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제1부. # 외전 이야기 셋. 질투는 섹스를 부른다. (5)
112.
명록은 왠지 모를 섭섭함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갓 태어난 부부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상규가 말을 걸었다.
" 야~ 명록아. 선배가 아예 주점 하나 빌려서 피로연 한다고 하더라. 말 그대로 거하게 쏜다던데 너 갈 거지? "
돌아보니 그의 눈동자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옆에 미주가 고양이 눈을 하고 쳐다보고 있는데....
이 둔탱이는 놀 생각에 이미 정신줄을 놓은 게 분명했다.
" 아니. 수진이하고 갈 데가 있어서...... "
사실 마땅히 갈 곳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다만 오랜만에 차려입고 나온 터에 정장을 입고 있는
수진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일찍 빠져나갈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 상규는 금세 실망한 표정을 짓더니 얼굴을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이 자식아! 니가 간다고 해야 미주가 나도 가라고 해줄 거 아냐! 우씨! 제대로 협조 못해!'
눈을 부라리는 그의 눈동자에
활활 타는 욕망의 불꽃이 느껴지고 있었다.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와 달리 강렬한 기운이
가득한 상규의 시선이 명록을 압박하고 있었다.
옆을 살짝 보니.....
그새 수진은 미주와 무슨 공감대가 형성되었는지
입가에 가득 미소를 머금고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수진의 얼굴에 약간의 긴장이 엿보였다.
역시 상규에겐 미안하지만 피로연....
아니 뒤풀이는 수진에게 불편한 자리가 될 것 같았다.
신랑이나 신부 둘 다 같은 과 다보니
뒤풀이에서 보게 될 사람들은 상규나 자신은 거의 다 아는 사람들이겠지만
수진은 생판 모르는 사람이 왁자지껄 모여 있을테니 얼마나 불편할지는 뻔한 일이었다.
명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바로 고개를 저었다.
" 흠..... 역시 안 갈련다. "
드디어 상규는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 이 자식 왜 안가?! 다 우리 과 애들 다 모여 있을 텐데 오랜만에 한잔씩 해야지!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술을 마시겠어? 앙! 요 근래 가장 많이 모인 자리일 텐데 안가겠다고?!"
" 그래도, 역시 난 빠질란다. 다른 애들이랑 같이 가라."
" 아씨.... 이자식이 왜 술자리를 빼고 그래. 야! 혹시 거기 가는 게 불편해서 그래? 아! 그러고 보니...... 너 예전에 연주 좋아했지?! "
상규 녀석이 아주 제대로 사고치고 있었다.
순간 명록이 당황했다.
상규가 던진 폭탄이 지금 제대로 머리 위에서 터지는 느낌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명록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 야! 너 지금 무슨 소리야...? "
상규는 그제야 모든 것을 알게 된
탐정의 모습으로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잇고 있었다.
이 녀석은 지금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게 분명했다.
" 어쩐지, 연주만 졸졸 쫓아다니더니, 그때부터 알아봤... 악... 또 그래? "
막을 수 없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상규의 말에
눈치 빠른 미주가 그의 발을 밟으며 막긴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옆에 앉은 수진을 돌아보니 이미 가자미눈을 하고 명록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놔,.....
상규 이 자식...
대학 때 이 녀석과 절친을 맺다니 내 평생의 실수다.......
잠시 이어지는 침묵.
상규는 멀뚱멀뚱 눈을 껌뻑이며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세 명의 얼굴을 보더니 다시 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명록은 속이 터지는 심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알았냐......
아휴.....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사람 만들지?
갑자기 그는 미주의 심정이 이해되는 상황이었다.
상규와 살면서 매일 주먹과 발을 안 휘두르면 그건 사람이 아닐 터였다.
그나마 아주 다행인 것은
그녀는 무술의 유단자라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할 줄 안다는 점이었다.
또 하나...
여기서 유감은 상규의 맵집이 너무도 좋아서 지금까지 살아있다는 점이었다.
에휴....
미주씨 앞으로 좀 더 힘껏 패주세요.......
아무래도 약빨이 약한가 보네요......
딱 세배 강도로 업!
추천합니다...
으휴...
명록이 이를 뽀드득 갈고 있는데 상규의 목소리가 들렸다.
" 하하... 그래, 수진씨 오해하지 말아요. 연주 좋아한 애들이 한둘이 아니었거든요. 뭐 명록이만 그런 거 아니에요. 걔가 워낙 예뻤어야죠, 울 동기들 중 삼분에 일은 다 걔 좋아했을 걸요? "
아휴.....
이 자식아.....!
그 입!!!!
입 좀 다물어라......
그 놈의 입 좀 제~에~발!
명록은 상규의 입에 앞에 있는 냅킨을 쑤셔 박고 싶었다.
수습을 한다고 그가 하는 말이
오히려 명록이 정말 연주를 좋아했던 것처럼 만들고 있었다.
미주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이마를 꾹꾹 누르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아마 식장만 아니었어도 벌써 바닥에 매다 꽂고도 남았는데 유감이었다.
수진은 이제 시선을 명록에게서 떼어내고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냉랭해진 얼굴로 썰고 있었다.
서걱....
서걱......
호텔 샹들리에 조명에 수진의 나이프가 유난히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잘려나가는 스테이크의 고기를 보며 명록은 상규를 노려봤다.
스테이크에서 흘러나오는 핏빛 육즙이 저놈에게서 나왔어야 하는데 아주 유감이었다.
어휴......
이노무 자식을......
그의 시선을 피해 우물우물 고기를 씹고 있는 상규의 볼이 볼록하게 솟아 움직였다.
**************
" 그럼 미주... 씨는 벌써 아이가 있는 거예요? "
" 어머 미주 씨라니 그냥 언니라고 불러. 왠지 나, 나이 들은 것 같잖아. "
수진의 어색한 호칭에 미주가 까르르 웃으며 호칭을 고쳐 준다.
명록 오빠의 친구....
상규라는 남자의 와이프라는 미주는 첫인상부터 마음에 들었다.
서글서글한 느낌을 주는 분위기에 친근하게 자신을 대해주면서도
간간이 자기주장이 강한 것이 수진의 대학교 친구들과 닮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친구들을 만난 것처럼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 그럼 언니....라고 부를께요. 언니는 벌써 아이엄마에요?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
" 후후후 그러게? 누가 8살짜리 애 엄마라고 하면 안 믿는다니깐. "
남자들끼리 서로 이야기를 하는 동안 소외감을 느낀
두 사람은 알아서 어울리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떠들던 미주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수진은 그녀가 갑자기 서슬퍼런 살벌한 눈빛으로
남편을 노려보는 것을 보며 무언가 하는 호기심에 고개를 돌렸다.
그순간....
" 이 자식아! 니가 간다고 해야 미주가 나도 가라고 해줄 거 아냐! 우씨! 제대로 협조 못해! "
낮은 목소리로 조용조용 소근거리는 상규의 목소리였지만 은근히 다 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칵테일파티 효과( cocktail party effect) 라고
자신의 이름이 들리자마자 휙 하고 돌아간 미주의 시선을 그는 전혀 모르는 모양이었다.
으르릉 소리를 내는 듯한 미주의 모습에 수진은 남모르게 혀를 내밀며 웃었다.
미주 언니 화난 거 같은데.....
저 오빠.....
집에 가면 큰일 벌어지겠네.
후후.....
미주는 대체 얘기가 어디까지 가는지 지켜보는 모양이었다.
두 눈에 쌍심지를 킨 채 명록과 상규, 두 사람을 쳐다보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두 남자들은 자기들끼리만 들리는 줄 아는지
미주의 시선을 느끼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야기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결국 대화 상대를 잃은 수진은 집에 돌아가서 미주에게 험한 일을 당할
상규의 안위에 짧은 애도의 기도를 올리며 조용히 스테이크를 입에 넣기 시작했다.
안심스테이크라더니 잘 익은 고기가 입 안에서 얼마 씹지도 않았는데 사르르 녹았다.
과연 일류 호텔 주방의 솜씨였다.
햐아......
역시 돈이 좋긴 하구나.
호텔 예식장에서 결혼식에다가 스테이크 정식을 하객에게 대접이라니......
이런 곳에서 결혼 하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한 걸까?
순간 명록을 자신의 얼굴로 잡아 끌며 배시시 웃던 신부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시 스물스물 그녀에 대한 악감정이 피어올랐다.
괜히 잘 알지도 못하는 연주라는 신부에게 심통을 부리고 싶었다.
체.....
그 여자는 얼마나 잘 살면 이런 곳에서 결혼을 한담?
분명......
남자를 잘 잡아서 그럴 걸거야.....
생긴 것도 딱 불여우잖아?!
별로 잘나 보이는 것도 없어 보였는데.......
아까 전까지 7년 간의 사랑에 감탄하며 박수쳐주던 마음은
어디론가 싹 사라지고 다시 은근히 신경쓰이는 신부의 표정을 보며 마음이 샐쭉해졌다.
아까 테이블마다 인사하러 왔을 때도 아까 신부 대기실에서 보여줬던
그런 모습은 하나도 없이 미소만 짓다가 간 연주의 모습이 영 찜찜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신랑 앞이라고 그런 걸까?
체.......
그럴꺼면서 아까 대기실에서는 머지?
으휴...
정말 완전 불여시네...
흥....
한조각 잘라놓은 스테이크를 입 안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왠지 이번엔 좀더 꼭꼭 씹어 먹는 기분이 들었다.
무심하게 소고기의 맛을 목 안으로 넘기고 있는데
내려보고 있던 시선이 테이블에 꽂혔다.
화려한 샹들리에 조명이, 스테이크가 올려져있는
반짝반짝 하게 닦여진 접시에 비쳐 빛나고 있었다.
입에서 살살 녹으며 사라지는 스테이크를
한 입 다시 집어 먹으니 이번엔 신부가 부러워졌다.
호텔에서의 결혼.
어릴 적 엄마 아빠를 따라 갔었던 복잡하고 시끄러운 결혼식장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루한 식을 끝내고 가서 먹었던....
맛없는 뷔페 음식에 비교하면 새삼 다시 돈이 좋긴 좋구나 하고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면 신부가 얄밉긴 하지만 부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여자라면 누구나 이렇게 완벽하고 호화스러운 결혼을 꿈꾸기 마련이었다.
거기에다가 신부를 사랑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신랑도 옆에 있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의 신부는 완벽한 신부로써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술을 마시겠어? 앙! 요 근래 가장 많이 모인 자리일 텐데 안가겠다고?!"
갑자기 남자들 쪽에서 목소리가 크게 들렸다.
상규가 명록에게 다그치듯 말하고 있었다.
" 그래도, 역시 난 빠질란다. 다른 애들이랑 같이 가라. "
아마도 피로연 얘기을 하는 모양이었다.
명록은 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거 같아 수진도 나름 기뻐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신은 하이힐이 좀 굽이 높아서 아파오고 있었다.
그리 신지 않던 신발이라 발이 저리듯 아파왔다.
평소에 주로 신던 낮은 굽의 단화나 운동화가 너무도 그리웠다.
" 아씨.... 이 자식이 왜 술자리를 빼고 그래. 야! 혹시 거기 가는 게 불편해서 그래? 아! 그러고 보니...... 너 예전에 연주 좋아했지?! "
으잉??????
뭐???
뭐라고?????!!!!!!!!!!!!!!!!!!!!!!!!!!!!!!!!!!
순간 수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신부를 부러워하며 스테이크의 맛을 즐기고 있었는데
방금 들리는 상규의 말이 그녀 마음 속의 평화를 깨뜨렸다.
바로 이어서 당황한 명록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너 지금 무슨 소리야...? "
그와 동시에 수진의 시선이 명록을 향해 휙 돌아갔다.
누가 누굴 좋아했다고?
연주우우......?????!!!!!!!!
상규의 말에 이미 수진의 눈빛이 송곳처럼 날카롭게 빛나기 시작했다.
아까 미주가 그의 남편을 바라보듯 명록과 상규 두 사람을 째려보며 귀를 기울었다.
그리고 자신이 잘못들은 게 아닌지 집중해서 살피고 있는데 바로 상규의 말이 이어지고 있었다.
" 어쩐지, 학교 다닐 때, 연주만 졸졸 쫓아다니더니. 그때부터 알아 봤... 악... 또 왜 그래? "
미주가 하이힐 굽으로 밟아서 눈치 없는 상규의 말을 틀어막는 모양이었지만
이미 그가 내뱉은 말은 수진의 머릿 속에 접수가 되었다.
상규의 말 한마디.
그리고 당황한 명록의 태도!
이 모든 것이 아까부터 느꼈던 수진의 예감처럼
괜한 생각은 아니었다고 한번에 설명해주고 있었다.
역시 두 사람 사이 보였던 이상한 기류가
결코 그녀가 의부증 따위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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