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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화 〉제1부. 10화. 오빠를 돌려줘! (3) (59/195)



〈 59화 〉제1부. # 10화. 오빠를 돌려줘! (3)

59.

생각지도 않았던 수진의 전화.
방금 헤어지고 집에 들어간 그녀가 전화를 걸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다.
반가움에 바로 통화를 받으니 수화기 너머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 오빠. 나 들어왔어. 지금 가는 중이야? "

어느새 그녀의 말이 짧아졌지만, 그것도 듣기 싫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왠지 더 친근해지게 느껴졌다.

" 응. 어서 씻고 자지 그랬어..... 피곤하잖아. "

" 아냐. 오빠하고 통화하고 싶어. 나중에 전화 끊으면 그때 자도 돼. 오빠.....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헤헤...... "



그녀의 쑥스러운 말이 명록을 웃게 하였다.
찬바람도 어느새 휴대폰 열기로 녹아버린 느낌이었다.



나도..... 네 목소리 들으니까..... 좋다. 하하....... "

전철역에서 회사로 가는 동안 사람이 얼마 없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깨달았다.
수진과 조용조용하게 통화하며 텅빈 전철의 풍경을 만끽하고 있었다.
하긴.....
이 시간에 회사 가는 사람은 아마 명록 혼자뿐일 것이다.


그래도 어떠하랴.
긴 밤 수진을 품에 안고 있었고 또 그녀를 집에 데려다 주는 동안 내내 함께 있었다.
그리고.....
출근하는 이 시간도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같이 하고 있었다.
새벽에 너무 일찍 모텔에서 나올 때는 아쉽기 짝이 없었지만 그 덕분에 이런 호강을 누리는 중이었다.


전철역 정거장이 한참 많이 있었는데도 어느새 그녀와 얘기하다 보니 회사에 가까워져 있었다.
검은 그림자로 높다란 빌딩이 그를 맞이하고 있었다.


사무실이 그나마 낮은 층이라 다행이었다.
엘리베이터로 들어가면 전화가 끊어질까봐 비상구 문을 열고 계단으로 들어갔다.
위로 한계단 한계단 걸어 올라가며 그녀와 통화를 계속 이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보안키를 대로 사무실에 들어왔다.


아무도 없는 텅빈 사무실......
꺼져 있는 조명을 드드득 켜면서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아마 사람들이 오려면 한참 시간이 흘러야 할 것이다.




" 나 이제 사무실에 들어왔다. 아.... 이렇게 빨리 출근한 적은 아마 오늘이 처음   같아. "



후후.... 왠지 미안해.  때문에 많이 피곤한거 같아서...... "

" 푸하.... 피곤하긴..... 수진이 너만 보면 난 어떤 피로회복제보다 좋더라. 보기만 해도 힘이 쑥쑥 솟는다....... "




에이..... 거짓말. 후후후...... "



" 아쉬운 건..... 고등학교 때 널 만나지 못한 거야. "

" 오빠 고등학교 때? 왜에? "


수진이 궁금한 목소리로 물었다.
명록은 말을 이었다.



" 너를 진작 만났으면 고등학교 다니면서 지각 한번 없었을 테니까..... 하하..... "




순간 수진이 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어라....?
내가 무슨 말실수 했나?


명록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수진의 말이 이어졌다.


" 하하하하~~~ 오빠 바보....... 그때 난 초딩이었는데? 고등학생이 초딩 만나면 오빤 완전 변태였을 거야.... 깔깔깔...... "



아....
그러고 보니 수진이는 자신과 7살 차이......
자신이 고등학생일 때 그녀는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것이다.


순간 명록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푸하......
초등학생을 꼬셔서 여자 친구라고 했으면 진짜 수진의 말대로 변태로 잡혀갔을지도 모른다.

명록도 순간 더이상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킥킥거리고 있었다.
수진은 한참 웃더니 아직도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 오빠. 아직 일하려면 멀었지? "



" 후후... 그래. 많이 남았지. "

" 그럼.....  오빠.... 조금이라도 자...... 나도 이제 씻고 자야겠다. "

그녀의 말에 사무실 시계를 보니 넉넉하게 한 시간 이상은 잘  있을 거 같았다.
그러고 보니 조금 졸린  같기도 했다.


격렬했던 정사......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서 또.....
 번의 정사.....

뒷목과 어깨가 뻐근한 거 같았다.

" 그래..... 수진이  말대로 조금 자야겠다. 너도 얼른 씻고 자....... "


" 응 오빠......"



잠시 시간이 흘러가고 그녀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 사랑해...... "

아......
달콤한 한마디.......


명록도 수화기에 입술을 가까이 대고 말했다.




" 사랑해..... 수진아....... "


다시 휴대폰을 귀에 대자 순간 쪽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분명 입맞춤 소리 같은데 그 소리 직후 통화가 종료되었다.


하아.....
하..하하하하~


전화기 저 너머 공간.....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진 수진의 얼굴이 생각나서 절로 입꼬리가 쭉 늘어났다.

명록은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자신의 자리 앞에 있는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행복한 미소를 지은 채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얼굴이 들어 있었다.



행복한 놈......
하하하.....



아무래도 잠을 자긴 틀린  같다.
울렁울렁 대는 가슴으로 명록은 실실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





12월 초가 지나고 어느새 내일이면 두 번째 주로 접어들게 되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수진은 기말고사를 코앞에 앞두고 있었다.


" 역시...... 시험기간 중에는 만나지 않는 게 좋겠지......? "



명록의 말에 수진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녀의 안색이 마치 두 가지 선물을 두고 하나를 포기해야만 하는 어린애의 표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천천히 어두운 거리를 걸었다.

중간고사 기간  이미 한번 겪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요새처럼 매일 그녀를 만났는데.....
저녁 시간마다.....
같이 시간을 보내고.....
모텔에서 서로의 체온을 느꼈는데.......
이젠 한동안 보지 않고 보내야 한다는 것이
겨울의 찬바람보다 더 명록의 가슴을 후벼파고 있었다.


수진의 머리가 명록의 몸쪽으로 기대오고 있었다.
코트가 모직 스타일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젊은 시절 입었던 빤짝거리는 파카스타일의 옷이었다면 그녀의 얼굴이 더 추웠을 테니 말이다.

그녀의 콧김도.....
입술 사이로 나오는,
가느다란 숨도 하얗게 변해서 흩어지고 있었다.


자신도 대학 시절 학점 관리에 초-민감했었다.
선배들이 강조하고 강조했던 학점에 대한 중요성은
이미 취업전선에 뛰어든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적증명서가 첨부되지 않는 취업전선은 없다.

거기에다가.....
수진은 성적에 대해 유난히 자부심도 강했다.



" 아.... 글쎄.... 교수님이 내 리포트를 하나 완전히 낮게 평가해서 그 과목만 결국 비 맞았어. 그래서 그 학기 올A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는데 하나 B 맞았잖아...... 치..... 가금  교수님.... 캠퍼스에서 보는데 완전.....미워...... 오빠도 내 심정 이해하지? 그치? "




성적에 관해 얘기하다가 나온 그녀의 넋두리.
말을 하던 수진의 눈동자엔 정말로 억울하다는 표정이 철철 넘치고 있었다.
학교 다니면서 전 학기 올 A로 마무리 짓겠다는 야심이 그냥 지나가는 농담으로 한 말은 아닌 게 분명했다.


그런 그녀인데.....
자기를 만나느라 평상시 공부는 하고 있는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매일 이렇게 보고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너무도 좋은데
한편으로는 그 시간이 수진에게는 공부를 하고 학점을 관리해야 하는.....
그런 시간과도 겹쳐져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리고....
왠지 그녀에게 자신이 짐이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기분도 들었다.


어느새 그녀가 들어가야  아파트 현관 입구에 다다랐다.
밝은 불빛이 비친 사각 틀이 바닥에 놓여 있는 그곳이 마치 항구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명록이라는 배에서 이제 내려야 할 시간......
수진이 고개를 들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가볍게 그녀의 입술에 명록의 입술이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쪽......


차가운 느낌의 짧은 키스.

" 오빠...... 나 들어갈께...... "

명록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으응....... 들어가자마자 씻고 바로 공부해...... 집에 가면 전화할께. "


" 미안해..... 오빠....... "

수진의 얼굴에 말 그대로 미안함이 가득 피어오르고 있었다.
명록은 가볍게 그녀를 끌어안고는 속삭였다.



" 그런 말이 어딨어...... 시험 끝나고 우리 연말.... 신 나게 보내자...... 흠.... 그러니까 열심히 해...... "

수진의 양팔도 그의 옆구리 아래로 들어와 감싸 안았다.

잠시 그대로 멈춰있던 둘은 저편에서 들려오는 사박사박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둘의 몸이 번개처럼 떨어지고 수진은 후다닥 빛의 영역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엘리베이터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명록도 손을 흔드는 사이 여전히 매정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녀가 사라졌다.

여느 때처럼 그녀가 사는 층까지 올라가는 것을 보고 멈춘 것을 확인한 뒤 그는 몸을 돌렸다.
아까  멀리 나타났던 발걸음의 주인공이 명록의 어깨 옆을 스쳐 지나갔다.

거나하게 취한 중년 남자의 몸에서 진한 알코올냄새가 확 풍겼다.

흐음......
윽....


역한 느낌의 냄새가 지나가자 방금전까지 옆에 있었던 수진의 향기가 더욱 그리워졌다.


어느 꽃보다 향기로웠던 그녀의 체취......


갑자기 마음 한부분에 구멍이 휭하니 뚫린 듯 텅빈 느낌이었다.


이젠 정말....
한동안 수진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더욱 가슴이 쓰라렸다.






**************




으악!!!!!!!!!!!!!!!!!!



정말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12월이 되면 언제나 있었던 일이지만
연말을 앞두고 휴가가 남아 있는 인원들이 빠지면서
자신에게 넘어온 업무량은 명록을 폭주해버리고 싶게 만들고 있었다.

자신도 그렇게 휴가를 지금 연말에 몰아서 쓰고 싶었지만
이미 수진과의 데이트로 야금야금 까먹어버린지 오래전이었다.

결국 12월 대표 근로사원의 자리는 그의 것이 되어버렸다.


넘버원~~!!!

책상에 점점 쌓이는 보고서들과 긴급한 스케쥴이 메모 되어있는 포스트잇이
컴퓨터 모니터 한쪽 면을 다 점령하고 넘쳐서 이제 칸막이를 나눈 자리 벽면을 채워가고 있었다.

지금도 벌써 두 시간째 전화기를 붙잡고
광고 진행 건에 대해 업체 연락을 하면서 보고서를 편집하는 중이었다.

전화 업무만으로도 하루가 마감될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자리에 놓인 두 개의 전화기 중 하나는 아예 내려놓았다.

명록의 미간에 주름살이 줄줄이 잡히면서 절로 인상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속으로 계속 비명과 절규를 난무하는 중이었다.




으으.....
살려줘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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