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5화 〉제1부. 11화 오빠, 우리 집에.... 놀러 와요. (16) (85/195)



〈 85화 〉제1부. # 11화 오빠, 우리 집에.... 놀러 와요. (16)

85.

아들내미 깨우는데 갖가지 스킬을 보유하고 계신 어머니의 기술 중 하나였다.

먼지를 쏙쏙 빨아들이는 힘이 워낙 좋아서
어머니의 큰 사랑을 받는 청소기는 그 성능에 못지않은 엄청  소리도 가지고 있었던 터라
한번 이 녀석이 일을 시작하면  소리가 집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리곤 하였다.

잠귀가 아무리 어두운 사람도 이 녀석이 근처에서 윙윙윙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눈을 안 뜨고 배길 수 없었다.
아마 심봉사도  소리에 눈을 번쩍 뜰 것 같은 녀석이었다.

거기에다가......
지금은 아파서 신경이 바짝 날카로워져 있는 명록이었다.
간신히 골골 대며 얕은 잠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청소기 공격이라니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큰소리로 엄마 그만 좀 하라고 고함을 지를 참이었는데
목소리는 커녕 목이 갈라지는 통증과 함께  소리만 기어 나오고 있었다.
타이어 바람 빠지는 듯한 쌕쌕 소리....
지끈거리는 골머리를 찡그리며 한 번 더 외치려고 소리를 냈으나 마찬가지 소용없었다.

명록은 소리치는 것은 포기하고 차선책을 선택했다.

활짝 열려있는 방문.
엉금엉금 기어서 문이라도 닫으려고 손을 뻗었으나
요놈 마저도 무슨 신기의 회피기술이라도 쓰는 듯 닿을 듯 닿을  도저히 닫지 않았다.


아으으.....
젠장....
미치겠네.......
으....
머리야....

그는 한숨을 쉬며 몸을 일으켰다.
양손을 바닥에 대고 힘을 주는데 팔이 덜덜 떨리는 기분이었다.

바닥에 쳐박혀 있는 머리를 위로 올리자마자 핑그르르 천장이 돌았다.
그리고 기침이 더욱 심하게 쏟아져 나왔다.
숨이 끊어질  콜록콜록 거리며 한참 기침을 하자 눈물, 콧물이 주루루룩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 아예 입으로도 침이 흘러내렸다.


헐헐.....
죽겠다......
아흐윽~!!!
콜록콜록콜록!!!!


순간 등짝에서 짝~! 소리가 나며 뜨거운 통증이 화끈거렸다.
이 찰진 소리.
이 화끈거리는, 익숙한 느낌은......
어머니의 손맛이 분명 했다.

그리고 들리는 연발 사자후.


" 이 노무 자식! 잘 한다! 잘해!! 어디서 찬바람 쐬고 와가지고 콜록콜록 거려! 엄마 앞에서 지금 괜히 아픈 척 하는 거지?! 외박까지 하고 생쑈나하고..... 잠은 집에서 자는 거야..... 어디서 자꾸 밖에서 자고 들어와!!! 에그! 잘한다.... 잘해..... 어서 일어나 밥이나 먹어! 지금 몇 시인 줄이나 아냐, 이 녀석아......! 어서 결혼이나 시켜서 내보내야지...... 다 큰 아들내미 시중이나 들고...... 아이고.... 내 팔자야....... "

으으.....
아버지....
대체 무슨 일을 하시고 가셨기에 어머니가 저리 저기압인가요......
아들...
엄마 잔소리에 죽겠어요.......

명록은 괜한 억울함에 찔끔 눈물이  방울 더 나왔다.
분명 이건 아버지가 남긴 에너지가 더해진 어머니의 울화통이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온몸의 힘을 짜내서 목소리로 전환했다.

" 아흐.... 콜록....콜록..... 나 진짜 아프다구...... 아흐...... 감기 몸살인가 봐..... 죽겠다니까... 콜록콜록! "


그의 말에 어머니는 명록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어머니의 손이 완전 시원하게 느껴졌다.
하긴 명록의 어머니는 손발이 좀 차신 편이었다.

손이 찬 사람은 마음이 따듯한 법이라는데 그의 어머니는 절대 예외였다.
한번 틀렸다 생각하시면 아들의 상황은 관계없이 꼭 고치셔야 직성이 풀리시는 타입이었다.
하긴 가끔 어머니 잔소리에 휭 하니 밖으로 나가는 아버지가 이해되기도 하는 게
항복선언을 해도 끝나지 않는 잔소리 어택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고난이도 고문이었다.

아무튼 지금 자신의 열을 재면 좀 나아질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는데 역시나 어머니는 달랐다.


" 에휴.... .이 열 봐라~!!! 그러니까 바깥 잠을 자니까 이러는 거 아냐! 다 컸다고  맘대로 그럴 거면 어여 결혼을 하던지..... 나는 아들이 외박하는 거 못 본다! 대체 회사 끝나면 집으로 들어와야지 어딜 그렇게 쏘다니고 그러냐? 한겨울에 대체 어딜 다닐 때가 있다고 그러고 다녀....... 어서 밥한 술 뜨고 눕든지 해라. 엄마, 너 밥 먹는  치우고 나가려고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었던 거 몰라? 찬희 엄마랑 약속도 있는데 아들 시중이나 들고 있어야 겠냐? 어머 일어나지 못해?! 밥 먹어야 약이라도 먹을  아냐. 엄살 부리지 말고 어서 일어나! "


다다다다~~
따따따따따~~~
어...
엄마 숨 좀 쉬고 말씀하세요......
그러다 쓰러지겠어요.
흐허허.....


한층  업그레이드된 어머니의 잔소리가 기관총 소리처럼 명록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일 초당 오십 단어를 쏟아낼 것 같은 속도로 뿜어지는 어머니 잔소리 어택에 그는 양손을 번쩍 들었다.

아....
차라리 식탁에서 죽자......
그게 낫겠다.....
으으으......

명록은 몸을 일으켰다.
다리도 후들후들 흔들리고 있었다.
무슨 뼈만 남은 해골이 떨그럭 떨그럭 다리뼈를 떠는 그림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죽어도 식탁에서 죽겠다는 일념으로
명록은 이를 악물고 휘청거리는 몸통을 벽까지 짚어가며 부엌으로 걸어 나갔다.

식탁에는 이미 반찬들이 펼쳐져 있었다.
명록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자마자 어머니가 기다렸다는 듯
 한공기와 콩나물국을 그의 앞에 가져다 주셨다.

우걱.
우걱.

입맛도 없는데 마치 음식물 처리기가 된 기분으로 간신히 입에 쑤셔넣었다.
그나마 콩나물국이 있어서 밥을 삼킬 수 있었다.
다행인 건 하나 더....
뜨거운 국물이 목의 통증을 좀 가시게 해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간신히 밥공기를 비우고 있는데 어머니가 옆에  컵이랑 종합감기약을 가져다 주셨다.

" 먹고 싱크대에 두고 물만 부어 놔라. 이 엄마는 나간다. "

그새 외출복으로 갈아입으신 어머니는 그 말만을 남기고 현관으로 나가셨다.

삐리릭~
탁.

평화를 알리는 정전의 빰빠레.
명록은 문이 닫히자마자 바로 숟가락을 놓아버렸다.
남은 밥과 국은 화장실 변기에 버려버리고 싱크대에 놓고는 수도꼭지를 틀었다.
대충 물 부어버리고 반찬  상할만한 건 냉장고에 넣어버렸다.


으으.....

신음소리를 흘리며 어머니가 갖다놓은 감기약을 냉큼 삼키고는 방으로 들어와 누워버렸다.

조용한 집 안.....
이제 좀 살  같았다.

간신히 세계평화를 만끽하며 감기로 고통받는 몸뚱아리에게
치유와 안정의 시간을  참이었는데 또다시 방해가 끼어들었다.

갑자기 울려퍼지는 음악소리!

랄랄라 띠리링 흥겨운 가락 소리가 울려 퍼졌다.
휴대폰에서 전화가 왔다고 우렁차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 중이었다.

명록은 한숨을 쉬며 손을 뻗어서 전화기를 들어 액정을 바라보니 수진이었다.

이건 받아야 하는 전화였다.
통화를 누르고 귀에다 갖다 댔다.


" 오빠~~~~ 오빠.... 일어났어? "

" 아.... 수...수진아..... "

그나마 콩나물국을 먹었다고 목소리가 제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를 들은 그녀의 음성은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었다.


" 오....오빠!? 모...목소리가  그래? 가....감기 걸렸구나? 괜찮아? "


콜록! 콜록!
아.....
하필 이 순간.......


" 아니... 콜록~!!! 아.... 아니야..... 콜록콜록!!!"


이미 아니라고 말하긴 늦어버렸는데 그만 그대로 말이 나와 버렸다.
수진은 이미 목소리가 급해져 있었다.

어...어제 베란다에 있어서 그런 거지? 아....아잉...... 미안해..... 오빠..... 아휴.... 어떻해..... 약은 먹었어? "


금방이라도  거 같은 그녀의 목소리에
명록은 그나마 어머니에게 입은 상처가 조금 아무는 느낌이었다.

사실 전화받기 귀찮았지만 수진의 관심어린 목소리에 받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자신을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스해지는 느낌이었다.


" 콜록..... 괜찮아..... 약 먹었어...... 넌 괜찮아? 부모님은 별 말씀 없으시고......? 하아.... 휴우..... "


응. 전혀 모르시는 거 같아...... 근데 오빠가 더 아파 보여.... 많이 아파? 오빠.... 괜찮아? 어떻하면 좋아...... 히잉..... "


명록은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어찌됐든 무사히 넘어갔다는 것에 위안을 삼았다.

그나저나 머리가 아파오고 있었다.
감기로 신경이 바짝바짝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미안하지만 수진이의 목소리도 왠지 그의 두통을 덜어주지는 못했다.
마음의 따듯해진다고 몸의 고통이 줄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 아냐..... 하아.... 하악..... 그냥 좀 쉬면 괜찮아질 거야..... 저...저기....  자야겠다.... .약 먹었더니 좀 졸린다..... 콜록.... 콜록! 이따 자고 나서 전화할게....... 하악....하악...... "

그의 목소리에 수진도 계속 전화통화를 하는 게 안 되겠다 생각했는지 말을 받았다.


" 으응.... 그래... 오빠.... 좀 자고 이따 밤에 전화 좀 줘......  걱정하니까... 통화하기 힘들면 문자라도 보내줘? 어여 자. 오빠..... 사랑해..... "


응.... 사랑해..... 콜록콜록...... "

통화가 끊어졌다.
간신히 남친으로써의 의무를 다한 명록은 마지막 기력을 잃었다.
힘을 잃은 팔이 아래로  떨어지며 전화기도 이불 위에 뒹굴었다.


하악.....
아....
죽겠다.....
하악...
하아.....

명록은 거친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몸이 쑥 땅속 밑으로 가라앉는 느낌 속에서 캄캄한 어둠 한가운데로 자신의 몸을 맡겼다.
이 상태 이대로 라면 아무래도 내일 회사도 못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빙글빙글 도는 방 안에 마치 놀이동산의 디스코 팡팡을 타고 있는 듯한 느낌에 취하며 명록은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

**************

수진이 명록과 함께 심장이 쫄깃해지는 스릴 넘치는 주말을 보내는 동안, 스키장을 갔다 왔다는 세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명록이 아프다고 누워버린 상태라 방해할 수 없어서 전화도 못하고 있던 참이라 집 안에서 초조하고 심심한 시간을 보내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것들이 무슨 일이 있는지 자꾸 말꼬리를 돌리며 살살 약을 올리는 것이었다.

아무리 물어도 알려주지는 않고 재미난 소식이 있다고만 하는 말만 하는 영연에게 궁금증이 63빌딩만큼 올라간 그녀는 결국 저녁에 보기로 약속하고 말했다.

그녀들에게 깜짝 놀랄만한 소식이 있는 말 한마디에 일주일 만에 다시 보는 수진이었다.

전화 통화하면서 그녀가 좋은 소식이 뭐냐고 아무리 물어봐도 얼굴 보면서 이야기해야 한다며 말을 피하던 영연이었다.
기어코 꼬셔서 수진을 불러내더니, 세친구 중 나희와 설아는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약속시간이 20분이 지나가도록 영연 만이 혼자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아이....
요것이 피 말려죽일려고 작정했나봐!
 궁금한 건 못 참는다는거 알면서......
암튼.....
이 여우꼬랑지 아홉 달린 기집애.....
씨이.....
암튼 오기만 해!!!!

궁금증이 도지기 시작한 수진이 먼저  친구들에게 입을 열었다.


" 뭔데? 얘! 미리 말해주면 안 돼? 영연이는 10분째 근처라고 하고 오지는 않고 대체 머니....?! "

" 글쎄? 후후후~ 당사자인 영연이한테 직접 듣는 게 좋을 꺼얼~? "

수진의 물음에 나희가 설아와 눈을 맞추고는 웃으며 대꾸했다.
남자친구 때문에 친구들이랑 스키장을  갔더니 왠지 왕따 당하는 느낌이었다.
분명 그곳에서 무슨 일이 생기긴 한 것 같은데, 정작 알려주지는 않고 자기들끼리만 키득 거리고 있으니 완전 따돌림 당하는 느낌이었다.

에이.....
나도 갈걸 그랬나?
계집애들.....
치사하게 말도 안하고......
나쁜 것들!
치치!!!

수진은 섭섭한 마음을 숨기며 소주를 마셨다.
그때였다.

미안, 늦었지? "

영연이 술집 안의 그녀들을 발견하곤, 가게로 들어와서 말을 걸었다.

" 야! 그게 미안한 태.... 어?!"

수진이 울컥해서 입술을 여는데 어쩐지 입이 험한 영연이 이상하게 얌전하게 말을 건다 했더니, 꼬리를 달고 들어오는 중이었다.

처음 보는 남자의 모습.

당연히 그녀가 데려온 남자라면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영연의 남자친구였던 상근인가 싶었는데 천만에 만만에!!!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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