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7화 〉제2부. 15화. 포레스트 검프의 초콜릿 상자 (6) (177/195)



〈 177화 〉제2부. # 15화. 포레스트 검프의 초콜릿 상자 (6)

177.

흐음.....


명록의 한숨이 길게 새어나왔다.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하늘이 옅은 바다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실내 흡연실의 퀴퀴한 냄새는 그의 코를 자극하며 도시의 매연을 그대로 재연하는 중이었다.

생각해보면 그가 굳이 이곳으로 올 필요는 없었다.
공기도  좋고 지저분한 흡연의 흔적이
가득차 있는 방의 모습이 휴식을 취하기엔 그리 쾌적한 환경이 아니었다.
거기에다가 명록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중에 이곳을 찾고 있었다.

그것은 신입시절부터 승필 선배와 함께 이곳으로 쉬러 오면서 생긴 습관일지도 몰랐다.
별도 바깥으로 나가는 곳에   있는  다른 장소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사무실에서 가깝다는 이유 만으로 자연스럽게 발길이 이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사람이 채워져 있던 흡연실에는 웬일인지 아무도 있지 않았다.
결산으로 각 부서마다 바쁜 것도 이유일 수 있었지만
어찌 됐든 혼자서 휴게실을 차지하고 있는 통에 명록의 상념은 마음껏 나래를 펼칠 수 있었다.


흐음....
언제부터였을까......?

왠지 수진과의 만남이 예전 같지 않다고 생각했다.
분명 사이가 나빠지거나 싸우지도 않았는데도....
무언가 이전과 변해져 있었다.

자판기에서 뽑아온 커피를  모금 마셨다.
평소 달달하기로 유명했다.
아무래도 설탕 조절이 다른 자판기에 비해 조금 느슨하게 되어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단맛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문제가 그만큼 쓰디쓴 맛을 내고 있기는 했다.



역시.....
섹스....와도 관계 되는 걸까......

섹스.
남녀가 서로 연인이 되어 나누는 행위.
사랑이라는 감정이 전제가 되어 그것을 표현하는 행위.

제주도에서의 음모가 수포로 돌아간 뒤
수진을 볼 낯이 없어서 피해 다니던 자신을 위로해주겠다고....
귀엽기 짝이 없는 그녀가 준비했던  경험의 순간.
그 뒤로 얼마나 뜨겁게 서로 사랑을 나누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집에까지 가서 병간호하며 보내다가 갑자기 타올랐던 순간들.....
애널 섹스하며 겪었던 추억.....
수진도 자신도 어색하기만 하고 마음만 앞섰던.....
많은 시간에서 조금씩 쾌감에 익숙해져가는 과정들.
서로 여러 가지 체위를 하나씩 배워가며 뜨겁게 보내었던 그때와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모텔에 들어가던 것조차 어색해하고 부끄러워하던 시간에서도 벗어나
함께 기꺼이 둘만의 시간을 보내던 수진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
섹스하는 횟수가 줄었어....
아니....
요새 거의 못하고 있었잖아.....?
어제만 해도.....



명록은 다시 종이컵의 커피를 홀짝 거렸다.
이미 식어버린 쓴 액체가 목구멍 안으로 넘어갔다.
어젯밤 수진과 만나고 헤어졌던 순간이 천천히 파노라마가 되어 펼쳐졌다.

리포트에 치어서 지쳐버린 수진에게
조금이나마 영양분을 보충시키기 위해 만났다.
당연히 당시 모텔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왠지 기운도 없고  늘어져 있는 듯한 모습에 무엇이라도 맛있는 걸 사주고 싶어서 불러냈다.

맛있기로 유명한 삼계탕 집에 데리고 가서
조그만 병에 나오는 인삼주를 같이 마시고는 얼굴에 달아오르는 취기를 느끼며 가게를 나섰다.
슬슬 여름이 가까워지며 더워지는 날씨 탓에 사람들의 옷차림도 얇아지고 있었다.


명록의 시선은 옆에 걷고 있는 수진에게 향했다.

흰색 나시티 아래 봉긋한 그녀의 젖가슴.
어깨부터 들어난 하얀 팔이 술기운과 함께 명록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어느새 어두워진 길가에 들어서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는 다시   빠르게 주변을 보았다.
때마침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명록은 발길을 멈추고 수진을 향해 돌아섰다.
조용히 손을 잡고 오던 그녀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 응.....?  "



순간 그는 수진의 가는 허리로 양손을 감싸며 와락 자신의 품 안으로 당겼다.
그녀는 갑작스런 명록의 행동에 깜짝 놀라며 주변을 살폈다.




" 오빠....! "

보고 싶었어...... 많이 힘들었지? "



나직한 명록의 목소리.
부드럽게 안는 그의 손길을 처음에 벗어나려 애썼지만
수진도 주변에 사람이 없음을 깨닫고는 더 이상 가슴을 밀치지 않았다.
다만 붉어진 얼굴로 작게 속삭이고 있었다.


깜짝 놀랬잖아...... "

작은 수진의 목소리.
책망하는  해도 그건 수줍음을 가리는 위장과 같았다.
명록은 입술이 마르는 듯한 갈증을 느끼며 입술을 그녀에게 포갰다.


읍...... "



수진의 숨소리가 멈추었다.
부드러우면서도 탄력 있는 그녀의 입술.
명록은 천천히 아랫입술을 빨면서 수진의 허리를 잡아당겼다.
그렇지 않아도 가늘고 보드라운 그녀의 몸이 품 안 가득 느껴졌다.


볼록한 수진의 가슴.
약간 거칠어진 그녀의 호흡.
얇은  아래 느껴지는 그녀의 몸이 너무도 그리웠다.


" 하아...... "



길고 길었던 키스의 시간.
참았던 숨이 쏟아지며 얼굴이 서로 떨어졌다.

약간 젖어있는 듯한 수진의 눈망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도 붉어져 있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명록이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욕망의 불꽃.
이젠 활활 타올라 그의 심장을 태우고 있었다.
이대로 그녀의 온몸을 가득 느끼고 싶었다.
수진의 몸 구석구석을 더듬고 쓰다듬으며 그녀의 깊은 곳에 자신을 채우고 싶었다.


다시 그녀의 허리를 당기며 명록은 입술을 겹쳤다.
수진의 눈꺼풀이 천천히 다시 감아지고 명록도 눈을 감았다.
어둠만이 가득한 가운데 시각을 제외한 모든 감각이 그녀를 쫓고 있었다.

입술에서 느껴지는 수진의 탱탱한 입술.
그 사이 벌어지는 가운데 은은하게 딸려오는 타액의 맛.
조금씩 거칠어지는 숨소리.
손 안에 느껴지는 뜨거운 그녀의 체온.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살랑거리는 머리카락에서 풍기는 좋은 향기.

안고 싶어.....
 안에 가득 느끼고 싶어....

명록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혀가 깊숙이 수진의 입 안으로 들어가 그녀의 혀를 휘감았다.



" 으흡....... "



품 안에 안겨 있는 수진의 손가락이
명록의 가슴위에서 힘이 들어가며 세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의 가녀린 몸도,
내쉬고 있는 숨도 완전히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한 여름의 뜨거운 태양처럼 달궈져 있었다.
수진의 촉촉한 꽃잎을 떠올리며
그 습하고 애액이 넘쳐흐르는 그곳을 어서 맛보고 싶어졌다.

숨이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딥키스를 나눈 뒤라 둘은 헉헉 숨을 몰아쉬며 떨어졌다.
명록은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수진아.... 우리 갈래.....? "


목적지가 생략된 말.
하지만 그곳이 어딘지는 수진도 충분히 알아들을 것이다.

하지만....

붉어진 얼굴로 숨을 몰아쉬던 그녀의 얼굴이 살짝 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명록의 시선을 피해 수진의 고개가 천천히 옆으로 돌아갔다.




응.......?



그녀의 모습에 명록은 순간 왜....
- 라는 글자가 머리에 떠올랐다.
분명 저건 승낙의 몸짓이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수진의 목소리가 바로 들려왔다.



" 아...안돼 오빠..... 오늘 빨리 들어가야 하는걸....... "


아까까지 뜨겁게 달아올랐던 그녀의 몸과 달리
어느새 수진의 목소리는 침착하게 제자리를 찾고 있었다.
거칠었던 숨소리 대신 곤란함을 담뿍 담고 있은 채 중얼거리고 있었다.

" 아까..... 만나면서 오빠한테 말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만나면서 그런 얘기는 한 거 같았다.
집에 빨리 들어가야해서 오래 같이 있기 힘들  같다고....
하지만  말이 이렇게 이 시간 이 자리에서 다시 부활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명록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는지 수진이 고개를 들며 말을 이었다.


" 미안해.... "


잦아드는 그녀의 목소리.
이순간 뭐라고 말을 해야 할 것인가.
어쩌면 단순히 욕망의 마음으로 그녀를 모텔에 데려가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역시 이렇게 거절의 말을 듣는 것은 유쾌하지 않았다.
섹스가 연인 간의 필수는 아니더라도 이렇게 수진에게 거부되는 느낌이 왠지 멀어지는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명록의 기색에 수진의 말이 좀 더 빠르게 계속 되고 있었다.




" 미안.... 정말 미안해..... 엄마가 요새 들어서 빨리 들어오라고 잔소리 하시는 걸..... 오빠하고 만나는 거 눈치 채신 모양인지..... 눈치 보여 죽겠어....... "



수진은 아직 자신의 존재에 대해 부모님께 말하지 않은 걸까?
하긴 명록도 아직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략 눈치는 채신 모양이었다.
물론 아버지가 뭐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어머니는 순간순간 농담처럼 여자 친구 생겼으면 데려와봐라....
-하면서 말을 던지시곤 하였다.

그러나.....
왠지 수진의 말에 서운함이 들었다.
남자친구
아니....
애인이 있다는 것을 말하면 안 되는 걸까?
수진이 어린 나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대학교 3학년....
곧 졸업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정도 나이면 남자친구를 사귀어도 당연히 되는 나이 아닐까?


집 안에 남자들 밖에 없는 명록으로 여자가 있는 집의 사정 따위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이정도 시간이 지났으면 수진 또한 슬쩍 남자친구에 대해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여자에게 남자친구의 존재를 집에 드러내는 것이
어쩌면 괜한 불편함을 가중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수진의 말대로 늦어지는 귀가시간도 예민해지는 엄마의 레이더를 더욱 강화시키는 일일지도 모른다.
섯불리 남자친구에 대해 털어놓았다가는
휴일의 외출도 간혹 있는 외박도 하나하나 잔소리꺼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음 편히 삼박사일 여행 같은 것은
아예 이제 꿈도 꾸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감추는 것인지도.

그러나....

역시.....
수진의 말에 서운함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어쩌면....
이것도 조금씩 거리감이 느껴지는 수진에게서 쌓였던 감정이
하나씩 켜지는 전등처럼 내 마음 속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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