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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5화 〉제2부. 12화. 봄비는 벚꽃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7) (125/195)



〈 125화 〉제2부. # 12화. 봄비는 벚꽃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7)

125.



그녀의 친구들이 뒤에서 불렀지만
수진은 혼잣말을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게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명록처럼 보이는 사람을 향해 일직선으로 걷고 있었다.
걷는다 보다는 거의 달리다 시피 빠르게 다리를 움직였다.
인파 따위는 지금 수진에게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냐....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

세상에 닮은 사람은 많았다.
명절이면 티비에서 하던 연예인 닮은꼴이 나오는
프로그램만 봐도 비슷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명록을 닮은 사람이 여자와 함께 있다는 것은 믿을  없었다.
수진은 쿵쾅쿵쾅 뛰는 가슴으로 명록을 닮은 사람을 확인하기 위해 인파 속으로 들어갔다.



"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



물살처럼 밀려드는 인파를 해치며
앞으로 나갔지만 이미 수진이 바라보던  사람은  멀리 사라져 버렸다.
순간 갈 곳을 잃어버린 수진은 그 자리에서 멈춰섰다.
환하게 불을 밝혀 벚꽃을 비추는 조명이 너무 눈부셔서 울음이 나올  같았다.


야근이라 오지 못한 그가.....
여자와 함께.....
그것도!!!!!!!
여자와 팔짱을 끼고 이곳에 와있다니.....


수진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니야...
아니야...

가슴은 명록이 아닐 거라고 말을 하는데,
머릿 속 한 구석엔 그 사람이 명록이 아니라는 확인을 꼭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일란성 쌍둥이는 판박이처럼 비슷하지만,
가까운 사이인 부모나 친구들은 미세한 차이로 두 사람을 구별해낸다.


수진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멀고, 뒷모습뿐이지만,
어떻게 명록을 닮은 사람과 그라고 착각 할  있을까?
수없이 그를 만나면서 멀리 명록이 오는 것을 봐도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그녀였다.
이미 아니라고 말은 했지만 머리에서 분명히 그 사람이 명록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자신의 소중한 오빠.
방명록.



제발...
내가 잘못 본 걸 거야...
내가...
착각한 게 맞아....




자신이 틀렸음을 확인하기 위해
수진은 넓은 벚꽃 축제장을 메운 인파 속에서,
방금 전 본 그 남자를 쫓고 있었다.





**************


미친 듯이 앞으로 달려 나가는 수진과
그녀를 서둘러 쫓아온 세 친구들은 같이
명록을 찾기 시작했다.


평소 남자친구가 언제든 바람 필 수 있으니
완전히 믿지 말라며 나희와 설아가 영연과 수진를 놀려대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영연과 수진은 한마음 한편으로
남자친구를 믿지 못하면 대체 누굴 믿어야 되냐며
같이 받아치곤 했다.
그러나 영연마저도 전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우고
헤어지게 되자 같이 나희와 설아의 편으로 홀랑 넘어가서는
수진을 놀리게 되었다.



남자는 믿을 게 못 된다니까.
명록 오빠는  다를  같니?
나중에 울면서 후회해도 우린 모른다?




삼대일.
홀홀단신 그때부터 외로운 수진의 싸움이 계속 되었다.


거기에다가 매번 친구들을 버리고
수진이 명록을 선택하는 건수가 생길 때마다
셋은 금세 입을 맞추며 놀려대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건 장난이었다.
말이 씨가 된다고 갑자기 벌어진 이번 일이
자신들 책임인  같아서 술기운에 흥겨웠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무겁게 가라 앉아버렸다.



" 야...!  왜 괜히 수진이한테 말해서.... "



아쒸.... 나도 긴가민가해서 그랬지... 아씨, 수진이가 이럴  알았으면 그냥 입 다물고 있는 건데..."




앞서는 수진의 뒤를 쫓아가며
나희가 조용히 영연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다.
영연이 명록을 봤다는 말만 안 했어도
기분전환으로 시작된 벚꽃놀이가 이렇게....
추격전이 되지 않았을 텐데, 나희가 아쉬운 마음에 끝말을 흐렸다.


오랜만에 언제나 일상  쫓겨 사는
자기 자신을 잊고 일탈처럼 나온 나들이였는데
이렇게 친구들과의 시간이 망가져가는 것이 아쉽기만 했다.
취업이 가시권에 들어온 3학년이 되자
지나가는 시간이 너무도 빠르게 지나고 있었다.
모래시계 속 모래가 어느 순간부터 적어졌다고 느껴지는 순간
더욱 빠르게 줄어가는 것과 같은 느낌을 요 근래 받고 있는 그녀였다.

그러나....

평소 완벽하게 명록을 믿었던 수진의 모습을
잘 알고 있던 나희들이기에 이번 일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평소 수진이라면 명록일 리 없다고 웃으면서 그냥 지나칠 텐데,
갑자기 돌변해서 유달리 영연에 보았다는 사람을 찾으려고
집착하는 수진의 모습에 불안감이 들고 있었다.
설마 요새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영연의 머리에 스치고 지나갔다.

" 저기! 저기 있네! 저기저기!!! "



하지만  한사람....
설아 만은 예외였다.
설아가 월리를 찾은 아이처럼 신난 표정으로
명록과 닮은 사람을 찾아 소리를 질렀다.


아휴...
저 미친뇬.....

나희와 영연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소리없이 입을 벌리며 경악했지만 이미 늦었다.

설아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를 지르자마자 수진도 바로 찾아냈다.


170 후반의 조금 큰 키,
20대 후반 답지 않은 다부진 체격,
깔끔하게 자른 머리.
사람들 모습에 가려져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명록이 분명했다.


수진은 그 남자에게로 뛰기 시작했다.
이미 얼굴은 붉어져 있었다.



" 야!! 방명록~~~~~~~~~~~~~~~~~~~~~~~~~!!! "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바람처럼 달리며 수진이 큰소리로 명록을 불렀다.
오빠라는 호칭은 저 멀리 하늘 끝 너머로
날아가 버리고 바로 이름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수진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인파 사이로  남자가 두리번거리며 돌아서는 모습이 보였다.


방명록.
이럴 수가.....




수진의 눈동자에 불꽃이 화르르 피어오르고
이내 명록의 시선도 그녀와 마주쳤다.
서로의 시선이 맞부딪치고 그가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바로 옆으로 다가간 수진은 앙칼진 목소리로 말했다.




" 오빠... 일한다며?! "

급 돌아온 오빠 호칭.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남자.
방명록....

" 아... 그게..."



아닐 거라며 믿고 있었는데,
머릿 속으로 알고 있던 것을 직접 확인하고 말았다.
수진의 눈에 참고 있던 눈물이 왈칵 쏟아질듯 넘실거렸다.

오빠가...
그가 거짓말을 했다!

수진의 마음에 명록이 차지한 자리는
너무 커서 배신감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하기엔 너무나 부족했다.
그녀의 마음에서 지금 이 순간 바로 그를 잘라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수진은 욱신거리는 가슴을 움켜잡았다.
숨이 탁 막히는 기분.
심장이 쪼개질 듯한 통증.
드라마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사람들이
왜 저럴까 생각했었는데 지금 그녀가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질  같았다.
너무도 큰 아픔과 어지러움으로 눈앞이 가물거렸다.
다리에 힘이 탁 풀리며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을 듯 세상이 핑그르르 돌았다.


하지만 이를 악물었다.



절대.....
안 울어......
안 울거야!

이미 정신도 몸도 파도에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부서져 가고 있었지만 수진의 자존심은 그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
허락을 하지 않았다.


수진은 억지로 숨을 한 모금 들이키고 바로 말을 이었다.

" 여기가 회사야? 오빠  한다며?! "



" 수진아..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더듬거리는 명록을 보자 수진은
더욱 자신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거기에다가 그녀는 이미 머릿속이  비어버린 양....
하얗게 변해버려서 이성적인 사고가 무엇인지 잊어버린 거 같았다.

무엇을 따져야 할까.
왜 거짓말을 했는지 부터 캐내야 하는 걸까.
아니...
오빠 옆에 있는 여자가 누구인지부터 알아내야 하나????



수많은 생각이 회오리가 되어 마구 뒤엉키고 있었다.
그중 일단....
당장 드는 생각은 일한다던 그가  여기 있는지 였다.


옆에 팔짱끼고 걸어가던 여자는 누구인지,
대체 자신에게 왜 거짓말을 했는지,
그리고  그렇게 당황하고 있는지
수많은 질문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모든 의혹과 실망, 분노가 질문들과 섞여져서
거대한 폭풍이 되서 수진을 흔들고 있었다.
하지만 당장 그녀에게서 나오는 말은 지금 명록에게 쏟아낸 두 마디였다.

쩔쩔매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명록.
울듯말듯 붉어진 얼굴로 채 말을 잇고 있지 못하는 수진.

 명이 잠시 그 모습으로 굳어진 사이
수진을 쫓아온 친구들이 그 자리에 도착했다.
설마 했는데 정말 딴 여자와 있는 명록을 보고는
수진의 뒤에 서서 그를 살기어린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 왜.... 왜 말을 못해?! 왜! "



잔뜩 높아진 목소리로 따지는 수진.
그리고 영연이 봤다는 여자와 먹으려고 했는지
양손 가득히 먹거리를 들고 있던 명록은
잘못을 숨기려는 아이처럼 당황하고 있었다.

순간 가느다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 명록씨....? 명록씨 뭐해요 여기서? "


명.록.씨이이......??????????????????????????????????????????

수진의 눈이 희번득 커졌다가 제자리를 찾는 동안
명록의 등 뒤에서 왠 여자가 나타나서 친한 듯 그의 이름을 불렀다.

영연이 보았다던 그 여자.


태평한 표정으로 다가오던 그녀가
명록과 수진들을 발견하고 어마 소리는 내며 멈춰 섰다.
수진은 무의식적으로 적개심을 드러내며 낯선 여자를 위 아래로 훑었다.

하아?!
그렇게 벚꽃 보러가자고 졸랐는데
이....일이 바빠서  온다고 하더니......



 여자와 이렇게 함께 와있다는 것이 사실로 드러나자
수진은 와락 소리치며 명록에게 따졌다.



" 오빠.... 이래도 변명을 말할 셈이야?!! "



하지만 그는 잘못했다는  대신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 거렸다.



" 아니 그게...."




그리고 이어 들리는 여자의 목소리.




" 누구에요? 이 분은...?"




하!!!

수진은 절로 숨이 짧게 쉬어졌다.
어이가 상실 직전...
아니 상실되었다.

수진의 앞에서도 당당하게 구는 여자의 모습.
그녀는 수진 앞에서도 명록의 옆에 나란히 서서
전혀 주눅 드는 모습 하나 없이 그에게 묻고 있었다.


명록, 수진 그리고 제삼의 여자.
졸지에 수진은 친구들이 던지던 농담처럼
막장드라마도 아닌 신파극의 여주인공이 되어 버렸다.

 여자가 누구냐고 명록에게 물어보며
논리정연하게 하나하나 따지고 싶지만
그녀 눈앞에 맞닥뜨린 충격이 너무 커서 말도 못하고
그저 여자의 얼굴만 계속 쳐다봤다.
숨이 탁 막혀서 도저히 한 마디도  꺼낼  없었다.
이제 입술을 열면 꾹꾹 목구멍에 채워놓은
울음이 말과 함께 터질  같았다.


그럼 당신은 누군데요? 남이 누군가 묻기 전에 자기가 누군지 부터 밝히는 게 예의 아니에요?"



영연이 수진을 대신하여 낮고 강한 어조로 대신 입을 열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못하고 서있는
수진의 옆으로 다가와서 가만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영연은 싸늘하게 식어버린 수진의 손을
꼭 맞잡아주며 힘을 주려는 듯 손가락에 힘을 주고 있었다.

명록은 그런 영연 앞으로 다가오며 더듬거렸다.


" 아... 영연아... 먼가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이 분은....."




" 오빠! 지금  여자 편드는 거에요?! 오빠는 수진이도 안 보여요? 어떻게 딴 여자 편을 들  있는 거에요? "



영연이 한껏 날카롭게 목소리를 높였다.
밤하늘 아래 아름답게 펼쳐진 벚꽃무리 가운데
 여자와  남녀, 그리고  사이에 한 여자가 서 있었다.
그들이 벌이고 있는 신파극 아니 한편의 아침 막장 드라마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나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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