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제1부. # 11화 오빠, 우리 집에.... 놀러 와요. (11)
80.
" 수진아, 몇 반 이었어? "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손에 쥔 명록이 웃으며 물었다.
아.....
대답하지 말까?
잠깐 고민 했지만,
대답을 안 해준다고 못 찾을 것도 아니었다.
은근히 집요한 명록인지라,
아까 스웨터에선 어쩔 수 없이 관심을 떼었으니
다음으로 찾아낸 졸업 앨범은 기어코 보려고 할 게 분명했다.
수진이 조금은 포기한 마음으로 명록의 말에 대답했다.
" 6반..... "
" 6반~? 6반이라... 여기 있다! 근데..... 네가 어디 있는 거야? "
명록이 졸업앨범을 휘리릭 넘겨 6반의 단체사진을 보더니 수진을 찾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에는 훤하게 한번에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데,
명록은 그렇지 않은 건지 잔뜩 신이 난 말투로 40명의 학생 중 수진을 찾고 있었다.
" 푸하, 이거 너지? "
드디어 오른 쪽 끝에 눈을 동그랗게 뜬 수진의 모습 발견하고 명록이 웃는다.
수진이 살짝 눈을 흘겼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으며 앨범을 넘겼다.
또 그녀의 친구들 중에서 수진을 찾는 명록의 시선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빠르게 자신의 사진을 발견한 수진의 얼굴이 갑자기 딱딱하게 굳었다.
미쳤지......
내가 왜 저러고 찍었지?
명록이 발견하기 전에 지금이라도 당장 앨범을 뺏어 숨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명록의 호기심만 자극하고 보여주게 될 것이 뻔해,
다가올 그의 비웃음을 기다리며 수진이 이를 꽉 물었다.
" 푸하하하, 수진아 이거 너 맞지? "
지금의 그녀와 전혀 다른 스타일의 고3시절 그녀의 모습을 결국 명록이 찾아냈다.
왜 저러고 찍었냐 물어본다면 고3이 되고 공부 때문에 미쳐 버려서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었다.
지금이라도 그때로 돌아간다면 수수한 단발에 화장기 없는 얼굴로 찍을 텐데, 시간이 흘러버린 지금에 와서 후회해 봤자였다.
" 으으...... 웃지 마~! 힝!"
버섯머리.
서인영이 신데렐라를 외치며 버섯머리를 하고 티비에 나오던 시절 이후
수많은 여자들이 했던 그 버섯머리가 지금은 흘러가버린 촌스러운 머리가 되어 버렸다.
졸업사진이라고 애써 꾸미고 찍은 사진이었는데 왜 저런 모양이 되어버렸을까......
이래서 연예인들의 졸업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와....
수많은 사람들의 즐거움이 되는게 아마 이래서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꾸민답시고 앳된 얼굴에 진하게 한,
어색한 화장, 특히 쥐를 잡아먹었는지 틴트로 물들인 새빨간 입술이 가관이었다.
거기다가 저 어색한 표정까지......
삼박자가 고루 이루어진, 우스운 그녀의 모습에 명록도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드리고 있었다.
" 학생이 화장도 하고...... 푸하하...... 고등학교 땐 침도 뱉고 그랬던 거 아니야? 이거 내가 조심해야겠는데? "
"우쒸~! 이땐 다 이러고 다녔어! 그리고 난 모범생이었다고! 치치! "
그녀의 사진을 보고 비웃는 듯 한 명록의 모습에 마음이 상한 수진은 졸업앨범 뺏어서 품에 숨겨버렸다.
하지만 그런다고 끝이 날 상황이 아니었다.
그사이 명록은 하나로는 부족한지 다시 책장으로 가서 또 다른 앨범을 빼어 들고 있었다.
자신의 방 안엔 숨겨야 할 것들이 이렇게 많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는 수진이었다.
허억!
저건!!!!
수진은 명록이 뽑아든 앨범 안에 무엇이 있는지 깨닫고 다시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
옆에서 수진이 울상에 가까운 표정으로 고등학교 앨범을 뒤로 숨기고 있는 동안 그는 새로운 앨범을 뽑아 들었다.
좀 더 낡은 사진앨범이었다.
명록이 앨범을 펼쳐보는데 수진의 초등학교 시절의 사진들이었다.
순간 비호처럼 날아온 수진이 앨범을 빼앗았다.
그리고 그녀는 절대 앞은 볼 수 없다고 미리 못 박아두곤 슬쩍 먼저 앨범을 살펴보고 있었다.
푸하.....
고등학교 때 모습 말고도 뭐가 있기에 그러는 거지?
호기심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을 느끼며 명록은 빙그레 웃고 있었다.
살짝 보려고 옆으로 도는데 낌새를 알아챈 그녀가 같이 몸을 돌려 앨범으로 그의 시선을 가로막아섰다.
아까비....
명록은 입맛을 다시며 안타까워했다.
수진은 그가 그러던 말던 꼼꼼히 사진들을 훑어보더니 중간을 떡 갈라서 보여주었다.
어찌됐든 다시 그의 앞에 펼쳐진 사진첩이었다.
명록은 순순히 그녀가 펼친 페이지부터 같이 나란히 안의 사진들을 바라보았다.
처음 눈에 들어온 사진은 평범한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서는 고무줄로 양 갈래 머리를 묶은 소녀가 빙그레 웃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지금 수진의 얼굴이 그 사진 속 소녀 얼굴에서도 느껴지는 거 같았다.
하긴....
어렸을 때 모습인데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겠지만 왠지 신기하게 느껴졌다.
햇볕에 약간 탄 듯한 소녀의 얼굴이 지금 수진처럼 하얗고 예뻐진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귀엽기만 한 입술이 앵두 빛으로 바뀌며 섹시함을 머금고
약간 통통한 볼 살이 쏙 빠지면서 지금의 갸름한 얼굴로 바뀐다는 것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저 시절 소녀는 자신이 이렇게 예쁘게 자란다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그마나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건 커다란 눈망울과 긴 속눈썹인 듯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예쁘게 자란 눈썹과 눈매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뒤로 넘기자 소풍 갔었던 날의 사진들과 생일날 놀러왔던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이 나왔다.
점점 자라나는 수진의 모습이 앨범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빼빼 마른 꼬맹이의 모습에서 자못 여자로써의 모습을 갖춰가는 사진들을 보면서
아까 보았던 고등 학교 때 수진으로 이어지는 것이 왠지 그녀의 어린 시절을 옆에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사진을 바라보던 아까부터 명록의 생각은 다른 부분에 꽂혀 있었다.
수진이 감추고 안 보여주던 앞부분.....
대체 그곳에 무엇이 있기에 절대 볼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걸까?
순간 그의 머리에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명록은 아무렇지 않게 수진에게 입을 열고 있었다.
" 저기.... 수진아~ 나 목마른데...... 시원한 음료수 좀 주면 안 될까? "
" 음료수? 흐음..... 음료수는 없을 거 같은데.... 물이라도 괜찮아? "
옆에 있던 수진이 고개를 들어 명록을 보며 물었다.
명록은 속으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
" 흐음..... 물도 좋지. 아.... 왜 이렇게 목이 마르지......? "
" 감기 기운 있는 거 아냐? 설마 나한테 옮은 건 아니겠지...? 힝..... 물 갖다 줄게, 기다려? "
수진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엌으로 걸어 나갔다.
그녀가 자리를 비우고 문 밖으로 나가자 명록은 바로 앨범 앞쪽으로 페이지를 휘리릭 넘겼다.
순간 그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지면서 입가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 푸하~!!!! "
그가 펼친 페이지 한 면 가득 크게 붙어있는 사진 한 장.
수진이 돌때 찍은 사진인 듯 한데 올 누드로 손뼉을 잡고 있는 사진이었다.
젖살이 그대로 남아있는 아기 때 모습이긴 했으나 이른바 그녀의 누드 사진이었다.
거기에다가.....
볼살이 볼록하게 나온 그녀의 표정이 얼마나 귀여운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웃음기로 얼굴이 터질듯 붉어진 명록은 간신히 소리를 참으며 사진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족두리를 쓰고 앙증스러운 한복을 입은 또 다른 돌 사진들.
아기 옷을 입고 네발 자세로 엉금엉금 기고 있는 사진.
기저귀 차고 만세 하고 있는 사진에서 한 번 더 터질 뻔한 위기를 넘긴 그는 빠른 손길로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다음 페이지를 넘기니 욕조에서 목욕하고 있는 아기시절 수진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작은 아기 욕조에 들어가 있는 수진은 물이 무서운지 거의 울상이었다.
손을 사진기 쪽으로 뻗으면서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거 같은 모습으로
절박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앞에 보았던 커다란 볼살은 조금 빠져 있는 것이
조금 더 자란 듯한 모습이었다.
눈망울이 어찌나 맑은지 호수와 같았다.
정말 아기는 언제 보아도 정말 피부결하며 눈동자가 너무도 예쁘기 이를 바 없었다.
수진 또한 마찬가지였다.
푸하하~
수진이 어렸을 때 이렇게 귀여울 수가 ~~
크크크......
그러고 보니 수진이 부모님은 왜 아기 누드를 이렇게 많이 남겨 놓으신 거야....
하하하하~~
명록은 눈이 완전 초승달이 되어 키득거리고 있는데 순간 문 쪽에서 악 소리가 들렸다.
부엌에서 물을 가져왔던 수진이 그가 앨범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보고 지르는 외마디 비명소리였다.
그러더니 우당탕 소리와 함께 물을 내려놓고 바로 앨범 위로 수진이 온몸을 다해 덮쳐왔다.
고슴도치처럼 둥그렇게 말고는 앨범을 배에 깔고 얼굴이 완전 홍당무가 된 채 명록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 히.... 히잉! 앞에 보면 안 된다고 했잖아~~!!! 오...오빠 일부러 물가지고 오라고 한 거지!!!!! 으으으~~~~ 어디까지 본거야~~~히잉! "
앨범 위에 엎드려 빨개진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는 수진을 보면서 명록이 킥킥거리고 있었다.
" 크크크~~~ 너 아기 때부터 정말 미인이더라~~~ 와~~ 기저귀찬 모습이 타잔에 나오는 제인 못지않게 너무 예쁘던데? 말로 못하겠어~ 그 매력~~ 글구 와~~~ 누드사진 너무 예술이더라. 나도 저 사진 한 장 가지고 싶어~~ 나 작은 걸로 한 장 뽑아주면 안될까? 개구리 공주처럼 볼살 뚱한 게 너무 귀여워서 미칠 거 같더라~ 아하하하~~~~~ "
마침내 크게 웃음보가 터진 명록은 하하하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수진은 앨범을 뒤로 빼돌려 침대 밑으로 휙 집어넣어 버리고
더이상 자신의 방에 그를 두었다간 온갖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을
다 보여주겠다고 생각했는지 급하게 그의 팔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 우....우리~ 오빠~! 여.....영화 보자~~ 응~~! 그래~ 우리 못 본 영화 많잖아~ 영화 보러 나가자! "
명록은 수진의 손길이 이끄는 대로 못이기는 척
몸을 일으키며 아까 보았던 그녀의 아기시절 사진을 떠올리며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
서둘러 끌고 나온 수진에 의해 거실로 옮겨진 그들은 어느새 소파에 나란히 누워있었다.
요즘 영화는 대부분 섭렵한지라 조금은 오래 된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보고 있었다.
약간은 진부한 내용과 영상,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사랑이라는 감정은 변하지 않는지 둘은 조금씩 영화에 집중해서 보기 시작했다.
소파에 나란히 누워있는 모습이 고양이 같았다.
따스한 햇살아래 늘어져 붙어 있는 한 쌍의 고양이들.
수진이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후후 하고 웃자 그녀의 허리를 감싸던 명록이 무슨 일인가 하고 그녀를 쳐다봤다.
" 아냐~ 영화 봐. "
아무 일도 아니라는 그녀의 말에 궁금함을 머금고 있던 명록의 시선이 우선은 티비로 다시 돌아갔다.
턱을 괴고 있는 그의 모습을 힐끔 올려다보자 그녀는 조금은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그녀는 대학교를 다닐 때의 명록의 모습도, 고등학교를 다니던, 더 어린 시절의 그의 모습도 몰랐다.
하물며 그의 집 근처 한번을 가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그 혼자만 자신을 속속들이 알게 된 것 같아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주도권 싸움이라는데 벌써 그는 저만큼 한발 앞서가는 것 같았다.
아니.....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그가 어린 시절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해졌다.
왠지 장난꾸러기 였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아까 낄낄거리던 명록의 모습이 떠올라 저 이마에 딱밤 한대를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녀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화면에서 재미있는 장면이 지나고 있어서 그런지 명록은 수진의 등 뒤에서 후후 소리 내며 웃고 있었다.
그의 웃음에 그녀의 귓가로 명록의 숨결이 느껴졌다.
순간 수진의 마음이 다시 잔잔해지며 따스해지는 것을 느꼈다.
좀 지면 어때?
난 오빠를 좋아하는 걸.......
수진도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내려온 그의 손을 부드럽게 안고,
머릿 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지워내며 영화에 집중했다.
따스한 오후 햇살.
달달한 영화.
자신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그의 팔뚝.
등 뒤에서 느껴지는 명록의 체온.
둘은 영화를 보다가 어느새 지붕 위에서 낮잠을 즐기는 고양이들처럼 조금씩 잠에 빠져들었다.
<<오빠, 우리 집에.... 놀러와요.(11)>> 끝 => <<오빠, 우리 집에.... 놀러와요.(12)>> 로 고고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