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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6화 〉제2부. 13화. 바람이 분다. (17) (146/195)



〈 146화 〉제2부. # 13화. 바람이 분다. (17)

146.


<<아르마딜로>>

철갑 같은 갑옷을 입은,
쥐 같이 생긴 동물 이름이 술집 이름이라니....

왠지 웃음이 나오게 하는 가게였다.
통나무로 되어있는 인테리어가 마치 오두막에 놀러온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근처에 자주 온다고 하면서 하윤이 데려온 가게.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 일찍 극장부터 지금 이 호프집까지
모든 것을  그녀가 이끄는 대로 명록은 하윤의 뒤만 따라온 하루였다.

살짝 얼려있는 맥주잔을 들어 쭈욱 들이켰다.
차가운 맥주가 목을 타고 넘어가며 톡 쏘고 있었다.
한낮의 갈증을 한방에 날려버릴 듯한 맥주가 맛있게 넘어갔다.



" 카아....... "



절로 나오는 캄탄사.
하윤도 이미  들이키고는 잔을 내려놓고 있었다.
순간 그녀의 입가에 하얗게 묻은 맥주 거품이 명록의 가슴을 살짝 뛰게 만들었다.


투명한 분홍빛 입술.
탐스런 그 입가 옆에 묻어있는 하얀 맥주거품.


순간 명록은 머릿속에 한가지 장면을 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상이 선명해질수록 그의 심장이 두근두근 빠르게 뛰며
자신도 모르는 해버린 상상 속에서 명록의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누가 그 상상을 봤을까 놀라버린 명록.
그는 자신이 한 상상에 자기가 놀라서 어색한 헛기침을 하며
바쁘게 젓가락으로 안주를 들어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매콤한 소스가 버무려진 훈제구이 통닭.

잘 구워진 고기맛에 듬뿍 베어물었다가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매운 맛이 번지며 자신도 모르게 콜록거리고 말았다.


하윤이 휴지를 건네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 이론... 괜찮아요? 천천히 드세요. 하하..... 생각보다 많이 매운가 봐요.  매운맛도 있는데..... 그걸로 시킬 걸 그랬나? "



명록은 연신 나오는 기침에 말도 못하고 손만 흔들고 있었다.


자신이 떠올린 상상을 그녀가 알면
과연 그때도 지금처럼 이야기 해줄 것인가?

아직도 그녀의 입가에 있는 듯한 하얀 맥주거품을 떠올리며 그는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그녀가 건네준 티슈를 받아 자신의 입가를 닦으며 하윤의 시선을 슬쩍 피했다.
하윤은 뭐가 좋은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킥킥 웃었다.


어느새 350cc잔의 맥주를 다 마시고 한잔 더 시켰다.
가볍게 마시려던 한잔의 생맥주가 진하고 맛난 맛에
500cc로 한잔 시키게 되었고 분위기에 취해 금세 또다시 비워가고 있었다.

이런저런 얘기로 대화가 진행되다가
어느새 정미와 승필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하긴 사무실에서 승필을 보는 명록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그를 향할 때가 많은데 하윤도 그처럼 정미에게 시선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 후후.... 잠깐잠깐 짬이 나는 대로 통화하고..... 얼마나 뜨거운데요. 후후후..... 안 대리님도 그러신가요? "

그럼요. 퇴근 시간만 되면 자리에 바람 소리 밖에 안남아요. 어찌 빨리도 사라지는지... 하하..... "




지난주 내내 외로움가 지루함에 싸우는
명록의 염장에 제대로 소금을 뿌리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
금세 입 가벼운 고자질쟁이가 되어버린 명록이었다.


둘은 시선을 맞추고 히히덕 거리며 웃었다.
정미씨 또한 사무실에서 하윤에게 승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정미 씨는 하윤에게 승필과 같은 입사 선배였다.
서로 왠지 닮은 꼴에 더욱 웃으며 그들의 연애 행각을 안주삼아 대화가 이어져갔다.

한참 웃으며 이야기 하다가 하윤이 남은 맥주를 쭉 들이켰다.
두꺼운 유리잔을 탁자에 내리놓으며 그녀의 나지막한 말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




" 네? "

하윤의 볼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하긴 둘이서 마신 맥주가 각자 2000cc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낮게 깔리며 은은해져갔다.


은근히.... 부러운 거 있죠? 나도 모르게..... 후후..... "




그녀의 말에 순간 명록의 말이 필터없이 그대로 튀어나갔다.



" 에이.... 하윤 씨도 남자친구 있을 거 같은데요. 멀 부러워하고 그래요? "



그녀같은 여자를 누가 애인으로 삼고 있을까......
왠지 모를 시샘이 명록의 마음을 시큼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하윤은 그의 말에 입술을 삐죽거리며 웃었다.



" 피... 남자친구 없는 걸요. 그러니까 부러운 거죠. 후후... "



수줍은 듯 웃는 그녀의 입가에 왠지 모를 씁쓸함이 엿보였다.


생각해보니 명록도 여자친구가 있는 몸이었다.
하윤이 직접 수진을 보지도 않았던가.

왠지 하윤의 미소가 더욱 마음을 싸하게
느껴지는 것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빈잔을 만지작거리며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묘한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간단히 마신다는 맥주도 어느새 너무 많이 마셔버렸다.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 명록이 계산대로 가는데 하윤이 됐다며 밖으로 이끌었다.

아까 화장실에 갔다온다고 하던 그녀가 어느새 계산을 마친 모양이었다.
여자와의 데이트에선 모든 비용은 남자가
계산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명록에게 새로운 느낌이었다.

헐....
직장인이라서 그런 걸까?

수진과는 다르게 모든 것을
주도하고 있는 듯한 하윤의 모습에 자꾸 비교가 되고 있었다.
그녀와의 데이트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스물스물 피어올랐다.

오늘 하루 종일....
그녀의 배려 속에서 명록은 평안히 즐기기만 하면 되었다.
이렇게 좋은 시간을....
누군가에게 맡기고는 편히.....
힐링 가득한 하루였다.


하윤과 함께 서서 버스정류장에 서있자니 오늘 하루가 너무도 짧게만 느껴졌다.
꽤 이른 아침부터 만났는데 어떻게 흘러버렸는지 모르다니...
그러고도 아쉬움으로 조금만 더 조금만  하던 것이 결국 해가 저버리고 말았다.
지금도 그 아까운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 아....  버스 왔네요. "

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명록을 다시 깨우고 있었다.
 몇분 서있지도 않은  같은데
하윤이 사는 동네로 가는 버스가 저편에서 달려오는 게 보였다.

먼저 가볼께요. "



명록은 아무 말도 못하고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심  잡고 싶어하는 자신의 손을  쥐며 참았다.
그러는 가운데 마음이 다시 한번 싸한 것이
뭐라고 말할  없는 기분이 가슴 안을 채우고 있었다.


버스가 앞에 서고 문이 열리자 줄지어
사람들이 앞문으로 몰리고 하윤 또한 향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뒤를 명록이 천천히 뒤따라 쫓아갔다.


맨 마지막으로 버스에 올라타기 전 하윤이 갑자기 뒤로 돌아보았다.
그리고 던지는 그녀의  한마디.



명록씨.... 사실.... 오늘 일찍부터 만나고 싶어서 조조상영 보고 싶다고 한거에요. 후후....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



명록의 눈동자가 커지는 사이 문이 닫히고 버스가 부릉 출발해버렸다.
붉은 미등의 바다로 그렇게 하윤을 태운 버스가 사라져가고 있었다.




**************







" 못본지 오래되서 그런지.... 하하.... 보고 싶어서. 잠깐만 보지 않을래? "



" 흐음...... "

수진의 침묵이 길었다.
아니....
실제는 짧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그때를 떠올려보아도 명록은 길었다고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들린 그녀의 대답.


" 흐음.... 오빠... 나 월요일에 어려운 시험이라 주말 내내 밤새야 될지 몰라...... "



시계를 보았다.
해도 진작에 졌고 도시는 밤이 주는 어둠을 온갖 불빛으로 채우고 있었다.
8시가 넘어서 9시가 다되가는 중이었다.

흐음....
지금쯤.....
학교 도서관에 있겠구나......


명록은 화려한 네온싸인으로 밝혀진 밤거리에 서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도시의 밝은 빛은 어둠을 걷어내고 있었지만
덕분에 밤하늘에 떠있는 별은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올려다 보는 하늘엔 뿌연 어둠 만이 있을 
그 안에 반짝이는 별은 하나도 볼 수 없었다.
그나마 달의 모습 만이 그 공간을 대신 차지하고는 홀로 밝히고 있었다.



" 사실.... 오늘 일찍부터 만나고 싶어서 조조상영 보고 싶다고 한 거에요. 후후... "


하윤의 한마디 말.
그 한마디가 왠지 명록의 마음에 죄책감을 불러오고 있었다.


그녀의 말이 무슨 의미였을까.....

분명 그녀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윤과 함께 보낸 시간.
그녀와 같이 보낸 일요일의 시간이 달콤하고 즐거웠다는 것이
더 왠지 모르게 수진에게 더 미안한 마음을 갖게 만들었다.

잠시나마 하윤을 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호프집에서 품었던 작은 상상이  자신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었다.


월요일 시험이 있다고 밤샌다고 한 수진의 말.
 길건너 화려한 도시의 불빛 아래 그녀가 다니는 학교가 있었다.
지금도 거기서 분명 수진이 공부하고 있을 것이다.


명록은 무작정 앞에 보이는 초밥집으로 들어갔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앞에 있는 가격표도 그에 못지 않게 고가의 메뉴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겐 그런 것이 보이지 않았다.
바로 도시락 세트를 주문하고는 나온 포장을 들고 다시 도로로 나갔다.
무직한 종이가방이 그의 손에 부담스러울만도 한데
명록은 연신 손을 흔들며 택시를 부르고 있었다.

지금.....
그는 너무도 수진이 보고 싶었다.



**************






언제쯤 나희의 마음이 풀릴지, 저녁 식사자리에서도 여전히
그녀와의 냉랭한 분위기는 유지되고 있었다.

결국 수진은 불편한 마음에 금방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렇게 먹는 둥 마는 둥 식사를 마치고
도서관으로 돌아와서 다시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수진의 뱃속에선 배고프다며 꼬르륵 꼬르륵 소리를 내고 있었다.
역시 너무 적게 먹은 저녁 탓이었다.
속이 거북해질까봐 놔버린 수저의 역습이었다.

결국 공복진 몸이 그녀의 공부를 방해하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작은 소리라지만, 자꾸 꼬르록 거리는 그녀의 소리가
도서관이라는 장소의 특수성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들릴까봐
자꾸만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옆에 앉아있는 남학생의 시선이
아까부터 홀깃홀깃 그녀를 보고 있는  하였다.

에휴.....
도저히 안되겠다......
히잉.....

수진은 결국 음료수라도 마셔서 허기를 해결하기로 결정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휴게실로 나가려는데 때마침
휴대폰이 자길  보라며 드르륵 진동하며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갑작스런 문자 메시지.
수진은 뭘까 하는 마음에 바로 내용을 확인했다.

[ 지금 도서관 앞이야. 밖으로 나와 봐]

동그랗게 커지는 눈동자.
이건 명록에게  문자였다!


예고도 없이 찾아와 도서관 앞으로 나오라는
그의 문자를 받고 수진은 깜짝 놀라서 밖으로 달려나갔다.
생각지도 못한 그의 방문.
오고 싶어하는 것은 알았지만
이미 한번 거절해버려서 올 거라곤 생각하지도 못했다.


물론 그가 오겠다고 미리 말했다면
이번에도 당연히 오지 말라고 말했겠지만
이렇게 막상 갑작스런 명록의 방문을 맞이하고 나니 싫지 않았다.
아니 반가움에 가슴이 두근거리며 뜨거워졌다.

후다닥 복도를 달려 문을 열고 바로 도서관 밖으로 나가니
정말 바로 눈앞에 서있는 명록이 보였다.
학생들 사이에 양복을 입은 모습이 워낙 튀는 터라
한참 시험기간 중인 도서관 앞에 직장인인 그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의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은 힐끔힐끔 명록을 쳐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수진은 신경 쓰지 않고 그에게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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