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화 〉제2부. # 13화. 바람이 분다. (20)
149.
처음엔 웅얼거리는 소리였다.
너무 긴장해서 들리는 소리를 착각해서 누군가의 말소리로 잘못 들었다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잡음같던 것이 사람의 말소리로 바뀌고 있었다.
작지만 어디선가 작은 목소리가 저벅거리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들려오고 있었다.
멀리 들리는 거 같기도 하고 바로 뒤편에서 들리는 거 같기도 했다.
엉쿨로 만들어진 공간이 벽처럼 가로막고
어두운 그늘이 자신들을 감추고 있기도 했지만
반대로 밖의 동정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수진의 몸이 긴장으로 흠칫 굳었지만 명록은 낯선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언제든 들킬 수도 있다는 이 상황은 그녀의 감각을 극도로 예민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이젠 다리를 휘감고 지나가는 바람의 실핏줄마저 느껴지는 듯했다.
하지만 예민해진 감각은 오히려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명록이 움직일때마다 찰칵거리는 버클이 부딪히는 소리가
수진의 귀에는 유난히 크게 들리며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
아...안돼.....
멈춰야 할까.....
오빠에게 말할까.....
어떻해....
아앙....
아아....
쾌감과 긴장.
이대로 섹스에 몸을 내맡기고 싶은 마음.
그러기엔 너무 위험한 도박이었다.
망설임과 모르겠다는 마음이 엇갈렸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소리는 조금 더 커져있었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인기척 소리에 이젠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위험해보였다.
벽에 밀착되어 버티던 한손을 뒤로 뻗어
명록에게 멈추라고 밀었지만 그녀의 행위에 오히려 자극을 받은 모양이었다.
명록은 그녀의 저항을 힘으로 밀치며
천천히 그리고 깊숙이 박았다가 다시 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애써 버티며 그의 몸을 밀어대도 그의 몸은 강하게 밀었다가 다시 빠져나갔다.
아랫도리를 달구는 명록의 움직임이 계속 되자.....
수진은 느리게 움직이며 더욱 자극적으로 변해버린
그의 움직임에 거칠게 내뱉어진 숨을 꾹 눌러 참기 시작했다.
몸 속으로 들어오던 공기가 끊어지고 얼굴이 불타는 듯 팽팽해졌다.
이윽고 심장이 터질 거 같았다.
절정을 얼마 안 남기고 온몸이 타오르고 있었다.
거기에...
예리하게 그녀를 파고들어오는 명록의 움직임.
예민해진 감각은 청각 뿐만이 아니었다.
잔뜩 물기를 머금은 꽃잎에서 떨어진 애액이
그녀의 허벅지를 따라 아래로 흐르는 느낌 또한 더욱 강해지고 고스란히 느껴졌다.
왜 이렇게 오늘따라 많은 애액이 흘러내리는건지......
오히려 이런 상황을 즐기는 듯한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변태 같아서 수진은 자기 자신이 아닌 것 같았다.
" 으읍.... 아......"
팽팽하게 그녀의 몸을 채우며 천천히 움직이던 그가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수진의 안에서 움찔거리던 명록이 갑자기 쑥 뒤로 뺐다가 힘껏 찔러왔다.
천천히 달구던 그의 움직임이 멈추었다고
숨을 고르던 수진은 갑작스런 명록의 공격에 아앗 소리를 냈다.
이미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진 그녀를 강하게 자극하고 허물어뜨리고 있었다.
다른 곳에 잔뜩 신경을 쓰고 있던 수진은
곧바로 자세가 허물어지며 입을 막고 있던 손이
제 자리를 잃어버렸다.
자신이 들어도 분명한 작은 신음소리가 바로 메아리가 되어 울리는 것 같았다.
아니나다를까 바로 근처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바로 응답했다.
" 야, 무슨 소리 안 들렸어?"
" 응? 무슨 소리?"
" 몰라... 무슨 여자 목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는데?"
수진은 자신의 입 밖으로 빠져나간 소리에 놀라
곧바로 양손으로 입을 틀어 막고 있었다.
대화를 하면서도 조금씩 가까워지는 두 남자의 목소리.
지척으로 가까워진 소리에 명록도 그제야 들었는지 허리를 멈추었다.
깊이 결합된 상태에서 서로의 몸이 밀착된 채 둘은 숨도 쉬지 못하고 딱 붙어 있었다.
두근두근 뛰는 심장소리.
긴장으로 힘이 들어가 배에서 느껴지는 압력에
내장이 꿈틀거리는 듯한 통증.
딱딱하게 굳어진 몸의 느낌.
하지만 모든 것이 정지된 가운데에서도
수진의 몸 안에 들어있는 명록의 분신이
그간의 열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까딱거렸다.
마치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처럼 쉴새 없이 움찔거리고 있었다.
움직일 때보다 더욱 선명해진 명록의 느낌.
팽팽하게 부풀어오른 그의 물건이 더욱 딱딱하고 뜨거웠다.
맥박이 뛰듯 꿈틀대는 동안.....
수진의 머리는 하얗게 비워지고
그녀의 다리에서 힘을 빼앗아 가고 있었다.
하아....
하아.....
아....
들키면 어쩌지?
아아.....
캠퍼스 안에서 진한 사랑을 하고 있는 둘의 모습이
누군가에게 발견된다는 상상을 하니 금방이라도 지릴 듯한
압박감이 몰려왔다.
지금이라도 떨어져서 옷을 추스리고 어디론가 숨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바로 목소리의 주인공들에게 이 모습을 들킬 것 같아서
오직 얼음처럼 멈춰있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수진은 더욱 입을 틀어 막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자꾸만 새어나오려는 신음소리.....
거친 숨소리를 애써 막으며 버티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런 상황을 만든
두 사람의 목소리가 촉매가 되어
그녀의 흥분을 한껏 고조시키고 있었다.
바로 옆에 자신들이 이러고 있는 것을 알면....
과연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숨박꼭질에서 술래가 바로 옆을 지나갈때 느끼던
쾌감과 스릴이 다시 살아난 듯 온몸을 소름끼치도록 자극했다.
" 미친놈.... 푸하하하~ 니가 여자에 굶주리긴 했나보네..... 무슨 여자타령이야? 환청이 들릴정도면 완전 발정났다 이자식아... 하하하."
" 아이씨... 진짜 들었다니까 그러네? 이상하다.... 미춰~버리겠네..... 잘못 들었나? 처녀 귀신이 남자 홀릴때 이상한 소리 흘린다던데..... "
" 야야~~ 웃기네.... 이젠 캠퍼스에 처녀귀신이냐? 크크크..... 처녀 귀신 목소리는 어떠냐? 미친 놈..... 푸하하하...."
" 젠장..... 그러니깐 나 소개팅 좀 시켜줘. 넌 이런 내가 불쌍하지도 않냐? 아씨.... "
투닥거리던 두 사람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가까이 있나 싶더니,
이내 점이 되어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자박거리며 차가운 아스팔트를 울리는 발자국 소리가
점점 멀어져 허공으로 흩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명록이 잡고있던
수진의 허리를 힘차게 자신의 앞으로 끌어 당겼다.
" 아앙... 오빠....! "
이윽고 푹 파고 드는 그의 분신.
수진 또한 참았던 숨을 들이키며 신음소리는 내고 말았다.
그간 멈췄던 시간이 이 이상 참을 수 있는 인내를 바닥내고 있었다.
명록도 마찬가지였던지 천천히 예열하듯 멈춰있던 물건이 다시 힘차게 움직였다.
가만히 안에서 팽팽하게 부풀어오른 그것이 참아왔던 시간을 메꾸려는 듯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팽팽하게 당겨진 실오라기처럼 급속도로 찾아온
긴장이 빠르게 사라지고 숨을 죽이며 참고 있었던 욕망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감추며 그간 축척해둔 쾌감들이 명록의 움직임과 함께 폭발하듯
수진의 온몸을 훑고 순간 타오르는 불꽃처럼 뜨겁게 솟구쳐 올라왔다.
압축할수록 반동력이 더 강해진다고 하더니 강제로....
억지로 참고 눌렀던 시간이 길었던 것만큼 명록이 움직이자마자
참을 수 없는 쾌감이 수진을 마구 흔들었다.
발목부터 허벅지까지 이어진 근육들이 팽팽하게 잡아 당겨지고,
명록의 뜨거운 피부와 차가운 대기의 온도마저
그녀의 이성을 육체에서 박리시켜 버렸다.
" 악! 아아.... 아흑.... 오빠~! 오빠....... 아아!!! "
이젠 손으로 가린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수진의 입에서 그대로 들뜬 신음소리가 튀어나왔다.
손을 뻗어 명록의 단단한 허벅지 아니 그 위 엉덩이 튀어나온 근육을 움켜쥐었다.
힘이 들어간 손가락 아래 그의 단단한 근육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극도의 쾌감.
머리가 하얗게 변해버리고 숨을 몰아쉬며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가운데 고개를 숙이고 엉덩이 만을 치켜들었다.
수진은 참을 수 없는 희열에 비명같은 새소리를 내며
벽을 짚은 손가락 끝 하나하나에 잔뜩 힘을 주었다.
금방이라도 아래로 꺼질 거 같은 아찔함 속에서
점점 숨을 쉬지 못하는 절정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갑자기 느껴지는 수진의 손길.
초밥과 함께 입술을 지나 안으로 들어온
그녀의 기다란 손가락이 와사비의 짜릿한 맛보다 더 강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술김이었다고 해도 좋았다.
알딸딸한 상태에서 생각났다.
수진이 보고 싶었다.
그냥 얼굴만이라도 보고 싶었다.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었다.
하윤의 웃는 얼굴.
그녀와의 시간이 달콤한 일요일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쌩긋 웃으며 던지고 단 한마디 그녀의 말이 너무도 수진을 보고 싶게 만들었다.
무작정 찾아온 학교 도서관 앞에서 수진에게 문자를 보내고 그녀를 기다렸다.
어울리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유리문에 비치는 희미한 그림자 속에서 비춰보면서
자기를 홀깃홀깃 보며 지나가는 학생들의 시선이 낯설게 느껴졌다.
왠지 모를 감상이 낮게 마음 속 아래로 깔렸다.
철모르는 신입생 시절.....
이제 대학생이 무엇인가 알아가던 이학년.....
군대......
복학후 제대로 공부를 하는게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던 삼학년.
취업준비 속에서 아쉬움 가득한 일년을 보내던 사학년.
수많은 대학이 생기면서 어찌 보면 지금은....
대학생이란 존재가 동경의 대상이 아닌 흔한 과정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분명 자신에게도 있었다.
만약 수진과 같은 시간으로 돌아가서 그녀와 이곳을 다닌다면 어떻까.
연애도.....
학업도......
차곡차곡 쌓으면서 추억을 만들 수 있을까.
"오빠~!"
누구를 부르는지 호칭은 없었지만 명록은 바로 알 수 있었다.
듣고 싶었던 목소리.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수진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와락 안겨오는 그녀의 허리에 자연스럽게 그의 팔이 안겨들었다.
아.....
수진의 허리가 이렇게 가늘었나......
이곳이 그녀가 다니는 학교의 도서관 앞이라는 것도.....
방금 전까지 대학교 캠퍼스와는 특히 중간고사라는....
시험기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정장 차림의 그에게 쏟아졌던 수많은 시선들조차도......
모두 사막의 모래마저 녹여버릴 것 같은 따가운 햇살 아래 놓여진
솜사탕 같은 흰 눈송이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냥.....
수진과 명록 자신.....
그들 둘 밖에 없는 세계에 있는 것 같았다.
<<바람이 분다.(20)>> 끝 => <<바람이 분다.(21)>> 로 고고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