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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화 〉제2부. 12화. 봄비는 벚꽃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5) (123/195)



〈 123화 〉제2부. # 12화. 봄비는 벚꽃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5)

123.


" 수진아! "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자
설아가 그녀의 얼굴을 찰칵 하고 찍었다.
으잉 하는 모습으로 설아를 바라보자 활짝 웃으며 그녀가 말했다.

" 오, 좋은데? 우수에 찬 표정인데? 아니... 이건 그리움인가?"


설아의 말에 수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 그래? 내가   미모하지. 잘 나온  사진으로 뽑아줄 거야? "



" 당연하지. 김설아 작가님의 작품을 소장할 수 있는 영광을 주마."

너스레를 떠는 설아 덕분에 명록 생각으로 우울하던 마음이 잠시 사라졌다.


그래.
내일도 있으니까....



수진은 웃음과 함께 잠시 어두워졌던 마음을
저멀리 날려버리고 설아를 끌고는 나희와 영연의 곁으로 돌아갔다.


아이들처럼 노점상에서 파는 솜사탕도 사먹고 헬륨 풍선도 사 들곤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설아가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연신 그녀들을 찍었고
인파들이 넘치는 가운데서 그녀들은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한참을 그러고 인파를 헤치며
벚꽃 나무 사이를 돌아다니자 슬슬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구두를 신은 영연과 나희가 먼저 발이 아프다며 쉬자고 말을 꺼냈다.
안 그래도 한 시간이 넘게 높은 구두를 신고 돌아다녔으니 아플 만도 했다.
에너지가 방전 되어버린 친구들을 따라서
조금 피곤함을 느끼던 수진도 같이 의자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때 수진의 휴대폰이 울었다.
발신인을 확인한 수진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명록에게서 온 전화.

수진은 바로 일어나서 전화를 받기 위해 자리를 피했다.
역시 친구들 앞에서 받기는 어색함이 있었다.
아니, 이것들이 나중에 그와의 통화를 엿듣고 놀릴 수도 있었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바로 통화를 눌렀다.



" 아~~ 오빠~~! "



" 아~ 수진아...... 얼굴도  볼 거 같아서 전화라도 하려고...... 어디야? "




명록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해하는 목소리.
그리고 언제 들어도 좋은 그의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부드럽게 울렸다.

그의 잘못도 아닌데, 벚꽃 축제에 가자는
수진의 말을  들어준  내내 명록의 마음에도 걸렸던 모양이었다.
어찌됐든 자신을 생각해주었다는 것이 기뻤다.

그런 명록의 마음에 수진의 아쉬움이 사르륵 녹아버렸다.
역시 자신을 생각하고 있는 그가 보고 싶었다.



" 아..... 뭐.... 괜찮아. 알았어. 일 많이 바빠? "



" 아... 머 그렇지. 근데.... 어디야? 좀 시끄럽네? "



명록이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어 물었다.
아무래도 주변 소음이 들리는 모양이었다.

하긴 자리를 피했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가득한 공원 한가운데였다.
그러는 사이에도 웃으며 떠들고 있는 사람들이 그녀의 곁을 지나고 있었다.
왠지 모를 미안함에 하하 웃으며 수진이 답했다.



" 아~~ 하하하~~ 친구들이랑 같이 놀러왔어. 오빠 너무 무리하지 말고 들어갈 때 전화한번 주라. "



" 응.... 그럴게. 너도.... 재미있게 놀아라. "



그녀의 말에 명록도 가볍게 답했다.
괜히 바쁘다는 사람을 잡고 길게 통화하고 싶지 않았다.
야근에 지쳐있을 그에게 벚꽃의 얘기를 하며 수다를 떠는 건 미안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의 전화 한통으로 마음이 따스해지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아까 마셨던 술의 힘 때문인지 그냥 기분 좋았다.
수진은 아쉽지만 가볍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 응! 그럼 이따 통화해~ 힘내, 오빠~! "



명록도 바쁜지 짧게 통화를 마쳤다.
통화를 마치고 수진이 돌아서자 설아가 그녀에게 물어왔다.



" 누구? 명록오빠?"




엉, 오늘 늦게 끝난다고."




그러고 보니 이제 곧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각자 밤 스케줄이 따로 있었다.
나희는 학원에 가야하고, 영연은 데이트 약속이 잡혀 있었다.


잠시 이어지는 침묵.
순간 지금의 시간이 아까운지 영연이 먼저 말을 꺼냈다.

흐음? 이렇게 헤어지기 아쉬운데..... 우리 자리 옮겨서 시원하게 맥주 한잔~! 어때? "


" 너 남자친구 만난다며? 나희도 학원 간다고 안했어?"

영연이 꺼낸 술 이야기에
설아가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설아가 제일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술 그리고 남자.
아마 하나만 택하라고 하면 당연히 술을 택했을 것이다.
당나라때 태어났으면 이태백과 맞상대 할만큼 술을 좋아하는 주당 김설아.

그녀의 4차원으로 이태백의 시상을 마구 펌프질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긴......
수진도 영연의 말에 밤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시원한 맥주가 땡기긴 했다.
특히 여기 벚꽃을 바라보며 따금따금한 맥주의 느낌을
목으로 한껏 들이키는 상상을 하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영연은 그녀답게 쿨하게 잘라 말했다.




" 내일 보자고 하지 뭐. 어차피 또 독서실이나 가자고  텐데.... 그럼 모두 오케이?"

" 후후.... 그럴까? 나도 오늘은 왠지 기분이 안 난다. 흐음.... 오늘 하루 학원 빠지지 머."



나희도 조금 생각하는 듯 눈동자를 돌리더니 바로 말했다.
스케줄 관리가 철저한 나희도 아까부터 약간 분위기에 취해 있는 듯 하더니
벚꽃을 보고는 일탈을 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남자친구보다는 친구들과의 즐거움을 택한
영연까지 모두 한마음으로 2차, 아니 3차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벚꽃 구경하며 지친 다리도 쉴 겸 약간 목마른 갈증을 해소시켜 줄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며 이 시간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은 모두들 같은 마음이었다.





**************







이미 공원 근처는 물론 일대에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차를 간신히 주차시키고 나자 환한 가로등 아래
움직이고 있는 인파에 명록과 승필 그리고 두 여직원들이 합세를 하고 있었다.

" 어머..... 대낮 같네요. 후후..... 평일인데도 사람들 정말 많아요. "




유난히 수다스러운 정미의 목소리가 감탄을 담은 채 울려 퍼졌다.
그녀 말대로 아직 주말도 아닌 공원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벚꽃을 구경하고 있었다.

환하게 커진 가로등 아래로 벚꽃이
마치 하얀 눈송이가 덮여 있는 것처럼 아름답게 피어있었다.
그리고 불빛아래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느낌이었다.



와....
밤에 보는 꽃이 저렇게 예쁠  있다니.....

명록은 잠시 벚꽃 나무 아래 고개를 들고 멈춰 있었다.
그리고 순간 수진의 생각이 절로 떠올랐다.


어떻게 보면 그냥 한순간의 시간일 뿐이었다.
그녀가 조르지 않아도 그냥 응! 이라고 말하고
퇴근 후 오기만 해도 되는 일이었는데
왜 그렇게 하기기 어려웠는지.
아니....
어렵다 보다는 명록의 마음이 내키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냥 그녀와 단둘이 있고 싶다는 것도 어쩌면 핑계일지 몰랐다.
피곤한 회사 일상에서 벗어나 퇴근시간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거리 한가운데
괜스레 걸어야 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게만 느껴져 가기 싫은 단순한 마음이었을지 모른다.

그냥 편하게 모텔에서 뒹굴 거리고 싶은 마음이었을 뿐.
그리고...
수진의 탐스러운 몸을 한껏 매만지고 싶었을 뿐.


하지만.....
이렇게 벚꽃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수진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마 데리고 왔으면 그 누구보다 좋아했을 그녀 였을텐데
이렇게 수진 만을 빼고 다른 여자들과 와있다는 것이 미안하기만 했다.


하아.....
내일은 정말 꼭 데리고 와야겠다.......

훗! 무슨 생각을 그리 하세요? 불러도 못 알아들으시고."




순간 어깨너머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하윤이었다.

승필 선배는 정미 씨를 상대로 작업을 하는지
둘이 약간 떨어진 나무 아래에서 웃으며 얘기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자연스럽게 하윤과 자신만 떨어져 있는 상태인데
그가 혼자 생각에 빠져있으나 그것을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윤이 샐쭉 웃으며 말을 이었다.


" 여자 친구 생각하셨나 봐요? 후후..... "



명록은 순간 당황하며 말을 받았다.
왠지 옆에 하윤에게 자신의 생각을 들킨 것도 민망했지만
옆에 그녀를 세워놓고 여자 친구 생각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아.... 아니에요. 너무 오랜만에 보는 꽃이라...... "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하윤의 눈이 가늘어지며 초승달 모양이 되었다.
입 꼬리도 살짝 올라가는 것이 장난꾸러기의 그것과 흡사했다.


" 에이.... 아닌 거 같은 데요? 후후..... 볼도 빨개지셨어요. 명록 씨는 얼굴이 너무 정직하시네요. 후후후. "

" 에에~? "


순간 자신도 모르게 손이 명록의 얼굴로 올라왔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게 정말 그런  같기도 했는데
볼을 만지는 그를 보자 하윤이 깔깔 웃었다.

" 하하하.... 농담이에요. 하하하..... 정말 너무 순진하세요. 호호호....... "




환하게 웃어대는 그녀의 웃음소리가 유난히 맑게 들렸다.
그러고 보니 자연스럽게 손을 모으고 있는
하윤의 블라우스 아래 정장 치마가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돋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살짝 떨며 웃고 있는 가운데 그녀의 흔들리는 가슴 또한 봉긋했다.
봄기운이 물씬 풍기는 옷차림에서 왠지 모를 좋은 향기가 나는  싶었다.



벚꽃에도 향기가 있던가?
이게 꽃의 향기일까....
아님 그녀에게서 나는 향기일까?




명록은 순간 지금 맡고 있는 이 향기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수진과 사귀기 시작한 이래 이상하게 여직원들과도 사이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가볍게 던지는 농담에도 깔깔 웃어대는 그녀들이 명록이 예전과는 달라졌다고 하고 있었다.
수진이의 존재, 그러니까 여자 친구의 존재를 아는
여직원은 애인이 생긴 뒤 사람이 바뀌었다고 놀리기도 하였다.

정작 본인은 이해할 수 없는 변화였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도 사실일 수 있었다.


옷차림 하나하나 수진이 코디해주면서 골라주기도 하고
머리 스타일도 예전보단 신경 써서 다듬기도 하였다.
여자에게 대하는 에티켓도 배워가며 그녀들에게 대하는 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정말 남자는 여자가 만들어간다고 하는데 일정 부분은 사실이라고 생각하곤 하였다.

지금 하윤도 그렇게 가까워지는 거래처 여직원 중 하나였다.
일에 지쳐 보일 때 가볍게 건네는 음료수를 고마운 표정으로 받고
프로젝트 진행하면서 짜증스러운 상황에서 건네는 농담에
후후 웃어주는 그녀와의  마디 대화가 즐겁기도 했다.

예전엔 왜 이렇게 여직원들과 어울리지 못했는지
그게  이상하게 느껴지는 명록이었다.
참 단순하고 어렵지 않은 일이었건만 쏠로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여자를 만나는 게 영 거북했던 과거가 왠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깔깔 웃던 하윤은 어느새 그의 팔을 잡고는 이끌며 말했다.



" 우리 저쪽으로 걸어가면서 꽃구경 좀 해요. 고작 입구만 보다가 가기는 아깝잖아요. "


그녀의 머리카락이 가볍게 흔들리며 아까부터 은은하게 나던 향기가 좀 더 진하게 느껴졌다.
가볍게 팔짱을 낀 하윤의 손길이 스스럼없이 명록의 팔을 잡는 순간
그의 마음 속에서 미안한 감정이 떠올랐다.

수진에 대한.....
미안함.


그러나 하윤의 손길을 대놓고 뿌리치는 것도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록은  이기는 듯 그녀가 이끄는 대로 서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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