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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화 〉제2부. 12화. 봄비는 벚꽃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4) (122/195)



〈 122화 〉제2부. # 12화. 봄비는 벚꽃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4)

122.

대학생.


이제 삼학년이긴 하지만 꽃다운 여대생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녀였다.
직장인인 자신과는 다른 세계에서 생활하고 있는 수진에게서 알 수 없는 청춘의 기운이 느껴졌다.

사실.....
나이차 나는 자신 같은 직장인보다
활달하고 멋진 대학생들이 학교 내에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그녀와 함께 같은 생활을 하고....
같은 사고를 하는 이들이 수진의 마음을 끌어당기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떠올려보곤 했다.


생활이 다르다는 것은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괜히 세상에 세대차이 이런 말이 나오는 게 아니다.

직장인의 고충을 수진이 알 수 없듯이
지금 그녀가 보내는 생활에서의 고민은 그가 알기 어려웠다.
자신이 대학 시절 보냈던 때와 지금의 대학은 어떤 변화가 있을지도 모르고
더군다나 여대생의 생활이라는 분야는 그가 알  있는 범위가 아니었다.


친구라면.....
그 세 친구들이겠지?


활달하고 나긋나긋한 애교의 영연.
물론 수진의 말에 의하면 다 내숭이며 남자 앞에서만 보여주는 연기라지만
어차피 그런 그녀의 모습은 보지 못했으니 명록에겐 싹싹한 여자로 보일 뿐이었다.


얌전하고 단정한 이미지의 나희.
친구들의 다독이며 이끌어가는 모습이 차분해 보이지만
가끔 독설 가까운 말도 할 줄 아는 깐깐한 그녀.


그리고 마지막 사차원 여자 설아.
이름만 생각해도 떠오르는 간호사 코스프레.
으으....
사차원이 아니라 십팔차원 쯤 되어야 맞을  싶은 그녀.

사실 그녀들 때문에 수진과 만나서 사귀게 된 것이지만
명록에게는 약간 거북한 느낌을 주는 문제의 삼인방 그녀들이었다.
수진이 그녀들과 같이 있다면 또 다른 걱정거리라 마음 편하게 있을 수는 없었다.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세친구와 함께 있는 한.....
아마 수진이 집에 들어가는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안심하기 힘들 것이다.


거기에다가....
너무도 밝아 보이는 수진의 목소리도 신경 쓰였다.




일부러 그러는 거 아닐까?

어쩌면 명록에게 미안하지 말라고 그러는 수진의 배려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왠지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한 한쪽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하......
모르겠다......


그는 잠시 이마를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다가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면 승필 선배에게 말을 들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구색 맞추기라 할지라도 이대이 짝을 맞추는 자리였다.
혼자 있게 될 여자에게 마이너스로 작용하면 아마 한 달은 아주 피곤한 회사생활이 될 것이 분명했다.


자리로 돌아가니 이미 메뉴판은 사라져 있었다.
승필 선배는 그가 오자 눈웃음을 지며 말했다.

" 야~~ 무슨 화장실을 그렇게 오래 갔다오냐."


오래?
통화를 얼마나 했다고???



그러나 말을 하지 않고 생각만 하고 있는 명록에게 그의 말이 이어졌다.



" 하도 안와서 저번에 네가 맛있게 먹던 메뉴로 시켰다. 고기는 미듐웰던 맞지? 이 선배가 쏘는 거니까 부담 말고 잘 먹어라. 하하하. "




저번에 먹던 메뉴?????
아니 그게 대체 머다냐.....????



명록은 쓴 웃음을 지으며 잘 먹겠다고 얘기는 하고 있었지만 대체 그 메뉴가 무엇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괴상망측한 음식 시켰으면 그것을 먹으면서 맛있게 먹는 연기도 해야 할 판이었다.

하아....
신이시여.....
제발 음식을 보고
기겁하는 일만 없게 해주기를......




절로 신앙이 생기고 기도를 하고 싶어지는 명록이었다.






**************







송아지 혓바닥 구이에 눈깔요리!!!
-는 다행이 아니었다.

의외로 평범한 스테이크가 나와서 다행이었다.
부드러운 육즙에 적당한 식감.
 달달하면서도 약간 매운 맛의 소스와 어울려서 꽤 맛있었다.



오호....
소고기에 이런 맛이 있었나?

가격이 부담은 되지만....
언제 수진과 함께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부지런히 나이프와 포크질을 하는데 승필 선배가 입을 열었다.

" 역시 잘 먹는다니까. 하하.... 넌 역시 양고기 체질이야? 그치? "



엑!?
양고기???


양고기는 노린내가 난다고 하지 않았나?
순간  먹던 고기가 약간 느끼하게 느껴지며 목에서  걸리는 기분이었다.
후추의 독한 매운 맛이 식도를 타고 올라오며 얼굴이 붉어지는 느낌.


순간 승필 선배가 옆의  잔을 건네주어 한 모금 마시고 간신히 안으로 삼켰다.



" 야야.... 천천히 먹어라. 누가 뺏어먹는 것도 아닌데. 하하하."


이런.....
악마가 따로 없다니까.....
어쩐지 순순히 쏜다고 하더니만.....



예전 중국 출장  양고기 꼬치를 먹고 제대로 탈이  적이 있었던 명록은
그 뒤 양고기 음식라면 질색팔색하며  또한 저절로 피하고 있었다.
물론 먹는다고 해서 무슨 탈이 나는  아니었지만
그때 단단히 혼나고 나서는 자신도 모르게 피하고 있는 음식이었다.
알레르기가 생긴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예전의 기억이 떠오르며 입맛이 사르륵 사라지게 되었다.

하.....
일부러 그래도 거의 다 먹었을 때 얘기해주셨군요.
선배.....
고맙습니다.
하!



이미 뱃속으로 다 들어간 스테이크는 말이 없었다.
다만 안에서 부글부글 가스로 기화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더이상 처리해야할 스테이크 조각은 접시에 없다는 것이었다.
분명 마지막 조각 씹을 때까지 기다렸다 말한  분명했다.

정말 사악함이 똘똘 뭉친 승필 선배였다.
아마 명록이 없으며 급심심해서 회사에 사표 쓸지도 모를 인간이었다.

" 너무  먹었어요. 안 대리님. 이런 맛있는 스테이크는 정말 처음이에요. 프랑스 레스토랑이라니 후후.... 생각도 못했는걸요? "

안대리라고 불린 승필 선배가 겸언 적은 듯한 미소를 연기하며 말했다.


" 하하... 별 말씀을요. 그간 프로젝트 진행하면서 너무 고생하셨어요. 중간에서 일 맞춰 주시느라 매일 야근하시는  보면 한번 꼭 대접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요. 이제야 이렇게 밥한 끼 사게 되서 제가 얼마나 미안한지 모르겠습니다. "



승필의 말대로 그녀들이 고생한 건 사실이었다.
기획 자체가 워낙 빡빡해서 중간 관리자의 역할이 아주 중요한데
밑에서 작업자에게 치이고 위에서 우리에게 치이는 자리가 그녀들의 위치였다.
그러나 하나 잡음 없이 이렇게 일이 깔끔히 마무리 되었다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장소...
알지 못하는 시간동안 그만큼 그녀들이 죽을 고생했다는 얘기와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일이라는 것은 중간에 끼어있는 자리가 제일 고생스럽기 마련이었으니까.


고기와 함께 마신 와인이 약간 알딸딸한 느낌을 주었다.
레드 와인이었는데 이름은 불어로 되어 있어서 잘 기억나지도 않았다.
대개 프랑스 와인이 시큼한 포도의 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데 이건  달달한 느낌의 맛이 주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포도의 산미와 맛을 함께 담고 있다니 확실히 이전에 마셨던 싸구려 와인과는 품격이 다르긴 했다.
특히 막입을 가진 명록에게도 이건 다르다 확실한 인상을 남기고 있으니.
고급 와인은 달지 않다던데 승필 선배의 설명으로는  가격대가 나가는 상급 와인인 듯 싶었다.
맛이 괜찮아서 나중에 수진과 같이 와서 시켜야겠다 생각했는데 그새 잊어 먹었다.

순간 잠시 와인의 이름을 생각하는라 열심히 기억을 되감기 하는데
갑자기 여직원 중 승필에게 가까이 앉아있던 정미가 박수치며 기뻐하고 있었다.


" 좋아요! 요새 매일 출근하면서 가고 싶었는데 못가서 아쉬웠거든요! "



그리고 이어지는 승필의 목소리.


" 어때요? 하윤씨도 같이 가실 거죠? "


" 그럼요. 저도 올해 벚꽃 한번 구경 못하고 그냥 지나가나 싶었는걸요? 저... 명록씨도 같이 갈꺼죠? "



" 네? "



명록은 갑자기 반전된 분위기에 무슨 일인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벚꽃 구경.....?
갑자기 왜 벚꽃이 여기서 나오는 거지?



승필 선배가 웃으며 말했다.




" 야~! 너 무슨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러는 거야? 밥도 먹었으니 간단히 소화 좀 할 겸 벚꽃 구경이나 가자. 한강 공원이 바로 옆이다. 정미 씨하고 하윤씨도 올해 구경 못했다니까 같이 가자고. "




으잉?
한강 공원?



수진이 가자고 계속 조르던 벚꽃 구경을 이렇게 갈 줄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아니 수진과도 가지 못했는데 난데 없이 벚꽃 구경이라니!!!!

명록이 뭐라고 말할 새도 없이 일행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빌지를 들고 먼저 앞장서는 승필은 뚜벅뚜벅 빠른 걸음으로 계산대로 향했다.










**************




뜨거운 해가 지고 서늘함이 남은 밤.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네 여자가 벚꽃축제장을 향해 걷고 있었다.
아니, 그녀들  아니라 셀 수도 없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들의 목적지를 향해 걷고 있었다.
그리고 그 흐름을 따라 걷자 반짝 반짝 하얀색으로 빛나는 벚꽃의 행렬이 펼쳐져 있었다.

벚꽃이 활짝 핀 벚나무는  그루 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이질적이기도 했다.
초록의 나뭇잎을 흔들거리는 다른 나무들과 달리
연분홍 꽃잎으로 덮여 쌓인 벚나무는 눈 덮인 나무 같아서
홀로 시간을 역행한 듯한 모습의 느낌이었다.
하지만 군락을 이루는 벚꽃은 홍학의 우아한 군무처럼 장관이었다.


수진은 흐무러진 벚꽃을 보곤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했다.
다른 사람들도 수진과 다르지 않은지 아름다운 벚꽃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까만 밤하늘 아래, 흰색의 벚꽃동굴은 그야 말로 별천지였다.

바쁜 일상에 치여 매일 실내에만 갇혀 있다가 오랜만에 야외로 나오니깐 즐거웠다.
술자리가 아니라 친구들과 이렇게 나들이 나온  얼마만인지.
수진도 활짝 핀 벚꽃 길을 걷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기운과 만개한 꽃이 만들어내는 흥취.

어느새 벚꽃의 매력에 흠뻑 취해버린
그녀들은 벚꽃 길을 누비며 그녀들의 젊음을 사진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설아는 한껏 신중하게 셔터를 눌렀고
그녀 앞에 피사체가 된 수진과 나희 그리고 영연은 한껏 멋을 내며 포즈를 잡았다.


그녀들 주변으로 늦어가는 밤인데도 근처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인지
정장을 입은 사람들 몇몇이 걷기도 하고, 유모차를 끈 젊은 부부가 지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커플로 보이는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고 활짝 핀 벚꽃 동굴을 걷고 있었다.

갑자기 수진에게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

" 저기... 저희 사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녀가 돌아보니  커플이 조심스럽게 수진에게 사진기를 건네주며 부탁했다.

커다란 사진기를 든 설아가 아닌 자신에게 부탁하는 말에 수진이 조심스레 사진기를 받아들었다.
고맙다며 고개를 주억거리곤 그들은 벚꽃 아래에서 자리를 잡고 포즈를 취한다.
수진은 두 사람의 모습을 카메라 화면을 통해 쳐다보고 있었다.

하나, 둘, 셋."



그녀의 말과 함께 카메라 뷰에 행복에 넘치는 웃음을 짓는 두 사람이 담겨졌다.
고맙다며 또 연신 고개를 숙이는 연인에게 사진기를 넘기곤 씁쓸하게 웃었다.


수진은 셔터를 누르는 순간 명록이 떠올랐다.


오빠와 함께 왔으면 좋았을 텐데......
하아.......


그녀가 찍어준 사진을 확인하며 웃는 두 사람이 허리에 팔을 두르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도 부러워서 수진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명록이 이 자리에 있지 않은 게, 그녀의 옆이 비어 있는 지금이 너무 아쉬웠다.

내일은 금요일......
그리고 주말.....

연속  주간 출장을 보내진 않을 거란 마음에
그와 함께 할 내일이 기다려지면서도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아직 남은 시간보다 지금 이순간이 더 크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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