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4화 〉제2부. 15화. 포레스트 검프의 초콜릿 상자 (3) (174/195)



〈 174화 〉제2부. # 15화. 포레스트 검프의 초콜릿 상자 (3)

174.


특히나 남자는 섹스와 애정의 관계를 비례해서 생각한다는 말을 어디서 본 거 같았다.

아무리 수진이 사랑하는 명록이라도....
그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한다면 분명 또다른 다툼거리를 만들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한번도 하지 않았다면 그나마 나았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섹스를 나눈 사이에서 갑자기 하지 말자고 하면
아무리 착하고 배려깊은 명록이라도 그녀의 말을 순순히 받아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의 세친구들이 누누히 말했던 남자들은 욕망에 충실하고  섹스에 대해서는 집요했던 존재였다.

수진은 얼굴을 찡그려 아픈 척을 하며 입을 열었다.

" 응.. 그날이라 그런가 배가 조금 아프네... 오빠, 다 왔다. 늦었는데 들어가."


아프다며? 엘리베이터 앞까지만 데려다 줄게."



아냐..... 왠지 오늘은 엄마랑 마주칠  같아서 그래..... 요즘 동네 아줌마들이랑 밤에 운동 다니시거든."



" 그래? 흐음... 알았어. 그럼 집에 들어가면 꼭 전화 해."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서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된다.
수진은 또 거짓말을 해서 애써 명록의 등을 떠밀었다.
엄마와 마주칠 것 같다는 말에 명록도 어쩔 수 없이 아쉬운 표정으로 뒤돌아서고 있었다.




응, 오빠 잘 들어가."


다음엔.....
꼭 잘해줄게.




가로등 밑에서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명록을 애잔한 눈동자로 쳐다보던....
수진은 어렵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 앞에 보이는 엘리베이터 문이 오늘 따라 더 차갑게 느껴지고 있었다.






**************



" 문도진."

" 네!"



" 박나연."



" 네~!"


박나희."




학생들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출석부에 적힌 이름을 쭉쭉 부르던 교수님의 목소리가 허공에 흩어지고 있었다.
슬쩍 강의실을 안경너머로 한번 훑어보시고는 다시 한번 짧고 빠른 목소리로 출석을 불렀다.

" 박나희."

하지만 여전히 교수님의 부름에 응답이 없었다.
알이 하나 빠진 옥수수처럼 아무 대답이 없자, 아예 몸을 세우고 멈칫하며 강의실을 둘러보았다.


" 박나희, 박나희 학생은 오늘도 결석인가? 여태까지 결석 안하던 학생인데... 나희 학생 집에 무슨 일 있습니까?"

지독한 감기에 걸려서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얼굴로
콜록거리면서도 학교에 나왔던 그녀였는데, 벌써 2주째....
보이지 않았다.
나희는 연락도 없이 학교에 나오지 않고 있었다.

교수님들도 그간 보아온 나희의 성실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결석에 의아함을 나타내며 사정이 있다면 이야기 하라는 
학생들을 쳐다보며 강의실 구석구석 훑어보았지만 아무도 그녀에 대한 변호를 하고 있지 않았다.

그건 수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 또한 교수님의 눈길을 외면하며
시선을 책상 위로 떨구고 아무 말도 할  없었다.

" 박진규. "




" 넵! "


교수님의 시선도 다시 출석부로 향하고
잠시 멈춰졌던 버스가 신호를 받아 바로 달려가듯
다음 단계로 다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수진은 여전히 시선을 떨군  생각에 잠겨있었다.
나희의 호명이 아무런 응답 없이 시간이 흘러갈수록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설마.....
설마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 아니겠지?




왜 언제나 상상은 불길한 모습 만을 먼저 그려대는 것일까.
처음 며칠, 나희가 학교를 빠졌을 때는 유산도 출산과 같다고 들어서
아직은 몸이 안 좋아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출석부에 결석 표시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수진의 마음에도 불안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그녀의 유산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껄끄러워서
자신의 연락만 받지 않는 줄 알았는데, 나희가 결석할 때마다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는 영연과 설아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녀들도 수진과 다를 바 없는 모양이었다.
아무도 나희와 연락을 주고받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혹시 병원에 간 사실이 들켜서 집에 잡혀갔나 싶어서
조교 언니에게 나희의 휴학이나 자퇴 여부를 물었지만
그건 아니라는 답변을 들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희가 잠수를 탄지 이주일째 넘어가자
이젠 상심한 나머지 무슨 일이라도 저지르는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뉴스나 기사에서 자주 보았던 문구.
극단적 선택!


그것이 가장 친하고 언제나 옆에 있었던
친구와 연결된다고 생각하니 몸이 달아오르면서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다.
아니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나희와의 불편한 관계는 고려대상에서 아예 지워져 버렸다.



안되겠어.....
이대로 가만있을 순 없어....
아무래도.....
애들하고 얘기해서 오늘은 가봐야겠다.....

물론 나희 집이 어딘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문을 두들겼는데 나희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니 혹시 모를 돌발 상황이라도 닥칠까봐 무서워서 혼자서는 도저히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특히나 담이 작은 수진이었다.
저번에 자신을 밀어내던 나희의 표정이 떠올라서
혼자서 그녀를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영연이나 설아에게 나희의 방위치를 물어보고는
같이 가자고 하면 자연스럽게 같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녀들과 함께 간다면 나희도 왠지 그들을 밀어낼 거 같지는 않았다.



그래.....
이번에는  가보자.....



수진은 속으로 혼자 다짐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


" 나희 고년, 무슨 바람이람... 아파서 손가락 한번 움직일 힘도 없다니? 대체 왜 연락도 안하는 거야...... 전화도 안 받고....."



" 설마... 이뇬.... 혹시... 남자랑 밀월여행이라도 떠난 거 아냐? "




평소라면 귀찮다며 일축했을 그녀들이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나희가 걱정이 됐었는지, 수진의 말에 바로 앞장서서 걷고 있었다.
수업이 끝난 뒤 나희네 집에 가보자는 수진의 말에 순순히 바로 함께 길을 나선 영연과 설아였다.
작년에 가봤던 기억을 더듬어 가며 나희의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 그녀들은
수진의 앞자리에 앉아서 자세한 사정은 모르는지, 왁자지껄 떠들며 나희의 근황을 맞춰보고 있었다.

" 에이... 나희 그 기집애가? 학교수업도 빼먹고??? 푸하하하.... 그런 로맨티스트는 아니잖아."


" 글쎄? 사람은 모르는 법이잖아. 혹시  알아? 헐벗은 남자가 젖은 머리칼로 문을 열어줄지도. 그리고 뒤돌아보며 방 안을 향해 말하는 거야. 자기야~ 친구들 왔는데 라고 말야. "




설아가 느끼한 표정으로 대사를 읊자
영연의 표정이 떨떠름한 감을 크게 한  배어 물은 사람처럼
천천히 일그러져가고 있었다.

" 우엑,~~~ 싫다.... 드라마도 아니고, 어떤 남자가 그러냐? 화들짝 놀라서 숨으면 몰라도.... 근데 이렇게 우리 말없이 찾아가도 되는 거야? 나희 고뇬이 대박 화내도  모른다."

" 연락도 안 받고, 학교에  와서 걱정 끼치고 있는  나희 그뇬인 걸. 화는 낸다면 우리가 내야지."

수진은 애써 가로수가 펼쳐진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지만, 영연과 설아의 이야기에서 귀를 뗄 수 없었다.
만담과 같은 그녀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그래도 찾아갈 용기를 얻고 있었다.

영연과 설아 그녀들은 모르지만, 수진은 아는 이유.
그리고 둘에게는 말하지 못한 비밀.....
아마도 계속 이렇게 아니 영원히 그녀들에겐 말하지는 못할 거 같았다.

학생 때의 임신과 유산의 경험은
평생을 가슴 속에 지고 가야 할 멍에가 되어,
자기 학대와 타인의 비난에 대한 두려움과 싸운다.
아무리 친구들이라 해도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
수진도 어쩌다 알게 되어버린 나희의 비밀을 자신의 일 인양 가슴 깊이 숨겨둘 수 밖에 없었다.



나희는 어떤 마음일까......
괜찮겠지?
그래....
괜찮을 거야......
아무 일도 없을거야.....



수진은 마치 자신에게 주문을   괜찮다는 말을 되뇌고 있었다.
자꾸만 병실에서 유산이라는 말을 전해 듣고
멍하니 천장을 응시하던 나희의 표정이 수진이 바라보는 차창에 반사되며 떠올랐다.

내유외강.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빈 채로 형태만 겨우 유지하고 있는 대나무,
그것이 나희였다.
제발 이번 시련이 그녀가 견딜  있을 만큼의 바람이길 바라고 또 바랬다.


나희가 사는 원룸은 멀지 않았다.
학교에서 다섯 정거장이 안 되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
버스에서 내려서 근처 보이는 편의점에 들어가서는
간단한 먹거리를 사들고 예전에 와 본적 있는 나희 집 문 앞에 섰다.


누구나 타인의 집을 방문 할  초인종을 누르거나, 문을 두들긴다.
하지만 수진은 문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 야~ 뭐해? 안 눌러? "

수진은 연락하지 않고 불쑥 찾아왔다고 나희가 화를 낼까봐
아니 혹은 모순적이게도 예상하거나 예상 밖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봐
두려워 감히 초인종을 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의 준비가 끝나기도 전에
굼뜬 수진의 모습이 답답했는지 옆에 서있던 설아가 낼름 초인종을 눌러버렸다.
하긴 설아는 나희의 사정을 알았다고 해도 결코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다.

딩동 딩동!
딩동 딩동!


요란스러운 벨소리가 울려 퍼졌다.
몇  간 기다렸지만  너머 들려야  반응이 없었다.
수진의 마음은 처음 벨소리에 깜짝 놀랐다가 이젠 점점 초초해지고 있었다.

편의점에서 샀던 물건들이 담긴 비닐봉지가 갑자기 무겁게 변했는지
손가락 마디 사이를 파고들어 손끝이 노랗게 식어가는 것처럼 저려왔다.

" 설마 이뇬.... 자고 있나? "



설아는 혼잣말로 중얼거리고는 또 다시 빠르게 초인종을 눌러댔다.
두꺼운 문 너머 안쪽에서도 요란스럽게 울리는 초인종 소리가 들리는데
여전히 다른 인기척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 야~ 나희야~~~~!!! 문 열어. 살았는지 얼굴 좀 보자. 나희야~~~"




설아와 마찬가지로 영연의 인내심 또한 바닥이 났는지
복도를 쩌렁쩌렁 울리는 큰 소리로 나희를 불러대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이웃집과 나희에게 민폐라며 면박을 주었을 수진이지만,
자꾸만 어둡게 파고 들어간 생각 때문에 영연을 말릴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아니 차라리 그녀의 고함소리에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 야~ 박나희~!  열어라! 안 열어 주면 쳐들어간다! 박~나~희이이이이~~~~~~~~~~~~~~~~~~~!!!"


점점 험악해져가는 영연의 목소리가
말투 못지않게 대폭 불륨업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고함소리가 마치 알리바마와 사십 인의 도적에서 나오는 주문처럼
마침내 굳게 닫혀있던 철문을 움직였다.


















끝 => 으로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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