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제1부. # 외전 이야기 셋. 질투는 섹스를 부른다. (6)
113.
누가 봐도 친근해보이던 두사람의 모습.
대학 때부터 그런 모습이었다면.......
이미 아주 오래된 과거라지만 아니 과거일 뿐이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명록의 과거라면 전혀 얘기가 달라졌다.
특히.....
그렇게 예쁜 여자와 얽혀있는 이야기라면
당연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빠가 쫓아다녔다고.......?
그럼?
그 여자는......
오빠의 짝사랑이라는 거야?
치이......
우리 오빠가 뭐가 부족해서 그런 여자를 좋아해?
사귀었던 전 연인도 기분이 나쁘지만,
그 여자는 아무런 감정이 없는데 명록이 쫓아다녔다면 더욱 기분이 나빴다.
대체 명록보다 그녀가 잘난 게 뭐가 있어서 하필 짝사랑의 상대라는 것일까?
이건 옆에서 수진이 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이 되었다.
분명히 착하디 착한 명록이 연주라는
그 여자에게 어장관리 당하면서 대학 시절 내내
이용당했을 게 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아니 생각할수록 수진의 기분은 나빠지기만 하고,
그녀의 얼굴 표정도 딱딱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순간 상규의 목소리가 들렸다.
" 하하... 그래, 수진씨 오해하지 말아요. 연주 좋아한 애들이 한둘이 아니었거든요. 뭐 명록이만 그런 거 아니에요. 걔가 워낙 예뻤어야죠, 울 동기들 중 삼분에 일은 다 걔 좋아했을 걸요? "
그제야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는지
상규가 뒷수습이랍시고 수진을 쳐다보며 말을 꺼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오히려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꼴이었다.
상규의 말대로라면.....
명록이 연주라는 여자를 좋아했다는 건 확실한 사실 아닌가?
거기에다가 연주라는 여자는 처음부터 인기가 많은 퀸카였는데
그런 그녀를 쫓아다니며 헤헤 거리던.....
별볼일 없는 남자 중에 명록도 포함되어 있다는 얘기였다.
연주라는 그 여자의 추종자들 중 한명이라니......
그런 그녀가 결혼하다고 해서 명록이 왔구나...
-하는 생각까지 미치자 수진의 기분은 더욱 험악해져가는 폭풍 속 하늘처럼
급격히 나빠지고 있었다.
우르르쾅쾅!!!!!
벼락까지 치며 일순 어두컴컴한 먹구름이 몰려오는 중이었다.
씩씩...
남자들 눈이 이상한 거 아니야?
저런 불여시 같은 여자의 실체를 왜 못 알아 보는 거야!
어쩐지 딱 봤을때 고단수 어장관리녀 같더라니......
인기 많은 가운데 남자들을 홀리고 다니는
여자 하나 구별 못하고 다녔던 명록에게도 화가 나고 있었다.
수진이 생각하기에 명록의 동기 남자들의 눈이 몽땅 이상했던 게 분명했다.
수진은 차마 입밖으로 화를 표출하진 않고
싸늘한 표정으로 상규를 한번 쳐다보곤 명록을 쳐다봤다.
가뜩이나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데.....
마치 상규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듯
명록이 수진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자, 더욱 화가 났다.
결국 수진은 시선을 돌리고 명록은 신경도 쓰지 않고
스테이크에게 화풀이 하듯 나이프의 날을 세워 계속해서 썰어대기 시작했다.
흥, 나이도 많은 주제에!
뭐가 예쁘다고......
잘 보니까 주름도 보이던데.....
흥!
거기다가 가슴도 완전 뽕이잖아!
아니지.....
이젠 유부녀잖아.
이젠 아줌마라고.....
흥흥흥!
옆에 있는 미주도 아줌마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수진은 속으로 중얼중얼대고 있었다.
그 뒤 시간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엉망진창이던 식사가 그렇게 끝나고,
결국 화가 단단히 나서 찬바람이 쌩쌩 부는
수진의 기색을 봐서 그런지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명록도 다른 친구들은 소개 하지 않고 곧장 그녀와 함께 호텔 결혼식장을 빠져 나왔다.
그들이 밖으로 나오는 길에 미주가 살짝 따라와서는
상규의 말실수가 자뭇 마음에 걸렸는지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고 있었다.
남편이 가끔 헛소리를 잘 하니까 신경쓰지 말라고 덧붙이며 말이다.
나이도 훨 많은 미주의 말에 수진은 괜찮다고...
신경쓰지 말라고 애써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미안하다는 사람 앞에서 화가 났다고 말할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수진의 마음 속에 새겨진 앙금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더 진해지고 있었다.
**************
같이 호텔예식장을 나선 가운데
어느새 수진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명록이 자신을 따라오는지 마는 건지
그녀는 신경도 쓰지 않고 또각또각 하이힐 굽소리를 내며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물론 명록도 그녀의 걸음에 맞춰서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그러나 말을 걸거나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죄인처럼 그저 수진의 뒤를 쫓아오며 그녀의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수진은 그 점이 더욱 화가 났다.
그저 가벼운 과거의 풋사랑 이야기였다면
결혼식에 오기 전에 충분히 말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가 말을 하지 않았다는 건
숨기려고 했다고 밖에 생각 할 수 없으니
당연히 기분이 나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미리 말을 들었다면.....
상규가 그런 말을 했을 때 수진도 충분히 웃으며
장난스럽게 넘겼을 텐데, 명록에 관한 일을 그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전해 듣게 되는 일이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거기에다가....
자기가 이렇게 화가 나있으면 무언가 행동을 해야 하는데
아무 말도 없이 쫓아오는 명록이 괜스레 더욱 미워졌다.
아니 이대로 걸어서는 안 될 거 같았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명록에게 쏘아붙이듯 말했다.
" 오빠. 가자! "
수진은 쌀쌀맞은 말투로 명록에게 말했다.
이른 대낮, 황금 같은 주말에 데이트도 안하고
바로 집에 돌아가겠다고 하는 줄 알고 명록이 화들짝 놀라며 해명을 시작했다.
" 응? 왜 그래....? 벌써 집에 가려고? 정말 화났니? 하..... 상규가 괜히 장난친 거야. 난 연주 안 좋아 했다고. 아놔..... 녀석.... 괜한 소리를 해가지고..... 정말이야..... 연주하고 나는 그냥 친구였어. 딱 친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어. "
수진이 단단히 화가 났다고 생각하는 건지
명록은 구구절절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곤 말하고 있었지만
결혼식장에서의 모습이 계속 오버랩 되면서 그의 말을 순순히 믿을 수 없었다.
" 아니 누가 집에 간데?! 모텔에 가자고! 어서 ! "
그녀는 명록의 팔을 잡아끌면서 근처 모텔을 찾아 거리를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적을 향해 행진하듯 씩씩한 걸음으로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완전히 자신의 남자라고 생각했던 명록에게,
자신이 모르는 여자가 있었다는 생각이 수진의 마음을 화르르 태우고 있었다.
아주 견고하게 이어져 있다고 생각했던 명록과의 관계가....
두 사람의 연인 관계가 사실은 불안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진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끓어오르며
순간 명록의 사랑을 확인 받고 싶어졌다.
누가 말했던가?
남자들의 질투가 더 뜨거운 사랑을 부른다고...
그러나 수진은 또 다른 말에 대해서도 깨닫고 있었다.
여자의 질투 역시......
섹스를 부른다는 것을.
**************
위잉.
징징징징....
지독한 침묵 때문에 엘리베이터 기계가 움직이며
두 사람을 끌어 올리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려왔다.
명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수진을 바라보고 서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명록이 바라보는 수진은 짧은 시간 동안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어 깊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수진은 어디까지나 명록은 자신의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자만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자라오면서 늘 예쁘다고 그리고 똑똑하다고 칭찬을 받아왔고,
가만히 있어도 주변의 많은 남자들이 어쩔 줄 몰라 하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어디를 가든 인기가 있었고.......
어디서든 빛나고 있었다.
그랬던 그녀였으니 명록과의 관계에서도
은연 중에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명록도......
먼저 그녀에게 다가왔던 남자 중 하나였으니까.....
다만 인연이 이어져서 이렇게 수진의 옆에 있지만
수진의 매력에 빠져있다고 어느덧 안심하고 있었다.
그렇게 명록이 완벽하게 자신의 것이라고,
완벽한 자신을 영원히 바라보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그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생각이 오만이었다는 것에 마음이 크게 울렁거렸다.
오늘의 신부......
서연주라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다.
그리고 수진이 가지고 있지 못한 성숙한 여인의 자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아름다운 여자가 명록의 과거 안에 자리를 잡고
그의 마음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수진을 휘감았다.
하얀 웨딩드레스에 면사포를 쓴 연주의 앞에서 웃고 있던 명록의 모습.
그건 수진이 결코 가지지 못할 명록의 과거를 같이 공유하고 있는 사람과의 시간이었다.
추억이라는 과거를 공유하고 있는 여자.
명록의 마음을 아무렇지 않게 가지고 있는 연주라는 그녀의 여유로운 미소.
그런 그녀가 명록과 같이 과거의 시간을 채우고 있다면
과연 정말 아무런 마음이 없었을까?
한순간이라도 명록의 마음을 흔들었을 그녀를 생각하니......
울컥 마음 한구석에 시린 느낌이 올라왔다.
부러웠다.
그리고.....
질투라는 말을 떠올리며 마음 한구석을 움켜쥐었다.
철없던 어린 시절 누구나 겪었던 사소한....
그런 부러움이 아니라 진정한 질투를 처음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연주라는 여자에게 이런 시샘과 부러움을 느끼며
자신의 마음이 찌릿 울리는 느낌을 받을 줄이야.....
아니 질투라는 것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수진에게 있어선 큰 충격이었다.
질투의 대상이 된 적은 있어도 질투를 해 본 적은 처음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느껴본 질투라는 감정은
수진에게서 냉정과 여유를 빼앗고 조급함과 치졸함을 그 자리에 남겨 두었다.
명록.....
그리고 연주가 그와 함께 얼굴을 가까이 하고 있던 광경이 계속 눈앞에 어른 거렸다.
어느새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긴 복도를 지나서 두 사람은 둘만의 공간으로 들어왔다.
아직도 아무 말 없는 수진 때문인지 명록은 어색하게 현관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의 널따란 등을 보며 뒤를 쫓아서 들어가는 수진......
이어서 쾅 소리를 내며 문이 빠르게 닫혔다.
그간 예식장에서 여기까지 오면서 그녀의 마음 속에
아슬아슬하게 넘실거리던 감정이 문소리를 듣는 순간 밖으로 터져 나왔다.
그녀는 명록의 애정을 확인 받고 싶었다.
명록의 마음속에 자신만 존재 한다고 확인받고 싶었다.
불안함은 연기처럼 피어올라 수진의 모든 것을 마비시켰다.
이지를 상실한 동물처럼 그녀는 순간 달려들어서 명록을 벽에 밀어 붙였다.
거칠게 그의 입술을 탐내고, 맹수처럼 그녀를 가로막는 그의 옷을 벗겨냈다.
잘 차려입은 양복이 흐트러지며 바닥으로 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리고 와이셔츠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내기 시작했다.
당황한 명록의 눈이 커지며 외마디 비명처럼 그녀를 불렀다.
" 수...수진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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