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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화 〉제1부. # 10화. 오빠를 돌려줘! (4) (60/195)



〈 60화 〉제1부. # 10화. 오빠를 돌려줘! (4)

60.



통화가 안되자 사내메신저로 날아드는 쪽지들 공세에
모니터 오른편 아래 깜빡거리는 수신 알람이 10초에  번씩은 반짝거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니 지금은 거의 몇초 단위로 깜빡이고 있었다.

명록은 이를 뿌드득 갈며 한남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으......
나를 버리고 혼자 살겠다고 튀어버린......
나아쁜.....
자식.....

그저께 승필선배는 퇴근하며 그의 하얀 이를 반짝 보여주고는
브이 자를 양 손가락으로 그리던 모습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휴가라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설마 이렇게 바쁜데 진짜로 혼자 가버릴 줄은 몰랐다.


그러나.....
그는 냉정히 명록을 버리고 떠나버렸고......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업무 폭탄이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특히나 승필 선배의 빈자리가 어떤 것인지 아주 뼈 속 깊이 새기는 중이었다.



" 후후훗...... 아끼는 후배사원 명록아. 이 형님은 스키장에서 아리따운 처자들과 잠시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고 오마? 며칠되지 않으니까 조금만 버티고 있어라. 으하하하. "

사악한......
악마 같으니......
젠장.....
분명 이건......
지난 주 같이 술을 마시자고 한 말을
내가 수진이 때문에 안된다고
퇴짜 놓은 거에 대한 복수야......
미쓰 최하고 미쓰 박까지 섭외했으니까
나와서 머릿수 채우라고 한 것을
안된다고 할 때.....
그래...?
하던 선배의 표정이 바로 이런 의미였구만.....
헐......
그때 눈치를 깠어야 하는 건데...
뽀드득....



명록은 이를 박박 갈며 모니터를 노려보며 자판을 두들겼다.
어느새 오른쪽 귀와 어깨 사이에 놓인 전화는 끊어졌다.


드드드드~~


순간 책상 저편에 놓인 휴대폰이 부르르 경기를 하고 있었다.
바로 집어들어서 액정을 살펴보니 수진이었다.

문자메시지.....


확인.

그녀가 보낸 문자가 열린다.

[ 오빠...... 보고 싶다....... 많이 바쁘지......  지금 도서관..... ]

명록은 자판을 두들겼다.

[ 나도 그래..... 점심은 먹었어? 오늘 시험 봤겠네..... 잘 봤어? ]

전송.

문자가 전달되었음을 보여주는 액정을 잠시 바라보는 사이 바로 부르르 휴대폰이 울렸다.

[ ㅎㅎ 그냥 그래. 별로 생각이 없어서..... 샌드위치 하나 먹었어. 오빤 점심 잘 먹었어? ]

명록의 손이 바빠졌다.


이론..... 제대로 먹어야지.   챙겨 먹어. 혼자 먹지 말고 친구들이랑  같이 먹고. ]

전송.

그냥 그래.....
-라고  거 봐선 분명 시험을 잘 본 게 분명했다.
아마 잘못 봤음 문자에서 어둠의 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단어와 문장이 왔을 것이다.
수진이는 나름 자신의 일을 잘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귀여운 그녀가 웃는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하아....
그녀의 곁에서 식사라도  챙겨주고 싶다.
아니.....
그냥.....
그녀가 보고 싶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시험준비.....
기말고사 전 리포트를 준비할 때부터 만나지 못했다.
통화도 될 수 있으면 짧게 하고, 혹시나 공부하는데 방해되지 않도록
일과  시간에는 전화통화도 삼가고 있었다.

가끔 수진이 서로의 암묵적인 약속을 깨고 연락하긴 했지만
명록은 될 수 있는 한 그녀에게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참고  참았다.
이게 잘하는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시험에 도움은 되지 못할망정 방해가 되고 싶진 않았다.

휴우......

 한숨이 입에서 새어나왔다.


그러나 역시....
본심은 그녀를 보고 싶었다.
만나서 안고 싶고 둘만의 장소에서 그녀를 끌어안고 싶었다.
성욕.......
-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그녀가 그리운 거라고 생각한다.


부르르~


손에 잡고 있던 휴대폰이 다시 몸을 떨었다.
수진의 문자메시지.


[ 그럴께..... 오빠..... 보고 싶어. 어서 시험 끝났으면 좋겠다.......]


명록은 그녀의 문자에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자판 위에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나도 보고 싶다. 힘내. 시험 끝나면  보자. 우리.]

문자를 전송하고 바라보는데 저편에서 사무실에 들어오는  과장의 얼굴이 보였다.
얼굴에 벌써 불만이 가득한 것이 심상치 않았다.


아니나다를까.....
바로 명록을 향해 최단 코스로 항로를 잡은 그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박과장과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명록의 심장은 압박과 압력에 바로 짜부러드는 느낌이었다.

아.....
젠장.....
죽겠다........
도망쳐버릴까.....?




왜 노비들이 도망쳤는지 동감 백퍼센트에 동그라미를 치며
명록은 휴대폰을 슬그머니 내려놓고는 모니터를 보며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




부모님 적에, 아니 90년대만 해도 놀고먹자 한다는 대학생이지만,
지금의 대학은 지성의 전당이 아닌 취업을 위한 수료 과정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청년 실업이 당연한 시대인 지금은 다들 리포트 한번, 시험 한번이 미래 취업을 위한 큰 경쟁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시험기간을 맞이한 도서관은 매일매일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빈자리도 없이 모두 꽉꽉 들어찬 도서관은 그들이 뿜어내는 이산화탄소로 가득 차서는 오히려 덥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하루, 이틀 시험기간이 가까워질수록 도서관에는 좀비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새벽의 저주라도 찍는 건지, 좀비처럼 늦은 새벽까지 도서관에서 방황하다가 그대로 도서관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바로 강의실로 통학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성적에 유난히 욕심이 많은 수진도 예외는 아니었다.
잔뜩 밀려있는 전공 공부, 책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한숨만 나왔다.
연애한다고 그동안 수업에 성실히 하지 않았더니 예전보다 공부할 양도 배는 늘어나 있었다.
예전과 달리 늘어난 공부량을 볼 때마다 수진의 마음은 다른 때보다 초조하고 바빠졌다.

해가 지고 밤이 깊어지자, 열람실은 알이 빠진 옥수수처럼 군데군데 빈자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시계의 짧은 바늘이 어느새 11시로 움직이자 웬일로 열심히 공부하던 영연이 일어나고, 곧이어 독종인 설아도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수진은 집에 갈 수 없었다.
아무래도 오늘도 밤을 새야   같았다.

공부를 해도 줄어들지 않는 페이지에 서서히 수진도 지쳐가기 시작했다.
점점 집중력이 흐릿해지기 시작하고 여러 번 읽어도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항복하고 백기를 흔들었다.


그녀는 책에서 시선을 떼고 휴식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진의 뒤에서 유일한 동료인 나희는 아직 공부를 하고 있었다.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책을 보며 옆에 요약하고 있는 모습이 평소 그녀답지 않은 느낌이었다.

수진은 그녀도 불러 같이 쉬러 나갈까 했지만, 나희가 자유롭게 살기 위해 이렇게 목숨을 걸고 공부하는 걸 알고 있던 터라 망설이고 있었다.
결국 이러고 서있는 것조차 나희를 방해하는 것 같아 등만 바라보다가 결국, 혼자 열람실을 빠져나왔다.

가볍게 바람을 쐬기 위해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바람이 그녀의 졸음을 완전히 날려버렸다.
으슬으슬 추웠지만 벌써 들어가서 공부할 마음도 생기지 않아서 수진은 가볍게 도서관 주위를 따라 걸었다.

달마저 숨어버려 어두워야  밤하늘이지만 멀지 않은 곳에 빌딩들이 야경을 빛내고 있었다.


높다란 빌딩의 숲.
하늘에 맞닿아 있는 기둥처럼 보이는 그곳.......
그녀가 바라보는 저 많은 건물  하나에 명록이 있을 것만 같았다.

수진은 갑자기 떠오른 그의 생각에 휴대폰을 켰다.
휴대폰 대기 화면  명록과 자신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
오빠.....
보고 싶어.....



혹시나 연락이 왔나 싶어 휴대폰을 확인했지만 새로운 연락은 없었다.
마지막 받은 메시지.


[나도 보고 싶다. 힘내. 시험 끝나면  보자. 우리.]

마지막으로 받은 문자 메시지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수진의 눈동자에 약간의 섭섭함이 지나간다.
공부하라고, 방해하지 않으려고 그가 연락하지 않는 것에 대해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마음 한편으로 섭섭함이 드는 건 어쩔  없었다.

시험 끝나고 보자는 말이 배려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자신은 여전히 보고 싶었고......
그 마음을 몰라주는 명록이 서운했다.

치....
이럴  그냥 잠깐 저녁때 와주면  되나.....


드라마처럼 그가 갑자기 나타나는 상상을 해본다.

갑자기 울리는 휴대폰.


'수진아 나와!'

그리운 그의 목소리가 그녀를 부른다.


갑작스러운 명록의 방문......


놀랍기도 하고 반가움에....

기쁨으로 활짝 웃으며 그를 만나러 가는 자기 자신.


하지만 상상  그녀는 현실의 그녀와 달랐다.

지금 당장 데이트라도 나갈 것 같은 상상 속 그녀와 달리

현실의 자신의 모습은 질끈 묶음 머리.......
범죄자처럼 얼굴을 가리기 위해 모자 푹 눌러쓰고 있었고........
검은 뿔테안경을 쓰고 나 공부 중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누가 봐도 시험기간 속 폐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으.....
이런 모습.....
절대.....
오빠한테 보이고 싶진 않아!



수진은 누가 보는 것도 아닌데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빠르게 도서관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공부!
공부!
공부를 해야지~!




얼음처럼 차가워진 몸 덕분에 공부할 마음이 다시 생겼다.
자리에 앉은 그녀는 작게 기합을 넣곤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순간 다시 스치는 마음.

그래도....
명록이 보고 싶긴 했다.
 십 분만이라도.....


그새 초췌했던 자신의 모습이 흐릿해지기라도 한 건지,
쓸데없는 생각에 잠시 멍해진 머리를 다시 한번 세차게 흔들었다.
그리고 수진은 안경을 한번 위로 고쳐쓰고는 다시 전공 책에 머리를 파묻었다.




**************




불야성을 이루며 공부하던 때를 모두 잊어버린 듯
시험이 끝난 대학가는 어느새 모습이  바꿔있었다.
 겨울방학의 헤어짐이 아쉬운 건지 다시 고주망태가 된 학생들로 시끌벅적했다.


 와중에 수진이도 다른 학생처럼 마지막 시험을 치렀다.

원래 생각대로라면....
시험이 끝나면 신나는 기분으로 명록을 만날 약속을 잡고 그 준비에 분주했어야 했다.
그리고 저녁 시간대쯤이면 오랜만에 그를 만나서 맛있는 것도 먹으며 명록과 함께 데이트를 즐겨야 하는 게 <<원래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
특히 회사에 얽매인 몸이라는 것이
이렇게 불합리한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수진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받는다는 것이 어려운 일인 줄은 알았지만, 아니..... 이렇게 갑자기 출장이라니!!!!!


기다리고 기다렸던 시험....
마지막 날이었다.
공부하면서도 그와의 만남이 임박했음에
설레는 마음 한구석을 부여잡고 공부에 집중했었는데
갑자기 걸려온 그의 전화에 모든  날아가 버렸다.

지방 출장?!
그것도 크리스마스에 아슬아슬 걸쳐 있는 기간에 멀리 지방출장을 떠나야 한다니.....

실망....
실망......
아니, 이건 절망에 가까운 몰락이었다.

그동안 못 만났던 것은 수진의 시험 때문이고,
지금  만나게  것은 갑자기 생긴 회사일 때문이라
그 와중에 명록의 잘못은 하나도 없었지만
수진은 괜히 심통이 나서 전화를 끊고 나서 마음 속으로 그에게 투덜거리고 있었다.

물론 통화하면서는 이런 마음을 들키지 않게 조심은 했었다.


하지만.....
아마도 기운이 빠져있는 목소리는 그대로 나갔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학기도 이렇게 끝나고 시험에 얽매어 있던 시간도
마침내 모두 종지부를 찍은 지금 이 순간.......
홀가분하게 느껴져야 할 해방감은 데이트의 좌절로 완전히 구겨져 있었다.

기분전환.....
그래, 이런 기분.....
확 날려버릴 기분전환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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