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화 〉제1부. # 외전 이야기 셋. 질투는 섹스를 부른다. (4)
111.
명록의 말대로라면 대학 때부터 사귀고
지금까지의 긴 시간동안 그 사랑을 지켜왔다는 것인데....
일면 대단하게 느껴졌다.
수진이 대충 생각해보아도
지금 자기의 나이 때부터 사귀기 시작해서 스물아홉 살....
대략 칠년 동안 사귀고 결국 결혼에 골인이라니.......
그렇게 오래 사귀면 어떤 기분일까......
짐작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스치고 지나가는 얼굴들.
헤어진 뒤 바로 딴 남자를 사귀는 영연.....
여러 남자를 만나고 있는 나희......
그리고 연애를 무슨 유희처럼 즐기는 설아까지......
수진은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리고
그리고 지금 연애 중인 자신을 떠올렸다.
명록 오빠와 나도 저렇게 오랫동안 사귀고......
결혼까지.....
할 수 있을까?
분명 명록이 자신에게 지금 누구와
비교할 수도 없이 소중한 존재이긴 했지만
과연 이들이 함께 한 것처럼 사랑을 키워갈 수 있을지는....
수진도 자신할 수 없었다.
7년이란 시간......
그 긴 시간을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다만.....
단상 앞에 서있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자기도 그렇게 되었음 하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건성으로 박수를 치던 수진도
어느새 두 사람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마치 저 신부가 자기 자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다니던 결혼식은 지루했었는데,
신랑 신부의 친구들 모두가 명록의 같은 과 선후배로
서로 아는 사이라 그런지 왠지 동창회 아니 축제에 온 기분이었다.
주례가 끝나고 사회를 보는 신랑 친구의 익살스러운
키스 주문이 마이크를 통해 크게 울리자
모두들 하나 같이 키스하라며 외치기 시작했다.
결혼식을 지켜보던 두 집안 어른들도 웃으며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수진과 명록도 사회자의 구령에 따라 하객들과 같이 <<키스해>>를 외쳤다.
신랑은 화를 내려는 듯 짓궂은 후배들을 보며 꾸짖는 것처럼 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그대로 신부의 입술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더니 키스를 시작했다.
열정적인 신랑의 키스에 신부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고
순식간에 식장은 환호성과 박수 소리로 열렬히 화끈하게 뜨거워졌다.
그리고는 키스를 마치고 그들을 지켜보는 하객에게
손을 들고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며 신랑은 열화와 같은 성원에 보답을 했다.
그의 몸짓에 결혼식장엔 다시 와~ 하는 감탄사가 가득차고
결국 사회자가 말리기 전까지 신랑의 키스는 다시 한 번 계속 되었다.
이렇게 막간의 이벤트를 마치고
힘찬 행진 끝과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식을 마쳤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기념 촬영이 시작되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촬영을 마친 뒤 주인공인 신랑신부가 폐백을 위해
식장에서 퇴장하고 식당으로 향하는 인파들로 입구가 북새통을 이루기 시작했다.
수진은 떨어질까 무서운 아이처럼
명록의 옆에 딱 붙어서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걸어갔다.
명록의 팔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보조를 맞추어 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여~ 방명록~! 같이 가자! 아, 혹시 이분이 제수씨?! "
돌아보니 한 남자가 옆에 여자와 함께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명록도 그를 보더니 하하하 웃으며 입을 열었다.
" 야! 제수씨가 뭐냐? 형수님이지, 하하..... 미주씨도 오셨네요? 오랜만에 보네요. 잘 지냈죠? "
명록은 수진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 아, 수진아 인사해. 여긴 내 대학 때 둘도 없는 친구 상규. 그리고 이쪽은 와이프 미주씨야. 하하...."
아.....
대학 때 결혼했다는 오빠 친구?
수진은 상규라는 이름이 낯이 익었다 싶었더니 금세 누군지 기억이 났다.
물론 명록에게 말은 많이 들었지만
직접 그 당사자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약간 깊이 숙이며 인사했다.
얌전한 목소리를 내느라 좀 목에 힘이 들어갔다.
" 아...안녕하세요. 배수진이에요. 명록 오빠에게 많이 들었어요."
수진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미주와 상규를 쳐다보고는 가볍게 인사말을 했다.
다들 예식이 끝나고 움직이는 터라
홀이 워낙 시끄럽고 북적거려서 더 이상의 자세한 인사는 생략했다.
우선 식당에 자리부터 잡자고 명록이 그들을 이끌었다.
그렇게 간단하게 인사만 나누고 네 명은 서둘러 식당으로 향했다.
**************
오호.....
식사가 스테이크 정식이라니.....
하긴....
명록이 연주가 보낸 청첩장을 확인하면서
결혼식장을 호텔로 잡은 것을 보며 돈 좀 썼겠구나....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식사가 스테이크로 나올 줄은 몰랐다.
물론 어른들을 위해 갈비탕도 있기는 했지만 거의 대부분 스테이크를 먹고 있었다.
명록, 수진 그리고 상규와 미주 그렇게 네 명이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앉자마자 간단한 에피타이저와 스프가 먼저 나왔다.
하객이 많아서 서빙 하는 이들의 몸놀림도 꽤 빠르게 움직였다.
스프를 채 마시는 중에 빵도 나오고 샐러드가 나왔다.
상규가 내려진 접시들을 보면서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 이야~ 준석 선배 무리 좀 했나봐? 예식비 엄청 나왔겠는데? "
명록도 말을 받았다.
" 그러게... 호텔에서 결혼이라니... "
사실 연주라면 좀 더 수수한 결혼식을 할 거라고 생각하던 명록이었다.
그러나 그녀도 또한 여자였을까?
한번 밖에 없는 결혼식을 나름 화려하게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준석 선배가 오랫동안 옆에 있어준
그녀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런 자리를 만들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상규는 히히덕거리며 말했다.
" 난 국수 돌리는 것만으로도 힘들었는데...... 글구 그 전날 장인어른한테 맞느... 으악...!!! "
순간 말이 끊어진 상규의 몸이 옆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분명 옆에 있는 미주의 팔꿈치가 암살자가 상대를 해치우듯
엄청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것을 본 명록은 쿡쿡거리며 웃음을 삼켰다.
대학교 때에도 언제나 둘은 저런 식이었다.
임신 후 학교를 일 년 휴학한 미주가 다시 복학한 뒤로
그들은 언제나 같이 다녔는데 입이 가벼운 상규의 브레이크 역할은 그때부터 그녀의 몫이었다.
그게 벌써 햇수로 몇 년인가.
이제 뼛속까지 그간 미주의 가르침이 새겨질 만 할 텐데
여전히 학습 능력 빵점인 상규는 달라지는 게 없는 모양이었다.
상규는 억울하다는 듯 미주를 바라보고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노려보았다.
오랜만에 그들의 친숙한 모습을 보니 명록의 마음이 훈훈해졌다.
연주도 그렇고 이 커플을 보고 있자니
풋풋했던 대학 시절로 이미 돌아가있는 기분이었다.
수진도 티격태격하는 그들 부부의 모습이 재미있는지 웃음을 머금고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
어느새 입구가 시끄러워 시선을 돌려보니
신랑신부가 고운 한복으로 갈아입고 들어오고 있었다.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인사를 주고받는 소리가 들려왔다.
" 선배도 고생 좀 하시겠네요? "
" 연주야 넌 정말~~ 결혼 축하한다."
" 하하.... 선배가 연주를 데려갈 줄은.... 우리 학번에 제일가는 퀸카를 빼앗아 가는 통에 학교 생활이 우울했다고요. 흐흐흐...."
" 에이, 그때 연주는 선머슴 같았다고.... 선배가 아까워요. 하하하. "
" 야! 너 뭐라는 거야. 누가 봐도 어린 내가 아깝지! "
발끈하는 연주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오고 있었다.
명록은 미소를 지으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신랑신부의 발걸음이 그들이 있는 테이블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침내 연주와 준석 선배가 자리에 왔다.
고운 한복을 입은 준석 선배가 입을 열었다.
" 스테이크는 먹을 만하냐? 나름 열심히 먹어보고 골라서 택한 거야. "
" 네. 맛있네요. 하하..... 다시 한 번 축하드려요. 선배. 연주야, 너도 축하한다. "
연주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인사를 받았다.
준석 선배는 상규 쪽을 보며 입을 열었다.
" 그래~ 고맙다. 상규 어서 와라. 제수씨도 오셨네요? 많이 드시고 가세요. 후후..... "
" 축하드려요. 연주씨도 축하해요. "
미주가 먼저 신랑에게 인사를 건넸다.
상규도 뒤늦게 입을 열어서 말했다.
" 하하~~~ 선배 결혼 축하드려요. 선배도 이제 결혼한 유부남이니까 연주 말 잘 들어야 되요. 원래 남편은 부인말만 잘 들으면 만사가 평안하데요. 흐흐. "
그의 덕담에 연주가 풋 하고 웃었다.
명록도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정말 상규....
그 다운 덕담 아닌가.
미주의 서슬 퍼런 압제 속에서
가끔 일탈을 꿈꾸는 그가 이런 소리를 하고 있으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왠지 금방이라도 터질 거 같은 웃음을 참느라 명록은 목에 힘줄이 서는 기분이었다.
준석 선배도 상규의 사정을 익히 알고 있느라 웃음을 참으며 붉어진 얼굴도 답했다.
" 그래... 고맙다. 그.덕.담 마음에 담아두마. 크크..... 아, 피로연 거하게 준비했으니까 참석해라. 상규 넌 특히 제수씨한테 허락 꼭 맡아서 오고."
상규는 그의 말에 서운했는지 바로 쀼루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 에이..... 선배. 제가 잡혀 사는 사람도 아니고 무슨 허락을 받아요? "
아놔.
말을 말지.......
크크크.....
아마 그가 미주한테 잡혀 사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이미 우리학교 학생이 아니라는 것을 정작....
당사자인 상규만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가 재학 중인 동안 학교를 다니던 재학생 중 절반은
정확하게 그리고 나머지 대부분은 어렴풋 하게라도 알고 있었을 거다.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는 명록은 킥킥거렸다.
준석 선배도 큭큭 거리며 말없이 상규의 어깨를 두들기곤 명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가가 실룩 거리는 모습이 억지로 버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 며..명록아. 너도 꼭 와라. 여자 친구도 같이..... 그냥 돌아가지 말고. "
그리고 그의 말에 대답도 하기 전에
이미 몸을 돌려서 연주와 함께 다음 테이블로 향해버렸다.
돌아선 준석 선배의 어깨가 흔들리고 있었다.
명록은 못 간다는 얘기를 하려고 했으나
이미 기차가 떠나버린 플랫폼에 남아있는 것처럼 때를 놓쳐버렸다.
거기에다가.....
연주는 의외로 아무 말도 안하고 미소만 짓고 있었다가 가버렸다.
한마디라도 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수줍은 새색시가 되어버린 그녀의 모습이 왠지 낯설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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