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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8화 〉제2부. 프롤로그 : 미안해 (118/195)



〈 118화 〉제2부. # 프롤로그 : 미안해

118.

"하...."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수진이 마음에 드는 죄책감을 뒤로 감추는 동안
그의 도톰한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짓이긴다.


입술이 열리고 술에 젖은 수진의 혀가 습관처럼 그의 혀를 잡아당겼다.
꿀과 같은 달콤함.
정우의 타액이 그녀의 혀에 눈꽃처럼 사르르 녹아 단맛을 내고 있었다.

하아....하아...... "

누구의 숨소리 일까?
정우 오빠?
아니면 나...?


수진의 몽롱한 정신 아래 귓가에 거친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어느새 수진의 블라우스가 정우의 손길에 양쪽으로 열린  풀어져 버렸다.
단정치 못한 옷가지를 내려다보며 알딸딸한 느낌에 천장이 핑 도는 느낌.

하아.....

벌어진 단추 사이로 정우의 입술이 내려가고
그녀의 브래지어 위의 소담한 가슴에 닿았다.

부드럽게 그녀의 가슴을 핥고 있는 정우의 입술.
순간 수진은 이곳이 어디인지 알  있었다.



아.....
그래......
그와 함께 모텔에 들어왔구나......

그전까지는 이렇게 깊은 페팅(petting)으로
발전하지 않게 하려고 애썼던 수진이었다.
시린 느낌이 가슴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그와 비슷한 남자를 보지 않았다면.....
그 남자 곁에 여자가 함께 있지 않았다면.....
그들이 너무 행복하게 보이지 않았다면......
오늘도 이렇게 모텔로 들어오지는 않았을 텐데......




그가 아닌 것을 뻔히 알면서도
수진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술을 마셔댔다.
수진 자신도 이미 과하게 마시고 있는 줄을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 우리.... 오늘밤 같이 있을래? "




감정의 골을 넘지 못하고 정우에게 말했던 그 순간을 떠올리는데....
갑자기 뭉클하고 타인의 입술이 수진의 젖꼭지를 베어 무는 것이 느껴졌다.

뜨겁고 강하게 빨아오는 그의 입술 아래
금세 딱딱해지며 날카로운 쾌감이 온몸으로 퍼졌다.
짜릿한 느낌이 아랫도리 깊은 곳에 잠자고 있던 꽃잎을 울리고
아랫배에 또 하나의 심장이 뛰는 듯한 감각이 피어올랐다.

술기운 가져오는 몽롱함 가운데
하나둘 성감대를 자극하며 피어나는 야릇함에
오랜만의 쾌감이 그녀를 깨우고 있었다.




" 흐으응... "

수진이 낮은 신음소리를 내고는
정우의 머리를 가슴 안으로 끌어당기며 작은 숨을 토해냈다.

거침 숨소리.....
색기 어린 그 목소리.....
그제야 방안을 채우던 목소리가 자신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툭.


수진을 죄어오던 브래지어의 후크가 풀어졌다.
정우가 그녀의 브래지어를 풀어서 앞으로 당겼다.
그녀는 팔을 앞으로 해서 그가 벗겨내기 좋게 거들었다.
시원함을 남긴 채 브래지어가 침대  소파로 사라졌다.

그대로 드러난 수진의 젖가슴이 바로 그의 손 안에 들어갔다.
가슴 가득 느껴지는 따스한 정우의 체온.
정우의 손이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움켜쥐는 순간 미모사처럼 그의 손길에 수진이 움찔했다.
그리고 가쁜 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아.... 오빠... "


쾌감에 눈을 감고 있던 수진의 입에서 참고 있던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바로 눈을 떴다.




오빠....?
오빠......
하....
이 말을 내뱉다니....


순간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그녀를 지배하던 술기운이 확 날아가 버렸다.
꿈결 같았던 유희도 남김없이 사라져버렸다.
수진은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정우를 밀어냈다.




" 응???  그래? "



그녀의 힘에 그대로 뒤로 밀려난 정우.
정우가 그녀의 굳은 얼굴을 보고 입을 열었다.
언제나처럼 그의 손길을 뿌리치던 그 순간으로 돌아온 건가....
-라고 묻는 듯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수진은 그의 시선을 피해 작은 한숨을 몰래 쉬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씻고 올게....."


정우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수진이 먼저 침대에서 벗어났다.
그도 그런 그녀의 발걸음을 잡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한발 물러나 수진을 지켜보았다.

탕.


급하게 욕실 문이 닫히고 수진은 그녀만의 공간에 들어섰다.
그리고
욕실에 들어가자마자 샤워기를 틀었다.

쏴아아아....

시끄럽게 타일을 때리는 물방울 소리에 그녀의 불완전한 숨소리가 묻혔다.


순간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스르륵 주저앉았다.
타일에 부딪히며 이리저리 튀기는 물방울들이
흐트러진 그녀의 블라우스에 튀었지만 수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이런 날이   알고 있었다.
정우와 사귀기로 한 그날부터......
그리고 그간 계속 만나오던 시간 속에서....
언젠가 결국 이런 날이 오리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정우는 그 긴 시간을 잘도 참았던  같다.
갑자기 그의 손길을 뿌리치는 수진의 모습에도 화 한번 내지 않고 오늘까지 왔다.
스킨십이 진해지고 정우가 남성의 본능이 충실하고자 할 때면
언제나 갑자기 찬물을 뿌리며 물러서는 수진의 모습에도 그는 한 번도 화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수 없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젠 누가 먼저 잘못을 했는지 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지금 이러는 자신의 모습이 원래 자신의 뜻인지
아니면 그냥 도망치는 모습인지도 구별 할  없게 되어버렸다.

원망.....


한동안 완전히 지워버린 줄 알았던 감정이 다시 선명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바닥에 쪼그려 앉은 발바닥에
차가운 타일의 한기가 올라오며 수진의 마음을 시큰하게 쑤셔댔다.


오빠라는 단어가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수진은 명록을 떠올렸다.

입에 배어버린 습관.
바보 같은 머리는 " 오빠 " 라는 말 한마디에
그녀의 머릿속에서 명록을 끄집어내고는
그것이 자해하는 칼날이 되어 그녀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잊은 줄 알았는데.....
아니....
완전히 지워버린 줄 알았는데.....

바보 같다.
첫사랑......
그게 뭐라고 이렇게 가슴에 깊이 새겨져.....
지워질 줄 모르는 건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명록의 얼굴은
벌써 닳은 앨범  사진처럼 흐릿하기만 한데,
그를 떠올리고 이렇게 아려오는 감각은 더욱 짙어만 가는 듯 싶었다.

싫어.....
이미 끝난 일이야.....
이러기 싫어.....



수진은 신경질적으로 옷을 벗었다.
이미 흐트러져 제대로 몸을 가리지도 못하는
모습의 옷가지는 벗어 버리고 훌훌 알몸이 되었다.
그리고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기 싫어서 바로 샤워기 안으로 들어갔다.

몸으로 쏟아지는 뜨거운 물줄기에
위로를 받자 울컥 넘쳐흐르는 감정이 조금씩 옅어진다.

수진은 습관적으로 머리를 감았다.
다시 자라난 머리가 어깨를 덮으며 내려온다.
그때의 기억은 머리카락과 함께 잘려나간  알았는데, 어느새 다시 이만큼이나 자라났다.
잘라도 잘라도 다시 자라나는 머리카락처럼
어느새 그녀를 어지럽히는 생각도 끝없이 피어올랐다.

대체 언제쯤.....
명록을 잊을 수 있을까.

거품이 가득 담은 손이 온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까 정우가 만졌던 곳도,
그가 스쳐간 기억도 비누거품을 묻히며
덮어버리듯 수진의 손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샤워기의 물줄기가 그녀를 때렸다.

다시 쏟아지는 물줄기 아래 정성스럽게 칠했던 하얀 물거품이 흘러내렸다.
수진은 물줄기를 따라 내려다보며
어지러운 생각이 저 거품들처럼 씻겨나가길 바랬다.

숨 가쁘게 씻고는 어지러움에 잠시 세면대를 잡고 서있었다.
샤워를 하면 조금 머리가 맑아질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내릴 결정을 후회하지 않을 확신은 생기지 않았다.

여전히 쏟아지는 물소리가 귓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지금 그녀는 유사에 빠져 있다.
발버둥 칠수록 깊이 빠져드는 그곳에 서서....
지금 내릴 수진의 결정이 그녀를
보다 깊은 모래 속으로 끌고 들어갈지,
밖으로 구원해 줄지 알  없었다.


수진은 고개를 들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욕실에는 따스한 물로 인해 하얗게 안개가 끼어있었다.
그리고 거울에도 뿌연 김이 서려있었다.

여전히 샤워기에서는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물에 젖은 머리칼에서....
방울방울 물방울이 떨어지며 시야를 방해했다.

수진은 습기로 뿌옇게 흐려진 거울을 손바닥으로 쭈욱 닦아냈다.
안개처럼 흐렸던 거울이 햇볕에 쏟아지는 한낮처럼 맑아지며
 안에 멍한 표정의 여자가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물에 젖어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
툭 튀어나온 쇄골.
살이 빠지면서 작아진 가슴.
어느새 싱싱했던 시절의 건강함을 잃어버린 그녀....
마치 마지막 한 장의 꽃잎을 매달고 있는
장미의 애처로움을 담고 있는 수진의 모습이 여과 없이 서있었다.

결국.....
자신의 외모를 보면서 깨닫는 것은 이렇게 지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밖에서 수진을 기다리고 있을 한 남자.
박정우.
힘든 시간 그녀의 곁에 있어준 그.

그는 지금 어떤 생각으로 날 기다리고 있을까...

거울에 보이는 자신의 얼굴이 왠지 하얗게 보인다.
굳어진 얼굴.
맑은 입술의 모습이 약간 떨리는 느낌.
다시 거울에 김이 서리고 뿌옇게 흐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이 엉키며, 과거의 비슷한 느낌으로 서 있던 시간이 떠올랐다.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남자가 있고.....
그를 위해 샤워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나갈 준비 하던  시간......


다시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아려오는 통증이 그녀의 눈을 감게 만들었다.
 안이 마르는 듯한 느낌과 함께
얼마 안 되는 침  모금이 힘들게 목을 타고 넘어갔다.
찢어지는 듯한 느낌이 마치 바늘을 삼키는 듯 싶었다.
그리고 타는 아픔으로 마음속에서 외쳐댔다.

대체.....
대체  그런거야?!
왜.....
왜 그랬어.......




다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고 원망이 샘솟듯 그를 향해 피어올랐다.



다.....
이건 오빠 탓이야......
명록 오빠......
왜....

갑자기 눈가가 시끈해지며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그녀의 마음은 고삐를 놓친 말처럼 제멋대로 방황하고 있었다.
수진도 이런 자신이 싫고, 미웠다.


이야기 속 요정에게 제멋대로 구는 이....
이 마음을 주고 차가운 심장으로 바꿔달라고 하면 바꿔줄까?


상처 입은 짐승처럼 숨을 몰아쉬며
다시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속으로 들어갔다.
따스한 물이 그녀의 온몸을 감싸주었다.
그 때문에 우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왈칵 쏟아질 거 같은 느낌에 따스한 물줄기를 한껏 받으며 얼굴을 들었다.


얼굴을 때리는 물방울.
눈물이 아닌.....
샤워기의 물로 그녀의 얼굴을 적셨다.
다시 떠오르는 얼굴.
그리고 겹쳐지는 정우의 얼굴.


미안한 마음.
그 아래 숨어있는 죄책감.....
정우 오빠에게 이래도 되는 걸까?


하나하나 그에게 빚을 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결국 이 모든 것은 수진이 만들어가는 감정의 사슬이었다.
그래서 정우에겐 늘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이번에도 그의 마음에 빚을 만들 것이다.
늘어나고 늘어나서 그에게 드는 미안함은
이젠 물에 젖은 솜처럼 수진을 압박해 왔다.
이젠 아마 청산할 수도 없을 만큼 불어나서
평생동안 갚을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만큼 어마어마한 빚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
이젠 그만 하자.....
이런 식으로는.....
안 돼.....
정우 오빠에게도.....
그리고....
나도.....



수진은 마음을 다잡고 한번 샤워기로 그녀의 몸을 씻어 내려갔다.
한 번 더 깨끗이 물로 헹구며 자신을 괴롭히는 상념을 걷어냈다.
샤워를 마친 뒤 수도꼭지를 잠그고 고개를 들자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선반에 놓인  목욕타올로 그녀의 몸을 감싸고 욕실  앞에 섰다.
그렇게 마음을 먹었음에도 무거워 보이는 손잡이를 보자 다시 망설였다.
하지만.....
무엇이 자신을 끈질기게 잡아 대는지는 알  없었다.

수진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렇게 미적거리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싫었다.
언제나 결단력 있는 그녀였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겁이 많고 주저하는 여자가 되어버렸는지 몰랐다.

눈을 감고 한숨을 쉬며 작게 중얼거렸다.



미안해......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욕실 문을 열었다.
어두운 거실이 시야에 들어왔다.
침대에서 티비를 보며 앉아있던 정우가 고개를 들어 수진을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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