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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3화 〉제2부. 15화. 포레스트 검프의 초콜릿 상자 (12) (183/195)



〈 183화 〉제2부. # 15화. 포레스트 검프의 초콜릿 상자 (12)

183.

생각지도 않았던 메뉴가 튀어나와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명록의 반문에 수진은 빙긋 웃었다.



응. 저번에 친구들하고 왔었는데 맛있더라. 오빠랑 한번 다시 가보고 싶었어. 후후. "



" 그래. 가자. "




수진이 가고 싶어 하는 눈치인지라 망설이지 않고 그녀가 이끄는 대로 따라 나섰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역시 오랜만에  수진의 야윈 듯한 모습에 좀더 영양가 있는 것을 먹이고 싶었다.
삼계탕 같은 거라도 먹이고 싶었지만 왠지 아저씨 같다고 할까봐.....
그럼 고기라도 든든하게 먹이고 싶어서  소리였는데 그녀는 별로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거 같았다.




에휴....
정말 제대로 먹고 다니는  맞나?

잡고 있는 수진의 손가락도 왠지 뼈만 잡히는  같아 안쓰럽게 느껴졌다.
길고 얇은 손가락이 언제나 명연주가의 손처럼 느껴졌는데 지금은....
너무도 가냘펴서 힘주어 마주 잡기도 어려워졌다.
가볍게 만지작거리며 걸을 뿐이었다.


거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와 식당가로 들어서자 곧 수진이 말한 가게가 보였다.
들어서니 제법 많은 손님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불금이라는 시간대도 있었겠지만 정말 맛집인 모양이었다.
손님들이 북적거리는 가운데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간신히 자리를 잡고 앉자 바로 종업원 아주머니가 메뉴판과 물을 주었다.


사진이 첨부된 메뉴판.
떡볶이에 이것저것 해산물이 들어가 있는 냄비 옆에 해물떡찜이라고 쓰여 있었다.
게와 새우등 제법 맛있게 보였는데 역시나 빨간 양념으로 버물어져 있는 것이 척 봐도 매워보였다.


순간....
옛날 수진과 처음 영화를 보고 갔었던 떡볶이 집이 생각났다.
화르르 불타는  같은 그 떡볶이.
수진 앞에서 약한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서
억지로 참고 우걱우걱 먹었던 탓에 그 뒤 겪었던 참사는 말로 표현 할 수 없었다.


아.....
그때 얼음이 아니었음
난 죽었을지 몰라......


남사스러운 기억이었지만 육각얼음을 꺼내서
간신히 불타는 그곳을 잠재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남몰래 웃는 명록이었다.
그러나 지금 보이는 메뉴도 만만치 않아보였다.
메뉴판을 보며 아무 말 없는 명록을 보던 수진이 킥킥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푸하..... 오빠 매울까봐 그러는 거지? 히히히.... 그렇게 매운 거 아니야. 뭐 좀 맵긴 하지만 맛있어. 오빠도 좋아할 거야. ”



그....그럴까? "

응. "



자신만만한 수진의 대답.
그러나 결과가 그렇지 않은 적은 그냥 생각해봐도 너무 많았다.
약간의 불안감이 맴도는 가운데....



이모~ 여기 해물 떡찜 주세요~ 복숭아 맛으로 음료도 주시고요. "


수진의 목소리가 가게 안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서빙을 보시던 아주머니는 금세 웃는 얼굴로 다가와서 주문을 다시 확인하고 받아갔다.


그리고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나온 메뉴.
검은 주물냄비에 가득 나온 해물떡찜은
어떻게 보면 해물찜 같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떡볶이에 해물을 넣은 거 같기도 했다.


그래도 안에 들어가있는 재료는 알차보였다.
살이 꽉 찬 게가 반으로 쪼개져서 들어있고
제법 큰 새우들과 오징어, 홍합 등이 양배추와 양파,
그리고 파 등등 각종 야채와 곁들어져서 작은 동산을 이루고 있는 것이 붉은 양념에 반쯤 익혀있었다.


" 끓기 시작하면 바로 먹으면 되요. 그럼 필요한  있으면 부르세요. "


웃음과 함께 빌지를 옆에 두고 가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보고는 명록은 다시 해물떡찜을 바라보았다.

헐......
정말 괜찮은 거지????

분명 입맛이 도는 모습이었지만
고춧가루와 끓기 시작하는 국물을 보자면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우선 밑반찬으로 나온 것을 몇 젓가락 집어먹는 사이
서서히 끓던 국물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끓기 시작했다.


" 불 좀 줄일까? "


수진을 보며 말하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 응. 이제 먹어도 돼~ 어서 먹자."

" 그...그래. "


왠지 먹기도 전에 이마에서 땀이 솟는 기분이었다.
불을 줄이자마자 바로 자신의 앞접시에 해물들을 건져서 담더니
맛있게 먹는 수진을 보자 명록도 하나씩 건져 먹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한 입 먹자 매운 고추의 맛이 확 입에 퍼졌다.
뜨거운 국물의 맛과 함께 씹히는 오징어의 촉감.



오호.....




생각대로 맵지만 그렇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맛이 있었다.
양념도 적당히 되어있는 것이 달달함에
혹시 매울지 몰라 담은 야채들이 적당히 희석시키고 있었다.
매운 것에는 유난히 약한 명록이었지만 적당히 자극하는 것이 뭐라 말할 수 없는 화끈함을 주고 있었다.
건너편에서 먹으면서 명록의 모습을 지켜보던 수진이
냄비에서 게와 새우를 집어서 그의 접시에 덜어주었다.

히히... 오빠 좋아하는 거잖아. 먹어봐. 괜찮지? "




" 응, 맛있네. 괜찮다 이거! "


명록은 웃으며 접시를 내밀어 받아서 바로 먹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살이 꽉  게가 맛있어 보였던 참이라 바로 입으로 가져갔다.

아그작 소리를 내며 가득 찬 게살이 밀려서 입 속으로 들어왔다.
게살 특유의 단 맛.
양념과 버물어지면서 혀가 뜨거워지자 절로 호호 불며 씹어댔다.

정신없이 게를 해치우고는 새우도 껍질을 까서 바로 먹었다.
약간 작은 게에 비해서 통통한 새우는 대하에는 미치지 않았지만 제법 컸다.
힘들게 껍질을 벗기고 입으로 쏙 집어넣자
게와는 다른 단맛이 탱탱한 식감과 함께 입안을 채웠다.



아흐...
아....



입을 뜨거움과 매운 맛에 연신 오물거리며 맛있게 먹는 명록을 보면서
수진도 나름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다시 식사를 계속 했다.


그러나....
맛있게 빠르게 움직이던 명록의 젓가락이 어느새 멈칫하며 느려지고 있었다.
처음 괜찮다고 느꼈던 매운 맛이 점점 강도가 높아지는 듯 싶더니 순간 혀끝이 찌릿찌릿 울려왔다.
그리고 밀려오는 강렬한 통증.
절로 입이 크게 벌어지며 혀가 공간에서 어쩔  몰라 꿈틀대고 있었다.



허억!!!!




순간 명록은 눈앞에 보이는 물 컵을 들어서 벌컥벌컥 마셨다.
입 안에 있는 해물과 야채가 쏟아져 들어오는 홍수에 뒤섞이며 차가운 느낌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찬물로도 쉽게 매운 느낌이 가시지 않았다.
잠시 멈칫하던 화끈거리는 느낌이 물을 삼키고 나자
다시 강해지면서 아까보다  쓰린 느낌을 주고 있었다.
뜨거운 공기 때문에 그런 감촉이 오는 것처럼 입을 열고
하아 공기를 내뿜어봤지만 그런 것이 도움이   없었다.
마치 명록은 자신이 거북선이 되어 화염을 내뿜고 있는  한 착각이 들 지경이었다.




" 푸하하하.... 오빠 표정이 너무 웃겨.... 아하하하하.... "



앞에서 자신을 보던 수진이 까르르 웃음소리를 내며 어깨를 흔들었다.

" 오빠는 나하고 다니면서 매운 거 이제 좀 잘 먹나 싶었는데 여전한가 봐.... 히히히... 자~ 이거 마셔. 물보다는 이거 마시는 게  낫더라. "

수진은 얼음이 동동 떠있던 복숭아 맛 음료를 건네주었다.
어렸을 때나 먹던 거라 약간 불량식품의 이미지를 가진 요구르트 같은 음료였다.
그래서 일부러 입을 안대고 있었던 터인데
우선 입이 재난상황이라 명록은 그녀가 권하는 대로 바로 받아마셨다.


얼음에 차가워진 음료가 달달한 맛에 입 안을 식혀주며 목으로 넘어갔다.
단맛 때문인지 아까 물보다는 훨씬 나은 기분이었다.
큰 컵에 담겨 있던 음료를 한숨에 다 마셔버렸다.

수진은 킥킥 웃으면서 명록의 앞접시에 고구마를 건져주며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 있던 음료잔도 명록에게 밀었다.



" 어째 너무 잘 먹는다 했어. 쿡쿡.... 이거 고구마야. 먹어봐, 오빠. 그리고 야채랑 천천히 먹어. 매운 양념이 맛있다고 잔뜩 묻혀 먹으니까 그렇지. 히히히.... 음료 하나 더 시킬까? "



명록은 그녀가 준 음료를 홀짝 마시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머리에 땀이 가득 차있었다.


역시 매운 것은 여전히 그에게 어려운 난이도의 음식이었다.


여자들은 참 이런 걸....
어떻게 잘 먹을까?




물론 매운 게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런 것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먹는 수진이 신기할 뿐이었다.

그녀는 명록을 보면서 여전히 웃음을 거두지 못한 채
생글생글 웃으며 국물이 잔뜩 묻은 홍합을 입에  넣고 있었다.


너무 너무 맛있다는 표정으로 보는 수진의 입가가 평상시보다 더 붉게 느껴졌다.






**************




컴컴한 복도의 바닥에 깔린 카펫에서 올라오는 듯한 먼지 쌓인 퀴퀴한 냄새와 그 냄새를 덮기 위해 뿌렸을 화학향이 분명한
시크러트 계열의 꽃향기가 뒤섞여 수진의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고 있었다.

오랜만에 맡는 냄새.
근  달 만에 방문하는 모텔이었다.
몇 번을 와도 익숙해지지 않고 민망하고 불편한데,
오랜만에 온 모텔은 생경함까지 더해져 수진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식사를 마치고 잠시 거리를 걷고는 바로 들어오는 모텔이었다.
명록의 팔짱을 끼고 있던 수진은 자연스럽게 같이 안으로 들어왔다.
어색한 카운터에서의 시간.
그리고 방으로 향하는 내내 그녀의 머릿속엔 불편한 생각들만 차올랐다.


명록과 약속을 하면서 이미 정했던 마음이지만 왠지 막상 또 그 시간이 되니까 망설여졌다.
사실 연인 사이 당연한 일이었다.
로맨스 소설에서도 사랑하는 사람과 마음도 몸도 같이 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러나 나희와의 일을 보면서 조금씩 변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오늘이 안전일인가?
저번에 생리했으니깐...
아직 며칠 지나야 하는데.......
혹시 모르니깐 오늘은 안 된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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