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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5화 〉제2부. 14화. 평행선 (14) (165/195)



〈 165화 〉제2부. # 14화. 평행선 (14)

165.



" 꿩 대신 닭이라는 거죠. 나하고 술 한  마시고 싶어서 연락한 줄 알았는데 수진 씨가 없어서 대타라니.... 왠지 서운하네요. "



헛!!!!


명록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그녀의 말에 당황해서 바로 입을 열었다.




" 서...설마요. 아니에요. 그게..... "



하지만 말을 하면서도 순간 그는 하윤의 말이 전혀 틀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수진이 없어서 하윤에게 연락을 한 것이니 말이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답을 잃어버린 순간 앞에 앉은 하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맑고 청량한....
개구진 웃음 소리.

" 하하하.... 농담이에요. 명록 씨는 정말...... 하하하하..... "



그녀는 이젠 깔깔깔 박장대소하며 어깨를 흔들고 있었다.
장난꾸러기 아이와 같은 얼굴로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장난을 치고 상대가 어리둥절하는 모습에 제대로 기뻐하는 것 같았다.

하.....

그녀의 모습에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조금 놀림거리가 된 듯 해서 같이 웃을  없었다.
왠지 그런 하윤의 모습에 명록은  웃음을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은 푸념 섞인 말이라도 그녀에게 털어놓고 나니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울한 하루의 기억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조금씩 풀려가는 자신의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유리 종처럼 밝은 하윤의 웃음소리.
살짝 눈꼬리가 길어지며 유난히 짙은 그녀의 속눈썹을 보며
이렇게 저녁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비록 수진이 아닌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한 찜찜함은 있었지만
자신을 버리고  수진에 대한 조그만 복수 같은 마음이기도 했다.
그렇게 정리하며 이시간을 받아들였다.


그순간.

드드드드....


하윤과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테이블 어딘가에서 진동소리가 들렸다.
휴대폰 진동 소리.


명록은 연락 올 곳이 없었기에 하윤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 하윤은 자신의 휴대폰을 들어 확인하더니
이내 고개를 흔들고는 다시 명록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모습에 다시 엎어놓은 자신의 휴대폰을 보니 약간 흔들림이 있는  싶었다.
그제야 자신에게 온 전화라는 것을 알고는 화급히 폰을 들어 액정을 보니....
생각지도 한 사람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엠티로 가버린 수진에게서  전화였다.

발신자 이름과 함께 보이는 시간을 보니 어느새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자정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
하윤과 만나서 보낸 시간이 이렇게 짧았는지 놀라는 동시에
 늦은 시간에 갑자기 연락한 수진에게 다시  번 놀라고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내내 연락이 없다가 왜....
설마?




명록은 왠지 하윤과 같이 있는 것을 알고 전화한 거 같은
수진의 연락에 조금 당황하며 하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화를 받기 위한 자리가 필요했다.
왠지 술집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조용한 구석 자리를 찾아서 나서다 보니 어느새 가게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러나 바깥이라고 해도 쉽게 그런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이곳을 유흥가 술집들이 몰려 있는 거리 한가운데였다.

어디에서 들려오는지도 모르는 왁자지껄한 주변소리가 흘러 들어갈까
고민하며 뛰다시피 걸어가며 찾는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눈에 띄지 않았다.
땀이 배고 초조함에 머리가 쭈빗거릴 참에 길 건너 마침 비어있는 주차장이 눈에 들어왔다.

명록은 바로 뛰어 들어가면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 어.... 수진아..... "



숨이 혹시 거칠게 들리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사이 바로 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 오빠..... "



" 응. 밤이 늦었는데.... 안자고 있었나 보네? 아.... 엠티지 참..... 아직  리 없겠다..... "




왠지 횡설수설하는 듯한 자신의 말에
어서 마음을 추스르자 생각하는데 수화기 너머 수진의 목소리가 왠지 힘이 없게 들려왔다.

오빠...... 머하고 보냈어? "



" 나.... 그냥 그랬지 뭐..... 집에서 뒹굴뒹굴..... "



그랬구나..... 미안해. 오빠...... "




미안하긴..... "



유달리 낮게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
안에서 자신을 기다릴 하윤을 생각하며
 그런 그녀를 만나고 있는 것을 모르는 가운데
자신에게 연락한 수진에게 동시에 미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또한 초초함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하지만 수진은 길게 늘어진 테이프처럼 소리를 내고 있었다.
저배속으로 재생하는 영화의 더빙처럼 길고 느린 목소리.




" 오빠..... "

" 응? "

" 나... 오빠 보고 싶어...... "



순간 명록은 그녀의 말에 깜짝 놀라고 있었다.



무슨 의미 일까.
자신을 버리고 엠티에  수진이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정말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아님....
말 그대로 내가 보고 싶어서?
설마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오만가지 생각이 바람처럼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고 있었다.



너...  많이 마셨나 보다... 하하.... "

명록은 애써 얼버무리는 듯 말을 받았지만 수진의 목소리는 조금 또렷해져 갔다.

" 아니야.... 조금 밖에 안마셨어.... 지금 방에 들어온 거야.... 이제 자려고..... "

" 그...그렇구나.... "




" 오빠.... 밖인가 보네? 머해? "



조용한 주자창인데도 순간 밖이라고 말하는 수진의 말에 명록은 깜짝 놀랐다.

헉....
아무런 소리도  들렸을 텐데
어....어떻게 알았지?

명록은 서둘러 둘러댔다.

" 아.... 집 안에 있으니까 답답해서.... 그냥  공원에 산책 나왔어. "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거짓말.
이렇게 쉽게 말이 되어서 수진에게 돌아갈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마치 윤활유 잔뜩 먹은 기계가 부드럽게 움직이듯 나와 버린 자신의 말에
오히려 명록은 놀라고 있었다.
자신에게 이런 면이 있었는지 처음 알고 있었다.


언제나 수진에게는 진실로 대하고 있었는데 거짓말을 하다니.....


그리고 스쳐지나가는 얼굴.
하윤.
머리가 복잡해져가는 것을 느끼며 어찌 할 바도 모르는 가운데
어느새 거짓말이 답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오고 있었다.

" 미안해..... 오빠.... "



자신이 답답해서 잠시 나왔다는 거짓말에
다시 한  미안하다고 하는 수진의 목소리에
가슴 한구석이 따끔 찔려왔다.


" 오빠.... “


" 응? "


이미 완전 사색이 된 명록은 이 통화를 빨리 끝내고 싶었다.
거짓말로 점철된 대화가 너무도 불편했다.
하지만 수화기 끝을 잡고 있는 수진은 계속 그에게 펀치와 같은 말을 날리고 있었다.



" 내일.....  데리러 오지 않을래? "



" 뭐?!!! "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갑자기 연락 온 것부터 시작해서
수진의 말은 계속 명록을 깜짝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리고 짙어지는 의문.




대체 왜?
갑자기 왜???



명록은 미간사이 주름이 생기는 것을 느끼며 물었다.
가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먹구름이 물 먹은 솜처럼 갑자기 무게를 가지고 점점 묵직해졌다.
그리고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 엠티 이제 막 첫날을 보내는 거잖아..... 꼭 참석해야 된다고 장학금이 걸린 거라고 해놓고.... 그렇게 막 빠져나와도 되는 거야? "



" 교수님은 낼 학교에 가셔야 하거든.... 출석도 했고..... 영연이한테 부탁하면 괜찮을 거야..... 우리 약속대로 여행 가자.... 그럼  돼? "



왠지 간절함이 담겨 있는 수진의 목소리.
투정섞인 듯한 말투가 왠지 가슴을 저리게 만들었다.


명록도 왠지 그런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수진이 보고 싶어졌다.
어찌 됐든 그녀와 함께 하기 위해 신청한 휴가이지 않았던가.

그는 잠시 들었던 생각을 접고 바로 답했다.



" 그래... 알았어. 언제 가면 돼? "

" 빨리 보고 싶은데.... 아침 너무 일찍은 좀 그렇고.... 점심 전에 올래? "




" 점심 전? 흐음... 알았어. 갈께. "



" 응, 알았어... 근데... 여기  교통이 불편하다고 하던데....   있겠어? "




" 하하... 걱정 마. 차 하나 빌려서 데리러 갈 테니까. "



그가 간다는 말 때문인지 수진의 목소리가 약간 힘을 찾고 있었다.
약간 가벼워진 그녀의 목소리가 명록의 마음을 따스하게 덥혔다.




" 응..... 그럼 조심히 와..... 출발할 때 연락 하고..... "



" 그래그래. 너도 좀 자라.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네. "




" 아니야.... 힘이 없긴..... "

" 그래. 알았으니까 어서 자. 이불 잘 덮고 자고. 낼 출발하기 전 바로 연락할게. "

" 응.... 기다릴게..... 오빠..... 사랑해. "


" 하하.. 나도. 사랑해. 잘자..... 쪽! "

그녀와의 전화가 끊어지고 휴대폰 액정은 대기상태로 돌아왔다.

수진의 생각지도 못한 연락.
그리고 다짜고짜 보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의 말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들었다.

이상해.....
삐져있는 줄 알았는데.....
무슨 일이지?
갑자기 왜 이럴까?
설마.....
에이...
아니야....
그냥 보고 싶어서 그런 거겠지.....


명록은 애써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액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시간을 보는 순간 가게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하윤이 생각났다.




아차....!!!

통화가 길었을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하윤을 혼자 두고 있었다니
명록은 인상을 쓰며 고개를 흔들었다.

헐레벌떡 뛰어서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구석자리에 있는 하윤이 보였다.
그가 없는 빈자리 쪽을 보면서 조용히 자신의 휴대폰을 보는
그녀가 혼자서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있는 것이 왠지 처량하게 보였다.
미안함에 서둘러 돌아가자 그의 인기척에 고개를 든 그녀가 명록을 보고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 수진씨 전화? "



" 아... 그..그게..... "



양해는 구했는데 누구한테 온 전화인지는 말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일부러  안하려고 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어버렸다.


" 훗...... "




다시 한 번 말문이 막힌 명록을 보며
하윤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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