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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7화 〉제2부. 12화. 봄비는 벚꽃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9) (127/195)



〈 127화 〉제2부. # 12화. 봄비는 벚꽃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9)

127.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그들이 구석진 자리를 찾아 걷는 동안 하윤이 명록의 옆에 붙어서 속삭였다.

" 저 여자분..... 누구에요? "



명록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려는데 그녀가 먼저 선수를 쳤다.

" 혹시.... 여자친구? "


아휴.....
이렇게 눈치가 빠르다면 슬쩍 모른 척 비켜줘도 되잖아요.......
대체....
왜 와서는 이렇게....



명록은 원망 아닌 원망을 하윤에게 보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딱딱해진 얼굴이 느껴지는 가운데
그의 모습에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보던 하윤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하.... 어쩐지..... 그럼 지금 저와 있는  보고 딱 오해하고 있겠네요? 그런 거죠? "



사실 그전에 벚꽃 구경 오자고 조르고 있는 것도 있었고
이차저차한 사정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하윤의 얘기대로 그녀와 같이 있는 것이 가장 큰 오해가 되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찌 됐든 하윤도 피해자가  상황이었다.
명록의 개인적인 분쟁에 휘말린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다.
일도 끝나고 기분 좋게 나온 저녁시간인데
남의 연애사에 휘말려 오해를 받는다는 게 즐거운 일은 아니었을 테니까.
거기에다가 자신보다 어린 여자 네명의 시선 또한 얼마나 사나웠던가.
기분이 상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하윤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런 게 사회인으로서의 침착함이랄까....
여유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명록은 그녀에게 사과부터 꺼냈다.

" 아마도..... 아무튼 죄송해요. 아까 많이 놀라셨죠? 이상한 오해나 받게 하고..... 뭐라고 말을 못하겠네요. "


" 후후....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명록 씨한테 미안한데요? 괜히 제가 끼어들어서 상황이 더 나빠졌겠네요. 우선 차근차근 얘기하면  테니까 너무 기죽지 말아요. "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부드럽게 말하는 하윤의 목소리.
왠지 일하면서 보았던 그녀와는 다른 분위기가 풍기고 있었다.
똑 부러지는 일솜씨와는 달리 약간 딱딱한 인상도 있었는데
이렇게 옆에서 보드랍게 감싸주는 모습도 있을 줄이야.....


하윤의 말을 들으며 명록은 약간 마음이 정리되는 것을 느꼈다.


사실......
수진이 몰래 데이트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
어떻게 보면 뒤풀이?
그래.....
맞다.
뒤풀이.
일이 끝나고 회식 같은 거 하는 거잖아....
뭐......
천천히 설명해주면 될 거야.



명록은 하윤에게 살짝 양해를 구하고
걸음을 빨리 해서 앞서가고 있는 수진과 그 친구들의 무리에게 다가갔다.
벚나무들이 잔뜩 심어진 가로수 길을 벗어나서 그런지 사람들도 어느 정도 줄어있었다.


그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자 우선 수진이의 친구들이 날카롭게 반응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당사자가 아닌 친구들이 그의 말을 듣는  좀 거북하게 느껴졌다.


명록은 우선 그녀들에게 입을 열었다.

" 저기.... 미안한데..... 우리 둘만 따로 얘기하면 안 될까? "

역시나 그의 말에 영연이 쏘아붙이듯 말했다.



"무슨 이야긴데요! 여기서 그냥 말해요. 괜히 마음약한 우리 수진이 말로 꼬드기려 하지 말고 우리들 앞에서 말해 봐요! "


휴우......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여자들의 우정이라는 게 이런 건가?
자신의 친구들 연애사에도 이렇게 끼어서 있어야 되는 건지 명록은 조금 답답함을 느꼈다.
하지만......
딴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수진이만 데려가서 변명하는 것도
그리 좋은 모습은 아닌 거 같아서 크게 숨을 들이켜고 말을 꺼냈다.

" 알았어. 그래. 그럼 그렇게 할께."


그리고 바로 수진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가 말을 이었다.

" 그게.....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만.... 지금  일하는 중이야. "

수진의 시선이 싸늘하게 바뀌며 지금까지 지켜온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 오빠..... 그게 말이 돼?! 이게 일하는 거야? "

냉랭함이 가득 느끼는 그녀의 말에 명록은 설명하려는 말이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애써 추스르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이게 일이야. 그리고 나도 여기에 오게 될 줄은 몰랐어. 저 여자분. 사실 거래처 직원분이야. 우리 맡았던 일을 마치고 간단히 축하하던 중이었어. "


" 흥....! 거래처 직원? 축하? 그걸 나 보고 믿으라는 거야?! "


여전히 수진의 말투는 딱딱하고 날이 서있었다.
순간 옆에서 부드러운 어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저기... 제가 낄 자리는 아니지만 목소리가 들려와서 왔어요. 우선 미안해요. 명록씨 여자친구 분이죠? 말은 많이 들었어요. "


하윤이 다가와서 미소를 지으며
먼저 인사를 건네자 수진이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우뚝 멈춰버린 수진에 비해 여전히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며
하윤이 입가에 웃음을  채 말했다.



" 전 명록씨와 같이 일했던 강하윤이라고 해요. 이번에 같이 광고 건으로 일했답니다. 여기 제 명함 받으세요. "



작은 명함지갑에서 자신의 명함을 꺼내서 수진에게 내밀었다.
수진은 가슴 앞에 끼었던 팔짱을 풀고
찡그리며 하윤이 내민 명함을 받아 살폈다.
하지만 여전히 싸늘하게 굳어진 안색은 풀리지 않았다.
오히려 거래처 여직원과 몰래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윤은 빙긋이 웃고는 손에 들고 있는 봉지를 들어보였다.

" 이거 보세요. 제가 들고 있는 것과 명록씨가 들고 있는 봉지. 우리 둘이서 먹기엔 너무 많아 보이지 않아요? 우리 말고도 저쪽에 같이 온 일행이 있어요. 명록씨 얘기대로 오늘 일도 끝나서 안 대리님이 한턱 쏘신다고 한거에요. "




" 안 대리님??? "

그제야 수진의 얼굴이 살짝 변화가 생겼다.
하윤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 안. 승. 필 대리님이요. 명록씨가 얘기했을 거 같은데..... 아시죠? "


수진은 그제야 명록의 손에 든 봉지와 하윤이 들고 있는 봉지를
연달아보고는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승필 선배에 대해서는 이미 명록이 여러가지 누누히 말했으니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수진의 뒤에 서있던 세친구들은 서로 귀를 갖다 대고는 쑥덕이는 중이었다.

그리고 들리는 어색한 목소리.


오...오빠..... 진...짜야? "



수진은 명록을 바라보며 물어보고 있었다.
아까 보여줬던 목소리와는 완전 180도 달라진 목소리.


하아....
진짜....
여자는 정말.....
한순간에 달라지는 구나......

명록은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말을 이었다.




" 나도.... 이렇게  줄은 몰랐어. 승필 선배가 갑자기 외근하고 거래처에서 일 끝내자마자 간단히 식사하자고  거였어..... 조촐하게 회식하자고 하더니 여기까지 오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 "

수진의 태도가 풀어지는 것이 느껴지자
그간 자물쇠가 채워져 있던 거 같은 명록의 입도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순간 수진의 눈썹이 다시 위로 올라가며 작게 외쳤다.

" 근...근데 왜  안했어! 아까 통화할 때도 그런 얘기는 없었잖아! "

강한 어조이긴 했지만 아까와는 많이 다른 말투였다.
확실히 화가 풀린 듯한 목소리.
평상시 투정하듯 말하는 수진의 목소리로 돌아온 것을 느끼며
명록은 마음 속에 얹힌 돌멩이가 서서히 사라져가는 것을 느꼈다.



그때까지도 몰랐어. 갑자기.... 갑자기 오게 된 거라니까? "

순간 명록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짐은 다른 한손에 옮기고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발신자는 승필 선배였다.
서둘러 받자마자 우렁찬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야~!!!! 맥주 사러 가더니 어디서 귀리 베어 맥주 만드냐! 방명록! 대체 어디서 뭐하고 있는 거냐!!! 빨리 안와? "



쩌렁쩌렁한 승필 선배의 목소리가 휴대폰 수화기를 통해 밖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








승필 선배는 명록을 보자마자 뭐라고 쏟아내려는  입을 열다가
그 뒤에 있는 수진을 보고 순간 멈칫하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 뿐만 아니라 뒤에서 줄줄이 쫓아오는
수진의 친구들까지 모두 같은 일행임을 알자 순간 푸하 하고 웃음을 터드렸다.

" 야.... 명록 늦는데 이유가 있었구나! 안녕하세요. 수진 씨. 오랜만에 보네요? "

순간 바로 다가가 명록의 짐을 받아들더니 눈을 찡끗거렸다.
그리곤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 푸하.....  제대로 걸렸겠는데? 어여 가서 싹싹 빌어라. 하하하하..... "




젠장.....
눈치도 빠른 승필 선배의 발언에 명록은 더욱 부아가 치밀었다.
말도 안했는데 한번에 사태를 파악한 것도 기가 막히지만 결국 이 난리의 원인은 바로 "  "라는 점이었다.




씩씩...
이게  누구 탓인데 이제 와서.....
첨부터 나를 끌어들이지 않았으면 되잖아요.....
아휴....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딱 지금을 위해 있는 말인 거 같았다.
억울함에 절로 입술이 삐죽거리는데
어느새 하윤이 곁에 다가와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 어서 여자 친구랑 가세요. 정미 언니랑  대리님은 따로 제가 모시고 갈 테니까 걱정 말고 그만 가보세요. "


눈웃음 치며 미소 짓는 하윤은 살짝 놀리는 듯 명록을 밀어내고 있었다.
자신을 위해 준답시고 밀쳐내는 그녀를 보면서
그래도 함께 파트너로 왔던 하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대로 헤어지면 아마 이미 작업에 성공한 듯한 승필 선배와 정미는 따로 어울릴 테고
그 가운데에서 홀로 끼어있을 하윤은 분명 재미없는 밤을 보내게 될 것이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진의 앞에서 그녀를 쫓아갈 수는 없는 일.
명록은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수진의 마음을 풀어준 것도 하윤 그녀였다.
어버버 하던 명록을 살려준 은혜를 갚는 건 잠시 미뤄두어야 할 듯 싶었다.



" 미안해요..... 그럼 부탁 좀 드릴게요. 나중에 이번 일은 꼭 나중에 갚겠습니다. "



순간 그의 말에 하윤이 씩 웃고는 재빠르게 말했다.



" 분명 약속하신 거예요? 그 말 책임 지세요? 후후후.... 나중에 한턱 제대로 얻어먹을 테니까 그때 가서 딴말하기 없기에요. 후훗. "


그러고는 명록이 뭐라고 말할 새도 없이
하윤은 몸을 돌려 승필 선배 쪽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바로 정미에게 다가가서 뭐라고 말을 하는지 싱글거리면서 웃는가 싶더니
어느새 승필과 정미를 이끌고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서서히 멀어지는 승필 일행을 보는 가운데
수진의 세 친구들도 머뭇거리며 그에게 말을 꺼내고 있었다.


우선 영연이 다가와서 명록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 아...아까는 미안했어요. 명록 오빠. 내가 좀 말이 심했죠? 정말.... 미안해요. "




꾸벅 숙이는 그녀를 보니 명록은 어색하기만 했다.
영연의 처음 보는 모습에 놀라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녀의 잘못도 아니었다.
친구인 수진을 위해서 한 일 아닌가.

그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영연을 말렸다.

아...아냐. 내가 오해할만한 일을 했는데 뭐...... 내가 오히려 미안하다. 별거 아닌 걸로 너희까지 신경 쓰게 했잖아. "


옆에 있던 나희가 바로 이어서 말을 이었다.



아니에요. 우리가 좀 성급했어요. 암튼.... 우린 이만 가볼게요. 수진이 잘 부탁해요. 아까 마음 많이 상해했으니까...... 잘 다독여 주세요. "

순간 수진이 얼굴이 붉어지면서 나희를 잡았다.



" 야.... 내가 뭘..... 그리고 너희 어딜 가려고 그래? "



갑작스럽게 이만 작별을 통보하는 듯한
나희의 말에 당황하는 수진을 보면서 설아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나희의 다른  팔을 잡고는 혀를 낼름 내밀며 수진에게 장난스럽게 말을 던졌다.



훗. 우리가 남의 데이트 자리에 껴서 그 염장질을 어떻게 견디겠니? 짝 없는 우린 이만 가볼련다. 참! 명록 오빠! 우리 가면 수진이랑 뜨거운  보내세요. 연인끼리 오해는 침대에서 풀고 마무리 져야 하는 법이래요. 히히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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