

추측과 상상이 한껏 날개를 피며
또 저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나희에 대한 명록의 평가는 한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옳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지 사실만으로 사람을 단정 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그리고 나희에게 어떤 숨겨진 사연이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단지 임신과 유산이라는 사실만으로 색안경을 쓰고 보는 것은  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록은 수진에게 그녀의 이름을 꺼냈다.
그 당시 자신은 어떤 감정을 품었던가.
비웃음과 모멸로 채워진 미소와 함께 수진에게 차갑게 말하던 자신이 보이자
얼굴이 화끈거리고 뒤통수 깊은 곳에서 오그라드는 듯한 압박과 함께 머리가 쑤셔왔다.

젠장....
아....
정말 난.....

명록은 입 안 가득 쓴맛이 번지는 것을 느끼며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우선 사과하자.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그리고 천천히 다시 얘기해보자.....


수진의 전화번호를 선택하고 통화를 눌렀다.
오빠하고 부르는 수진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를 바랬다.


하지만.....
통화는 연결되지 않고 바로 안내멘트로 연결되고 있었다.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여자의 음성만이 공허하게 흘러나왔다.



**************



원래대로라면 버스가 끊기기 전까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겠지만,
밀려있는 리포트를 쓰기 위해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을 바라보며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 유리창에 이마를 기대고 멍하니 흘러가는 풍경들을 응시하고 있는데
내내 마음한구석이 텅 빈  같았다.

허전한 마음.
허전한 손.
순간 번쩍 수진의 머리에 무언가 스치고 지나갔다.


아!!!
휴대폰!?
휴대폰....
어디다 뒀지?


늘 들고 다니던 휴대폰이 손에 없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았다.
바로 주머니에 손을 넣었지만 잡다한 것들만 만져질  휴대폰은 없었다.
혹시 도서관에 두고 왔나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
제발 하는 마음으로 누가 보는 것도 의식할  없이 서둘러 가방을 열고 뒤적였다.

가득 찬 가방 안.
프린트물.
노트북.
책들.

간절한 그녀의 염원이라도 통한 것인지
다행히 가방 구석 책들 사이에 휴대폰이 꼽힌 채 처박혀 있었다.
한숨을 길게 내쉬며 짚어들었다.
그러나 휴대폰을 찾았다는 기쁨도 잠시.
꺼져있는 액정을 바라보자마자 수진은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오기만을 기다리던 명록의 연락은 없고,
친구들의 연락만 줄기차게 날아오는 통에
휴대폰에게 괜스레 성질을 내며 전원을 꺼버렸던 것이 생각났다.

순간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며 긴장으로 찌르르 울어댔다.


설마....
휴대폰을 켰는데.....
오빠에게서 여전히 아무런 연락도 없었으면 어쩌지......

길어진 해.
오후 6시가 넘어가는 지금.
명록이 아직까지 자고 있을 리는 만무했다.

그에게서 아직까지 연락이 없다면 어떻게 생각해야할까.....
그녀와 헤어지고 싶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하지만 두렵다고 휴대폰을 계속 꺼둔 채로 뒀다가는
명록의 연락을 확인 하지도 못 하고 정말 선택의 여지도 없이 헤어지게 될지도 몰랐다.

말도 안 돼.....
이렇게 헤어질리 없어.....


결국 수진은 조심스럽게 휴대폰 전원을 켰다.

두려운 마음.
언젠가 놀라갔던 산  절벽에서 서있던 기분이 되살아났다.
바람에 몸이 휘청거리고 천길 만길 아래
까마득하게 보이던 모습에 오금이 저려왔던 그때의 아찔함.
화려한 애니메이션과 함께 휴대폰에 생명이 불어 넣어졌다.
완벽하게 전원이 들어올 때까지 수진은 떨리는 마음으로 두 손에 꼭 쥔 휴대폰을 바라봤다.
그리고 5초.
웃고 있는 명록과 수진의 사진이 휴대폰 액정을 채웠지만 그 배경  새로  연락은 없었다.

현재 시간.
안테나.
이미 읽어버린 문자들.
언제나처럼 아무런 특징 없는 바탕화면.

어쩌면 명록에게 연락이  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아니라고 부정하고 있었다.
분명 오빠에게서 연락이 와있으리라 확신에 가까운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무참히 깨져버린 기대.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오빤 정말...
내가 바람을 폈다고 생각하는 거야?
정말....
그런 거야?


눈가가 욱씬거리며 뜨거워졌다.
헤어짐의 수순을 밟는 거란 생각 때문에 명치를 힘껏 맞은 듯 숨이 턱턱 막혀왔다.

수진의 손가락이 길을 잃고 휴대폰 위를 헤매고 있었다.
이대로 헤어질 수는 없었다.
명록에게 전화를 걸어 그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게 오해라는 해명을 해야 했다.
수진이 명록에게 전화를 걸려는 찰라 휴대폰이 그녀의 손 안에서 부르르 떨었다.
깜짝 놀라서 휘둥그레해진 눈동자로 바라보니 아까와는 다른 것들이 액정에 나타났다.

[ 부재 중 전화 5통 ]

[ 확인하지 않은 문자 메시지 8통 ]

뒤늦게 휴대폰이 알려주는 소식.
수진은 서둘러 메뉴 안으로 들어가서 확인했다.

순간 보이는 메시지 내용이  먹자는
친구들의 문자 메시지임을 알자 절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실망감.
가슴 위에 커다란 바위가 내려앉은 느낌.
그러나 다음 메시지를 보는 순간 얼굴이 발가지고 있었다.
전화 왜 꺼놨냐고 어서 전화 받으라고 하는 명록의 메시지였다.
그리고 그가 걸었던 다섯 번의 통화시도를 확인하고 나서야 수진의 굳었던 얼굴이 풀어지고 있었다.

안도의 한숨.
내쉬는 숨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그가 헤어질 마음이 없음을 알자
수진은 우선 절박했던 아까의 감정이 풀어지며 기분이 좋아졌다.
바로 명록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여기가 버스 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싸움을 한  풀려는 대화가 오가기엔 왠지 어색한 장소.
수진은 통화 대신 그에게 보낼 문자 메시지를 쓰기 시작했다.

[ 오빠.... ]

그러나 수진의 손이 그 뒤를 잇지 못하고 멈췄다.
더는  말이 없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잔뜩 있었는데,
막상 적으려고 하니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질 않았다.














<<복권 일등 당첨되기. (4)>> 끝 => <<복권 일등 당첨되기. (5)>>  고고씽!!!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