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화 〉제1부. # 11화 오빠, 우리 집에.... 놀러 와요. (17)
86.
" 오빠 안녕~! 후후후~ 영연이랑 데이트 중이었어? "
" 뭐야, 그래서 늦은 거 였구만? "
나희와 설아는 이미 아는 사람인지 친근하게 남자에게 인사를 건너는 게 아닌가?
그 낯선 남자는 수진에게 바로 다가와 서글서글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 안녕하세요? 박재민이라고 합니다. 수진씨 맞죠? 많이 들었어요. "
헐....
그녀의 이름을 아는 이 남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서있는 남자를 보며
인사를 받은 수진이 일단 어색하게 일어나며 인사했다.
" 아....안녕.... 하세요? "
자연스럽게, 혼자 앉아 있던 설아가
그녀들 쪽에 옮겨 앉더니 빈자리에 나란히 영연과 재민이 앉았다.
수진이 의문을 가득 품고 있는 얼굴을 했지만, 나희와 설아는 대답해 줄 생각이 없는지 실실 웃고만 있었다.
" 전에 말한 좋은 소식. "
영연이 살짝 운을 떼더니 테이블 위로 손을 올렸다.
무언가 꼭 잡은 그녀의 손......
재민의 손이 덩달아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 내 남자친구야. 이제 사귄지 3일째, 파릇파릇한 커플이라는 거지. 후후. "
허억!
결국 서...성공 했구나.....?!!!
설마 했는데 정말 스키장에서 남자를 만난 모양이었다.
영연의 말에 수진은 잠시 멍하게 있다가 곧 표정을 수습했다.
그리고 씁쓸하게 웃으며 축하한다고 말을 건넸다.
하......
이래서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고 하나보다.....
영연이 헤어졌다고 통곡하던 때가 바로 어제 같은데.......
고작 한 주가 겨우 지난 지금, 벌써 새로운 남자친구를 만들어서 이곳에 와있다니.......
마치 이혼서류에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바로 다른 남자 옆에 끼고 혼인신고를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우선 수진은 재민이라는 남자에게 물었다.
요것이 어떻게 이 남자를 꼬셨는지 궁금했다.
" 어....어떻게 영연이와 만났어요? "
사실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묻고 있었지만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
그렇게 죽는다,
아프다, 보고 싶다,
슬프다 하더니......
이렇게 빨리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수진에겐 이상할 뿐이었다.
" 그게, 카페테리아 앞에서 쉬고 있는데, 영연이가 딱 우리들 사이로 돌진해서 넘어졌어요. 하하하..... 그때 영연을 부축하고 눈을 털어주다가 눈이 맞았다고 할까요? 하하하..... "
" 우리? "
수진은 자신도 모르게 친구들 쪽으로 시선이 돌아갔다.
설마...
너네들......
가위바위보 해서 남자 사이로 뛰어들어서 넘어지기....
같은 걸 한 건 아니겠지?!
수진이 머릿 속에서 음모론을 생각하며 좌우로 세친구들의 얼굴을 살펴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변 남자들을 스캔하고 고의적으로 접근한 냄새가 풍겼다.
아니.....
확실히 그랬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어차피 첨부터 남자 낚겠다고 출발한 스키장이었으니까!
" 아..... 저도 친구들이랑 함께 놀러 갔었던 참이었거든요. 수진씨까지 왔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 정우가 빠져줬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서로 인원수가 안 맞아서 하마터면 영연이랑 어긋날 뻔했죠. 하하.... "
" 아... 그때, 자긴 빠진다며 방에 들어갔던 그 오빠 맞지? 정우라는 오빠가......"
영연이 재민의 말에 아는 척을 하며 웃었다.
" 응, 잘도 기억하고 있네? 하하.... 우린 넷이 갔었지. 너흰 셋이고. 뭐 정우가 빠진다고 해서 우리끼리 잘 놀긴 했지만.... 후후..... 그러고 보니 나중에 밥이라도 사줘야겠다. 그 녀석 아니었으면 지금도 없었을 거 아냐. 하하....."
" 난 그 오빠 좀 그렇더라. 고고한 표정으로 우리 내려다보는 기분 들었단 말이야. 쳇. 너네 잘 해봐라....라고 말해서 좀 그랬어. 쫌.... 기분 나빴다고나 할까? 암튼 그래. "
설아가 친구인 재민 앞에 대놓고 싫다고 말하자
계속 사람 좋게 하하 웃던 재민의 표정이 살짝 변하는 느낌이었다.
하기사 친구의 험담을 하는 거니 그것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설아는 호불호가 확실한 성격이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감정을 감추는 타입도 아니었다.
하긴 수진의 생각에도 그런 설아의 모습이 좋았다.
괜히 좋은 척 거짓말을 하는 것도 이상할 것 같았다.
물론 자신은 이렇게 설아처럼 행동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재민이 입을 열었다.
" 뭐 그런 의도는 아니야. 알고 보면 괜찮은 놈인데, 좀 답답하게 살지...... 좀 고지식하다고 해야 하나? 몸은 현대시대에 있는데 생각이 좀 조선시대에 가있는 녀석이라 그래..... 하하하..... 몽상가라고 해야 하나..... "
" 어떻게 보면, 그 오빠, 수진이랑 비슷한 것 같지 않아? "
나희가 수진을 가리키자, 영연과 설아가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내가 어디가?!
아니 조선시대 사고방식을 가지고, 답답해 보이고 고지식한데다가 몽상가라니.....
그런 정우라는 사람을 자신과 비교하자 수진이 기분이 상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신과 닮았다는 정우라는 그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궁금해졌다.
술자리는 무르익어가고, 오가는 술잔에 수진도 재민, 두 사람도 조금 친해졌다.
웃음 많고 첫인상만큼 서글서글한 게 나름 괜찮은 남자였다.
입담도 적당히 있고 계속 미소지으며 주변사람을 평안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재주가 있었다.
9시가 슬쩍 넘어가자 별로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영연이 취한 척을 하며 재민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 아잉..... 오빠... 나... 취한 거 같아. "
그 모습을 보며 평소 술고래급인 그녀의 주량을 아는 수진은 속으로 혀를 차고 있었다.
뻔한 그녀의 내숭을 재민은 모르는 건지, 그는 영연의 그 모습이 사랑스럽게 쳐다봤다.
" 그래? 흠..... 괜찮아? 흠.... 오빠가 집에 데려다 줄게..... 저기 미안한데..... 영연이가 많이 취해서, 우린 먼저 들어갈게. "
자연스럽게 그는 먼저 빌지를 들고 계산대로 갔다.
재민이 지갑을 꺼내서 계산을 하고 있는 듯 싶었다.
그리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서 영연을 부축하며 다시 한 번 손 인사를 하고는 나란히 술집을 나가는 것이었다.
수진은 엉겁결에 인사를 하고 그들이 나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나희와 설아에게 물어보았다.
" 아니.... 왜 재민오빠가 계산하는거야? "
" 부자니까. "
나희가 당연한 듯이 말했다.
수진이 질문을 이었다.
" 엥? 부자인지 네가 어떻게 알아? "
" 스키장 주차장에서 봤어. 학생 주제에 차 좋은 거 끌던데? 집이 잘 사나봐. "
" 으... 역시 너희들..... 설마.... "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영연이 넘어진 건 우연히 아니었다.
에휴.....
이 속물들...
수진이 나희에게 눈을 흘기자,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자연스럽게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오히려 너무 태연한 그녀의 모습에 수진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 풉, 야야, 이거 봐봐! 이거 딱 봐도 불륜인데? 푸하하하~ 완전 다급 그 자체네. 깔깔깔. "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하던 설아가 웃기는 사진을 발견했다며
깔깔깔 웃어대자 나희가 머야 하는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바로 설아로부터 휴대폰을 건네받은 나희가 화면을 보더니만 빵 터져서는 금세 따라 웃었다.
" 후후후, 이거 완전 100% 불륜이네..... 하하하~ 잠깐..... 근데...수진아! 여기 왠지 눈이 익는데? 맞아! 맞아! 여기 너네 아파트 아니냐? 후후후후~~~ 니네 아파트 인터넷에 떴다! 하하하. "
" 으응? 우리 아파트?! "
나희가 수진에게 휴대폰을 넘겨줬다.
엉겁결이 넘겨받은 수진은 휴대폰 액정을 바라보았다.
" 맞지? 여기 여기!!! 너네 아파트 맞지!? 여기가 몇 층이지? 이거 누구네 집인지 알아볼 수 있겠어? 이집 부인한테 보여주면 돈 좀 받겠... 야~!!!!!! 수진이 너 남의 핸드폰에 왜 소주를 뿜어! 에이~ 죽을래?!!!! "
물을 마시며 설아의 휴대폰을 받아든 수진이
사진을 보자맞 그만 입안에 한 모금 마셨던 물을 내뿜어 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요란한 수진의 기침소리가 가게 안에 울려퍼지는 중이었다.
**************
일요일 내내 누워서 지냈는데도 아직도 머리가 핑 돌고 있었다.
명록은 자신이 있는 곳이 분명 지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갑자기 이렇게 몸이 천근만근으로 변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목성이 지구와의 중력이 2.7배 차이난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이곳이 목성인 듯 싶었다.
그러고보니 공기도 탁한 기분이었다.
목성이 공기가 좀 후지긴 했지.....
콜록콜록.....
으으...
그래도 이런 감기 때문에 회사를 못 간다는 말은 할 수 없어서 간신히 일어나 회사로 향했다.
박 과장의 도끼눈이 어른거려서 이부자리에 누워있고 싶어도 누워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습관은 이래서 무서운 모양이었다.
전철타고 회사로 들어가 자리에 앉으니 그럭저럭 일을 해치우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며 참 사는 게 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됐든 헤롱거리는 정신을 약기운으로 버티며 오전을 보냈다.
겉보기에도 그의 상태가 안 좋아보이긴 했는지....
갈굼의 대명사 박 과장도 조용히 명록을 바라보고는 슬쩍 넘어가주고 있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평화를 느끼며 점심시간을 맞아서
승필 선배와 함께 뜨거운 황태해장국을 먹고 들어왔다.
속에 따듯해지는 열기를 느끼며 좀 시원해진 목의 느낌에 이제 좀 살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 중이었다.
약도 챙겨 먹고 자리에 앉아서 등을 기대고 잠시 자려는데 전화기에 벨이 울렸다.
아....
제길.....
점심시간에 전화하다니.....
개떡 같은 매너와 마인드를 지닌 사람은 대체 누구야......!
속으로 욕을 하며 수화기를 들었다.
" 네~~ 방~명록입니다. "
순간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 야~~ 사원 방명록. 당장 내 자리로 튀어와라~ 재미난 거 보여주마.... 후후후. "
으.....잉?
아니 이 목소리는.....
승필 선배잖아?
고개를 들어 칸막이 뒤를 보니 승필이 씨익 악마의 미소를 지으며 수화기를 귀에 붙이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의 모습에 명록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야....
그냥 불러도 될 것을......
저 사람 하는 꼬락서니 좀 보소.....
그거 하나 크게 말하기 싫어서
나참......
전화를 걸다니....
정말...
이 사람 어째 말릴꼬.....
푸헐헐.....
그러나 누구의 명이라고 거역할 수 있으랴.....
콜록거리는 기침을 추스르며 명록이 승필 선배의 자리에 갔더니 그는 싱글벙글하며 화면을 가리키고 있었다.
화면엔 어두운 배경에 무언가 있는 모습이었다.
" 야야~~ 너도 조심해라..... 임자 있는 유부녀 건들면 언제 저런 꼴 당할지 모르는 거야. 짜샤! "
유부녀?
뭐야... 이거?
명록은 눈을 가늘게 뜨며 모니터에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댔다.
무슨 싸이트 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가 가리키는 게 사진인 듯 싶었다.
사진 전체적으로 어두운 건 아무래도 밤에 찍은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자세히 보니까 배경은 아파트처럼 보였다.
저기 직선으로 뻗어있는 것은 베란다 인듯 싶었고 저건 에어컨 실외기 같았다.
그리고 그 옆에......
한 남자가 있었다.
유난히 햐앟게 보이던 것은 빨래가 아니라 흰 티셔츠였다.
그 아래 허벅지 위에 보이는 게 아무래도 팬티 바람 같았다.
잠깐.....
저...저거 어디서 본건데?
으잉!!!!!!
이.......
이건......!!!!!!!!!!!!!!!!!!!!!!!!!!!!!
크헉!!!
사진의 모습은 흰 티셔츠를 입은 한 남자가 베란다 실외기 쪽 옆에 결사적으로 매달려 있는 모습이었다.
건너편 아파트에서 멀리 찍은 것이라 흐릿했지만 분명 그건.....!!!!
허거걱!!!!!!!!!!!!!!!!!!!!!!!!!!!!!!!!!!!!!!!!!!!!!!!!!!!!!!!!!!!!!!
순간 명록은 머리가 핑 돌면서 갑자기 현기증이 몰려왔다.
그리고 사진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한밤중의 매달남.......
아흐.....
제발.....
인터넷 검색어 일등 만은 하지 말아라......
휘청거리며 책상을 잡고 비틀거리는 명록을 승필 선배는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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