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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5화 〉제2부. 13화. 바람이 분다. (6) (135/195)



〈 135화 〉제2부. # 13화. 바람이 분다. (6)

135.

나희는 남자를 쏘아 붙이며 손으로 다가오려는 그의 가슴을 밀어냈다.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밀치는 그녀의 손을 잡으려는 듯 했지만
나희는 그런 남자의 손마저 힘껏 쳐내고 있었다.


순간 수진은 대화 속에 들리는 단어에 깜짝 놀라고 있었다.



머....???
가족? 아내?
아니...
이혼?!!!!!!!!!!!!!

갑자기 너무 놀랐는지 빠르게 내뱉는 나희의 말을 수진의 머리가 따라가질 못했다.
뭐라고 했는지 듣지도 못한 거 같았는데 이내 남자의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 난 그 여자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어차피 이미 오래 전부터 별거하고 있었어. 믿어도 돼. 진짜 난 나희  하나뿐이야. 널 사랑한다니까! 사랑한다고! 그러니까 제발 이러지 말고 내 말 좀 들어봐! 응? 나희야. 제발! "



남자의 외침이 싸늘한 공기를 울리며 퍼져나갔다.
그의 외침에 놀랐는지 나희의 그림자가 서둘러 남자에게 가까워졌다.
유난히 작아진 나희의 말소리는 더 이상 잘 들리지 않았다.




에....
머라고 하는 거야.....?
아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던 거야......
나희 너.... 정말......
그런 거야?




벽 뒤에 숨어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던 수진은
 혼란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깔깔깔 웃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과장스러움이 담뿍 묻어있는 여자들의 웃음소리에 명록은 채널을 돌려버리고 있었다.


띡~
띡~

리모컨 버튼을 누를 때마다 바다에서 고기 잡는 어선의 모습으로,
여러 명의 연예인들이 뜀박질을 하고 있는 광경으로
또는 지글지글 요리를 하고 있는 구레나룻 진한 남자들의 얼굴로 화면이 바뀌었다.


한 바퀴 채널을 일주하고는 결국 처음 보던 채널로 돌아오고 나서야 리모컨을 내려놓는 명록이었다.

하아.....
볼 거 하나도 없네.....
쩝.....



오십 개가 넘는 채널 어쩌고 광고하는 듯 하더니
정작 자신의 시선을 일분도 고정시키지 못하는 티비에게
신경질을 내듯 다시 리모컨을 들어  전원버튼을 눌러버렸다.

뾱!

이내 검은 화면으로 바뀌는 티비 화면은 조용해져버렸다.
텅  거실.
집 안에는 지금 그밖에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는 좋아하시는 낚시 모임에 가셨고
어머니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등산 가신다고
아침 일찍 나가신지가 이미 오래전 일이었다.


에휴......

명록은 한숨을 쉬고는 소파에 길게 누워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모텔에서 마지막으로 수진과 같이 하룻밤을 지내고 뚱한 기분으로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는 언제 그랬다는 듯 서로를 챙겨주고 헤어졌다.


이래서 부부 싸움은  베기라고 했던가.
뭐 부부는 아니었지만....
아무렇지 않게 토닥거리는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지....


그래도 그의 마음에 꽁한 마음이 남아 있었다.
시험공부에 자신의 존재라는 것은 방해 밖에 되지 못하는 듯한....
그녀의 말이 계속 뱃속에 남아있는 기분이었다.


오늘도 받은 수진에게의 문자는 도서관에 간다고 적혀있었다.
토요일 주말인데도 도서관에 아침 일찍부터 가는 그녀를 생각하니 만나고 싶다고 말도 꺼낼  없었다.
어제에 이어 일요일 이침에도....
수진은 일찍 학교 도서관을 향해 집을 나서며 공부하러 간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대학 시절 명록은 그렇게까지 공부는 하지 않았던 거 같았다.
시험기간이라고 해도 그냥 집에서 뒹굴 거리며
공부하거나 족보를 구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을 뿐,
전과목 올A를 받는다....는 그런 엄청난 목표는 가지지 않았다.

물론 성적 관리야 기본적으로 했지만 나름 B정도면 만족하곤 하였다.
가끔 A도 있었지만 대개는 B 학점이 주였고 간혹 C도 있었다.
그나마 D와 F는 받은 과목이 없는 것이 작은 그의 자랑(?)이기도 했는데
그것도 사실 주변 친구들의 도움을 톡톡히 받아서 얻은 성적이기도 했다.


어찌됐든 수진이 공부하겠다고 도서관에 가버리는 순간부터
명록은 미아가 되어버린 것처럼 넘치는 시간을 어떻게 주체해야 할지
 수 없었다.
일요일 아침 수진과의 짧은 통화
그리고 문자 이후 늘어지게 잠을 잤는데도
아직 시간은 오후 2시가 지나지 않았다.

으아.....
지루해......
심심해 미치겠다..............




여친이 있어도 만나지 못하는 자신이 갑자기 한심하게 느껴졌다.

과부도 아니고.....
아니지 난 남자니까.....
홀아비냐?
암튼...
이 무료함을
어떻게 해야 좋냐...




왠지 단어 자체에서도 퀘퀘함이 느껴지는....
홀아비 신세가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며
하루 밖에 안된 수염도 너저분하게 느껴졌다.
당장 욕실로 가서 비누거품에 미끈하게 면도하고 거울을 보았다.
그곳에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심통을 부리는 듯한 한 남자가 서있었다.

하아.....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고는 이내 욕실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갈 곳이 없었다.
티비채널 완주도 벌써  번째였다.
껐다켰다를 반복하는 것도 지겨운 일이었다.

그간 수진을 만나면서 주말은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다.
아침 일찍 조조 상영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 만나도 어느새 금새 자정이 되어
그녀를 데려다줄 때면 대체 오늘 뭘 했길래 이렇게 시간이 지나버렸지....
-하며 혀를 내두르곤 했었다.


근데......
지금은 대체 십분도 보내는 것이 힘들었다.
아니  안을 뱅글뱅글 돌아도 시계의 분침은 멈춰있는 거 같았다.



아니....
대체 난 수진을 만나기 전에는
멀하면서 주말을 보낸 거지???


수진을 만나기전....
모태쏠로로 보내왔던 그 시절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도 퇴근하고 돌아와 보냈던 평일은 그나마 좀 나았다.
직장 동료들과 술 한 잔하고 들어와서 씻고 누우면 잠이라도 들었으니까.


하지만.....

어젠 그나마 다들 자신을 버리고 약속이다 데이트다 가버리고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 덩그러니 사무실에 혼자 남아 버렸다.
하긴 불금이라고 불리는 금요일 저녁인데 꿀꿀하게 회사 사람과 그 시간을 같이 보낼  없었다.

하긴 명록도 수진과 데이트할 때는 누가 잡을까봐
퇴근시간 되자마자 뒤도 안돌아보고 바람 같이 사무실을 빠져나오지 않았던가.....

어찌됐든 그렇게 오랜만에
외로운 쏠로로 컴백한 명록은 서성거리다가 집으로  수밖에 없었다.


악순환은 또 악순환을 낳는다고 했던가.
일찍 들어온 통에 할  없이 뒹굴 거리다가
결국 어머니 몰래 혼자서 캔 맥주  캔을 홀짝홀짝 마시고야
알딸딸함에 잠들어버렸다.
더군다나 명록의 외로운 주말 밤을 마치 아는 것처럼
승필 선배는 바로 자신의 코앞에서 정미를 만나서는 룰루 콧노래를 부르며
가버리는 바람에 절로 헐 소리가 나오게 만들었다.



으으.....
미쳐.......
암튼......
전생에 분명 우린 먼가 있었을 거야....



다시 생각해도 열 받는 마음에 이를 뽀드득 갈고는
뒹구르르 몸을 바닥에서 굴려 천장으로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보이는 벽지 무늬를 살피며 불러낼만한 얼굴을 다시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누구를 만나서 놀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딱히 떠오르는 얼굴이 없었다.

제일 만만한 게 상규였는데 오늘은 일요일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 그러니까 주말은 곤란하다니까....... "




언제나 주말에 친구들끼리 모여서 한번 놀아보자....
어렵게 자리를 만들면 상규가  씹은 얼굴로 말하곤 하였다.

상규 그에게 주말이란 마나님을 모시는 시간이었다.
호랑이 같은 미주의  안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가련한 남편.
공처가(恐妻家)에 '두려울 공'자를 하나  붙여서 공공처가라고 불러도 모자를 판에
언제나 애처가(愛妻家)라고 부득불 우기는 그의 얼굴이 생각나서
바로 머릿 속에서 상규라는 연락처는 박박 지워버렸다.


휴대폰을 들어 연락처에 있는 전화번호부 목록을 쭈욱 훑어보았다.
역시 거래처가 반인 그곳에도 마땅히 연락할 곳이 보이지 않았다.


순간 명록의 눈이 커다랗게 떠지며 중간에 보이는 이름 하나.

<<하윤 씨>>

그의 눈앞에 그녀의 싹싹하게 웃던 얼굴이 떠올랐다.

하지만.....


벚꽃 축제에서 수진의 오해를 풀어주고는
한턱 거하게 받겠다고 하던 그녀는  뒤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하긴 서로 일이 바빠서 만날 시간도 없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하윤 쪽이 바쁜 거지만.

물론 업무상 간단한 통화를 하긴 했지만
그쪽과 다시 일을 함께 하는 일거리가 없다 보니
직접 얼굴을 대면할 기회가 없기도 하고 길게 얘기를 나누기도 힘들었다.
물론 승필 선배는 그쪽 정미 씨와 뻔질나게 만나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그녀의 전화번호를 보며 통화에 손가락을 두고는 누를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하윤에게 연락하는 건 무언가 찜찜함이 있었다.



에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


명록은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휴대폰을 침대에 던져버리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


여전히 조용한 집 안.

적막함 때문에 더 시간이 가지 않는 거 같아서
결국 그는 다시 티비 전원을 켜고 말았다.
벌써 몇번째 켰다 껐다는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다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집 안을 채우고 있었다.

쩝....
영화라도 빌려다볼까?


하지만 왠지 밖으로 나서기가 귀찮아지고 있었다.
컴퓨터를 켜고 영화를 보는 것도 그리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마땅히 보고 싶은 영화도 없었다.


이래저래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자 짜증스러움이 밀려왔다.
모든 것이 마음을 번잡하게 만들었다.

순간.....
아버지가 같이 낚시 가자고 말하던 것이 생각났다.
가만히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질색이라 절대 쫓아가지 않는 그였지만
그냥 순순히 네~! 하고 따라갈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명록이었다.

으으으......
심심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창문을 열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제 토요일도 지루하기 짝이 없었는데
일요일은 그보다 더 심한 하루가 될  같은 느낌이었다.

차라리 빨리 월요일이 되서 회사에 출근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순간 이마를  때렸다.


하....
미쳤구만!
제정신이 아니야....


명록은 속으로 혀를 차며 다시 소파 앞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리모컨을 들고 아까도 했던 채널 돌리기를 또 한 번 더 시작하고 있었다.

그렇게....
해가 지도록 이 과정을 반복하는 명록이었다.































<<바람이 분다.(6)>> 끝 => <<바람이 분다.(7)>>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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