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제1부. # 11화 오빠, 우리 집에.... 놀러 와요. (2)
71.
휴우우.....
승필 선배는 옆에서 길게 담배를 내뿜고 있었다.
콜록.....
독한 연기가 코로 들어오고 있었다.
최대한 내색은 하고 있지 않았지만 명록은 담배 연기가 별로 달갑지 않았다.
가짓과의 한해살이 식물.
남아메리카가 원산지.
현재 지구 인구 중 대략 20%가 즐기고 있는 기호품.
수십 종의 발암물질이 있고 직접적으로는 니코틴 중독을 야기한다고 경고도 하고 있었다.
폐암의 원인이라고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절대 사라지지 않는 저 <<담배>>라는 것을 왜 피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명록이었다.
그렇다고 승필에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은 없었다.
간접흡연이 직접 피는 것보다 더 안 좋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렇다고 승필 선배와 함께 쉬러가는 제의 또한 거절해본 적 없었다.
명록은 커피를 홀짝 마셨다.
약간 식은 커피가 슬슬 쓴 맛이 나고 있었다.
승필 선배는 담배를 다시 후욱 내뿜고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양손가락 사이 멋들어지게 끼어 있는 담배 필터가 금색으로 빛났다.
검은 몸통에 빨간 불
그리고 재가 되어 말려가는 회색빛 재.
가끔 옆에서 보면 담배를 피며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승필의 모습이 멋지게 보이기도 했다.
뭐....
그의 말에 의하면 다년간의 연구 끝에 완성한 흡연의 자태라고 하니까
다분 그 모습이 그럴싸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일인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역시나 폼 나게 담배를 피우는 건 맞는 소리였다.
순간......
흡연과 폐암의 문제를 연구하고 국민의 건강을 위해
현대사 최초, 공익을 위한 금연운동을 했다는 국가가 생각났다.
그때 승필 선배가 그곳에 있었으면 과연 담배를 줄였을까.
아마 저 인간은 여자 꼬시기 위한 중요한 스킬이라며 거부했을지도 모르지......
그럼 제복 입은 사람들이 그를 끌고 가서 자아비판을 시키게 하는 거야.
유색인종이니까 혹시 아우슈비츠로 보냈을지도 모르지.
아.....
그땐 일본과 동맹이었기 때문에 아니려나.....
오히려 대접 받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체.......
명록의 상상은 옆에서 끝임 없이 날개를 달고 날아가고 있었다.
최초로 국민을 위해 금연운동을 한 곳은 나치 독일이었다.
언제 영화에서 본 게슈타포가 승필을 심문하는 광경을 상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이, 사랑하는 후배~ 연애는 잘 하고 있나? "
고개를 드니 어느새 담배를 커피 잔 잡은 손에 옮기곤 자신을 보며 싱글거리고 있었다.
명록은 갑작스런 그의 말에 실실 웃기만 하고 대답은 하지 않았다.
**************
갑작스런 질문에 명록이 고개를 드니
어느새 승필 선배가 담배를 커피 잔 잡은 손으로 옮기고는
자신을 보며 싱글거리고 있었다.
명록은 갑작스런 그의 말에 실실 웃기만 하고 대답은 하지 않았다.
연애라......
12월 한 달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속 타며 지내다가 마지막 날 같이 보낸 뒤로
수진과는 별다른 문제없이 아주 일사천리로 데이트하고 있는 중이었다.
생글생글 웃는 그녀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절로 신이 나는 느낌?
이젠 모텔에 들어갈 때도 예전처럼 꺼리거나 망설이던 표정도 없었다.
팔짱을 끼고 다정히 들어가서 그녀와 뜨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하루하루 지금 그가 품고 있는 하나의 행복이었다.
비록 오늘은 수진이 친구들과 만남이 있다고 해서 만나지 않을 예정이지만
요 근래 섹스에 눈을 뜬 것인지 그녀의 변화에 맞춰 달리다보면 어느새 힘이 딸리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
어떻게 보면 이렇게 하루 쉴 수 있는 것이 좀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이제 자신도 이십대의 마지막 년도에 도달해버리지 않았나.
하......
언제나 청춘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도 어느새 팔팔한 이십대와 곧 바이바이 할 나이가 되었다.
이십대....
그리고 삼십대
앞자리수가 바뀐다는 것만으로도
마음 속에서 받는 느낌은 크게 달랐다.
그렇기에 이십대 초반의 수진이 더욱 아리따울 수 밖에 없었다.
젊음이 한껏 느껴지는 그녀의 몸 또한.....
상상으로 떠올리기만 해도 불끈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가는 듯 싶었다.
혼자 므훗한 생각에 피식거리는 명록을 보면서
소리 없이 웃던 승필은 거의 다 핀 담배를 옆 재떨이에 비벼서 꺼버렸다.
그리고 그만의 사악한 미소를 지더니 명록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 자식..... 동정 뗀지 얼마 안되었는데 너무 무리 말아라. 그러다가 니녀석 피골이 상접해진다...... 후후후. "
엥?
무슨 소리인가 흠칫 거리며 명록이 눈을 깜박거렸다.
매일 수진과의 데이트가 되서 좀 피곤하긴 했지만 그런 게 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던 터라 조금 놀라는 중이었다.
한마디에 혼란 마법에 걸린 명록을 뒤에 남기고 먼저 계단으로 내려가던 승필 선태가 쓱 옆으로 돌아서며 말했다.
" 아참! 그리고 피임 잘해라. 수진 씨가 아직 나이가 어리다고 했지? 조심해라. 특히 지금같이 불타오를 때 조심해야 되는 거야. 한순간 잘못했다간 너 그 여자애 아버지한테 죽는 수가 있다. 크크크....... "
그리고 바로 휙 내려가 버렸다.
젠장.....
피골이 상접하다는 소리에 뺨을 만지던 명록은 승필의 말이 왠지 악담처럼 들리고 있었다.
승필은 아무튼 남의 기분 상하게 하는 데는 달인 중 달인이었다.
에효....
이놈의 회사를 옮겨야 내가 좀 살이 붙는데......
명록은 투덜투덜 거리며 마시던 커피를 휴지통에 버리고는 바로 뛰어 쫓아갔다.
꼭 승필 뒤에 들어가면 그 뒤 박 과장과 마주치는 터라
언제나 그의 앞에서 사무실 들어가는 버릇 때문이기도 했지만
왠지 뒤에서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울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
"어~ 여기여기!"
가게 입구에서 그녀의 친구들을 찾아 고개를 돌려 찾고 있던 수진을 먼저 발견한 나희가 불렀다.
그제야 수진이 그녀들을 발견하고는 다가와서 빈자리에 앉았다.
이미 그녀가 도착하기 전부터 달리고 있었는지
테이블 위에는 한쪽으로 밀어둔 소주병들이 꽤 있었다.
" 너희.... 벌써 이렇게 마셨어? "
소주병을 본 수진이 깜짝 놀라 말을 하자 설아가 턱짓으로 영연을 가리켰다.
다들 방학이 되어 바쁜 그녀들이 이렇게 갑자기 한자리에 모인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혼자 술잔을 털어 마시며 자기 잔을 다시 술로 채우고 있는 영연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예전부터 곧 헤어질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긴 했지만 아직까지 만남을 계속 이어가고 있기에 다시 잘 사귀나 했었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헤어졌다는 걸 보면 그것도 아니었나 보다.
" 어~ 수진이 왔냐? 왔으면 술부터 받아."
영연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수진을 발견하곤 비어있던 소주잔에 나머지 술들을 모두 들이 부었다.
" 야~ 그만 줘... 넘치잖아! "
취기가 잔뜩 올랐는지 영연이 수진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술을 따르다가 잔이 넘쳐서 소주가 탁자로 흘렀다.
무엇보다도 술을 사랑하는 설아의 눈이 한순간 날카로워 졌다.
언제나 그녀의 지론은 술 한 방울도 피 한 방울처럼 아끼자 이었으니 저렇게 탁자에 적시는 것에 시선이 사나워지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설아도 영연이 실연을 당해 마음이 좋지 않은 걸 아는 지라 딱히 더이상 뭐라 하지는 않고 넘어가는 중이었다.
" 이게 다 정이잖냐... 정.... 흘러넘치는....빌어먹을 정......씨바..... "
영연이 헤어진 남자친구라도 생각했는지, 커다란 눈망울에 곧 눈물이라도 떨어질 듯 몽글몽글한 물방울이 맺혔다.
그녀도 이런 모습을 보여주기가 싫었는지 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언제나 씩씩하던 영연이 울 정도라니, 늦게 온 수진은 그제야 영연의 상태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런 나약한 모습이라니......
역대로 보기 힘든 광경을 지금 눈앞에서 목격중이었다.
수진도 곧장 입에 술을 털어 넣어 놓고는 조용히 나희에게 속삭였다.
" 그래서 남친한테 차였데? "
" 미쳤니? 내가 차일 사람이야? 당연히 내가 먼저 찼지! "
수진의 목소리가 너무 컸던지 옆에서 영연이 듣고 버럭 소리쳤다.
아니....
차놓고 질질 짜다니,
수진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영연을 쳐다보았다.
영연은 언제 울었냐는 듯 씩씩거리며 또 금세 채워진 술을 꼴깍 넘겼다.
" 찼다며? 왜 슬퍼하는 거야? "
수진이 입을 열자 다들 정말 모르냐는 듯 이상하게 수진을 쳐다봤다.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수진이 여전히 모른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
나희가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마저 빨아들이더니 연기를 내뿜으며 입을 열었다.
" 뭐 뻔하지. 남자가 차기 전에 선수 쳐서 미리 찬 거지만 따지고 보면 결국 자기가 차인 꼬락서니잖니. 그러니깐 저러고 있는 거고. 애초에 한 명만 사귄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라니깐. 쯧쯔...... "
" 야, 시발. 그렇게 말하지 마. 난 너네랑 다르다고! 난 하나만 있어도 좋았단 말이야. 히잉..... "
나희도 속상해서 한 말일 텐데, 그녀의 말이 또다시 영연의 마음에 거슬렸는지 울 듯 말 듯한 얼굴로 나희에게 경고했다.
사실 남자 앞에서 애교를 떨며 여우짓 하는 영언이었지만
일편단심 첫사랑 남자친구를 벌써 2년째나 사귀고 있었다.
지지고 볶고 투덜거리긴 했어도 남친 하나는 극진하게 챙기던 그녀였으니
여럿을 만나는 나희나 설아하고는 다른 연애를 하고 있었다.
" 그럼 왜 찬 거야? 그냥 무시하고 계속 만나면 되잖아? "
영연의 옆에 앉아 있던 설아가 아무 감정 없는 표정으로 불쑥 말을 꺼내자 영연의 감정이 다시 터지기 시작했다.
" 아까도 말했잖아! 그 자식이 바람피우는 거 같다고 몇 번이나 말해! "
" 근데 그놈이 뭐가 아쉽다고 질질 짜!? 네가 질질 짠다고 그놈이 바람 피던 게 없던 일이 되니? 그냥 딱 눈 감고 잊어버리거나 용서하는 거 못하니깐 너도 그놈 찬 거 아냐? 어차피 그 놈이랑은 이젠 영원히 바이바이인데 넌 그놈이 뭐가 좋다고 질질 짜는 거야? "
" 첫 키스도, 첫 경험도... 그놈이었단 말이야... 어떻게 안 슬퍼할 수가 있는데! 흑흑! "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몰아치는 설아의 말에 결국, 영연이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고개를 떨어뜨리고 흐느꼈다.
옆에 있던 설아가 영연을 안아 등을 토닥이며 입을 열었다.
" 차라리 잘됐어. 그놈에 비하면 네가 훨씬 아까워. 세상에 널린 게 남잔데 왜 그런 놈이랑 엮여서 질질 짜고 있는 거냐? 까짓것 더 좋은 남자들 많아."
왠지 설아다운 말이었다.
영연을 몰아세우는 듯 했지만 그녀도 결국 영연이 걱정되어 그녀의 방식으로 위로를 하고 있었던 거였다.
" 뭐 사랑의 아픔은 사랑으로 치료하라고 했다고, 이참에 새로운 남자를 만나 보는 거 어때?.... "
나희도 피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말을 이었다.
" 그러고 보니 겨울이니까 스키장이나 가볼까? 힐링캠프 겸 가서 파릇파릇한 남자도 좀 꼬셔보자. 답답한 서울 벗어나서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 좋잖아. 어때? "
" 뭐? 남자를 꼬신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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