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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화 〉제2부. 12화. 봄비는 벚꽃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3) (121/195)



〈 121화 〉제2부. # 12화. 봄비는 벚꽃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3)

121.

영연과 수진이 넋두리를 주고받으며 술병을 기울였다.
가만히 둘을 쳐다보던 나희가 말을 꺼냈다.



" 그럼..."

갑작스레 대화에 끼어들은 나희의 얼굴에 영연과 수진의 시선이 모아졌다.
잠시 말을 끊었던 나희가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 그럼, 우리끼리 벚꽃 구경 갈래? 오랜만에 바람 좀 쐬며 스트레스도 풀고. 설아 사진기도 있고 하니깐, 우리끼리 가서 실컷 사진 도 찍어보고......  어때?"




순간 두 명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그리고 바로 탄성이 쏟아졌다.

" 오~ 좋은 생각 인데?"



" 아~~ 그래! 그러자. 우리 여자들끼리 놀러가자. "

조금 올라온 취기에 흔쾌히 오케이를 외치자 설아는 눈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그녀들은 일사천리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설아는 아무  없이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카메라를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서둘러 계산대로 향하는 일행을 보며 천천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






생각보다 일이 일찍 끝나버렸다.
이미 스케줄은  짜놓은 상태였고 계획보다 일이  풀리고 있어서
촬영까지 마치면 일정보다 삼일은 더 빨리 일이 마침표를 찍을 거 같았다.

역시.....
베테랑과 일을 하면....
차암 쉽게 쉽게 풀린단 말이야......

승필 선배의 능력도 능력이었지만
일을 맡아 처리하고 있는 외주업체도 꽤 경험이 풍부한 곳이라
확실히 작업을 진행하는 것도, 처리하는 능력도 남달라 보였다.
그리 쉬운 여건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술술 일을 풀어가는 것이 화려한 경력에 어울리는 솜씨였다.

그렇게 야근할거라고 타박을 주더니.....
이제 보니 아무래도 승필 선배가 자신을 놀린 모양이었다.
분명 모든 일을 총괄하고 있는 그가 이렇게 술술 풀리는 진행 상황을 모를 리 없었다.



체....
심술도 진짜...
그냥 빨리 퇴근해도 된다고 하면 안 되나......
진짜....
으휴....



수진한테 말해서 여의도로 벚꽃 구경 가야겠다....
생각하고 휴대폰을 꺼내들고 현관 밖으로 나섰다.
천천히 주차했던 차를 향해 걸으며 전화를 걸려는데 순간 명록의 눈동자가 커지고 있었다.


저편에서 보이는  분명 승필 선배였다.
승필을 보고 놀라는 것은 아니었다.


명록이 놀라는 건 그의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거래처 여직원들!!!
그녀들은 퇴근하는지 옆에 백을 하나씩 메고 걸어 나오고 있었다.

 생머리 타입의 여직원은 아마 정미라고 소개했던 여자 같았다.
나름 웃는 미소가 일품인 그녀는 키도 크고 늘씬한 미녀 타입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여자는 하윤이라고 했다.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은 살짝 웨이브가 들어가 있었는데
어깨를 살짝 덮는 모습이  단정한 멋이 있었다.


승필 선배는 연신 미소를 흘려가며 좌우에 그녀들은 끼고 오는 중이었다.
마치 왕이 후궁들을 거느리고 오는 듯 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모습은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전화  생각을 잊어버린 명록이었다.
어느새 그들은 자동차에 도착했다.
차문을 열면서 승필이 정중히 손을 뻗어 안내했다.

" 자~ 이제 가볼까? 아가씨들 누추한  마차에 어서 타시겠습니까? "



과장스런 그의 모습에 그녀들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뒷좌석에 올라타는데
정장치마 아래 스타킹을 신은 다리가 유난히 날씬하게 보였다.
여직원들이 타자 뒷문을 닫고 운전석으로 향하는 승필을 잡고 목소리를 낮춰서 명록이 물었다.




" 선..선배! 뭐에요? 이거! "


승필 선배는 그의 말에 거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늦게 끝난다고 하지 않았냐? 이것도 일이라고. 빨리 너도 조수석에 가서 앉아라. 좀 있으면 길 장난아니게 막힌다. 빨리 출발하자구. "

그리고 바로 운전석에 올라타는 그였다.
텅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차가 살짝 흔들렸다.
더 이상 항변도 못한 채 명록도 조수석에 올라탔다.
부릉 소리와 함께 시동이 걸리고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슬슬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뒤에서 조잘대는 여직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순간 명록은 승필 선배의 마수에 빠졌음을 깨달았다.
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뻔할 뻔자....
완전 시커먼 속내가 확확 풍기는 일이었다.


어쩐지 뻔질나게 승필이 이곳을 드나들더라니.....
분명 이곳에 있는 여직원 아니 지금은 뒷좌석에 앉아 있는  여자 중 한명을
대상으로 작업을 피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
그라면 둘 다 동시에 작업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외근은 핑계일 뿐이었다.
빨리 일을 마치고 그녀들과 데이트를 가려고 한 게 분명했다.


원래 일대일 데이트는 쉽지 않은 법이었다.
서로 짝을 이뤄서 이대이로 만나서 가면
여자도 같이 가는 일행이 있으니 안심하고 따라 나올 테고
더군다나 명록은 이미 짝이 있는  아닌가.
잘하면 한 번에 두 명의 여자를 꼬실 수 있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무튼 지금 그는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데이트 현장에 끼고 말았다.

으으.....
수진이하고도 만나지 못하고 이게 머람......
쯔쯧...



대놓고 불평을 말할  없는 명록은
속으로 혀를 차며  앞을 바라보았다.
차를 운전하는 승필 만이 그들의 목적지를 알고 있었다.

차량들은 어느새 불어나 줄줄이 꼬리를 잇고 있었고
어느새 어두워지는 도시에는 가로등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는 중이었다.



**************


승필 선배가 안내한 곳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스카이라운지의 식당이었다.
인테리어도 나름 깔끔하고 이미 창가 자리로 미리 예약도 했는지
전망 좋은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하긴 일 뿐만 아니라 이런 것도 손이 빠른 승필이었다.


하나둘 불이 켜진 가로등이 식당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지상의 별이 되서 도시의 은하수처럼 강을 이루었다.
아니 한강을 가운데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거기에다가 강을 가로지르고 있는 다리 또한
형형 색색의 빛으로 오작교 못지 않게 아름답게 자태를 뽐내는 중이었다.

" 하하...... 거의 일도 끝나가고 있고 특히나 수고하고 있는 두 분에게 한번 식사대접은 하고 싶었던 터라 마음에 드시는지 모르겠어요? "




호들갑스런 승필 선배의 웃음소리.
봐선 가격이 그리 만만한 곳은 아닐  한데 호탕하게 와서 쏘려는 모양이었다.



체…….
설마 억지로 끌고 와서
나도 내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외관으로 보이는 분위기는 꽤 괜찮아 보였다.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인테리어에 축제의 한마당에 와있는 듯한 느낌의 가게 조명하며
독특한 의상의 서버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정말 유럽의 조그만 마을에 와서
작은 축제를 즐기고 있는 기분이었다.


메뉴를 보니 길게 불어로 써져 있고
아래 간단한 주석이 있어서 보기는 좋게 되어 있었으나
역시 프랑스 요리는 뭐가 먼지  수 없었다.


그새 메뉴판을 들고 승필 선배가 여직원들에게 자세히 설명해주고 있었다.




" 여긴 특히 달팽이 요리가 전채로 나오는데 상당히 맛있답니다. 하하... 여기 스테이크 정식으로 시키면 같이 나오는데 흠..... 스테이크도 고기 종류별로 있어요. 양고기, 소고기, 돼지고기 중 고를 수 있고 무난한  소고기 인데 돼지고기도 괜찮아요. 양고기가 제일 낫긴 한데 거북하면 역시 돼지나 소로 하는 게 낫습니다. "



자상히 설명하는 그를 보자니 명록은 기가 막혔다.



하....
업무 때 저렇게 가르쳐 주지.....
나 신입 때는 길어야  마디를 넘지 않았잖아.....
아니....
지금도 다를게 없지.
 좀 물어보면 선문답 수준인데.....
하!
이거....
여자한테는 완전 다르네......
 친절 넘치는 멘트 봐라....
하!!!!

메뉴 하나하나 보며 친절히....
그것도 아주 부드러운 어조로 알려주는 있는
승필 선배가 아주 달라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런 섬세함과 친절함이 저 인간 안에 담겨 있었다니 실로 참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런 프랑스 식당에  이유도 이제야 알만 할 것 같았다.

메뉴 하나하나가 생소하다보니
여자들이 선택하기엔 분명 곤란했을 게 분명했다.
그때 자연스럽게 옆에 바짝 다가가서는
저렇게 썰을 풀어대며 메뉴를 고르는 것을 도와준다는 얘기.
거기에 가벼운 위트까지 섞어가며 대화를 이어가는데 어느 여자가 긴장을 안 풀 수 있으랴......
역시 전설의 승필 선배다운 모습이었다.


실로 직접 눈 앞에서 그의 작업 현장을 보니 소름이 쫙 올라왔다.
생각해보면 그가 부지런까지 겸비했으면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피눈물을 쏟았겠는가.
승필이 갈쿠리로 싹싹 여자들을 쓸어가서는
대다수의 남자들이 짝도 찾지 못하고 쓸쓸히 홀로....
노후 생활을 맞이할 수도 있었으리라.


악마 중 악마.
디아블로 따위는 상대도 안되는...
남자의 적 같으니.




어찌 됐든 작은 농담까지 섞어가며 메뉴를 설명해주는
승필 선배의 모습에 그의 옆에 앉아있는 여직원들은 호호 웃으며 듣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녀들의 웃음소리를 듣는 순간 명록은 수진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
전화해야 하는데......




이렇게 승필 선배의 작업 노하우를 보고 있는 거보다야
차라리 수진과 통화를 하는 게 나을 듯 싶었다.
가뜩이나 벚꽃 구경도 가지 못해서 마음 상해 있을 수진 아니었던가.....


명록은 잠시 눈치를 보다가 살짝 자리를 일어서며 말했다.

" 선배.  잠시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


" 어... 그래. 빨리 와라. "



승필 선배는 건성으로 얘기하고
이내 여직원들과의 대화를 이끌어 가는데 정신이 없었다.
명록은 빠르게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갔다.


화장실 따위야 어디 있든 상관없었다.


나와서  사람이 적은 복도로 자리를 옮기자 바로 전화를 걸었다.
익숙한 멜로디가 귀에 들리고 바로 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오빠~~ "


약간 소란스런 분위기.
주변에 어수선한 소리가 들리는데 길거리 같지는 않았다.


아~ 수진아...... 얼굴도   거 같아서 전화라도 하려고...... 어디야? "

" 아..... 뭐.... 괜찮아. 알았어. 일 많이 바빠? "



의외로 밝은 목소리.
수진이 많이 삐져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밝은 목소리로 답해와서 명록은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분명 오후에 문자를 주고 받을 
극도의 저기압이 그녀의 마음에 머물고 있는  분명했다.

근데.....
그새 무슨 일이 있었기에 기분이 좋아진 거지?



" 아...  그렇지. 근데.... 어디야? 좀 시끄럽네? "




" 아~~ 하하하~~ 친구들이랑 같이 놀러왔어. 오빠 너무 무리하지 말고 들어갈 때 전화 한번 주라. "




" 응.... 그럴게. 너도.... 재미있게 놀아라. "

" 응! 그럼 이따 통화해~ 힘내, 오빠~! "


통화 종료.

어렵게 수진과 전화 통화를 한 것인데
왠지 모를 허탈감이 그의 마음에 가득 들어차고 있었다.

나름 수진에게 미안함이 들던 그였다.
거의 일주일 넘게 벚꽃 구경을 가자고 조르는 수진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고
오늘도 결국 같이 가주지 못했던 터라 내심 많이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다.


근데.....
친구들과 논다며 밝게 답하는
수진의 목소리를 들으니 왠지 모를 감정이 마음에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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