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1화 〉제2부. 13화. 바람이 분다. (12) (141/195)



〈 141화 〉제2부. # 13화. 바람이 분다. (12)

141.

헛?
이 시간에 웬일이지???


바로 통화를 누르자 여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아! 명록씨~! 후후 안 받아서 막 전화 끊으려는 참이었는데..... "

아.... 죄송해요. 전화기를 두고 나가서 지금 막 받았어요. "



" 아~항..... 그렇구나. 후후. "

하윤의 목소리가 왠지 간드러지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 간드러지는 말투가 왠지 모를 설레임이 되어서는 명록의 가슴에 살살 불어왔다.


그는 약간의 침묵이 어색하게 느껴져
뭐라도 말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입을 열었다.



" 하윤  이 시간에 웬일이에요. 퇴근 안 해요? "

" 하하~ 하는 중이에요. "


그러고 보니 주변에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거리에 나와 있는 모양이었다.
조그만 주의를 기울이면 금세 아는 것을 물어본  같아
급민망해진 명록에게 하윤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을 이었다.




" 명록씨는 퇴근 아직 안했나보네요? 사무실이에요? "



으.....

방금 전 괜스런 말을 한 자신의 일이 생각난 명록은 바로 말을 받았다.

" 가야죠. 막 나가려는 참이었어요. "


" 아~~항. 후후후. "

괜히 웃고 있는 그녀의 목소리가 간질간질 거리는 잎사귀처럼 그의 귓가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근데.....
왜 전화했을까?




순간 하윤의 말이 이어졌다.



" 저기, 명록 씨..... "



" 네? "




잠시 뜸을 들이던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 저번 약속 기억하고 있어요? "




약속?
아!
약속!!!!!



아! 그럼요. 제가 식사 대접하기로 했잖아요. "

아...
하윤도 아직 잊지 않았구나.....
그럼 혹시 그것 때문에?

명록의 심장이 콩콩 뜀박질을 알리고 있었다.
그 사이 하윤은 훗 소리를 내고는 말했다.




하하.... 기억하고 있었네요? 훗... 그럼 혹시 내일 시간 되세요? 여자친구 때문에 시간이 안 되시려나......? "

왠지 장난하는 듯 말을 얼버무리듯 하는 그녀의 말이 왠지 귀엽게 느껴졌다.
명록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 아니에요. 하하. 약속이 있긴 한데 친척 결혼식이 있거든요. "

그렇구나.... 흠.... 그럼 일요일은 어때요? "

일요일이요? "



네.... 후후... 사실 꼭 보고 싶은 영화가 있는데 혼자 가기 그래서요. 일요일날 같이 영화 보실래요? 영화는 제가 쏠게요. 대신 저번에 말씀하셨던 점심 사주시는 건 어때요? "


영화라....

순간 명록은 수진 생각이 났다.

영화를 좋아하는 그녀.
하지만 그녀는 이번 주말에도 시험 공부하느라 만날 수도 없었을 거였다.

그렇다고 해도.....
하윤과 영화를 보러가도 되는 걸까?




명록은 왠지 모를 망설임에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때 수화기 너머 하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 힘드나 봐요.....? "


왠지 실망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그녀의 목소리.
명록은 그런 그녀의 말을 듣자
어렵게 전화했을 텐데 이렇게 안된다고 말해서는 안될  싶었다.
지신도 모르게 그의 입에서 말이 튀어 나갔다.

우선 제가 좀 보고 다시 연락드리면 어떨까요? "

그럴래요? "

금세 다시 생글거리는 하윤의 목소리가 구슬 굴러가듯 울렸다.


된다고 말한 것도 아닌데 밝아진 그녀의 말이
왠지 명록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지만
어찌 됐든 바로 거절하기엔 왠지 아쉬움이 있었다.



" 그럼 연락주세요. 너무 기다리게 하면 안돼요? 후후.... 그럼 퇴근 잘하세요.  버스 왔네요. 이만 끊을게요. "



"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

버스 소리가 들리고 전화가 끊어졌다.
명록은 휴대폰 액정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할까나.....
흐음....


저번에 수진과의 일을 무난하게 수습해준 그녀였다.
그때 한턱내겠다는 건 분명 진심이 어린 말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녀와 만나서 영화도 보고 점심을 산다는 것이
괜찮은 것인지에 대해 왜 이렇게 꺼려지는 것인지 알  없었다.

바람피우는 것도 아닌데......
그냥 식사만 한다는 거잖아.....




명록은 자신에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러나 역시.....
수진 몰래 딴 여자를 만난다는 것이 괜찮은 일인지는 자신이 없었다.
벚꽃 축제가 한창인 공원에서 수진과 만났던 날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녀의 뒤에서 자신을 홀겨 보던 그녀의 친구들 시선이 생각났다.

하아.....


다시 한 번 한숨을 쉬고는 명록은 휴대폰에서 단축키를 눌렀다.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감미로운 노래가 들렸다.
그새  새로운 곡으로 바뀐 모양이었다.
길어지는 대기시간에 전화받지 못하나 싶어서
끊으려는데 휴대폰 주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 하아...하아. 오빠! "




아.... 수진아....."



" 아... 미안. 도서관 안에서 통화하기 그래서... 나오느라 늦게 받았어. 미안해. "


수진의 헐떡이는 숨소리가 수화기 너머 들려왔다.
전화를 받으려고 후다닥 도서관 밖으로 나온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훤하게 그려졌다.
명록은 그런 수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윤과는 역시.....
만나지 말아야겠다.
보고 싶다...
그냥.....
잠깐만 보자고 할까?
그러면....



" 아냐.... 갑자기 전화한 내가 미안하지 뭐..... "




" 헤... 그게 머 미안한 일이라고.... 나도 오빠 목소리 듣고 싶었어. 하하. "


명록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 저기 수진아...... "


" 응? "


" 저기 우리.... 일요일에 잠시 만날까? "


" 일요일에??? "


" 못 본지 오래돼서 그런지.... 하하.... 보고 싶어서..... 우리 잠깐만 보지 않을래? "



결국 말해버리고 말았다.
하긴 지금까지 보낸 시간이 너무도 길게만 느껴진 그였다.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수진도 자신에게 양보해주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잠시만이라도 만나고 싶었다.
수진도 자기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고 하는
말에 용기를 얻어 명록은 힘내서 그녀에게 말을 꺼냈다.


" 흐음...... "

하지만 수진은 말을 하지 않고 망설이고 있었다.

실망감.
바로 답해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을 입 안에 먹어버리고
말해주지 않는 그녀를 보면서 틀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 흐음.... 오빠...  월요일에 어려운 시험이라 주말 내내 밤새야 될지 몰라...... "


완곡한 거절의 말.
예감했던 대로 그녀의 대답이 나오자 명록은 마음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 그렇구나.... 하하.... 미안해... 괜한 말을 해서. "

" 아니야. 내가 미안하지, 머..... "

" 하하... 아니야. 그냥 갑자기 너무 보고 싶어서. 하하.... 우선 집에 들어가면 문자 보낼게. 저녁은 먹었어? "

명록은 자신의 마음이 혹시나
그녀에게 보일까봐 계속 크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수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 먹었어. 오빠가 끼니 거르지 말라고 했잖아. 아직 회사구나? 어여 들어가. 오빠 문자 기다릴게. "

그래. 하하.... 너도 어여 들어가서 공부해. 이따 또 통화하자. "

응. 사랑해, 오빠. 이따 봐. "


그래 나도. "


 소리와 함께 끊어진 통화.
대기 화면으로 바뀐 휴대폰 액정을 바라보던 명록은 한숨을 내쉬었다.

허전함.
대체 여친이 있는데도 이렇게 맘대로 못 만나다니.....

갑자기 부아가 났다.
왜 이렇게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하는지 울컥 하는 감정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래.....
공부하겠다는데 어쩔 수 없잖아.....



명록은 어금니를 한번 꽉 깨물었다.
순간 자신에게 씩 미소를 짓고 퇴근하던 승필 선배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마 손을 들어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승리의 브이자를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오늘도 정미 씨를 만나고 있을 그가 생각났다.

금요일 밤.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
스치고 지나가는 정미의 육감적인 몸매.


명록의 얼굴은 굳어진 채로 전화를 걸고 다시 휴대폰을 귀에 댔다.
신호음이 들리고 연결되었는지 바로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얼굴이 살짝 밝아지며 입을 열었다.


" 아~ 하윤씨? 방~명록입니다. "




**************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왠지 하품이 나오고 있었다.
어제 결혼식 뒤치다꺼리를 하고 집안 어른들 집에 모셔다 드리는
운전수 노릇까지 톡톡히 하고 들어온 터라 피곤한 것은 사실이었다.

이른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거리엔 사람들의 모습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있는 것도 교회 가는 듯한....
옆에 검은 가죽커버의 책을 들고 가는 나이든 분들의 모습들 뿐
한산한 주택가는 조용하고 한적한 시간대를 보내는 중이었다.


버스를 타러 큰길가를 향해 걷는 동안
시원한 바람이 상쾌한 기분을 끌어내며 아직 덜깬 몸을 깨우고 있었다.
명록은 목을 좌우로 흔들며 천천히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 조조요??? "


" 훗. 왜요? 너무 이른 시간이라 나오시기 힘드시나봐요? "



" 아니... 그런 건 아니에요. "




조조 상영으로 영화를 보는 게 처음은 아니었다.
주말에도 수진과 종종 보러가곤 했었다.
하지만 하윤이 조조 상영하는 영화를 보자고 할 줄은 몰랐다.

후후.... 이왕 보는 거 좀 조용히 보고 싶어서요. 사람들 북적거리는 거 싫거든요. "


흐음....

그간 그의 경험에 따르면 일요일 극장가는
아침이라고 해서  사람이 적은 건 아니었다.
특히나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입소문이 탄 영화는 더욱더 그러했다.
물론 사람들이 다 일어나 활동하는 시간대
극장은 꽉꽉 만원 사례이긴 하지만 생각만큼
적은 사람이 있지는 않다는 얘기다.




별로 주말에 영화 보러 가지 않나 보네.....?
애인이 있을  같은데.....
아닌가?



명록이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그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 그리고 조조할인도 받잖아요. 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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