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1화 〉제1부. 10화. 오빠를 돌려줘! (5) (61/195)



〈 61화 〉제1부. # 10화. 오빠를 돌려줘! (5)

61.


왠지 술이라도 마셔줘야  것 같은 꿀꿀한 기분에 마지막 시험지를 던지듯이 조교에게 제출하고 강의실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녀의 친구들을 꼬셨다.


그러나......


머? 수울?! 미안, 난 저녁에 약속이 있어. 다음에 마시자. 뚝! "



" 아직 시험 하나 남았거등! 이년이 누굴 놀리나?!! "




나희와 영연과의 통화에 또  번 완전히 좌절하고 마지막 설아에게 기대를 걸었다.

우리의 사차원 그녀.....
설아!
수진은 그녀가 시험을 보고 있는 강의실 앞에서 초조한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같은 날......
그냥 집으로 들어가기는 죽기보다도 싫었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얼마나 했을까.
마침내 시험이 드디어 끝났는지 굳게 닫혔던 강의실 문이 열리며
시험 감독을 했던 조교가 품 안에 한 아름 시험지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얼핏 열린 문틈 사이로 엿보니
역시나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던 설아가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고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수진은 종종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가 말했다.



" 설아야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 "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던 설아가 물었다.

" 시간....? 왜? "



" 시험도 끝났는데 신나게 놀아보지 않을래? 오랜만에 불타는 밤을 보내자고! 같이 술을 마셔도 좋고 어디 신나는데 놀러 가도 좋고. "



" 아... 불타는 ?. 불타는 밤이라... 잠깐만. "



설아가 갑자기 수진을 불러 세워 두곤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걸었다.
수진이 무슨 일인가 싶어 쳐다보고 있자 설아가 뒤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무슨  좋은 일이라고 있는 건가 싶어 귀를 쫑긋 세우고 그녀의 통화에 집중했다.



" 응, 나 설아. "




전화가 걸렸는지 수화기 너머 남자의 목소리가 웅얼웅얼 들린다.


" 신아, 불타는 밤 어때? 보고 싶어... "

신아?
남자 이름인가?
근데.....
뭐?
불타는 밤?
혹시 나한테 그 사람을 보여주려고 하는 건가?

알지도 못하는 남자를 말도 없이 갑자기 초대하는 설아의 행동에 수진이 넋을 잃고 말았다.
한 번도 보지도 아니....
알지도 못한 남자와 함께 놀고 싶지는 않았다.




암튼....
요년은 정말.....
사람 깨게 하는 데는 머가 있다니까!

수진의 인상이 구겨지는 동안 설아의 통화도 끝이 나고 있었다.


응... 지금 바로 갈게, 거기서 봐. "

" 야! 모르는 사람을 부르면 어떡해! "



설아가 통화가 끝났는지 전화를 끊자마자 수진이 짜증  표정으로 설아를 몰아쳤다.

가뜩이나 오빠를 못 만나서 짜증이 나는데 설아의 남자까지 봐야 한다니!!!


짜증도 이런 짜증이 없었다.
그러나 다음 이어지는 설아의 말은 수진을 완전 녹다운 시켜버렸다.




" 무슨 소리야? 누굴 불러? 난 약속 있어서 먼저 간다? 애들이랑 마셔. "

뭐?!!! "



하지만 자신이 할 말만 남기고는 총총히 사라지는 설아를 보며 수진은 아무 말도 못한 채 바라보고 있었다.


머피의 법칙.
티비 속 몰래카메라를 당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웃겼는데 막상 겪고 보니 허탈해서 짜증도 나지 않는다.

남자친구는 출장.
친구 중 하나는 아직 시험.
하난 약속.
그나마 남아있던......
또 하나는 자신의 눈앞에서 <<남자와의 불타는 밤>> 약속을 잡아 버렸다.


수진을 패닉으로 만든 걸 아는지 모르는지 설아는 이미 저만치 걸어가 계단 아래로 사라졌다.


결국, 전의를 상실한 수진은 갑자기 나타난 나희의 토닥거림에 겨우 정신을 추스르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이라면 나희가 불쌍해 보였는지 수진을 집까지 데려다 줬다는 점이었다.


만약에 그대로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면
버스 안에서 내내 데이트를 즐기고 있을 설아에게
초강력 원한이 서린, 저주의 문자를 보내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조용한 집 안.
엄마라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친구네 집에 놀러 가셨는지 아무도 없었다.

쓸쓸한 기운이 하나 가득한 집에 돌아오자마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그리고 자신의 방에 들어와서는 텅 하는 느낌으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만날 친구들도 없고.....
명록도 볼 수 없었다.



보고 싶은 오빠....



외로운 마음에 핸드폰을 들고 그에게 전화를 할까 하다가 시간을 보니 한창 일할 시간이었다.
그에게 방해라도 될까  결국 통화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그럼.......
문자라도 보낼까 하고 메시지 작성 메뉴에서 쓰다가 지웠다가를 수없이 반복하였다.


보고 싶다고 하면 뻔히 만날 수도 없는데 투정하는 것 같아서 지우고.....
힘내라고 말하기에도 이미 일에 치어서 힘든 사람한테  말도 아닌 것 같아 지우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문자 보다는 직접 명록을 보고 만나서 손도 잡고 품에 안기고
따스한 체온도 느끼면서 조잘조잘 그간 쌓였던 얘기를 하고 싶은데 못한다는 현실이었다.

마침내 이러는 것도 한심스러워서 휴대폰을 손에서 놓아 버렸다.


저편에 던져진 휴대폰 액정에서 눈을 떼고 천장을 바라봤다.


하아.....


길고 무거운 한숨이 절로 새어나왔다.



엄마도 없는  빈 집안이......
이렇게 적막하고 쓸쓸했었나.....




갑자기 아무도 없는 집에서 엄마는 어떻게 시간을 보냈을까 궁금했다.
그리고......
너무 조용한 집 안에 있는 수진 자신이 외롭고 쓸쓸해서 와락 눈물이라도   같았다.



**************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멍한 표정으로 명록은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수진과 철썩같이 약속했던 시간에....
서울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이곳에 서 있는 자신이
마치 왕명을 받아 천리만리 오지로 유배 와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바라보고 있는 하늘도 온통 회색빛.
금방이라도 뭐가 쏟아져 내릴 듯한 먹구름이 온통 뒤덮여 있었다.
바라보고 있는 저 먹구름 가득한 하늘이 바로 명록의 마음과 다를 것이 없었다.

내년 일월, 아니 못해도 설날 전까지 진행되어야 할
중요한 광고 건이 중간에 꼬여서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그것도 명록이 속한 부서도 아닌 타부서에서 진행된 건이었는데
그쪽에서 컴플레인이 두 건이나 터져버리는 상황에서 해당 건까지 문제가 발생하자
날벼락같이 긴급 소방수로 명록이네 부서가 투입된 것이었다.

4박 5일 휴가를 갔다 오자마자 호출된 승필 선배, 명록 그리고 책임자로 박 과장까지 세 명이 급파되서 일처리를 명받은 출장이 결정되었다.

지방 옥외 광고 건에다가 해당 지역에서 진행되는 촬영,
그리고 지자체와 지정업체 간 조율까지 같이 모두 일사천리 일괄 진행되어야 하는 상황이라 결정과 함께 그 즉시 곧바로 서울을 떠나야 했다.


앗 하는 사이 지방으로 날아온 지금.....
수진의 시험이 끝났을 텐데 졸지에 끌려와 버린 명록의 마음은
지금 바라보는 회색빛 하늘과 똑.같.았.다.


흐아.....
휴우........
하아.......


각종 소리를 내며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마지막 수진과의 통화.
숨기려고 하지만 숨길 수 없는....
그녀의 실망감이 담뿍 담긴 목소리.......




그...래? 어...어쩔 수 없지, 머...... 응..... 오빠 조심히 갔다 와........"



" 아냐..... 친구들하고 마침.... 시내 가기로 했어..... 응...... 학교친구들이랑...... 이것 저것 사고 그럴 거야...... "

응..... 오빠.....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하고.... 응. 나도 그럴께....... "



아이구.....
정말.....
뭐라고 말을   없는......
그녀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

휴우우.......


절로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길게 늘어지던 수진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히 떠올라 명록도 속이 타들어 갔다.


얼마나 기다렸던 시간이었나.


그녀의 기말고사 끝나기 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콘서트장도 예매하고 멋진 맛집도 고르고 골라 예약까지 끝내놨는데
졸지에 출장이 오는 바람에 준비했던 모든 것이 몽땅 물거품이 될 상황이었다.


2인으로 예매한 거라 수진에게 따로 갔다 오라고 말하기도 그랬다.
혼자라도 갔다오라고 줄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친구  한 명만 데리고 간다는 것도 그렇고 부모님 모시고 갈 자리도 아니었다.

그냥 예약취소를 하면서 속으로 피눈물이 나오는 기분이었다.

" 야.... 여기서 뭐하냐? 좀 있으면 준비 위원회 쪽 사람들 만나야 하잖아. 명록이  프린트물은 어디다 뒀냐? "

어느새 승필 선배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곧 옥외광고 건과 촬영에 따른 지원으로 행사주체를 맡은 준비 위원회 실무진과의 미팅이 기다리고 있었다.
최초 협의를 뒤집어버리는 바람에 완전히 꼬여버린 관계를 회복하고 다시 협조를 얻어야 하는 자리라 베테랑 승필 선배의 얼굴도 긴장감에 상치 않아 보였다.




" 여기 준비해뒀어요. "




명록은 가방을 열어 프린트물을 보였다.
승필은 그 중 한 부를 꺼내  훑어보았다.




" 오케이. 어서 따라와. 과장님이 너 어디 갔느냐고 성화다. 짜샤. 정신 차려. 여친  만난다고 죽상 하지 말고. "



그의 손이 탁탁 명록의 어깨를 두들겼다.


격려라고 하긴 조금 센 느낌.
아프잖아!


쓰윽 명록이 고개를 돌려 승필 쪽을 바라보자 그가 씨익 웃었다.
승필 특유의 사악한 미소.



으.....
역시 일부러 힘주어 때린 거였어!
젠장!

명록은 앞서 가는 그의 뒤통수를 딱 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미쳐도 하면 안되는 짓이었다.
차라리 그냥 맨땅에 헤딩을 하면 모를까....


고작 할 수 있는 것은 쯧쯧 혀를 차며 벌써 빠른 걸음으로 한참 앞에 있는 승필 선배의 뒤를 쫓아가는 명록이었다.





**************




" 자자~~ 수고했어. 한잔들  들이키라고. "



박 과장이 소주잔을 높이 들고 말했다.
승필과 명록은 그의 손짓에 맞춰 잔을 들고 짠 소리를 내며 건배를 했다.

셋이 각자 흩어졌다가 이제야 다시 뭉칠 수 있었다.

현재 시간  9시.....

저녁도 제대로 못 먹고 뛰어다니다가 다시 만난 거라 밥도 먹을 겸,
술 한잔도 마실 겸 박 과장이 그들을 끌고 들어온 곳은 삼겹살집이었다.

생각보다 푸짐하게 나온 반찬들을 주워 먹으며 고기를 굽고 있었다.
먼저 서비스로 나온 된장찌개가 구수하니 속을  풀어주었다.

역시 날이 춥다 보니 따듯한 국물이 최고였다.


그래. 승필이 니 쪽은 어떠냐? "

어느새 말을놓고 이야기 하는 박 과장이었다.
하긴 회사 선배이자 연장자인 그가 이러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 흡흡..... 뭐.... 그럭저럭 이요. 옥외 광고를 설치하기로 했던 곳에서 항의가 들어온 거라.... .우선 부지 근처 마을 사람들과 만났는데 이장님이  연결해줘서 우선 좋은 인상으로 마쳤습니다. 한 번에 바로 승낙은 어려워 보이고 혹시나 해서 정말 옮겨야 하면 다른 장소로 물색해두긴 했는데 역시 처음 장소가 제일 눈의 잘 띄는 곳이니까 일단은 거기를 위주로 추진할까 합니다. "



승필은 애써 씹고 있던 삼겹살 쌈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줄줄 말하고 있었다.

역시 승필 선배.
말만 들어선 거의 끝난 일처럼 들린다.



참......
능력도 있고 여자도 잘 후리면서 왜......
인간이 성격은 더러운 거야.....
혹시 컨셉인가?
이 사람.....

쿡.

갑자기 승필 선배가 찔러대는 팔꿈치가 옆구리를 찔렀다.
욱하는 느낌과 함께 바라보니 그의 눈초리가 무언가 신호를 주고 있었다.


아차 하는 생각에 보니 박 과장이 소주병을 들고 그에게 따르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명록은 서둘러 자신의 잔을 들어 앞에 들었다.

박 과장은 흠흠 소리를 내며 소주를 따르며 말했다.
안경 너머 그의 눈초리가 사납기 짝이 없었다.

" 짜식.... 정신줄을 놨구먼? 광고 촬영 건도 이런 식으로 정신줄 놓고 처리하고 있는 거 아냐? 이거 불안하네... .불안해..... "




























<<오빠를 돌려줘!(5)>>  끝 => <<오빠를 돌려줘!(6)>> 로 고고씽!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