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제1부. # 외전 이야기 셋. 질투는 섹스를 부른다. (2)
109.
" 아... 결혼한다고... 오라고 하네? "
" 으흠... "
수진이 명록에 말에 딱히 흠을 잡지 못하고 약간의 의심을 남겨둔 채로 입을 닫았다.
뭐라고 더 물어봐야 할 거 같은데 질문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명록이 그런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 흠.... 수진이 너.... 나랑 같이 결혼식 갈래? "
" 응?! 뭐라고? "
명록의 말에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던 수진이 깜짝 놀랄 차례였다.
그의 말투로 봐선 그냥 둘러대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결혼식에 가자는 얘기로 들렸다.
그리고 그 말을 듣자마자 그녀는 명록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정말 결혼식에 오라는 전화였던 모양이었다.
여자 만의 목소리로 그에게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에이.....
괜한 의심이었잖아...
내가 오늘 신경이 예민한가?
그나저나 결혼식이라니...
의심은 어느새 싹 사라지고,
이젠 갑작스러운 명록의 제안에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사실 아직까지 명록의 주변 사람들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늘 스치는 말로만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건성건성 들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직접 소개하는 자리는 없었는데,
그의 대학 동기 결혼식에 같이 가자는 말 한마디에 수진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분명 동기의 결혼식이니까 대학 때 사람들이 잔뜩 올게 뻔했다.
그런데 그곳에 자신을 데려가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대학 때 친구들에게 날 보여 준다는 건......
그만큼 지금 우리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겠지?
하아.....
왠지 수진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기쁘기도 하고.....
왠지 무겁게도 느껴지고......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는 생각.
하지만, 결혼식이라니.....
어떻게 하고 가야 좋은 거지?
입을 옷이 있나.....?
명록이 같이 가자는 말에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걱정되기 시작했다.
수진의 나이 이제 스물두 살.
아주 어릴 때 빼곤 남의 관혼상제 행사에 가본 적이 없었다.
옷차림부터 신경 쓰이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거기에다가 친척들의 결혼식도 아니고 명록의 지인들.
결국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여준다는 것 또한 은근히 마음의 부담이 되었다.
우선 수진이 그에게 물었다.
" 흐음, 언제야? "
" 아, 다음 주 토요일이래. 어때..... 시간 되겠어? "
" 응... 알았어. 시간 낼께. "
고민은 했지만 결국 승낙의 말을 하고 말았다.
하긴 같이 가자는 그의 말을 어떻게 거절 할 수 있을까?
물론 강요를 하는 어조는 아니었지만 당연히 가는 쪽으로 이미 결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명록을 아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도 약간 더해져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수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명록이 기분이 좋은지 슬쩍 웃었다.
그리고 그가 팸플릿을 뒤적이는 동안 수진은 머릿 속에 날짜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의 친구들을 처음 보게 되는 자리인데....
잘 보이려면 다이어트도 좀 해서 예쁜 옷을 입어야 할 것 같았다.
아니 그 어느 때보다 예쁘게 치장하고 가고 싶었다.
화려한 깃털을 뽐내며 공작새의 꽁지 깃털을 활짝 펴고 있는 것처럼
자신을 반짝반짝 만들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야 자신을 데려가는 명록도 좀 어깨에 힘줄 거 아닌가.
남들에게 못난 애인을 데리고 온 남자로 기억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
" 어? 입장할 시간이다. 수진아, 우리도 들어가자."
명록의 말에 고개를 들어보니
벌써 상영 시간이 다 되었는지
어느새 전광판에 입장하라는 글씨가 나타났다.
그리고 일주일간의 계획을 세우며 골똘히 생각하던
수진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는 상영관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
화려한 조명 아래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의자에 앉아서 하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은은하게 비치는 흰색 면사포가 그런 그녀의 모습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고 알알이 반짝이는 구슬과 화려한 꽃수가
지금 막 활짝 핀 장미마냥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과연 오늘의 주인공다운 모습.
서 연 주.
그녀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기나긴 연애 끝에 결혼하는 연주의 얼굴에는 행복한 지금의 감정을 가득 담고 있었다.
그녀가 이전 전화로 말했던 것처럼.....
뽀얀 신부 화장을 한 상태였다.
어느 여배우 못지않은 하얀 피부의 얼굴은 평소 엿보이던 주근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오똑한 콧날.
붉은 입술이 물기를 머금은 듯 은은하게 윤기가 흘렀다.
길게 늘어있는 속눈썹.
그녀의 웃음기 가득한 눈매까지....
어디 하나 모자람 없이 아름다움을 더욱 화려하게 꾸며놓은 상태였다.
하긴 대학 시절에도 이미 어느 정도 미모를 뽐내던 연주였다.
다만 수수하게 하고 다녀서 화려하게 빛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인생의 가장 빛나는 지금.
그녀의 미모는 공들어서 한 화장과 함께
할로겐 조명 아래에서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중이었다.
명록은 잠시 하객들 사이에서 그녀를 바라보다가 수진에게 말을 건넸다.
" 신부 좀.... 보고 올께? "
수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 자리에 멈춰서는 사이 그는 혼자 연주를 향해 걸어갔다.
친구들로 보이는 여자들과 잠시 웃으며 이야기 하다가
명록이 다가오는 것을 본 연주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 명록아.... 너 왔구나?! "
반가움이 느껴지는 그녀의 목소리.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어서 그럴까?
연주의 목소리가 왠지 그가 기억하는 모습과는 다른...
여자다운 나긋나긋함을 담고 있는 거 같았다.
명록은 웃으며 말했다.
" 그래...... 이 오빠가 와줘야지. "
" 하하하..... 오빠는 무슨..... 고작 4개월 빠르다고 오빠냐? 아직도 그런 말을 할 줄 몰랐다. 얘. 후후후......"
그녀는 생일이 이월 달이었다.
그 덕분에 남들보다 일 년 빨리 학교에 들어왔고 그것을 알게 된 명록이 언제나 자신을 오빠라고 부르라며 장난치곤 했었다.
오랜만에 보는 연주를 보며
정말 오랜만에 다시 그 낡은 농담을 꺼내보는 명록이었다.
연주도 그런 그의 농담을 잘도 받아주며 웃고 있었다.
아리따운 신부의 모습으로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기억과는 다른....
완전 분위기가 달라져서 약간 어색함이 느껴지던 그는 다시 대학시절,
그 오래전 느꼈던 친근함을 다시 되찾는 기분이었다.
" 그래도 태어난 해가 다르잖아. 후후..... 암튼 축하한다...... 결혼...... 그나저나 정말 예쁜데? 학교 다닐 땐 몰랐는데 완전 예뻐졌다, 이야....... 메이크컵 해주는 사람 완전.... 고생 좀 했겠다. "
그의 말에 연주는 눈을 살짝 홀기며 말했다.
" 어머.... 너 오늘 결혼하는 신부를 상대로 시비 거는 거니? 하긴 네가 여자 보는 눈이 좀 없기는 했지. 아직도 변한 게 없나보네? 하하하..... 넌 전혀 몰랐나 본데 난 원래 예뻤다고. 그리고 네가 알긴 하니? 화장 받는 사람이 훨씬~ 더 힘들어. 훗. "
입술을 삐죽거리며 웃는 모습이 언제나처럼 매력적인 그녀였다.
아마 지금은 일회용 사진기로 그녀를 찍어도 연주의 머리 뒤에서 광채라도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웃으며 얘기하던 연주가 면사포와 같이
흰색 사로 한 겹 더 쌓여있는장갑을 낀 손을 살짝 까닥거리며 그를 불렀다.
명록은 갑자기 왜 그러는 건가 하고 그녀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일정거리보다 더욱 가까워진 명록과 연주의 거리.
그래서 그런데 약간 은근해진 그녀의 목소리가 명록의 귓가를 간지럽히고 있었다.
" 같이 온 저 예쁜 분은 누구니? 설마...... 여자친구? "
속삭이는 그녀의 입술이 유난히 더 반짝거리는 거 같았다.
명록은 그런 연주가 바라보는 시선을 쫓아 뒤를 돌아보니 수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객 가운데에서도 유난히 예쁜 수진의 모습.
큰 눈을 깜박이며 자신이 있는 쪽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명록은 고개를 돌리고 연주를 다시 보며 소리 없이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의 모습에 연주의 눈이 조금 커지며 입가에 놀라움이 머물고 있었다.
감탄까지 엿보이는 그녀의 표정.
" 와...... 명록이.... 어떻게 저런 예쁜 여자 분을 만났니? 몇 살이야? 왠지..... 어려 보이는데..... 빨리 말해봐~! "
진심으로 감탄하는 듯 한 연주의 목소리에 명록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녀석.....
내가 뭐 평생 쏠로로 지낼 줄 알았냐.....
훗....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이로 말하려다가 왠지 수진과의 나이 차를 생각하고는 잠시 나오려던 말을 바꾸었다.
역시 나이로 말하기에는 약간의 쑥쓰러움이 있었다.
" 이제 대학교 3학년이야....... "
다시 커지는 연주의 눈.
이젠 동그랗게 변하는 거 같더니 금세 초승달을 그리며 웃고 있었다.
" 푸하! 하하하하~ 방명록!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완전 도둑놈이구나?! 3학년이면 스물한살? 아니 스물두 살이구나? 하하하..... 어린데다가 이쁘기까지 하다니?! 너 전생에 나라라도 구했나보다? 후후후. "
퍽!
함박 웃음을 터뜨리더니만 신부 복장에 어울리지 않게 살짝 폭력까지 행사하는 그녀였다.
은근히 뼈 속 깊이 아리는 아픔.
이것도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었다.
남자처럼 털털했던 연주는 약간의 폭력성을 가미하고 있었다.
대학 시절에도 이런 식으로 툭툭 주먹을 휘두르곤 했다.
물론 어느정도 가깝다고 하는 사람들 한정으로.
하지만......
도둑놈이라는 그녀의 말이 그리 기분 나쁘게 들리지는 않았다.
연주도 수진의 미모를 인정하는 느낌의 말에 명록도 기분이 좋았다.
여자 친구의 칭찬이라는 것이 이렇게 기분을 좋게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그의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찌됐든......
졸업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동기였던 연주가 결혼을 한다는 게 실감나지 않았다.
하긴 이미 그들의 나이는 이십대의 마지막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렇게 빠른 결혼도 아니었다.
따지자면 오히려 늦은 감도 있는 나이 대였다.
하지만.....
대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그 수수했던 연주가 이렇게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웨딩드레스를 입고 앉아서 예식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현실 같지 않다는 생각에 묘한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결혼.....
가정.......
조금은 나와 거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던
단어가 왠지 바로 옆으로 훅 하고 다가온 듯 해서.....
마음이 조금 싱숭생숭한 명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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