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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2화 〉제2부. 14화. 평행선 (11) (162/195)



〈 162화 〉제2부. # 14화. 평행선 (11)

162.


수민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 졌지만,
수진은 가위가 눌린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수진의 시야에 수민의 얼굴이 가득 가까워졌다.
그의 호흡이 얼굴에 느껴질 거 같은 거리.
점점 커지는 수민의 얼굴.


수진은 자신의 눈동자가 커지고 있는 것을 느끼고
 사람 사이 흐르는 찰나의 침묵이 영겁의 시간처럼 매우 느리게 흘러갔다.



안 돼.....
이건.......



앞으로 진행될 일이 뻔히 보이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몸이 마치 돌처럼 느껴졌다.
심장의 고동소리가 크게 들리고 눈동자가 흔들리는지
정확히 초점을 맞출  없었다.
순간 얼어붙는 몸의 감각 중 유일하게 예민하게 살아있는 청각에 무언가 들어오고 있었다.

작은 소리.
하지만 분명히 수풀을 헤치고 수진의 귀에 들렸다.

바스락.
바삭.

풀벌레 소리에 교묘히 감춰져 있던,
사락거리는 기척이 두 사람의 침묵 때문에
고스란히 수진의 귓가에 들려왔다.
물론 신경이 날카로워진 탓도 있었다.
평소라면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작은 소리였지만
그녀의 귀는 놓치지 않고 골라냈다.
그것이 바늘 끝처럼 예진해진 수진의 청각을 찔러오고
작고 미약한 소리가 그녀의 정신을 되찾아 주고 있었다.

마침내 수진은 간신히 힘을 주어 수민에게서 도망치듯 한  뒤로 물러났다.

갑자기 멀어진  사이의 거리.
수민의 얼굴에 약간 멍해지는  의문을 표하더니 이내 사라져버렸다.
아무렇지 않은 듯 태평한 표정을 지는 그와 달리
수진은 긴장으로 침을  모금 삼키고 있었다.

긴장감.

어두움 속 외진 곳에 그와 단 둘이 있다는 생각은
수진의 마음 한구석에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그녀는 마음 한켠에 드는 두려움과 또한 둘 사이 흐르는 어색함을 무마하려는 듯
자신을 깨운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리며 수민에게 속삭였다.



" 얘! 무슨 소리 안 들려? "


" 소리? 무슨 소리?  아무것도 안 들리는데? "



수민은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수진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수진은 황급히 입가에 손가락을 대며 작게 말했다.

" 쉿... 잘 들어봐. "




그녀가 입술 위에 손가락을 가져대는 것을 보며
아까와는 180도 바뀌어 버린 분위기에 수민도 어쩔 수 없이
그녀와 같이 귀를 기울였다.

풀벌레 소리.
그리고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여전히 어두컴컴한 숲 속에서 날만한 것들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싶었다.

수진의 긴장된 얼굴을 떠올리며
수민이 장난스러운 농담이라도 말하려는 듯
웃음기 가득한 입술이 열리려는 찰라.....
전혀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 어디 가요? "

" 아무  하지 말고 이리와 봐. "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는 목소리.
그것도  남녀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들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수진과 수민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수진은 단지 이 불편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인기척이 근처에 있다는 것을 수민에게 환기시키고 싶었을 뿐인데,
뜻밖의 상황은 그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술에 취한 듯한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또렷하게 들리고
집중한 수진의 귓바퀴에 모아진 소리가 점점 알 수 없는
두근거림을 만들어내었다.



" 하아.... 여기면 되겠다. "

털썩.
사라라락....
쏴아아.....


무언가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나뭇잎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그리고 여자애의 목소리가 작게 울려 퍼졌다.


" 아이... 싫어... 우리 조금만 더 들어가요.... "



" 괜찮다니까.... 으읍. "

톤 다운된 허스키한 남자의 목소리.
그리고 고양이 같은 소프라노 톤의 간드러진
여자 목소리가 어느새 거친 숨소리로 바뀌고 있었다.


" 아항.... 흐윽..... 읍...읍..... "



인기척의 정체를 파악하기도 전에
갑자기 수진과 수민의 영역을 침범한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합쳐지고 엉겨 붙었다.
약간 그늘진 곳에 있어서 그런지
전혀 수진과 수민의 존재를 모르는지 그들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남자의 손이 바로 여자의 가슴 위로 올라가고
여자애 양팔도 남자를 휘감고 등과 뒷머리를 더듬었다.
타인의 사생활을 직접 보게 되어 놀란 수진은 재빨리 풀숲 사이로 더 깊숙이 숨어버렸다.
수민도 수진처럼 죄를 지은 사람도 아닌데
달빛이 만들어놓은 그림자 속으로 수진을 따라 숨었다.


와사사삭!


서둘러 들어오는 바람에 수풀이 요란한 소리를 냈다.
놀라 숨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남녀가 있는 곳을 향해
눈을 치켜떴지만 그들은 전혀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니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는  더욱 농염하게 얽혀들고 있었다.
하긴 이시간이면 술에 잔뜩 취해 있을 시간이니
저 둘 남녀 또한 똑같은 상태였을지도 몰랐다.

너무도 쉽게 하나로 합쳐진 두 사람의 그림자는
흩어질 생각도 하지 않고, 조용하던 풀숲에선 점점 색정이 짙은 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아항... 아~ "


" 웁.... 헉...흡! "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는 동심원의 한가운데.
 숲 안쪽에 서있는 그들의 머리가 서로 교차되며 계속 움직였다.
어느새 구름에서 나온 달빛이 희끄무레하게  남녀의 인형을 비추기 시작했다.


타액의 찌꺽거리는 마찰음.
서로의 허리를 끌어안고 열정적으로 키스를 나누는
두 사람을 훔쳐보면서 수진과 수민은 그대로 얼어버렸다.
이미 행위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이었는데
그들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순간 소름으로
등과 뒷목이 곤두서며 싸늘해졌다.


슬쩍 밝아진 달빛에 드러난 얼굴!
수진과 수민도 아는 얼굴이었다.
동기였던 재희와 복학생 강우 선배.


평소 새초롬한 모습의 재희로 기억했는데
눈앞에서 저렇게 진한 키스를 나누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물론 그렇게 친하게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얌전하고 내성적인 아이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모습에.....
수진은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할  없었다.

꼼짝도 못한고 숨죽인  두 사람의 키스를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수진의 손가락 끝에 온기가 살짝 살짝 스치고 있었다.

머....
머야, 이건?


처음엔 그냥 잘못 느끼는 거라고 무시하고 있었는데
점점 확실해지는 감각에 수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손을 향해 돌려졌다.
자신의 손가락에 다가와 있는 또 다른 손가락.
그건 수민이 수진의 손가락 끝을 살짝살짝 건드리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상황을 벗어나자는 건지,
아니면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건지 알  없었다.


무슨 의미야?
응???




의문이 가득한 시선으로 수민을 쳐다봤지만,
그녀의 시선을 받은 그의 손가락은 가볍게 수진의 손등으로 올라왔다.
평소 수민이 가벼운 스킨십 정도야 서슴지 않고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불편한 상황에서 올라오는 그의 손길은 확실히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이러지마....



어떤 의도이든 간에 수진은 몸을 살짝 틀어서 수민을 피했다.
수진의 손이 그의 손길 아래로 피해 도망가자 수민도 더 이상 그녀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하악....아아~~ "

여자의 급한 신음소리.
잠시나마 끊어졌던 신경이 자연스레 재희와 선배에게로 향했다.

얼마나 더 진행됐는지 멀리서 들리는
두 사람의 호흡이 귓가에 들린다고 착각할 정도로 크게 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농도 짙은 키스 장면을 본의 아니게 감상하게 된 수진의 얼굴이
술에 취한 것처럼 다시 달아오르고 있었다.


 재희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고 있었다.
그리고 강우 선배의 머리가 그녀의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작은 인기척이 나더라도 이 자리를 벗어나야 했었지만
선배의 손이 재희의 티셔츠를 가슴 위로 올리는 순간,
민망한 상황에 스스로를 가둔 둘은 이제 아예 벗어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들의 키스는 전희로 발전해버렸고,
브래지어가 들려진 재희의 하얀 젖가슴으로 강우 선배의 머리가 겹쳐졌다.

아앙~~ 아아흑...... "




재희의 교성이 길고 높아졌다.
그녀의 양손이 선배의 머리를 휘저으며 연신 움직이고 있었다.
어둠에 숨어 지켜보던 수진과 수민 둘 중 누군가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지만
두 사람은 그게 자신의 소리인지 타인의 소리인지 구별할 여유조차 사라졌다.

점점 과격해지는 남녀의 모습이 갑자기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달빛이 구름 속으로 들어갔는지....
재희와 강우 선배의 모습이 불 꺼진 연극무대처럼
아무것도 구별할 수 없었다.


거친 숨소리만이 가득한 공간.
서서히 작은 빛이 내려오고 어둠에 다시 익숙해지자
환한 달빛이 그들의 윤곽을 정확히 그려냈다.


아까는 조금 들렸던 재희의 웃옷이
아예 말려서 상체가 다 드러나 있었다.
뽀얀 속살을 드러낸 그녀의 젖무덤 사이 강우 선배가 얼굴 파묻고
재희가 목을 젖히며 나무기둥에 머리를 기대며 선배의 머리를 감싸 안고 있었다.
강우 선배는 한손으로 젖가슴을 만지고
다른 한손은 재희의 사타구니 쪽에 자리를 잡고 더듬었다.

아아..... "



들리는 재희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수진은 그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재희는 고등학교 때부터 남자친구가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다른 대학교 학생이 되어버린 남자 친구.
그와 함께 쭈욱 오랜 기간 사귀고 있는 커플이었다.

벌써 3년을 훌쩍 넘은 긴 그녀의 연애담에
동기들은 모두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수진은 보지 못했지만 지난해 축제 때엔
그녀가 남자친구와 같이 다니는 모습을 본 아이들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왜.....




수진은 재희의 지금 광경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알  없었다.
지금까지 그녀의 몸을 따듯하게 데워줬던 수민의 점퍼가 갑자기 불편하게만 느꼈다.

" 빨리... 헉헉.... 재희야... 돌아봐... "


헐떡이는 강우 선배의 목소리.
재희는 그가 시키는 대로 어느새 몸을 돌려 나무를 잡고 있었다.


재희와 강우 선배.
 사람은 이미 주체할 수 없는 정염에 타오르며 서로를 탐하는 중이었다.


재희가 뒤로 돌아 선배에게 엉덩이를 내미는 순간
어둠에 묻혀 있던 수진은 귀까지 화끈하고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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